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민주화 투쟁 주도 ‘광주 미술’ 알린 첫 사례 의미

[해외 전시 리뷰] ‘광주 오월미술’ 뉴욕 특별전
‘Blood and Tears: 광주 민주항쟁의 초상’을 말하다
오월미술관 범현이 관장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3년 03월 08일(수) 17:54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상징인 광주의 ‘오월미술’이 미국, 뉴욕에 갔다. 심지어 뉴욕에서 두 달 남짓한 일정 동안 전시를 진행했다. 광주 오월항쟁 이후 42년이 지난 지금 왜 광주 오월미술의 전시인가. 2022년 9월 6일부터 10월 21일까지 존 제이 형사사법대학의 애냐 앤 앤드류 쉬바 미술관에서 진행되었던 전시 ‘피와 눈물: 광주 민주항쟁의 초상’은 세계적인 미술의 중심지인 뉴욕에서 한국 민주화 투쟁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광주 지역의 미술을 알리는 첫 전시였다. 현대미술의 집합체이자 중심인 뉴욕에서 광주정신의 깃발이었던 오월미술의 전시는 무엇을 뜻하는가.

리얼리즘과 오월미술
1980년대는 수많은 민중미술을 생산해냈다. 엄혹한 시절은 생각의 침전물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것들은 몸으로 ‘무엇인가’를 이룩한다. 전 세계 어떤 나라에서도 전쟁과 내란의 상흔을 겪으면서 우리나라의 독재정권과 광주항쟁 기간만큼의 미술품을 생산해내지 못했다. 심지어 6·25전쟁을 겪었던 우리 윗대에서도 전쟁을 그린 그림은 몇 점을 제외하고 존재치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광주항쟁은 미술의 지형도와 생태계를 한순간에 변화시키며 민중미술이란 새로운 화풍을 집적했다.
전국적으로 민중미술을 표방하는 단체들이 창립했으며, 단체를 통해 활동하는 민중미술 작가들도 넘쳤다. 그들은 모두가 열정에 가득 찼으며 군부독재와 자국민을 향한 국가폭력에 자기 목소리 내기를 망설이지 않았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로서 당연한 의무이자 권리라고 생각했다. 작가는 자신이 몸담은 동시대를 기록하는 사람들이다. 화가는 화면 위에 그림이란 자기만의 언어로 시대를 표현해야 하는 것은 마땅한 의무였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언어 형상화로 인해 연행되고 고문당했으며 심지어 구속되었다.
민중미술 속에서 오월미술의 만남은 당연한 결과였다.
1980년 5·18광주항쟁을 계기로 민중미술은 급팽창하였으며 전국을 넘어 제3세계로 타전되었다. 자신들이 발붙이고 살아가고 있는 땅의 현재 상황과 이웃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리얼리즘이라고 볼 때, 민중미술은 리얼리즘으로 당연히 다가올 수밖에 없었으며, 광주 전남의 작가들은 광주항쟁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열흘간의 항쟁을 지켜보았고 몸으로 직접 느꼈다. 같이 트럭에 올라 광주 전역을 누비고 다녔으며 시민군들의 치켜든 총과 어머니들이 직접 만들어 건네준 주먹밥에 깊이 공감했다. 국가폭력과 자국민을 향한 잔인한 살상과 계엄군의 총칼 아래 우리, 모두는 시민군이었다. 모든 것이 완벽하고 아름다웠다.

오월미술 : 판화의 탄생
그런 그들이 할 수 있었던 일은 당시의 모든 것을 기록하는 일이었다. 이것이 바로 ‘오월미술’이었다. 오월미술에는 5·18광주항쟁이 적나라하게 사건과 시간대가 가감 없이 기록, 형상화되어 있다. 그림만으로도 광주라는 도시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을 정도다.
특징이 있다면 대부분이 ‘판화’라는 점이다. 판화라는 매체는 한 번의 판각으로 다수의 그림을 생산해낼 수 있으며, 조각도만 있으면 누구나 생산해낼 수 있다는 대중성을 확보하고 있다. 고무판과 목판으로 역사와 시대를 기록하는 참혹함의 결정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은 그 시대가 만들어 낸 역사성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고무판을 시작으로 목판화가 민중미술 진영에 합류하였다. 목판화는 노동의 집약이었다. 고무판을 판각할 수 있는 단순한 조각도와는 다르게 단단한 나무를 팔 수 있는 조각도를 작가들은 자신의 손에 맞게 제작했고 광주항쟁을 형상화하기 시작했다. 광주전남미술인공동체(광미공)에서 회원들이 토론과 고증을 거쳐서 조각한 작업이 ‘광주연작판화’ 20점의 목판화다. ‘광주출정가’, ‘다시 이 거리에 서면’, ‘도청 앞 전투’, ‘헌혈’ 등이 광주항쟁의 처절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홍성담의 판화가 대상 하나를 극대화 시켰다면 광미공의 집체화는 사건을 중심으로 전체를 치밀하고 사실적으로 화면에 구성한 것이 다른 점이다. 누구나 광주항쟁의 판화로 떠올리는 홍성담의 ‘대동세상’과 ‘횃불행진’이 광주시민의 광주성과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면 광주항쟁 연작 판화 50점 중 한 점인 ‘어느 임산부의 죽음’은 판화를 들여다보는 순간 숨을 멎게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임산부의 도려진 배가 처절하게 와닿기 때문이다. 엄마의 자궁 안에서 자라고 있어야 할 태아는 길바닥에 튀어나와 태어나지도 못한 채 엄마와 함께 죽음을 맞고 있다. 심지어 길 위에 버려졌다.
광미공의 광주항쟁 연작 판화 20점 중 하나인 ‘광주출정가’는 계엄군의 살상에 대항하기 위해 총을 들고 계엄군이 집진한 도청을 향해 진군하는 시민군의 모습을 그대로 형상화했으며, ‘헌혈’은 감동을 끌어낸다. 당시 도청의 근거리에는 황금동으로 불리는 윤락가가 있었는데, 헌혈하러 온 여성들 속에 이 황금동의 여성들이 다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광미공의 집체화는 광주시민들 누구나 한마음 한뜻으로 국가폭력에 저항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림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피와 눈물의 오월미술
전시명인 ‘피와 눈물’은 1980년 5월 당시 희생과 고난, 생명에 대한 의지를 향한 긍정적 메시지를 품고 있다고 전시 의도에서 말하고 있다.
이번 뉴욕 전시에는 신경호, 이준석, 허달용, 김경주, 송필용, 하성흡, 정희승, 이상호, 박기태, 최요안, 박소빈, 정영창, 정정주, 이매리, 조진호, 홍성담, 주홍, 이하윤 등의 작가와 광주전남미술인공동체의 작품 20점이 전시되었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80년 5월의 고통과 아픔, 희망을 수묵화, 목판화, 회화, 미디어, 행위예술 등을 통해 표현했으며, 특히 그동안 올곧게 오월항쟁에 천착하면서 오월을 작업으로 담았던 작가들이 대부분이어서 더 의미가 깊었다.
홍성담 작가는 오월항쟁 과정을 50점의 목판화로 새긴 오월민중항쟁 홍성담 판화집 ‘새벽’을, 송필용 작가의 ‘땅의 역사-붉은 정화수’는 동학농민혁명부터 1980년 5월까지 100년에 걸친 저항의 역사를 그린 작품 중 오월의 아픔 속에서도 ‘새벽’이 오리라는 믿음을, 김경주 작가의 ‘들불Ⅰ’은 방독면을 쓴 시민군의 등 뒤로 붉게 일렁이는 불길은 신념을 꺾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이준석 작가의 ‘화엄광주1’은 오월의 투쟁과 대동세상의 꿈을 무등산이 뿜어내는 화산으로 그 의미를 확장했으며, 온통 푸른색의 사람많은 광장을 그린 정희승 작품은 말 그대로 민주의 ‘광장’을 그렸다. 특히 이번 전시회에는 1980년대 당시의 사진, 영상비디오, 출판물 등 아카이브 자료도 함께 전시되어 그 의미가 깊다.
지금도 오월항쟁을 극적으로 형상화한 작품들이 생산되고 있다. 오월항쟁을 겪지 않은 세대들의 오월그림에 대한 애정이 눈물겹다. 박기태의 작품이 그렇다. 그들이 동시에 말하는 것은 광주에 살면서 마지막 귀결은 광주항쟁에서 보여준 광주정신이라고 말한다. 부조리에 항거하고 국가폭력에 맞서는 광주성이야말로 민주주의로 가는 첫걸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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