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호 제88호=정채경 기자)그의 손에 첼로가 쥐어진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어릴 적 그의 집에서는 항상 음악이 흘러나왔고, 가족 노래자랑이 열리는 날이면 반주가 깔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면 그것을 녹음하고, 들어보며 시간을 보냈다. 늘 음악과 함께한 것이다.
첼리스트 윤소희씨는 초등학교 5학년이던 12세에 첼로를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시작하는 타 연주자들보다 다소 늦은 나이에 첼로를 잡은 셈이다.
음악을 하게 된 것은 피아노와 플루트, 성악을 전공한 언니들의 영향이 컸다. 다섯째 중 막내인 그는 자연스럽게 언니들의 악기 연주를 보며 자랐다. 첼로 연주를 시작한 것도 피아노, 플루트, 성악과 함께 음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고음이 있으면, 저음도 있어야 밸런스가 유지된다는 생각에서다. 그렇게 첼로를 배우다 중학교 3학년 때 잠시 쉬게 된다. 전공자의 길이 험난한 데다, 한번의 선택을 쭉 밀고 나가는 성격이어서 당시 고민이 많았다는 설명이다. 현악기의 경우 대입 입시를 준비하면서 돈이 많이 드는 점도 한 때 부담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그러다 고등학생이 돼 다시 음악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레슨을 다녔다. 쉰 만큼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에 새벽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연습에 매진했다.
연습 덕분에 그는 전남대학교 예술대학 음악학과에 입학했다. 그 뒤 동 대학원을 졸업, 박사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유학을 결심하고, 독일로 떠나 7년간 전문 연주자로 기반을 탄탄히 다졌다.
독일 라이프치히 국립음대에서 전문연주자 과정과 실내악 최고연주자 과정을 졸업, 바이마르 국립음대에서 최고연주자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마쳤다
빈 국제음악캠프와 라이프치히 국제 여름아카데미, 독일 라이프치히 유럽 음악 축제 등의 마스터 클래스에서 아르토 노라스(Arto Noras)와 니클라스 에핑거(Niklas Eppinger) 등 세계적인 첼리스트와의 만남을 통해 음악적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독일 슈만 하우스 등에서 초청독주회와 네덜란드 동남부 마스트리흐트에서 초청 듀오연주회를 선보였으며. 유학시절 라이프치히 트리오 단원으로 바이스위츠 하우스 등에서 연주회를 열었다. 실내악 콩쿠르에 입상하기도 했다.
2007년 한국으로 돌아와 독주회 다수, 교토 필하모닉 챔버 오케스트라와 협연, 한ㆍ불 수교 130주년 기념 프랑스 초청 연주회 ‘Le Haillan’ 등을 통해 활발하게 활동했다.
태교음악회 ‘태아와의 38주 음악여행’ 및 찾아가는 음악회 등 클래식 저변을 확대하는 무대를 다수 선보여온 것은 물론, 랑현악사중주와 윤앙상블, 마주얼 앙상블 단원으로 연주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현재 목포대학교와 광주교육대학교에서 강사로 후학을 양성 중이다.
이렇게 막힘없이 첼리스트로서 활동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결정을 하면 끝을 볼 때까지 밀고 나가는 성격과 앞에서 끌어주는 부모 및 자매들, 남편과 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한다.
그는 첼로 선율에 대해 "음이 낮아 듣기에 굉장히 편안한 소리를 내는 악기"라고 설명했다.
소리가 낮기 때문에 느슨해지거나 지루할 수 있지만 연주자의 기량에 따라 바이올린처럼 높은 음을 낼 수 있다고 한다.
"플루트는 높은 음역부터 낮은 음역까지 피콜로를 비롯해 알토 플루트와 베이스 플루트, 콘트라베이스 플루트 등으로 나눠지는데, 첼로는 한대로 여러 음역대를 연주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죠. 12첼로와 4첼로 등 여러 첼로가 한 자리에서 앙상블을 할 수 있는 거죠."
크고 넓어 깊은 울림으로 포근하고 따뜻한 음을 내 감수성을 자극하는 차분한 분위기 뿐만 아니라 박진감이 넘치는, 활발한 연주 등 변화무쌍한 소리를 들려줄 수 있는 악기라는 것이다.

첼리스트 윤소희씨의 연주 모습.

특히 그는 정통 클래식을 들려주는 무대에 독특한 기획력을 더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선보인 ‘LED와 함께한 광주(光奏)’가 그것이다. 지역을 재해석한 무대를 선보이고, 현악 무대에서는 찾아보기 드물게 악장을 알려주는 영상을 상영하기도 했다. 이같은 변화는 공학도인 배우자 주윤식 BHI연구원 덕분이다. 아카데믹한 클래식을 고집하는 그에게 프로그래밍과 인공지능, 빅데이터에 관심이 많은 주 연구원은 그가 한단계 발전할 수 있도록 영감을 주고 있다.
이어 그는 바쁜 시간을 쪼개 쉼 없이 연습하는 자체가 너무나 즐겁다고 했다. 돌아보면 공부를 마치고 귀국했던 때는 혈기왕성해 ‘잘해야지’, ‘틀리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 음악이 아니라 첼로와 겨루기를 했다고 한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작곡자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걸 들여다보는 게 먼저가 됐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맞춰 레퍼토리를 구성, 시간이 지나며 점차 농익은 무대를 선사할 때 청중들에 감동이 전달된다는 입장이다.
그렇기에 어떤 상황 속에서, 무슨 감정으로 곡 해석이 이뤄져야 할지 고민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작곡가가 있으면 물어볼 텐데, 그럴 수 없으니 스스로 찾아내야 하는 데 첼로곡에 대한 문헌이 많지 않아 더 어렵다는 전언이다. 그러고도 부족한 부분은 상상력으로 채운다. 그게 잘 안되면 설익은 무대가 되기 때문에 매우 신경쓴다는 설명이다.
그는 연주회 기획 시 꼭 한 곡 만큼은 몹시 테크닉이 요구되는 곡을 끼워 넣는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기량을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서다. 무용수 만큼은 아니더라도 나이가 들면 근육이 쇠퇴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현악기는 몸의 기력이 쇠해지더라도 정확하게 습득해 놓으면 나중에도 연주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를 ‘피크’로 생각하며 테크닉을 유지하려고 해요. 몬티 차르다시의 바이올린 곡과 림스키 코르샤코프의 ‘왕벌의 비행’을 첼로버전으로 연주하는 등 무대를 준비할 때 무리수인 곡을 연주하죠. 100퍼센트 훌륭하게 해내는 걸 떠나서 연륜이 있으니까 잘하는 부분은 잘하고, 부족한 부분은 채우기 위해서예요."
이와 함께 그는 클래식을 향한 기존의 시선을 바꾸고 싶다며 음악 장르 중 하나로 클래식이 받아들여 졌으면 한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케이팝과 트로트 등 많은 사람들이 듣는 여러 장르의 곡들 중에 클래식도 있었으면 해요. 클래식이라는 고유한 장르는 유지하면서 어려운 음악, 특정한 사람들만 즐기는 음악이라는 편견을 깨고, 취향에 따라 골라 듣는 음악 중 하나였으면 하는 거죠. 문화예술의 대중화가 아니라, 대중의 문화예술화가 됐으면 해요."
윤소희 첼리스트는 코로나19로 인해 계획했던 무대가 모두 취소 또는 무기한 연기된 가운데 위기를 기회로 삼는다는 입장이다.
올해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기념해 5개의 첼로소나타를 연주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한곡 만 30여 분이어서 1~2회로 쪼개 공연을 올리더라도 꼭 공연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외에 오는 11월 맵핑 콘셉트 ‘랑의 과거-현재-미래’ 등도 예정돼 있다. 또 평생 남는 것이어서 도전하는 맛이 있다는 실황 연주 영상을 유튜브에 업로드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줬다.
"클래식 애호가들은 저 아니어도 공연장을 찾고, 클래식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있죠. 클래식을 모르는 사람들, 첼로 선율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제 연주를 들었을 때 위안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게 음악의 힘이니까요. 추억의 한 기억에 남는 음악이 제 연주였으면 합니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