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는 우리 인생… 행복한 삶 살고 있는 것"

[남도예술인] 광주시립창극단 수석단원 정선심
제57회 정기공연 창극 ‘망월, 달빛의 노래’ 주역 망월할매
성창순 명창 사사…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심청가’ 이수
2015년 ‘제27회 목포전국국악경연대회’ 대통령상 수상도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3년 03월 08일(수) 18:11
(2022 11월 114호=김민빈 기자)광주시립창극단의 제57회 정기공연 창극 ‘망월, 달빛의 노래’ 리허설이 한창이던 지난 10월21일, 광주문화예술회관 대연습실에서 옥색 저고리를 걸치고 연습에 매진 중인 정선심 수석단원을 만날 수 있었다. 그가 맡은 역할은 5·18광주민주화운동 때 외아들을 잃고 43년 세월 동안 그리움 속에 가슴앓이를 하며 살고 있는 망월할매 역이다.
치매를 앓고 있는 와중에도 아들을 그리워하며 망월묘역을 찾는 노모를 연기하는 정씨의 절절한 목소리와 표정 하나하나가 현장에 있는 사람들을 순식간에 몰입하게 했다. 그의 소리와 연기에는 30여 년간 무대 위 여러 배역으로 분해 울고 웃었던 시간이 녹아있는 듯 했다.
"망월할매는 그동안 맡은 여러 배역 중에서도 굉장히 어려운 역할입니다. 평범한 할머니면서 자식과 며느리를 동시에 잃은 사람이기도 하죠.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할매가 끝까지 삶을 놓지 않고 있는 건 아들을 포기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배역을 받은 날 정씨는 부담감에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과연 그 감정을 표현해낼 수 있을까 밤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 했다. 그러다 문득 아들을 떠올려봤다. 집을 나가 조금만 연락이 안 돼도 걱정에 안절부절 못하던 자신이었다. 자식이 망월할매와 같은 일을 당했다면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이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망월할매는 약하지만 또 강한 인물이에요. 성격이 입체적이고 변화무쌍해 이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것도 쉽지 않아요.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한과 슬픔을 잘 승화시켜 5·18 대표적인 어머니상으로 손색없이 그려내고 싶어요. 공연에 오시는 분들에게 가슴 깊숙이 진한 감동을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전남 여수에서 2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난 정선심씨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국악을 접했다. 독특한 특기를 갖고 싶다는 생각에 어머니에게 학원을 보내달라 부탁했다. 국악학원에 들어간 그는 무용과 가야금병창 등을 두루 배웠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이 그에게 판소리를 권유했다.
"선생님 앞에서 초등학교 음악책에 나오는 노래를 몇 곡 불러봤더니 판소리를 하는 게 어떠냐 물으셨어요. 그렇게 소리를 시작하게 됐죠."
학원에서 꾸준히 소리를 배우며 고향인 여수에서 고등학교 과정까지 마친 그는 대학에서 국악을 전공하고자 했으나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혔다. 부모님은 소리를 취미로만 하길 바라셨다. 국악은 길이 험난할 것이라는 걱정스런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이미 소리에 푹 빠진 정씨의 고집을 말릴 수는 없었다. 고등학교를 원하는 예술고에 진학하지 못해 아쉬움이 있었던 그는 결국 부모님을 설득해 전남대 국악과에 입학하게 됐다.
대학에 들어간 이후 아버지의 사업은 어려워졌고, 진로를 반대하셨던 어머니 역시 그를 밀어줄 수 없는 형편이셨다.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게 됐지만 대학시절 그는 많은 설움을 겪어야 했다.
"원래는 대학 교육 말고도 따로 선생님을 찾아가 개인 레슨을 받으며 공부하거든요. 저는 4년 내내 당시 교수님이시던 고 성창순 선생님(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심청가’ 보유자)께만 교육을 받았어요. 더 공부할 개인레슨비가 없어서요. 많이 서러웠던 시절이었죠."
그렇게 대학 공부를 마친 졸업 직전 충남부여국악단이 새롭게 창립됐다. 학교에서 배웠던 소리를 열심히 연습해 시험을 본 그는 기적처럼 합격했다. 심사를 진행한 안숙선 명창이 그를 눈여겨 본 덕이었다.
"부여 출신 1명과 외지 출신 1명만을 뽑았는데 제가 뽑힌 거예요. 많이 부족했는데 얼떨떨했죠. 이후 면담을 하는데 안 선생님께서 ‘잘해서 뽑은 게 아니라 가능성이 보여서 뽑았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첫 직장을 갖게 된 그는 이를 발판 삼아 새로운 마음으로 공부를 시작해봐야겠다 마음먹었다. 서울에 계시던 고성창순 명창을 다시 찾아가 ‘심청가’를 배우게 됐다.
성 명창을 사사하며 충남부여국악단에서 4년 여 간 근무한 그는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왔음을 느꼈다. 언젠가부터 무대를 하면서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고향인 남도로 돌아가 활동해보고 싶기도 했다.
그는 마침 1999년 광주시립창극단에서 열린 신입 단원 모집 공고를 보고 시험에 응해 합격했다.
그렇게 새 직장에 들어오자마자 창극 ‘쑥대머리’의 중요한 배역을 맡게 됐다. 당시 임방울 역에 윤진철 명창이 객원단원으로 더블 캐스팅 된 큰 공연이었다. 그가 맡은 배역은 어린 방울으로 본래 그의 것이 아니었다.
"원래는 다른 단원이 하기로 됐는데 공연을 일주일 정도 앞두고 사고를 당했어요. 급하게 김효경 연출 선생님이 제게 그 역할을 하라고 하셨죠. 다행히도 원래 배역을 맡은 친구와 친해 평소 모니터를 해주고 열심히 봐뒀던 게 도움이 됐어요. 일주일 만에 손색없이 해낼 수 있었어요."
2003년에는 광주시립관현악단과 함께 올린 창극 ‘칸타타 춘향’에서 방자 역을 맡아 맛깔나게 선보였다. 작품의 주요 캐릭터로 유쾌하고 능청스럽게 연기해야 하는 배역을 개성있고 재밌게 소화했다는 평을 받았다.
전문적으로 연기를 배워본적 없는 그이지만 무대 위에 올라가면 정반대의 사람이 된다. 내성적이고 부끄럼 많던 성격은 창극단 활동을 하며 주목받는 것을 즐길 줄 아는 성격으로 바꼈다.
"소극적이었던 제가 소리를 만나고 많이 바꼈죠. 배역도 제 성격과는 전혀 다른 캐릭터들이 더 기억에 남는 거 같아요. 창극 ‘심청’에서 맡은 뺑덕이네도 그렇고 방자도 그렇고 희극적인 인물들이요. 아무래도 관객들의 반응이 즐거우니까 저도 재밌게 하죠."
정씨는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심청가’ 이수자로 우리 소리를 계승하고 있다. 그는 심청가 중에서도 ‘심봉사 황성 올라가는 대목’에 가장 애착을 가진다. 2015년 ‘제27회 목포전국국악경연대회’ 본선에서 이 대목을 불러 대통령상을 받았다. 심술궂은 뺑덕이네와 심봉사의 딸을 향한 절절한 마음, 아낙들과 어우러지는 모습 등 희로애락이 전부 담겨 매력적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대회를 준비해 수상하기까지 큰 슬럼프가 있었다. 35세에 결혼한 그는 아이를 낳고 5년여 간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원인 모를 우울증에 성대결절까지 찾아왔다. 꾸준히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했으나 목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고, 의사는 수술을 권유할 정도로 심각한 진단을 내렸다.
하지만 그는 고민 끝에 수술을 과감하게 거절하고 오히려 더욱 연습에 매진했다. 어린 아들을 여수에 계신 친정엄마에게 맡겨놓고 매일같이 연습실에 앉아 울면서 소리를 했다. 슬럼프를 소리로 극복해야겠다 마음먹었다.
"성대결절이 오면 무엇보다 높은 음을 지르는데 있어 제약이 커요. 판소리는 질러주는 데서 짜릿한 맛을 느낄 수 있는데 그게 불가능했으니 얼마나 좌절했는지 몰라요. 단원이 안쓰럽게 생각할 정도로 단체 연습이 끝나고 혼자 남아 북을 앞에 두고 연습했죠."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신기하게도 목이 점차 완화되기 시작했다. 그는 증상이 호전되는 것을 느끼며 새로운 목표를 꿈꾸게 됐고, 결국 전국국악경연대회 대통령상이라는 커다란 결실을 이뤄냈다.
정씨는 창극 ‘망월, 달빛의 노래’의 망월할매 역을 준비하며 친정어머니에 대한 생각이 더욱 많이 나 몰입하게 된다고 말했다. 어머니에게 주연배우로 무대에 선 멋진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어 속상하고 안타까운 마음이다.
"지난해부터 어머니가 치매를 앓게 되셔서 공연을 보여드리고 싶어도 그럴 수 없게 됐어요. 특히 올해 작품은 굉장히 의미있고 또 어머니의 절절함을 표현해야 하니 준비하면서 어머니 생각이 더 많이 나네요."
끝으로 그는 판소리에 대한 애정과 더불어 음악을 만나게 해준 부모님을 향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판소리는 우리네 인생이라고 표현하잖아요. 인생을 살아본 사람들은 그 느낌을 알기 때문이죠. 어릴 때는 그저 특별한 특기를 갖고 싶어서 했는데 지금은 소리를 알게 해주신 부모님께 정말 감사드려요. 친구들을 만나면 ‘너는 좋아하는 걸 하면서 인생을 사니 참 부럽다’라는 말을 듣거든요. 저는 소리를 만나 참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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