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호 제99호=글·사진 고선주 기자)


언제부터 섬을 좋아했을까. 섬이 고향인 분들은 섬이 한없이 불편하다고들 하던데 섬 이야기만 나오면 왜 좋은 것일까. 배를 타고 들어가면서 파도에 일렁이는, 롤러코스터를 타는듯한 고생을 감수하고, 멀미를 심하게 해봐야 섬에 대한 환상을 깨칠 수 있다고들 한다. 필자는 섬과는 인연이 없다보니 처음 배를 타고 가본 섬이 안좌도였고, 마지막으로 배를 타고 나온 섬이 안좌도였다. 문화예술 관련 일을 하다보니 안좌도 하면 김환기 화백이 묶여진 이미지로 각인돼 있다. 지금은 천사대교가 놓여 육지처럼 드나들 수 있게 됐다. 행운인지, 불행인지는 모르나 필자에게는 확실하게 행운인 것은 맞다.
이처럼 섬과 문화예술과의 연관성을 습관처럼 따진다. 하의도 하면 홍성담 화가를, 신의도 하면 전정호 화가를 떠올리는 방식이다. 그래서였을까. 이번에는 임자도에 주목했다. 몇 개월 전 코로나19로 지치다보니 드라이브나 해보자 해서 폭우가 내리던 날 임자도를 찾았었다. 빗줄기가 세질수록 무모한 감행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임자도에 들어서서는 오길 잘 왔다는 생각이 먼저 였다. 그런데 그때는 기질적으로 섬을 좋아하는 취향에 따라 방문하던 길이었다.
그리고 명승지 몇곳만 스쳤을 뿐이다. 이번에는 확실히 결이 다른 재발견이 됐다. 여행은 혼자 가는 것이 제 맛이라 했지만 동행이 갖는 특별한 의미는 놓칠 수 밖에 없다. 둘이 하다보니 충돌이 일어날 수 있지만 똑같은 길을 가는 경우라면 시너지가 날 수 있지 않을까. 이번에는 문단 선배인 시인 한 분과 함께 동행했다. 처음에는 폭우 때 버린 사진을 되살려 정리하는 마음이 앞섰지만 임자도에 들어서서 풍경에 취할 무렵 ‘전장포’ 때문에 이날 하루의 일정은 바뀌었다. 물론 대광해수욕장 등 명승지를 방문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분명한 것은 명승지만 방문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문화예술 분야에 종사하다보니 어딜 가면 꼭 관련 시설물이나 인물들을 챙기고는 한다. 그래야 만족도가 훨씬 올라가는 느낌을 받는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명승지와 문화예술이 섞이는 구조랄까. 그게 섞이지 않으면 그냥 놀라 갔다 왔다는 후회감으로부터 달아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선배 시인 역시 처음에는 임자도의 의미보다는 코로나19로 인해 지친 일상이나 어루만져볼까 한 심정이 앞섰던 듯하다. 적어도 조희룡미술관과 대광해수욕장을 들렀을 때만 해도 말이다. 물론 이곳도 훌륭하다. 누군가 그랬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고. 취향대로, 느낌대로 가져가는 것이 여행의 일 원칙이 아닐까 싶다.
지도에 접어들기 전 무안에서부터 허우적 됐다. 방문하는 길을 잘못 진입해 무안국제공항 쪽으로 접어들었다. 임자도까지 30㎞ 남은 거리가 50㎞대로 늘어났다. 삶 역시 길을 잘못 들면 다시 돌아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엉뚱한 곳에서 시간만 허비하게 될 수 있는 이치와 같다. 순간 순간 삶의 교과서는 펼쳐져 있다. 다만 집중해서 읽지 않기에 깨치지를 못하는 것이다. 다행히 공항 못가 유턴해 점암을 향했다. 점암에 도착하면 임자2대교가 있어서다. 거기를 거쳐야 임자도로 들어갈 수 있다. 기거기 관문인 셈이다. 물론 1, 2대교 사이에는 수도가 자리하고 있다. 엄연히 유인도다. 중간 매개 역할을 하는 셈이다. 지도 점암에서 임자2대교를 타고 수도를 거쳐 임자1대교를 건넜다. 차선 반대 쪽, 출도하는 방향에 1대교를 조망할 수 있는 곳에서 사진 몇 컷 찍고 대광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이정표가 잘 돼 있어 대광해수욕장에 도착하기 전 ‘전장포’를 다음 행선지로 정하는데는 이견이 없었다.
대광해수욕장은 전국에서 가장 긴 백사장으로 그 이름을 떨치고 있는 곳이다. 백사장 길이가 12㎞에 달해 끝에서 끝을 카메라 앵글로 포착하기란 쉽지 않다. 혹은 드론이 있어야 전체를 조망할 수 있을 터다. 어디 그것뿐이랴. 너비만도 200m가 넘는다고 한다. 이렇게 기념할만한 해수욕장이 자리하고 있어도 다리가 놓이기전에는 접근이 그리 쉽지는 않았다. 다리가 놓인 후 마음만 먹으면 드나들 수 있게 됐다. 사람이 있을까. 코로나19 변종 바이러스 감염이 전남에서도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었고, 거리상 가깝지 않아 얼마나 찾아올까 했으나 해수욕장에는 해수욕을 즐기는 방문객들이 제법 있었다. 폭염이 지속되고 있었기에 작열하는 태양의 열기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대광해수욕장에 들기 전, 입구에는 조희룡미술관이 자리하고 있다. 해수욕장 입구에 미술관이라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을 수는 있는데 지친 몸만 달랠 수는 없지 않은가. 허기진 정신과 문화적 감성까지 충전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라고 할 밖에 없겠다. 이곳이 바로 그런 곳이다. 마침 ‘임자도에 핀 홍매화’(3.19∼8.22)전이 열리고 있었다. 이 전시가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점에 이곳을 방문했음을 알 수 있었다. 첫 방문 때도 이 전시가 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다 미디어아티스트 이이남의 개관기념특별전 ‘미디어로 피어난 매화’전 또한 다시 관람할 수 있었다. 바뀐 거라고는 다음 윤회매전이 송필용전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곳에 매화 향기 그윽한 공간이 된데는 순전히 우봉 조희룡(1789∼1866) 때문이다. 우봉은 19세기 조선의 대표적 화가로 시와 글씨, 그림에 모두 뛰어났다고 한다. 추사가 남종 문인화의 영수로 불리워지지만 우봉은 조선 문인화의 영수로 불리워진다. 그만큼 우봉은 뛰어난 예술가였음이 분명하다. 난초와 매화를 많이 그렸는데 종2품 무관이었던 오위장을 지냈다. 1851년 그의 나이 63세에 임자도로 유배를 와 1853년까지 2년 동안 이흑암리 바닷가 마을에 머물렀다. 오가 다가 이정표를 유심히 본 사람이라면 조희룡 적거지를 대면했을 것이다. 그곳이 우봉이 머문 곳이다. 지금은 간척을 한 듯하다. 바다와 거리가 약간 생겼지만 간척 전에는 바로 마을 앞까지 바다물이 들어왔던 것으로 보인다. 적거지는 복원돼 보존 중이다. 옛 내음은 느껴지지 않지만 적어도 임자도의 역사였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당시에는 ‘화구암’이라는 편액이 걸렸지만 현재는 ‘만구음관’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갈매기 만 마리의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의미다. 가친 파도와 붉은 노을 빛을 보며 적적함을 온 몸으로 맞섰을 우봉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우봉에 이어 임자도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전장포다.
‘아리랑 전장포 앞바다에/웬 눈물방울 이리 많은지/각이도 송이도 지나 안마도 가면서/반짝이는 반짝이는 우리나라 눈물보았네/…중략…/아리랑 전장포 앞바다에/웬 설움 이리 많은지/아리랑 아리랑 나리꽃 꺾어 섬 그늘에 띄우면서’(‘전장포 아리랑’ 일부).
이번 임자도에 와서 가장 큰 수확은 ‘전장포 아리랑’ 실제 무대를 만난 일이다. 이곳에서 곽재구 시인의 시집 ‘전장포 아리랑’(민음사 刊)을 추억한다. 우리 민족의 서글픈 삶에 대한 위로로 배웠겠지만 고단했던 섬 사람들의 삶과 시간이 응축돼 나타난다 지나치게 수사를 넘나들지 않은 감성이 차분한 어조로 끝까지 긴장감을 놓지 않게 한다. 시인은 그 옛날 임자대교 개통 훨씬 전, 배로 드나들어야 했던, 번거롭기 그지없던 뱃길을 오갔을 것이다. 그 하면 포구기행 아니었던가. 한때 그 굴곡진 민초들의 삶의 현장이었던 전장포를 왜 문학 속으로 끌어들일 생각을 했는지 자못 궁금해졌다. 전장포는 곽재구 시인이 세상에 야무지게 알린 듯 싶다. 그만의 시각이 없었다면 수많은 포구로 그저 그랬을지 모른다. 전장포는 국내 최고의 새우젓 명산지로 임자도의 북쪽 도찬리에 자리하고 있는 작은 포구다. 한켠에 외로이 바다를 보며 서 있는 ‘전장포 아리랑’ 시비도 눈에 들어왔다. 이곳이 전장포라는 것을 알리는 상징이었다. 시문 글씨는 학정 이돈흥 선생이 새겼다. 시인의 마음을 알기라도 한듯 유장한 서체가 차분하다. 전장포 토굴 네군데는 내년 2월까지 내부공사를 벌이는 모양이다. 그저 원형을 망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일었다. 때마침 전장포에 가는 비가 내렸다. 설움의 징표였을까. 곽재구 시인이 노래했던 전장포, 파들이 키를 꼿발 딛고 바다를 훔쳐보는 7월 어느날, 잊혀졌던 전장포는 그렇게 마음 속으로 들어왔다.
우봉 조희룡의 매화 내음과 전장포 아리랑이 울려퍼지는 듯한 임자도에는 300만 송이 튤립 축제로 유명했으나 코로나19 여파로 열리지 못해 아쉬움을 더했다. 여기다 대광해수욕장은 해변 승마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볼 수 없어 아쉬웠다. 400년 전 이무기가 용이 돼 승천했다고 하는 용난굴 역시 챙겨봐야 할 곳 중 하나다.
무안에서 허우적되기는 했으나 이번 여정의 끝 지점에서는 비상으로 정리할 수 있다. 다르게 말하자면 가성비 높은 여행이라 할 수 있다. 여정의 마지막은 진리포구에서 보냈다. 재료가 떨어져 일찍 식당 문이 닫히는 바람에 맛보지 못한 전복 톳밥 대신, 연포탕에 막걸리 한 잔을 택했다. 여름바다 향취를 온몸으로 느끼며 먹었던 부두식당의 연포탕, 국물에 코를 빠뜨릴 수 밖에 없었다. 임자도에 대한 과찬일 지 모르나 풍경이면 풍경, 문학적 사사면 서사, 옛 선현의 자취면 자취, 어느 하나 버릴 게 없는 여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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