(2020년 8월호 제86호=고선주 기자)전남 해남 출생 김준태 시인(73)이 시력 50년을 넘어섰다. 그의 시력에는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진 시간들이 압축돼 있기에 더더욱 주목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1969년 전남일보(광주일보 전신)와 전남매일신문 신춘문예(1980년 강제통폐합으로 폐간)로 등단, 문단에 나왔다. 그해 11월 조태일 시인이 주간을 맡았던 월간 ‘시인’(詩人)지를 통해 김지하 시인과 함께 중앙 문단에 이름을 내밀었다.
그는 우울한 가계의 역사를 온 몸으로 껴안으며 현대사 한 가운데를 관통해 왔다. 그의 조부는 강제 징용을 당했고, 부친 역시 일본군으로 강제징병이 됐다. 그 이후 잠잠한 시간을 기도했지만 고난은 계속됐다. 그의 나이 세살 때 부친이 6·25한국전쟁 형국에서 보도연맹 사건에 휘말려 해남 대흥사 아랫마을 ‘너부채 골짜기’에서 젊은 사람들과 함께 학살당하는 비운까지 감내해야 했다. 여기다 베트남 전쟁 파병과 5·18광주민중항쟁의 한복판에 서면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현재에 이르고 있다.
5·18항쟁도 전쟁으로 바라보는 그는 일제와의 전쟁과 6·25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등 네 차례의 전쟁을 겪었다고 술회한다. 오로지 창작을 하면서 살아온 50년의 시적 행간을 들어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는 올해 40주년을 맞은 5·18항쟁의 미래방향도 잊지 않았다. 그는 최근 금남로 인근 카페에서 이뤄진 인터뷰를 통해 온몸으로 맞서 싸우며 지나온 세월들을 가감없이 들려줬다.
그의 5·18항쟁은 어느새 인간 존중과 평화로 연결되고 있었다. 그가 말한 5·18항쟁의 정신은 생명존중과 공통체적 가치에 있다는 것이다. 생명의 존귀함을 무차별 폭력과 살상으로 파괴하는 현장을 목도했다. 그러면서 5·18항쟁의 정신적 가치를 역사적 맥락에서 발현시켰다. 동학혁명까지 호출했다.
역사적 정의는 늘 교집합으로 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갔다. 그의 소신들은 타협의 여지가 없다. 5·18항쟁 역시 마찬가지다. 그가 줄곧 내세웠던 시적 본류를 이해할 수 있는 발언들을 이어갔다.
"5·18항쟁은 그 정신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의 가족이 다치면 어느 누구나 눈이 뒤집히는 것처럼 오월 현장에서 상처입고,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많이 목도했죠. 동학혁명 때 전북 우금치에서도 생명존중과 공동체적 가치가 발현됐잖아요. 우리의 오월광주도 마찬가지구요. 절대 공동체적 가치가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죠."
5·18항쟁 하면 볼리비아 혁명이 떠오른다는 그는 ‘볼리비아 운동사’(한마당출판사 刊)를 통해 접한 볼리비아 혁명에서 5·18항쟁의 가치를 추출한다. 결국 인간생명의 소중함이라는 설명이다. 사람 위에 하늘 없고, 하늘 위에 사람 있다고 한다. 인내천이 아니라 하늘 위에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땅위→사람→하늘→사람이 그것이다. 이는 인간의 거룩함에 대한 이야기로 인간존중과 평화를 되새겨야 한다는 것을 주문한다.
그는 독재로 얼룩진 현대사를 문학 안팎에서 맞서며 살아왔다. 5·18항쟁도 그렇고, 남북분단도 그렇다. 때론 절규가 되기도 하고, 때론 삶 그 자체로 피와 살이 됐다. 분단이 70년을 넘어서고, 5·18항쟁이 40년을 넘어서고 있다. 간간이 배신의 목소리들이 차고 넘친다. 그럴수록 시인은 시대와 삶에 대한 강고한 사고를 유지한다. 시대와 삶에 관한한 유통기한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분단의 맨 끝 결론은 통일이어야 한다는 소신을 읽을 수 있었다. 그는 상호 인정과 상호 교류, 상호 통합을 통한 통일의 교두보를 역설했다. 다시 김대중 전(前)대통령과 북의 김일성 주석의 통일론, 더 나아가 동서독 통일까지 빠뜨리지 않고 언급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단계 통일론을 중시하죠. 김일성은 연방제 국가를 내세웠잖아요. 1민족 1국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6·25한국전쟁은 남북한 합해서 700만을 사망케 했는데 말도 안되는 비극이 벌어진 거예요. 지금 전쟁이 나면 2500만이 사망할 겁니다. 연합정부론은 독일을 벤치마킹할 수 있는데 상호체제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죠. 동서독은 만나 서로 다른 체제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여기에는 중요 맥락이 세가지가 있는데 상호 인정과 상호 교류, 상호 통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인간의 생명과 관련해 평화의 소중함을 설파한 뒤 한반도는 남북교류와 민간교류를 병행해야할 때임을 밝힌다. 문재인 정부는 ‘통일 프로세스’를 내세우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민족정서를 회복하는 일을 꼽는다. 독일은 분단 40년만에 만나 통일을 결국 이뤘다. 그들은 서로 달라져 있는 현실을 당연하게 맞아야 했다. 우리는 분단 70년이 됐다. 이제 여타 다른 통합 못지 않게 문화통일이 시급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의 시편들은 백척간두에 섰던 현대사를 관통하며 흙과 농촌으로부터 출발했다. 생명을 오롯하게 키울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 생명성이 굴곡진 현대사를 관통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해서다. 생명성 외에 정신적 가치의 올곧음 또한 그가 추구하는 담론들이다. 문학 안으로 옮겨 와서는 샤먼과 만나는 듯하다. 그의 샤먼의 영토는 더욱 넓어지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자신의 시가 불교사상과 샤먼이 결합됐음을 피력한다.
"흙과 농촌이 관통하고 있는데 대지적 정서와 농촌 정서가 5·18항쟁과 연계돼 있어요. 대표적으로 시 ‘참깨를 털며’ 등을 들 수 있죠. 베트남 파병 때 겪었지만 살육이 난무했습니다. 그때 살육의 DNA를 계속 태워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고, 특히 마음으로 태워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죠. 88세로 돌아가신 할머니의 손을 붙잡고 해남 대흥사를 다니며 어렸지만 생명존중을 배웠어요. 제 시가 불교사상과 샤머니즘이 결합된 근거이죠. 소울, 즉 정신적 가치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는 이슬람 코란까지 예를 들어 설명했다. 코란에도 사람이 만지고 하는 것에는 혼이 들어있다고 언급됐다는 것이다. 지금은 성당에 나가고 있고, 세례명이 베드로다. 성당에 가면 눈물이 많이 난다. 마치 몸이 깨끗하게 씻겨져 내려가는 듯하다. 그런데 누가 종교를 물어오면 다신교라 답한다. 종교는 ‘샤먼’이다. 거리에 무심한 듯 서있는 벚꽃나무가 샤먼이다. 이 세상에 나 아닌 것은 없다. 나와 너, 화엄사상에 기인된다는 언급이다. 그가 생각하는 샤먼은 많은 사유들을 거느리고 있거나 내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시적 메타포로까지 해석을 가한다. 바이블을 은유로 바라보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우주와 나는 하나죠. ‘A는 B다’ 이게 은유 아니겠어요. 메타포인 것처럼 바이블은 모두 은유법이죠. 불경을 비롯해 공자나 맹자, 코란도 모두 은유예요. 문학인은 절대 자기 종교를 고수해야 겠지만 동서양의 문화와 사상, 철학이 툭 터져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어요. 인도 우파니샤에서 온 것이 불교인데 기독교도 불교 영향을 받았다고 봅니다. 꽃과 대화한다는 의미는 ‘본다’는 것입니다. 그로부터 원형을 생각해요. 요즘 둥근 것이 좋아요."
둥근 것이 좋은 근거로 모서리가 파손의 함의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둥근 것이 원형이라는 믿음이다. 어머니의 얼굴을 비롯해 모든 사람의 얼굴은 둥글고, 곡식들 역시 둥글며, 열매와 태양, 달 모두 그렇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듣고 있다보니 둥긂을 찾아가는 여정이 삶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인터뷰를 하던 중간 쯤 다시 오월로 돌아왔다. 그가 들려주는 오월에서 1980년 당시 오월과 미래 오월이 접선을 시작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오월을 뛰어넘어야 오월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앞의 오월은 1980년대의 것이고, 뒤의 오월은 미래의 것으로 해석됐다. 그는 5·18 정국에서 전남매일에 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를 발표해 오월시의 표상이 됐다. 그 장본인이기에 이같은 언급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여겨졌다.
"시민들을 너무 오월에 묶으면 안됩니다. 오월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오월에서 얼마나 가까이 있는가를 알 수 있지 않을까요. 40년이 됐으니까 역발상을 할 때죠. 시민들을 풀어줘야 합니다. …중략… 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는 전체 103행의 시인데 엄혹한 시대상황 속 창작시간이 40분 밖에 걸리지 않았죠. 쭉 써내려간 시예요. 그때 귀신(엑시터시)이 들렸던 것 같아요. 접신 들렸던 것 같습니다. 조사 하나 안틀리고 다 썼습니다."
당시 조판한 것을 다 밖으로 빼돌려 당시 10만부를 찍어 전국으로 보냈다. 이 시는 검열 후 삭제돼 33행으로 축소됐다. 다 잘라 버린 것이다. 그는 ‘시는 때 안가리고 온다’고 전한다. 영어와 독어 선생을 할 당시 수업을 하다가 학생들에 양해를 구하고 잠시 멈춘 뒤 칠판에 시를 쓰곤 했을 정도로 그는 시대를 가리지 않고 창작에 집중했다.
최근 그의 메모들을 통해 근황의 단면을 엿볼 수 있었다. 그가 늘 가지고 다니는 작은 가방에는 노트북에서부터 각종 메모장과 필기구 등에 이르기까지 온통 창작 도구들이 한가득이다. 언제 어디서든 메모를 해야 하는 그의 성격이 드러났다. 그날 인터뷰에서 접할 수 있었던 시적 메모들은 그가 문학을 어떻게 생각하고, 시대를 어떻게 바리보고 있는가를 알 수 있는 바로미터인 셈이다.
시 ‘노래, 사람’에서 ‘하늘과 허공에 칼을 던지니/피가 뚝, 뚝 떨어진다/아흐, 하늘과 허공에도/사람이 살고 있었구나’(2020.6.15)라고 노래한다. 정말 붓펜이 채 마르지 않은 작품이다. 자판으로 두드린 것이 아닌, 붓펜으로 직접 쓰고 그린 것들이다. 자판 글씨가 아닌, 붓펜 친필시여서 옛 정서가 물씬 풍긴다.
또 다른 페이지에서는 ‘한반도 통일방법론·5’(2020.6.30)를 접할 수 있었다. 고전서적처럼 엮어진 책자 속 흰 여백에 한땀 한땀 새긴 것들이다. 시를 위한 생각들, 그리고 평화와 통일에 관한 생각들을
빼곡히 글과 그림으로 채워가는 중이다. 언젠가 시인이 ‘세상에 눈을 감아서 되겠냐’고. 그는 여전히 일상 안팎에서 시밭을 일구며 남북을 생각한다. 그의 시밭에는 주로 에너지가 꿈틀댄다.
끝으로 오월 광주는 시민들을 풀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오월을 강요하지 말아야 하고, 자유와 평화를 심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오월의 거대서사를 도그마(dogma, 틀·상자) 시켜서는 안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인이 썩었다면 시를 쓰지 말아야 한다’는 그는 시적 방향과 시인의 의미를 각인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시는 그 민족의 노래와 꿈이며 생명과 평화, 갈라짐이 아닌 ‘하나됨’의 에너지로 작동돼야 합니다. 시인은 그 민족의 하느님과 언제나 교신(交信)하는 운명적 존재죠."
그는 1996년 문예중앙에 중편 ‘오르페우스는 죽지 않았다’를 발표하며 소설가로도 이름을 알렸다.
올 가을 24년만에 중편 1편과 액자소설 90편을 묶은 두번째 소설집 출간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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