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호 제99호=글 고선주 기자)


문학의 꿈을 꾸지는 않았으나 각고의 노력 끝에 어느덧 중량감 있는 중견 문학가로 성장했다면 이것처럼 드라마틱한 삶의 한 전형이 아닐까. 30대 초반까지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하는 등 전형적인 전업주부로 지냈다. 부모가 아이를 변화시키기도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아이 때문에 부모가 변하는 것은 부지기수다. 주변에서 찾아보고자 마음만 먹으면 그것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역시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에게 읽힐만한 책을 선정하면서다. 그러다 아예 아이에게 읽힐 책을 직접 써보면 어떨까를 생각한 것이 오늘의 그를 있게 한 셈이다. 주인공은 전남 화순 출생 아동문학가 배다인(58·광주)씨다. 다른 문인들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탄탄한 자리를 확보하고 있는 기성 문인들의 틈바구니를 뚫고 자리를 잡기 위해서 더 피나는 노력을 감수해야 했다.
200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으로 데뷔, 문단에서는 빠질 것 없는 코스를 밟았으면서도 여전히 초심을 잃지 않고 자신이 도달해야 하는 꿈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번 제도권에 진입하면 이런 긴장감을 유지하기 어려운데 그에게는 묘한 긴장감의 구석이 엿보인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속담에 딱 맞는 문학적 여정을 걸어왔다고 할 수 있을 터다. 이처럼 자신이 늦었기에 치열한 창작여정을 꾸리면서 이론적으로 더 완벽한 경지를 위해 문예창작과에 편입해 공부를 했다. 그리고 다시 조선대 대학원에서 국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해 현재 조선대와 광주교대 대학원에 출강하며 예비 문학인들을 육성하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이런 분주한 일상을 꾸리면서 저작활동 또한 게을리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가사동화집 ‘하하하 우습다’(고요아침 刊)를 펴내 선보였다. 늦게 시작했지만 청년같은 문학 열정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그가 문학에 입문하게 되는 과정은 행간을 보면 쉽게 알아챌 수 있다.
"가정주부로 있었지만 직업을 갖는 것을 좋게 생각했습니다. 동화를 골라주면서 항상 보는 게 작가들의 프로필이었어요. 그 프로필을 보면서 저도 한번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처음에는 동화를 깊이 생각하지 않았고, 다만 소설에 깊은 뜻을 두고 있었죠, 그래서 방송대 국문과에 입학해 공부를 시작했고, 그 후 광주대 문창과로 편입해 본격적으로 문학공부에 나서게 된 것이 그 출발점이었다고 보면 돼요."
그는 자신이 문학공부를 시작한 30대 때 한국문학에 변화가 일었음을 밝힌다. 개인 서사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그래서 특정 작가 등 대문호 반열에 오른 작가들의 작품을 보며 ‘하면 좀 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는 기억을 들려줬다. 아마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면에는 무모하면 용감해지는 것처럼 어떤 오만함이 있었다고. 그러나 오만함을 증거하기 위해 그는 10년을 잡았다. 10년 정도 공부를 하면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판단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늦었지만 도전자의 자세를 견지했다. 막막해 하기 보다는 도전하는 과정으로 인식한 것이다.
"문학이 만만치 않은데 그 때를 떠올려보면 무모하니까 용기가 있었던 듯 싶어요. 처음에는 순수한 독자로서 깊이 읽기부터 시작했어요. 책을 그냥 읽지 않고, 그 책 속으로 들어가 주인공이 돼 읽으려고 노력을 했어요. 또 부수적 인물도 돼 보았죠. 역할 놀이를 한 것 같아요. 이게 큰 자신감으로 제게 왔다고 봅니다. 문학을 즐기고 향유한다는 것부터 우선했는데 전반적으로 보면 저는 대개 운이 좋았다고 여겨요."
대학에 재학하던 무렵 동화 과정이 있었지만 당시 문순태 교수로부터 2년 동안 수업을 받으며 소설 공부에 집중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소설과 인연을 맺었지만 2년여만에 그는 동화로 넘어오게 된다. 그때 문순태 교수가 "이제 쓸만하니까 간다"고 했다는 말까지 잊지 않았다. 그리고 동화 창작을 하게 됐는데 자신의 글 취향에 맞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때는 전대 사회교육원 문예창작과에 적을 두고 공부를 했다. 이곳에 ‘글여울’이라는 동아리가 있었는데 그가 소설을 썼던 배경이다. 소설과 동화를 넘나들었는데 결국 동화를 선택해 매진한 것이다. 그는 산문의 글 솜씨를 가다듬기 위해 광주여대 이지엽 교수(현 경기대 교수)가 재직하던 광주여대 평생교육원에 들어가 시를 공부했다.
이처럼 그는 글에 도움이 되고 문장을 더 잘 알기 위해 어디든 가리지 않고 찾아 나섰을 정도로 열정을 발휘했다. 이는 다른 문인들과 문장 차별화를 두기 위한 그만의 포석이었다. 훗날 자신이 등단해 작품집을 내면 독자들이 밑줄 그으면서 볼 수 있는 문장을 많이 구사하고픈 마음 때문이었다. 소설에 비해 시는 오랫동안 그와 문학 여정을 함께 했다. 문장 안에서 시적 표현을 탄탄하게 다지기 위한 취지였다. 이런 노력들이 결실을 맺기 시작한 것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동화 ‘은골무’로 대산 창작기금을 수혜하면서 가능성을 확인했고, 바로 그 이듬해인 200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며 아동문학계에 자신의 이름을 신고한다. 지금은 회고할 수 있지만 당시에 그는 중압감에 시달렸다는 전언이다.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나서 중압감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중압감에 시달리고만 있을 수 없어 더 열심히 해야 겠다고 생각을 다졌죠. 아마 목표로 크게 설정하게 된 무렵같아요. 아동문학의 노밸상으로 평가받는 한스안데르센 상을 목표로 글을 써보자 했던 시점인 듯 해요. 이는 큰상을 수상한다는 게 문학사에 남는 작품을 의미한다고 봤기 때문이에요. 신춘문예 당선 후 20년을 잡고 노력하자 했는데 벌써 15년이 흘러갔네요. 제가 못하면 후배들이 해내겠죠. 저를 드러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으로 여겨져요."
상을 수상하면 영광이겠지만 수상 못하더라도 그 상을 보며 열심히 갈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는 인식이다. 이를 그는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시간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한스안데르센 상은 찌질찌질한 자신이 길을 잃지 않도록 해주는 등불과 욕망 같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목표는 높게 하되, 글을 쓰는 여정에서 프로의식을 상실하지 않으면서 표류하지 않기 위한 장치와 같은 것으로 이해됐다. 그는 자신에 대해 냉정한 평가를 하는 편이다. 지금까지의 작품들에 대해 마음에 흡족하지 않다는 답변이다. 이런 것 자체가 하나씩 발전해가는 과정으로 여긴다. 그의 요즘 생활 패턴을 보면 그가 얼마만큼 글로 집중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작가로서 이제 성년기에 접어들었다고 봐요. 그래서 다양한 문학적 힘을 길러야 된다는 생각이구요. 원숙한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 더 노력도 해야 하죠. 아까 말했듯 목표를 크게 해놓아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책도 많이 읽고 있습니다. 가정과 강의, 그리고 작품집만 있어 친구도 없어요. 만날 시간이 없으니까요. 저는 늦게 등단했으니 인생으로 비유하자면 이제 중학생 정도 됐다고 봅니다. 그래서 미래를 더 향해 나아가야 하는 것 아닐까 싶어요."
그는 아동문학가를 항상 희망을 가지고, 꿈을 향해 가려고 하는 열정을 가진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렇더라도 동화나 동시를 안보는 현세태에서 독자들 보고 오라 할 것이 아니라 작가들이 변화해 가면서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근래 부모 관심을 받지 못하는 열악한 가정환경에 놓였지만 도전정신을 가지고 성장해가는 여정을 그린 동화와 재개발 지역에서 일어나는 갈등 속 융화해 가는 길을 조망하는 동화를 집필 중이라고 들려줬다. 궁극적으로 도달하고픈 꿈을 들려주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문학사에 남는 1권의 작품을 쓰는 게 제일 큰 꿈이에요. 제 이름은 몰라도 세상에 회자되는 작품을 한권을 남기고 싶네요. 아동문학이 문학적 형식을 갖춰야 한다는 데는 변함이 없어요. 문학의 모토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니까 살아갈 수 있는 근거, 이를테면 힘이나 에너지를 안겨줘야 한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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