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호 제99호=글 박세라 기자)

오늘 하루 열심히 ‘업’을 다 해낸 이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연습실엔 노래가 흘러나오고, 이에 맞춰 안무를 외듯 천천히 몸을 흔든다. 한 손에는 스마트폰이 또 한손엔 대본이 소중히 들려있다. 업무 시간엔 꼭꼭 숨겨둘 수밖에 없었던 흥과 끼가 보란 듯 발산되는 시간이다. 무대가 좋아서 그저 뮤지컬에 폭 빠져, 누구보다 진지하게 또 열렬하게 ‘딴짓’을 하고 있는 이들. 말 그대로 ‘딴짓하는 청년들’이란 의미의 문화공동체 ‘딴청’이 그 주인공이다.
문화공동체 ‘딴청’의 공식 창단은 2018년이다. 하지만 이들의 딴짓은 2009년부터 2017년까지 활동했던 청년뮤지컬극단 ‘소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끼 많은 청년들이 뜻을 모아 무대에 섰는데, 아무래도 뮤지컬과 연극 부문 등이 어우러져 있다 보니 활동의 제약이 따랐다. 이들 중 뮤지컬 장르로 집중을 택한 청년들이 다시 뭉쳐 ‘딴청’을 새로이 만들게 됐다.
김유경 ‘딴청’ 대표는 "뮤지컬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열심히 노는 곳"이라며 "뮤지컬 전공자들로 이뤄진 예술단은 아니지만, 열심히 공부하고 성장해 가고 있는 단체"라고 소개했다.
‘딴청’은 김 대표를 비롯해 20여명의 청년들이 함께한다. 의사, 간호사, 선생님, 회사원부터 대학생들까지. 저마다 몸담고 있는 분야도, 하는 일도 가지각색이다. 다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공연예술에 대한 열정이다.
"단원들 모두 본업이 있다 보니, 만나서 연습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죠. 평일 저녁, 퇴근 후에 모여서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공연연습도 합니다. 누군가 시켜서 하는 일이라면 아마 금방들 지쳐했을 거예요. 진짜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본업’과 공연예술가로서의 ‘부업’의 병행이 가능한 것이죠."
그래서 문득 궁금해졌다. 퇴근을 하면 넉 다운 되는 게 일상인 분주함 속에서도 꿋꿋하게 또 다른 ‘딴짓’을 하게 되는 에너지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들을 무대에 서게 하는 ‘힘’이 도대체 무엇인지 물었더니, ‘무대 뽕’이라고 하는 강렬한 기억 탓이라고 답한다.
"일단 무대에 한 번 올라가면, 그 희열과 재미를 잊지 못하죠. ‘무대 뽕’이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를 온 몸으로 체감하게 됩니다. 스케줄 관리부터 체력적인 한계까지 겹칠 때는 ‘힘들다’는 생각에 지칠 때도 있지만, 무대에 서는 순간 싹 잊게 됩니다. ‘아, 내가 이것 때문에 이 고생을 했지’ 그 시간에 대한 답을 저절로 얻게 되는 것이죠."
‘딴청’이 전문 뮤지컬 단체가 아니라고 해서 얕볼 일이 아니다. 이들은 2018년 창단 이래로 매년 한 차례씩 정기공연을 올렸다. 매해 정기공연을 올리는 일은, 말 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이들은 ‘오 당신이 잠든 사이’, ‘루나틱’, ‘내 마음의 풍금’ 등 기존 창작품을 ‘딴청’만의 색깔을 얹어 각색한 작품들로 시민들을 맞았다.
"우선 단원들과 어떤 작품을 할 것인지에 대해 깊이 있게 논의합니다. 전공인들이 아닌 만큼, ‘딴청’이 잘 해낼 수 있는 작품인지 그리고 무대에서 얼마나 완성도 높게 실현가능한지 등을 따져 작품을 고르죠. 무엇보다 우리네 일상에서 일어날 법한, 그래서 누구나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무대로 꾸미는 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단원 한 명 한 명이 즐길 수 있는 무대여야만 관객들 또한 그 에너지를 고스란히 전달받을 수 있다고 믿거든요."
‘딴청’이 가지고 가고픈 예술적 지향점은 확실하다. 바로 공감이란 키워드다. 사회가 저마다 삶을 펼치는 큰 판이라면, 무대 위는 이를 압축, 확실하게 보여주는 축소판으로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전혀 딴 세상 이야기여서는 안 되는 것은 물론이고,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한 공감의 힘이 꼭 필요하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서양의 유명 작품들도 많지만 우리나라에서 창작된 것들, 우리 삶과 이웃들의 이야기가 진하게 담긴 작품들에 집중하는 이유죠. 공감이 있어야만 감동을 줄 수 있고, 관객들에게서 받은 진심어린 박수와 응원의 에너지가 ‘딴청’이 다음 작품을 이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돼주고 있어요."



사실 광주에는 뮤지컬을 전문으로 하는 단체가 손에 꼽을 만큼 적다. 극단에서 뮤지컬 장르와의 협업을 선보이는 일은 있지만, 뮤지컬만을 전문으로 다루는 단체는 광주뮤지컬단 ‘다락’ 정도만이다.
노래, 춤, 연기 등 삼박자 그 이상이 어우러져야 하는 장르인 만큼 전문적으로 배우기도, 이를 공연예술로 풀어내기도 어렵다. 제대로 키워주는 단체가 없기 때문에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이들의 ‘서울행’은 말릴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딴청’은 뮤지컬을 배워 보고픈 이들에겐 단비 같은 존재다.
"뮤지컬 하려면 어디로 가야해? 했을 때 ‘딴청’을 찾아주기를 바라죠. 뮤지컬에 관심이 있는데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을 땐 ‘딴청’이 그 답이 돼 줄 수 있습니다. 전문 뮤지컬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만큼 진입장벽이 낮기 때문에 누구든지 경험해 볼 수 있는 ‘문’은 활짝 열려있죠.
이들 활동에서 눈에 띄는 점은 ‘자생’이다. 활동 초기엔 전문 강사진을 꾸려볼까도 했는데 광주에는 인력이 없을뿐더러, 서울에서 초청하기에도 비용이 만만찮아 함께 공부하는 방법을 택했다. 알음알음 좋아하는 이들이 모여서 활동을 하다가, 몇몇은 공연예술 쪽으로 업을 바꾸거나, 진로를 정하는 단원들도 생겨났다. 이들이 열심히 배워 온 것들을, ‘딴청’의 내부에서 아낌없이 쏟아냄으로써 단체의 역량을 한껏 끌어올렸다. 낙수효과의 재미를 톡톡히 본 셈이다.
이를 기반삼아 앞으로는 창작에도 발을 들여 볼 생각이다. 그 단초는 지난 4월19일 제61주년 4·19혁명 기념 공연에서 시작됐고, 지난 7월3일 뮤지컬 갈라 콘서트 ‘Zoom In’에서도 이들의 빛나는 기획력을 엿볼 수 있다.
‘Zoom In’은 코로나19 시대 새로운 소통 방법으로 떠오르고 있는 ‘온택트’에서 착안했다. 온라인 회의 플랫폼인 ‘줌인’에서 만난 인물들의 사연과 노래가 어우러지는 갈라콘서트로, 위로와 희망을 담은 뮤지컬 넘버를 선보여 큰 박수를 받았다. 앞으로 ‘딴청’만의 감각을 녹여낸 창작품을 올리는 것이 꿈이자 목표다.
앞으로도 ‘딴청’은 열심히 딴 짓을 할 계획이다. 팍팍한 일상 속, 활력을 선사하는 작품들로 시민들을 만나고 싶다. 뮤지컬이란 장르의 매력을 알리는 것은 물론, 지역의 뮤지컬 판을 키워나가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관객이든 배우이든, 또 기획이든 함께 활동하고 싶은 친구들이 마음껏 끼를 펼칠 수 있는 장이 됐으면 해요. 그런 기회들이 모여 동반성장을 하고, 또 다시 그 실력을 딴청에서 풀어낼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안착되는 게 꿈이죠. 앞으로도 딴청의 단원들이 뮤지컬을 하면서 받은 즐거움과 행복을 널리 나누며 살고싶습니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