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노는 법 전수"…‘전통예술’ 놀이판 깔다

예술기획(광주간판예술단체를 찾아서 <46>전통연희놀이연구소
1999년 설립 후 20여년 예술교육활동 ‘몰두’
광주 100여개 학교 찾아 탈춤·풍물 등 선봬
"전통 가치 이어…‘동네 놀이터’ 공간 되길"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0년 12월 28일(월) 15:32
(2021년 1월호 제92호=글 박세라 기자)

교과서 안에서 텍스트로만 접했던 ‘사자춤’을 눈앞에서 펼쳐 보이고, 음악 시간 악보로 소개됐던 민요 한편을 스토리가 있는 ‘음악극’으로 선보인다. 이들의 무대는 바로 각 초등학교의 교실. 공연자들이 곧 전통예술의 매력을 전하는 선생님이자, 이 시간 학생들의 놀이친구가 된다. ‘놀이에서 예술로, 예술을 교육으로’란 모토 아래 20여년 전통예술교육 콘텐츠 개발에 몰두해온 전통연희놀이연구소 이야기다.
전통연희놀이연구소는 정재일 대표를 중심으로 13명의 단원들로 이뤄진 단체다. 전주에서 활동하던 정 대표는 광주에 ‘강령탈춤’을 알리기 위해 내려왔는데, 활동하다보니 탈춤 뿐 아니라 전통예술 전반을 이끌게 됐다. 풍물·가야금병창·춤 그리고 구연동화 부문까지 식구가 하나 둘 늘어나 지금의 모습이 됐다.
지난 12월7일 북구 대천로에 자리한 이들의 ‘놀이터’에서 정 대표와 그 단원들을 만났다. 낮은 책상 하나를 두고 빙 둘러 앉자, "진짜 여기까지 찾아오는 기자가 있네"하면서 신기해한다. 1999년 설립, 2020년 비영리사단법인으로 창립하기까지 교육현장에서 줄곧 고군분투 해온 터라, 단체를 조명하는 정식 인터뷰는 낯선 모양이었다.
전통연희놀이연구소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서 입을 떼자, 벽면에 크게 걸린 현수막을 가리킨다. ‘놀이에서 예술로!’다
"강강술래도 처음에는 손을 잡고 뱅뱅 도는 일종의 놀이로 시작됐다가 하나의 예술 장르로 정착한 케이스입니다. 버나 돌리기나 탈춤도 마찬가지죠. 예술이라고 하면 어렵고, 나와는 먼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많아요. 하지만 예술과 놀이는 다르지 않음을, 놀면서도 예술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죠."
실제 이들은 ‘학교로 찾아가는 전통연희공연’, ‘전통문화체험’, ‘현장체험학습’, ‘창의적교과통합프로그램’, ‘전통연희교육’ 등 5개 섹션의 15개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세부적으로는 풍물굿·상모놀이·탈춤 등의 전통공연을 비롯해 실내악 연주로 만나는 동요와 민요, 액자탈·풍물놀이고깔 만들기, 교과서 속 민화를 활용한 연희극 만들기, 문화예술을 통한 진로·직업체험까지 다채롭다.
이 같은 프로그램의 틀을 잡는 데만 8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40여분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전통예술을 즐기게끔 하고자 하는 이들의 노력이 엿보인다.
전통연희놀이연구소는 그간 광주의 100여개 학교에서 공연·교육 콘텐츠를 선보였다. 한 번 찾아간 곳이면 다시 러브콜이 오기 마련이다. 아이들의 반응이 너무나 뜨거워서다. 이들이 보여준 책자엔 ‘수업 후기’와 같은 아이들의 실제 일기가 실려 있는데, 현장의 열기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김하민 학생은 ‘사자탈춤을 봤다. 처음엔 깜짝 놀랐는데, 점점 더 재밌었다. 집에 돌아가 있는데 생각이 많이 났다’고 했고, 정지수 학생은 ‘사자탈을 쓰고 배운대로 직접 체험했다. 너무 웃겼다. 너무너무 재미있었다’고 썼다.
"학교 수업시간에는 큰 소리를 내거나 떠들면 안 되잖아요. 하지만 우리 시간에는 다릅니다. 소리를 실컷 내고, 몸을 자유로이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죠. 사실 가만히 있어도 에너지가 분출되는 시기잖아요. 그런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콘텐츠로 한 바탕 잘 노는 겁니다. 우리가 다녀가면 학교에 활력이 돈다고 해요."
지난해 11월에는 ‘코로나19’ 탓에 탁 트인 운동장에서 사물놀이를 선보였는데, 끝나고 아이들이 제 순서를 기다리면서 줄을 섰다. 무슨일인가 했더니, ‘징’을 쳐 보고싶은 이들이 하나 둘 모여 장사진을 이룬 것이다. 이처럼 전통연희놀이연구소가 펼치는 프로그램들은 관객 참여의 길을 통 크게 터 둔다. 단이 높은 무대를 마련해 놓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공연자와 관객의 구분도 두지 않는다. 그저 어울려 놀다보면, 자연스럽게 예술을 즐길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서다.
"놀면서 터득하는 게 있어요. 강강술래를 배운다고 하면, 이론을 일장 늘어놓는 것이 아닙니다. 친구들 손을 잡고 돌면서 아이들이 직접 깨닫게 되죠. 빠르게 뛰면 앞사람과 부딪힌다는 것, 친구들과 한 호흡으로 움직여야 모양이 예쁜 동그란 원을 그릴 수 있음을요. 실컷 놀았을 뿐인데, 예술을 배웠네 하면서 아이들이 신기해하죠."
이들은 살아있는 교육을 지향한다. 전자장비나 기술의 도움은 지양하고, 소리로 다져진 걸쭉한 육성과 무대를 사로잡는 몸짓으로 아이들의 집중도를 끌어올린다. 전통연희놀이연구소가 말하는 ‘아날로그 방식’의 공연이다. 음악 수업시간에도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듣는 아이들, 스마트폰이나 모니터 화면을 통해 접하는 것에 익숙해진 아이들에게 오감으로 즐길 수 있는 교육이자 놀이를 선물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오감 교육이 이뤄지고 나면, 각 장르에 얽힌 역사·문화·사회적 배경들도 흥미로운 옛 이야기를 풀듯이 들려준다. 가령 탈춤을 모두 배우고서는 "이게 바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우리의 자랑스러운 전통예술이다"고 하면 저절로 박수가 쏟아져 나온다고. 앞서 탈춤을 ‘몸’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반응이다.
"이 같은 경험을 통해 아이들이 ‘내 것으로 만드는 방법’을 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요즘 아이들에게 ‘나가 놀아라’고 자유시간이 주어졌을 때, 스마트폰과 같은 전자기기 없이 신나게 제 시간을 쓰는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요. 한 가지 놀잇감을 줬을 때, 아이들이 직접 생각하고 발전시켜 재미나게 시간을 보내는, 그 일련의 과정을 응원하는 겁니다. 진짜 잘 노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라 볼 수 있죠."
전통연희놀이연구소는 이처럼 일상 삶에서 예술을 즐기도록 하는 것에 힘을 쏟는다. 일상에서 그 존재를 공고히 하는 일이야말로, 예술이 예술로 살아남을 수 있는 제1의 조건이라 믿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전통연희놀이연구소는 ‘기술 연마’ 역시 공을 들인다. 각자의 분야를 깊이있게 공부하는 것은 기본이다. 예술적으로 내공이 있어야만 전통예술의 깊이를 아이들에게 온전히 전달할 수 있어서다. 자신들이 진행하는 수업이 곧 한편의 공연 무대이기 때문에 감동을 주고자 함은 당연할 터.
이들의 꿈은 전통연희놀이연구소의 연습실이 동네의 진짜 놀이터가 되는 것이다.
"예술이 쇼윈도에 머물러 있어선 안 됩니다. 전통이라는 범주를 벗어나 그 생명력을 잇기 위해서는 일상 삶에서 예술을 즐기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죠. 미래를 이끌 아이들이 전통예술에 긍정적인 감성을 갖게 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기도 하고요. 학교를 마치고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이곳으로 오고, 모인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다가는 그런 그림을 꿈꿉니다. 이곳이 아이들의 재미난 예술놀이터가 되길 바라요."
전라도인 admin@jl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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