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경에는 유통기한 없다는 생각

문득 여행(도심 사찰에서의 쉼)
무각사와 원효사 한때 매년 새해맞이 추억 떠올라
경내서 힐링…산책로 거닐며 번잡한 마음 다독여
석불전 관람 뒤 차 한 잔 여유…원효루서 풍경 조망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0년 12월 28일(월) 16:01

(2021년 1월호 제92호=글 고선주 기자)

삶은 길을 찾아나서는 여정이다. 우리는 살면서 무수히 많은 많은 길들과 만난다. 목적지를 찾아나서기 위해 길을 밟는가 하면, 자기 정체성을 찾기 위해 나서는 것 역시 길을 통해서다. 태어나면서 만나는 것이 길이듯, 떠나면서 만나는 것 역시 길이다. 어쩌면 우리는 온 평생 길을 찾다가 끝나는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길은 우리의 처음과 끝을 정확히 보았을 것이다.
처음에는 어디든 갈 수 있는 곳이 길이라고 생각했다가 살면서는 점점 길이 사라지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는 것을 수없이 접하게 된다. 삶에서 여러 갈래의 길이 있듯 우리는 늘 길을 택하며 살아간다. 누군가는 길의 처음에서 막막해 하고, 누군가는 길의 맨 끝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래서 항간에는 길이 없으면 길을 내서 가라고 한다. 살다보면 늘 길이 시원하게 뚫려 있는 것은 아니다. 출구없이 막혀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출구를 도통 찾을 수 없을 때 도심지 안의 사찰, 정확히는 걸으며 생각 혹은 명상할 수 있는 사찰을 찾아 떠나보면 어떨까.
코로나19 재확산 여파가 심각해지고 있어 외출마저 자유롭지 못하거나 외출시 눈치가 보이는 요즘이다. 이런 사찰들은 굳이 불자가 아니더라도 잠시나마 사색이나 힐링을 하기에 적격이다. 꼭 거창한 단어의 나열이 아니더라도 번잡한 일상으로부터 쌓이는 스트레스, 더 나아가 일상 속 문득 문득 저축하듯 차곡차곡 쌓은 마음 안 분노나 울분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느 도시나 마찬가지겠지만 도심에 몇몇 사찰들이 자리하고 있다. 유난히 마음에 당기는 사찰들이 있다. 사찰 옆 산책로가 있다면 금상첨화다. 대개 사찰 옆 산책로는 운동 코스로 쓰이거나 등산 코스로 활용된다. 용도야 어찌됐든 사찰을 둘러보고 헛헛한 몸과 마음을 다독여볼 수 있는 산책로야 말로 사찰에서의 쉼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것은 분명하다. 이번에는 도심에서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사찰 두곳을 둘러봤다. 우연인지는 모르지만 두 사찰 모두 송광사 말사들이다.
먼저 광주 상무지구 여의산 자락에 자리한 무각사(無覺寺)를 다녀왔다. 무각사는 원래 군종사찰이었다. 군 장병을 위한 사찰로 병영 안에 자리하고 있었다. 호국불교 신행공간이었다는 이야기다. 상무대가 1994년 장성군 삼서면으로 이전하면서 군종 사찰에서 벗어나 일반 시민들 품으로 돌아왔다. 처음에는 군 부대가 옮겨간 뒤 무주공산처럼 텅 비어 있었으나 1996년 불사가 시작됐다. 인근 신도들이 정진하는 도량이자 주민들이 건강 도모를 위해 찾는 공간으로 애용돼 왔다. 현재 청학 주지스님이 중창을 하는 등 불심 가득한 수행사찰로 자리잡도록 했다. 로터스문화관과 북 카페를 두고 불교문화의 대중화와 내외연 확대에 힘을 쏟고 있으며, 갤러리까지 개관, 운영하면서 문화 진작에도 기여하고 있다. 신진작가들을 발굴하는 데 앞장섰고, 다양한 기획 전시를 열어 사부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다. 새롭게 중창된 대웅전과 사찰입구 불교회관, 템플스테이, 다도, 세미나장 등이 갖춰져 있다. 현재 무각사를 방문하면 더 깊이있는 불심과 만날 수 있다. 방문하게 되면 엄중한 코로나19 시국이지만 말로 딱히 표현할 수 없는 사찰 특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거친 화강석으로 해학적이고 익살스러운 한국적 정서를 표현하는 데 주력해온 경북 경주 출생 조각가 오채현(59)씨의 특별초대전으로 마련된 석불전 때문이다. 지난 2020년 11월3일 시작돼 오는 10월31일까지 1년간 무각사 로터스갤러리와 사찰 경내 일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번 전시는 ‘돌에 새긴 희망의 염화미소(拈華微笑)’라는 타이틀로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염원이 투영된 가운데 30년째 석조각에 매달려온 작가의 초대형 사방불과 미륵불, 아미타불, 석탑, 석등, 호랑이를 망라해 부조소품 등 50여점이 출품돼 사찰 곳곳이 불심으로 가득 차 있다.
사찰을 둘러보며 온갖 불상들을 접하는 재미까지 더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여운을 되새겨볼 수 있는 산책로가 사찰이 있는 지점은 물론이고 5·18기념공원을 끼고 둘러쳐져 있다. 규모가 크지 않다보니 여의산을 한 바퀴 도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는 않는다. 5·18기념공원에는 대동광장을 비롯해 현황조각 및 추모승화공간, 잔디공원, 학생교육문화회관, 원형광장, 오월루, 단성전, 대성전, 계류정, 팔각정, 연못 등이 자리하고 있다.
사실 사찰만 둘러보고 자리를 뜨기 아까운 곳이 무각사 일대다. 한 바퀴 돌고 그림을 감상하며 커피를 한 잔 할 수 있는 곳. 거기다 수다 삼매경까지 더할 수 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주차장이 있기는 하나 한꺼번에 사람들이 몰려들면 주차하기가 어렵다. 그게 흠이다. 코로나19 이후 인파들이 줄어들면서는 드문드문 주차자리가 난다. 예전에는 템플스테이에 참가하고 여의산 둘레길을 한 바퀴 돌면서 참자아를 찾아나선 바 있다. 숲 체험이 가능할 정도로 수목들이 자리하고 있다. 상무지구 대로변의 산책로를 제하면 그냥 숲길을 거닌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어 무등산 원효사(元曉寺)를 찾아갔다. 원효사는 젊은 시절 무각사처럼 매해 마지날인 12월31일 저녁과 새해 첫날인 1월1일 새벽 시간 대에 방문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법당 문이 빼꼼 열린 틈을 내다보며 동정을 살피고는 그들에 합류해 ‘새해 복 많이 주라’고 불공 드렸던 일 말이다. 그때 사찰 가는 일은 각별하다. 인적 드문 산길을 오르는 그 느낌이 이때 빼고는 도무지 느낄 수 없는 것이어서다. 몸이 게으름을 피고자 할 때면 마음이 먼저 사찰로 이끈다. 다녀오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원효사는 법당 바로 아래까지 차량으로 오를 수 있다. 국립공원이 된 무등산 뒤쪽 산장 가는 길을 타고 이동하다 보면 버스 정류장과 등산객들을 위한 주차장이 나온다. 거기 못 미쳐 좌회전해 비좁고 가파른 산길을 타고 오르다 보면 도착하는 사찰이 원효사다. 원효사 가는 산길과 숲 풍경이 아름다워 뒤에 따라 오는 차가 난리를 피워도, 속도를 올리고 싶지 않은 곳 중 한 곳이다. 가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원효사에 못 미쳐 귀퉁이에 한국 현대시문학의 한 획을 그었던 ‘절대고독’의 다형 김현승 시인(1913∼1975)의 회색빛 ‘눈물’ 시비를 만날 수 있다.
구불구불 오르는 산길은 정겹다. 마치 뱀 같다. 더욱이 무등산 자락이다보니 공기는 한결 상쾌하고, 마음은 여유를 되찾는다.
산 중턱에 자리하다 보니 아래 쪽 무등산 자락의 풍경이 아스라하다. 원효사는 사천왕문 역할을 하는 원효루, 원효전, 명부전, 성산각, 대웅전, 약사전, 감로수, 5층 석탑, 범종 등이 펼쳐져 있다. 원효루 누각에 올라 저 멀리 손에 잡힐듯한 무등산 자락의 풍경은 바라보는 것만으로 체증이 내려가는 듯하다. 방문한 날 추위에 손가락이 동상걸릴 듯 했지만 새해 첫날 일출 명당으로 꼽히는 곳에서 서서 바라보는 풍경은 쉬이 발길을 뗄 수 없도록 했다.
사찰 옆으로 범종을 지나 토끼등과 서석대 등으로 연결된 산길로 접어들었다.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사찰의 경계를 각박하게 하지 않았다. 원효사만 둘러보고 가면 섭할 만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거쳐가는 필수코스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각기 다르게 산길이 주는 여유로움을 얻을 수 있다.
광주 사람들에게는 너무 낯익은 사찰들이라 식상할 수 있다. 그러나 멀리 있는 절경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묻고 싶다. 가까이 자리하고 있다고 해서 그냥 저냥 스쳐지나기만 한다면, 진주인데 진주를 알아보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다.
분명한 점은 예나 지금이나 방문할 때마다 절경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살다가 삶이 막히거나 하면, 자신도 모르게 다녀오는 이유다. 절경에는 유통기한이 없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사찰과 산길이 함께 또아리 틀고 있는 곳이 어디 여기뿐이랴마는 분주한 일상에다 코로나19 재확산 여파로 어디 마음놓고 가기 어려운 요즘, 마음이 당기는 곳이어서 각별하다. 새해 마음 당기는 곳, 방역지침을 준수하며 살짝 다녀오는 것은 어떨까.
전라도인 admin@jl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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