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원형 통해 역사의 정의 복기했으면

문득 여행(겨울에 미리 가본 ‘5·18사적지’)
코로나19 여파 찾는 발길 없어 엄숙…참배 여정 의미
국립망월민주묘지·광주교도소·옛 전남도청 등 둘러봐
원형 보존 노력해야…‘의롭고 숭고한 역사’와의 만남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1년 01월 28일(목) 17:39

(2021년 2월호 제93호=글 고선주 기자)

5·18민중항쟁은 왜곡과 폄훼가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을 뿐, 여전히 진실이 규명되지 않았고, 책임자 처벌 또한 이뤄지지 않았다. ‘역사적 정의 바로 세우기’ 차원에서라도 반드시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 희생자만 있고, 가해자가 없는 이 아이러니가 40년이 지난 오늘의 마음을 더욱 아리게 만든다. 그래서 미완의 역사라 표현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째깍 째깍 흘러간다. 시간이 흐른 뒤 5·18항쟁은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될 것이다. 하지만 5·18을 겪은 광주시민들이 생존해 있을 때 모든 것을 반드시 완결지어야 한다. 유가족과 목격자가 모두 사라지면 역사는 승리자의 것임을 우리는 익히 잘 알고 있지 않는가. 위정자들은 자기들 입맛에 맞게 5·18을 각색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가까이로는 일제 잔재 청산을 해내지 못해 현대사가 어떻게 왜곡됐는가를 몸소 겪은 바 있다. 단죄하지 못한 채 가해자들이 버젓이 한 시대를 호의호식하며 아무런 ‘죄책감 없이’, ‘사과 없이’, ‘처벌 없이’ 그들의 삶을 살아가게 한다면 우리 시대의 정의는 실종되고 말터다. 역사의 죄인이 되지 않기 위해 우리 모두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온힘을 모아야 한다. 지난해 5·18항쟁 때 모두 40주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현실은 별반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피부에 와닿을만한 진척이 없어 보인다는 의미다. 물론 5·18항쟁의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온힘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있기에 그나마 이 정도까지 진척됐다는데는 인정한다. 서두가 길었다. 5·18만 나오면 할 말이 많아진다. 그만큼 억울하고, 속으로 화가 치밀어오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런 무거운 마음으로 폭설이 내린 뒤인 1월9일 오후 공부도 할겸 해서 5·18항쟁 사적지들을 둘러봤다. 전국에서 광주만 있는 ‘오월길’이었다. 모처럼 참배의 여정이 됐다. 사적지들에는 코로나19 재확산 여파 때문인지 찾는 발길이 없어 더 엄숙해지기는 했다.
사적 1호인 전남대학교 정문을 비롯해 사적 2호인 광주역 광장, 사적 22호인 광주교도소, 사적 24호인 5·18구묘지, 국립5·18민주묘지 그리고 사적 5-1호인 옛 전남도청과 사적 5-2호인 5·18민주광장 일대 및 사적 23호인 국군광주병원 등을 찾았다.
먼저 전남대학교 정문은 5·18민중항쟁 최초의 발원지로 그 의미가 작지 않다. 1980년 5월17일 밤 전남대에 진주한 계엄군은 도서관 등에서 공부하고 있던 학생들을 무자비하게 구타하고 불법 구금하면서 5·18의 전주곡은 울렸다. 계엄군이 5월18일 아침 학교에 등교하거나 5·17비상계엄확대조치에 항의하기 위해 정문 앞에 모인 학생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자, 이에 학생들이 항의하면서 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음흉한 독재군부권력에 대해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5·18의 거대한 서사가 발현됐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알지 못하면 이곳이 유서깊은 항쟁의 공간이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할 만큼 너무나 일상적 공간이 돼 있다.



이어 광주역 광장은 무자비한 살육 앞에 광주시민들이 하나 둘 모여 독재권력을 규탄하며 하나로 뭉친 곳이다. 5·18민중항쟁 당시 광주시민과 계엄군 사이에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던 곳이다. 5월20일 밤 광주역에 주둔해 있던 계엄군이 비무장 시민들을 향해 발포, 다수의 사상자가 나왔고, 5월21일 아침 주검 2구가 발견됐다. 전남도청 앞 광장으로 주검을 옮겨오자 이 소식을 들은 시민 수십 만 명이 항쟁에 적극 동참하면서 항쟁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5·18 항쟁이 전 시내권으로 확산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곳 중 하나다. KTX 개통 후 퇴락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어 안타깝다.
또 광주교도소는 시민들이 붙잡혀와 고문당하고 수용됐던 곳이다. 광주교도소에 주둔한 계엄군은 담양과 순천 방향으로 이동하던 차량과 시민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해 많은 시민이 희생됐다. 또한 계엄군에 의해 무고한 시민들이 광주교도소로 끌려와 무자비한 고문을 받았고, 그 과정에서 사망한 희생자 시신은 교도소 안과 인근 야산에 암매장됐다가 항쟁이 끝난 후 발굴됐다. 여러 차례 발굴을 시도했지만 여전히 행불자로 남은 영령들의 시신이 암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분석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주변이 대단위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는데다 교도소 건물들만 남아있어 한때 이곳이 교정시설이었나 할 정도였다.
5·18구묘지는 오월영령들이 민주주의를 수호하다 영면에 든 곳이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산화한 영령들이 하나 둘 묻히면서 ‘망월동 묘지’로 불렸다. 당시 시민들은 처참하게 훼손된 주검을 손수레에 싣고 와 이곳에 묻었고,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거나 5월 27일 도청 함락 때 희생된 주검은 청소차에 실려와 묻혔다. 구 묘역은 당시의 참상을 처절하게 안고 있는 곳으로 현재까지 국내외 참배객들이 수없이 찾는 추모의 공간이 됐다. 이곳을 찾을 때마다 엄숙하고 억울함 때문에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곳을 참배한 시민이라면 모두 느꼈을 법하다.
마지막으로 국립5·18민주묘지는 오늘날 준엄한 역사교육의 장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1994년부터 시작한 5·18묘지성역화 사업이 3년만에 완공돼 구 묘지에 묻혀 있던 분들부터 이곳에 안장했다. 국립5·18민주묘지는 무등산이 바라다 보이는 아늑한 곳에 터를 잡고 있으며, 이 땅에 다시는 불의와 독재가 발 붙이지 못하도록 하는 준엄한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국립5·18민주묘지는 민주의 문과 숭모루, 역사의 문, 추념문, 유영봉안소, 추모탑, 부조, 헌수기념비, 사진자료전시관, 추모관 등으로 구성돼 있다. 2묘원 역시 5·18 관련 인사들이 속속 모셔지고 있다.
이중 광주교도소는 2025년까지 상징성과 역사성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사적지 보존공간을 체험전시관으로 복원하는 동시에 인권도시와의 교류, 교육 공간의 국제인권교류센터 조성을 목표로 하고 있어 향후 5·18항쟁의 또 다른 필수 답사 코스가 될 전망이다. 추상적 접근이 아니라 구체적 아카이브 자료 등을 통해 5·18 이후 세대들을 대상으로 5·18의 실체를 안겨주는 한편, 그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 긍정적 역할이 기대되고 있다.
이어 옛 전남도청과 5·18민주광장 일대 및 국군광주병원을 방문했다.
옛 전남도청은 5·18 당시 항쟁 본부가 있던 곳이다. 시민·학생수습위원회의 활동이 있었고, 시민공동체 활동의 중심이었다. 또한 이곳은 5월27일 새벽 계엄군의 무력진압에 맞서 싸운 시민군의 최후 결사항전지로, 마지막 항전에서 수많은 시민군들이 산화했다.
하지만 그동안 일부 원형이 훼손돼 복원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필자가 가장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는 곳이다.
5·18민주광장은 5월 18일 이전 3일 동안 학생과 시민들은 이곳에 모여 대규모 ‘민족·민주화대성회’를 열고 시국선언문을 발표해 군사통치 종식과 민주화를 촉구했다. 특히 5·18 사적지 가운데 유일하게 원형이 고스란히 보존된 분수대와 30여년 만에 복원돼 제자리로 돌아온 5·18시계탑으로 인해 5·18민주광장은 시민들의 피끓는 함성이 울려퍼지던 옛 전남도청 앞 현장의 본래 모습을 어느 정도 되찾게 됐다. 매일 오후 5시 18분에는 5·18시계탑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 차임벨이 울려 퍼진다. 실제 필자 역시 1980년대 중후반 이곳의 시위에 참여한 바 있다.
국군광주병원은 부상환자를 치료하고 수용 조사했던 곳이다. 이곳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사에 연행돼 심문하는 과정에서 고문과 폭행으로 부상을 당한 시민들이 끌려와 치료를 받았다. 이곳에까지 계엄사 수사관들이 파견돼 시민들은 치료 과정에서 취조를 당하는 등 고초를 겪어야 했다. 오월의 참혹한 역사가 서려 있다.
생각나는 대로 들르다 보니 사적지를 많이 빠뜨려 아쉬움이 컸다. 횃불, 희생, 광장, 열정, 영혼 등 5개 코스 총 39곳의 사적지가 ‘오월길’이라는 범주에 포함돼 있다.
둘러보면서 더이상 원형이 훼손돼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5·18 사적들 중 법과 인식 및 역사적 가치가 미비된 시절, 우리는 여럿 사적지들을 해체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했다. 5·18은 전세계적으로 광주만 있는 역사이기에 자긍심을 가지고, 원형을 보존해나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코로나19 여파로 어디 마음놓고 갈 수 없는 시점에 혼자 찾았던 5·18 사적지들에서 근래 가장 의미있는 여정이 됐다는 믿음이다. ‘의롭고 숭고한 역사와의 만남’이 됐다. 마침 역사왜곡처벌법과 진상규명법, 유공자예우법 등 5·18 관련 3법이 통과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제 근심을 안해도 되지 않을까라는 위안을 건네본다.
이들 사적들이 100년이 지난 뒤 후세대들이 5·18항쟁의 원형을 통해 역사에 대한 정의를 복기했으면 하는 바람을 안고 돌아왔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
회사소개회사연혁회원약관개인정보보호정책제휴문의고충처리인광고문의기사제보
광남일보 등록번호 : 광주 가-00052 등록일 : 2011. 5. 2.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광주 아-00193 등록일 : 2015. 2. 2. | 대표 ·발행인 : 전용준

광주광역시 북구 무등로 254 (중흥동 695-5)제보 및 문의 : 062)370-7000(代) 팩스 : 062)370-7005 문의메일 : design@gwangnam.co.kr

본사이트에 게재된 모든기사의 판권은 본사가 보유하며 “발행인” 의 사전 허가없이는 기사와 사진을 무단전재 복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