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한 페이지 접하며 천천히 사는 삶을 꿈꿨다

[문득여행] 송정공원·1913송정역시장
국내 유일 목조로 조성한 일제치하 신사 건축물 의미
금선사 대웅전 활용…석등롱 역시 신사 부속물 보존
박용철 시비·임방울 기념비 등…1913송정역시장도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2년 06월 09일(목) 17:21
(2022년 5월 제108호=고선주 기자)송정공원은 광주공항 입구와 영광통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영광통 방향을 향해가다 우측에 송정도서관 건물이 보인다. 송정도서관 일대가 송정공원으로 그저 나무와 숲만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아담하게 잘 꾸며진 산책로와 등산로, 수십년은 족히 됐을 고목들, 산자락에 펼쳐진 한적한 풍경들, 군데군데 체육시설과 정자 등이 갖춰져 있으며, 봄꽃들까지 활짝 개화해 한결 가뿐한 나들이를 만들어주고도 남는다.
먼저 시비(詩碑)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필자의 관심사가 문학이 제일 큰 이유 때문이다.
무등산 산장 혹은 원효사 가는 길목에 다형 김현승의 ‘눈물’ 시비가 있고 사직공원에 가면 조선 중기 무신 금남군 정충신, 고산 윤선도의 대표적인 시조 ‘오우가’, 면앙정 송순의 ‘풍상이 섞어 친 날에’, 박봉우 시인의 ‘조선의 창호지’, 충장공 김덕령 장군의 ‘춘산곡’,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시인 백호 임제, 이수복 시인의 ‘봄비’ 등의 시비가 있다. 또 광주 최초의 공원인 광주공원에는 용아 박용철과 영랑 김윤식 시비가 있다. 이곳 외에 의미깊은 곳에 또 하나의 시비를 눈여겨봐야 한다. 송정공원의 용아 박용철(1904∼1938) 의 ‘떠나가는 배’ 시비가 그것이다. 동판으로 제작된 그의 초상과 함께 세워져 있다. 1985년의 일이었으니까 40여년이 다 돼 간다. 용아는 누구인가. 김영랑, 정지용과 더불어 순수시 경향의 시문학파를 주도했던 장본인이다. 송정도서관으로 이동하는 중간 지점에 자리한 용아 시비는 광산 소촌동 출신 용아의 시비이기에 더욱 주목된다. 더욱이 멀지않는 곳에 그의 생가까지 자리하고 있다. 용아 시비 건너편에는 ‘쑥대머리’의 국창 임방울 선생(1904∼1961)의 기념비까지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는 몇개의 비가 더 자리하고 있다. 도서관 주차장 끝자락에 자리한 의혼비와 의병대장 금제 이기손 장군 의적비, 그리고 나무아미타불 비가 그것이다. 탈색돼 잘 보이지 않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비교적 뚜렷한 글씨와 만날 수 있다. 시비를 비롯한 기념비 등 비들은 공원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는 표상이어서 나무와 숲만 있는 공원의 단조로움을 달래준다. 그런데 송정공원이 이런 문화예술과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널리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곳 송정리 사람들의 애환을 함께 해온 금봉산 자락에 둥지를 튼 송정공원에서 빠뜨릴 수 없는, 유서깊은 공간이 있다. 여느 공원처럼 나무와 숲, 꽃들, 그리고 체육시설, 잘 닦인 등산로가 있지만 대한불교 조계종 금선사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금선사는 1941년 일제가 세운 송정신사(神社)의 건물이었다. 송정도서관과 마주 보며 서 있는 형국으로, 지금은 사찰 대웅전으로 바뀌어 활용되고 있지만 광주 소재 공원 중 신사 건물이 남아있는, 유일한 곳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목조로 조성돼 있어 더더욱 보존가치가 높다고 한다. 송정신사는 각 신사의 제신과 신체를 모시는 전각인 신전, 신자들이 모여 기도하고 참배하는 배전, 매일 신령에게 올릴 음식을 준비하는 장소인 신찬소, 사무소 등 4개의 건물이 있었다.
이중 배전은 1948년 한교법인 정광학원이 개보수해 건물 외관은 그대로 유지한 채 일본식 창호인 격자무늬 형식의 문을 자동적으로 교체해 현재 금선사 대웅전으로 활용 중이다. 대웅전 앞 올라가는 계단 앞 석등롱 역시 신사의 부속물이고, 금선사 나무아미타불 탑도 원래는 황국신민서사탑이었다는 기술이다.
신사는 일본이 일왕의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기 위해 전국 곳곳에 세우고 우리나라 사람들을 강제로 참배하게 하는 등 군국주의의 침략정책 및 식민지 지배에 이용했다.
정광학원은 금선사 일대를 일제 강점기와 관련한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2020년 광주시는 3·1운동 100주년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광주학생독립운동 90주년을 맞이해 올바른 역사를 알리고 역사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친일잔재 청산 전담기구를 구성, 그 활동 결과로 송정신사를 일제 식민지 잔재로 선언한 바 있다. 일종의 광주시가 세운 단죄비로 이해하면 된다. 금선사 대웅전을 지나 올라가면 무궁화 동산도 조성돼 있다.



유심히 보지 않으면 미니 사찰 정도로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조금만 신경을 써서 들여다본다면 이곳이야말로 굴곡진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를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게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있을 것이 다 있는 송정공원이 이처럼 많은 문화예술적 의미와 역사적 의미가 똬리를 틀고 있는 곳임을 이번에 다시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송정공원 이곳 저곳을 다 훑어보고 머리를 식힐 겸 해서 1913송정역시장으로 이동해 둘러봤다. KTX가 개통되면서 광주역을 대체해 교통 요충지로 새로 자리매김된 송정역 건너 골목에 자리하고 있다. 마침 오랜 사회적거리두기를 뒤로하고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는 직전이라서 제법 많은 사람들이 오갔다. 몇개월 전 들렀던 1913송정역시장은 사람들을 찾아볼 수 없어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옛 전통적 건축물과 한 시대가 한참 흘렀을 법한 상호 및 가게들이 톡톡 개성이 넘치는 현재적 감각들과 결합돼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공간이다. 그렇게 규모가 큰 것은 아니지만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복고풍의 정경은 그저 분주하게만 살아온 필자에게 잠시 멈춤 혹은 옛 근대 시간 속으로 안내하고도 남는다. ‘그랑께~ 그라제’ 등 군데 군데 전라도 사투리가 새겨진 노란 의자들이 발걸음을 붙잡는다. 4월 셋째주 토요일 오후 벌써 여름의 열기를 느끼는 탓일까. 반팔을 입은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의자에는 흥정을 까먹은 바람이 살포시 앉았다가 빠르게 거리를 빠져나가곤 했다. 오가다 진한 삼겹말이 김밥이나 양꼬치 내음 등 각종 먹거리 음식이 코를 파고든다. 빠르게만 흘러보냈을 시간이 제법 여유롭다. 이곳에서 천천히 사는 삶을 꿈꿔 봤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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