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00원씩 모아 지역사회 감동 전파” [사람사는 이야기1]김희만 100원회 회장 전라도인 admin@jldin.co.kr |
2024년 12월 25일(수) 14: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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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 속의 100원짜리 동전. 이 동전 하나가 시발점이 돼 지역사회에 26년째 훈훈함을 전하고 있는 단체가 있다. 100원씩 모아 지역 내 학생들에게 1년에 한 번 장학금을 전하고 있는 100원회의 이야기다. 100원회를 이끌고 있는 김희만 회장은 1999년 이 모임을 창립했다.당시는 IMF 시절로, 국민 모두가 어려운 상황을 보내고 있었다.
“광주 서구청에서 근무 중, 출근해서 신문을 읽고 있었는데, 아들이 군대 첫 휴가를 나왔지만 고기 한 근 살 돈이 없어 슈퍼마켓에서 고기를 훔치다 구속됐다는 기사를 접하고 막막함을 느꼈죠.”
‘국내 경제 상황이 정말 어렵구나’라고 느낀 그는 우연히 열어본 서랍에 놓인 100원짜리 동전을 보고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한다.그는 “모든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방황을 할 때였는데, 100원짜리 동전을 보고 아무리 어렵더라도 하루에 100원씩 모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이후 그는 1999년 2월 이 같은 생각을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자 생활정보지에 광고를 했다. 광고 문구는 ‘하루 100원으로 이웃을 도웁시다’.
이렇게 하나 둘씩 선한 마음에 동참을 하고자 하는 이들이 모였고, 1999년 4월 5일 창립총회를 열고 100원회의 장학금 전달 역사가 시작됐다.특히 김 회장은 지역 한 일간지에서 주최·주관한 광주·전남 환경 대상에서 받은 상금 50만원을 기부, 장학금의 재원을 확보했다.사실 그는 100원회 시작을 공직자들과 함께 하려 했었지만 이내 마음을 접었다.
김 회장은 “민선 1기 때였는데, 24시간 민원이나 자전거 무료 대여 등 지금은 활성화된 정책 제안을 많이 했었으나 당시 시대상에는 맞지 않았다”며 “100원회도 제안 심사부서에서부터 통과가 안 될 것 같아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시작하는 게 낫겠다 생각했다”고 전했다.
처음 100원회를 시작한 김 회장은 많은 부침이 있었다.주위에서는 ‘하루 100원을 가지고 뭘 한다는 것이냐’, ‘언제까지 모임이 유지되는 지 보자’며 비아냥 대기 일쑤였고 서구청사를 지나갈 때면 ‘100원짜리 지나간다’고 수군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100원이라는 작은 돈이 모이면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소신을 갖고 꿋꿋이 창립 총회를 준비, 결국 그의 선한 의도가 1999년 3월 언론에 보도되면서 전국으로 확산됐다.
김 회장은 “당시 한 여기자가 100원회는 어떤 모임이냐고 물어봤고, 취재에 응했다”며 “전국에 보도되면서 회원 가입 문의가 쇄도했다”고 말했다.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100원회에 관심을 갖게 됐고, 40명 정도로 시작했던 모임은 올해 8월 730명까지 회원 수가 늘어나게 됐다. 100원회의 큰 장점이자 단점은 규칙이나 규율이 없다는 것이다.
정해진 회비가 없어 마음만 있으면 언제든지 자기가 낼 수 있는 돈을 내도 무방해 회비에 대한 부담이 없다는 장점이 있지만 반면 기부가 한 번에 그칠 수 있다는 점이 공존한다.
김 회장은 “내 것을 나눈다는 게 한 번이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이걸 지속적으로 하는 게 어려운 것이다”며 “회비를 낸 사람, 안 낸 사람, 몇 년 만에 보낸 사람 등 다양하게 공존하고, 회원의 분포도 유치원생부터 80세 넘은 어르신까지 다양하다”고 설명했다.때문에 회비가 많이 걷어졌을 때에는 1300만원의 장학금을 지역 학생들에게 전달했고, 최근 들어서는 500만~700만원 사이의 장학금을 쾌척하고 있다.김 회장은 100원회를 이끌며 회원들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오로지 선한 의도만을 보고 전국에서 많은 이들이 회비를 보내줘서다. 때문에 회비 모금과 집행을 투명하게 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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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제주도부터 강원도까지 회원들이 분포했다. 인적사항을 밝히지 않는 분들이 대다수다”며 “나는 심부름만 할 뿐이다. 전국에 보이지 않는 회원들이 힘을 주기 때문에 6개의 통장 및 행사 지출 내역, 언론보도까지 모두 정리해 놓고 있다”고 전했다.이어 “믿고 보내주는 만큼 장학생 선발도 자체적으로 하지 않는다”며 “광주 5개 자치구에 공문을 보내 학생들을 선발해 대학생은 30만원, 중·고등학생은 20만원을 지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최근 들어 고민이 늘고 있다. 2008년 퇴직 후 1t 화물트럭을 구매해 재활용품을 모아 팔며 회비를 충당했는데, 이 화물트럭이 매연 5등급 차량으로 판정받아 이제는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화물트럭은 저에게 외제차와 다름 없다”며 “트럭을 몰며 소년·소녀 가장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기도 했는데, 트럭을 이용 못하게 돼 아쉽다. 경기가 어려운 만큼 사비를 들여서라도 장학금을 충당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26년의 전통을 이어온 100원회의 명맥을 계속해서 이어나갈 구상도 가지고 있다. 언젠가 누군가 100원회를 이어 받아 계속해서 모임이 운영되도록 하겠다는 의지다. 이를 위해 그는 플랫폼 사업을 계획, 변호사 사무실에 공증을 받아 수익금이 100원회 통장으로 입금되도록 조치를 할 계획이다.
김 회장은 “내 자신이 100원회에 푹 빠져 있어 놓기가 싫다. 혹여 모임을 운영할 여건이 안됐을 때를 대비하고 있다”며 “매일 100원으로 행복을 전한다는 생각을 지닌 회원들과 계속해서 100원회를 꾸려나가겠다”고 강조했다.아울러 “회원들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을 지니고 있다”며 “경기 침체에도 꾸준히 회비를 보내주는 회원들이 100원회를 이끄는 동력인 만큼 지역사회로 따뜻한 마음이 전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