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함께한 30년…"그 시절 추억의 맛 전합니다"

[이사람] 동네빵집 ‘하이밀명과’ 이태임 대표
1994년 문 열고 30여 년 한 자리서 ‘영업 중’
60여 종류·추억의 소시지빵·크림빵 등 다양
신선한 재료·저렴한 빵 값·넉넉한 인심 ‘인기’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1년 03월 31일(수) 15:33
(2021년 4월호 제95호=글 박세라 기자)

매일 아침. 이 골목을 지나면 꼬순 빵 굽는 냄새가 솔솔 피어난다. 소보로, 팥빵, 국화빵, 크림빵, 슈크림빵, 쨈빵, 통단팥빵 등 일곱 가지 빵 250여개가 동시에 구워진다. 빵집 문을 연 이래 매일 같이 해온 일이지만, 할 때 마다 재미가 난다. 오븐 속에 통통히 부풀어 오르는 빵을 보고 있는 시간이 그에겐 힐링 그 자체다. 갓 나온 포실포실 빵들을 보기 좋게 진열해 놓으면, 아침일 나가는 손님들이 한 봉지씩 사 간다. 새벽 5시부터 일어나 바지런을 떨어야 하는 이유다. 30여 년 한 자리서 빵집 문을 열고 있는 ‘하이밀명과’ 이태임(67) 대표 이야기다.
광산로에 자리한 ‘하이밀명과’는 쭉 눈여겨보던 제과점이었다. 가까이에 유명 프랜차이즈가 떡하니 있고, 송정역시장의 핫플 빵가게는 물론이고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잇는 베이커리 카페까지 짱짱한데, 여봐란 듯 문을 열고 있는 ‘동네빵집’이어서다.
지난 3월15일 오후 ‘하이밀명과’의 문을 두드렸다. 손님이 왔다는 종소리가 딸랑이니, 한 눈에도 내공 깊어 보이는 이태임 대표가 반가이 맞아준다. "어머니, 빵 집 한지 얼마나 되셨어요?" 빵집을 둘러보며 묻자, "젊어서 왔는데, 이제 머리가 햐얗게 새부렀어"하며 웃는다. 그가 무심히 내뱉는 한 문장에 30여 년 세월이 담겨 있다.
‘하이밀명과’는 1994년 문을 열었다. 그때부터 쭉 한자리에서 영업 중이다. 빵집을 열기 전 이씨는 제과기계 판매업을 했었다. 빵 만드는 설비들을 제작, 제과점에 납품하는 일이다. 직원만 10명이 될 만큼 사업은 잘 됐는데, 세 들어있던 건물주가 부도를 맞았다. 지금에야 임대차보호법이니 뭐니, 세입자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마련돼 있지만 그 시절엔 아니었다. 그때 돈으로 5000만원을 고스란히 날렸고, 사업도 접어야만 했다. 위기 속에서 가정을 일으켜 세운 건 이씨의 결단이었다. 늘 제과점을 들락날락하면서 가게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고 있던 차, 빵집을 오픈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얻은 곳이 ‘하이밀명과’다. 세련된 상호명은 바깥양반이 지어줬다며 자랑한다. 세입자로서 한 번의 아픔을 겪었던 터라, 가게 문을 열고는 매일 다짐했다. ‘5년 안에 이 집을 살 것이고, 10년이 되면 그만 할 것이다’고. 이 중 집을 산다는 것은 이뤄냈고, 10년만 한다는 다짐은 이뤄내지 못했다.
빵집이 자리한 골목은 그대로인데, 풍경은 많이 변했다. 오픈 초 때만 해도 골목을 사이로 두고 ‘샛별제과’, ‘무등제과’, ‘고려제과’ 등 동네 빵집들이 성업을 이뤘었다. 그 시절 빵집들의 최고 대목인 크리스마스 때면 케이크 500개가 날개달린 듯 팔려나가고 하루 매출액만도 1000만원을 벌기도 했다. 그야말로 호시절이었다.
허나 동네빵집들이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한 것은, 골목으로 들어 선 대형 프랜차이즈의 손길이 미치면서다. 파리바게트가 들어서자 매출이 전에 없는 타격을 맞았다. 동네 가게들끼리 나눠 먹기 했던 ‘평화로운 경쟁’ 구도는 흔들렸고, ‘하이밀명과’ 또한 어려움을 피해갈 길이 없었다.
이씨는 "더 빨리 문을 열고, 더 늦게까지 손님을 맞았다. 정말로 열심히 살았다"며 "이렇게 메우고 또 저렇게 메우면서 버텼더니 세월이 훌쩍 흘렀다. 어렸던 아이들이 장성해 제 가정을 이뤘고, 지금은 빵집 운영을 도와주고 있다"고 말했다.

‘하이밀명과’에는 60여 가지 빵이 나온다. 기본 빵들은 물론이고 찹쌀도너츠, 추억의 소시지빵, 카스테라, 바나나빵, 맘모스빵, 생과자, 쿠키 등 다양하고 맛 좋은 것들이다. 프랜차이즈는 잘 팔리는 빵들 몇 가지만 두고 판매를 하기 때문에 ‘골라 먹는 재미’가 떨어지는데, 이곳은 무슨 빵이 있나 둘러보는 재미도 꽤 쏠쏠하다. 그 중 눈길을 사로잡는 게 바로 ‘이불빵’이다. 왜 이불빵인가 하면, 넓게 네모진 게 꼭 이불 모양과 같다. 그 안으로는 앙금이 세겹으로 가득 들었다. 직관적인 작명 센스에 한 번 놀라고, 거대한 빵 크기에 또 한 번 놀란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긴 식빵’이 이곳엔 있다. 요즘 식빵들은 이전 우리가 알던, 식빵의 길이에서 반 토막이 났다. 가격은 곱절이 올랐지만 말이다. 이곳에는 이제는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긴 식빵’을 빼는 빵틀이 남아 있어 추억의 긴 옥수수 식빵을 만날 수 있다.
무엇보다 인기 있는 것은 역시 국화빵이나 크림빵들이다. 기본 빵들은 1000원이고 큼지막한 카스테라도 1500원이면 살 수 있다. 재료값은 훌쩍 올랐는데 빵 가격은 동결인 상태다. 달걀이 금값이라는 요즘에는 오랜 단골들이 나서서 빵값을 좀 올리라고도 한다.
이씨는 "우리 집은 푸짐하게 빵을 살 수 있는 곳이라, 양산동에서 부러 찾아오시는 분들이 있다"며 "먼 데서 차를 타고 오시는 손님들을 위해서라도 빵값을 인상할 생각은 없다"고 설명했다.
그 넉넉함은 빵을 골라 담는 소쿠리에서 고스란히 느껴진다. 대부분 빵집에 있는 ‘쟁반’ 대신 ‘하이밀명과’에는 널찍한 대나무 소쿠리가 놓여 있다. 손님들이 익숙한 듯 소쿠리에다 빵을 담는 모습이 훈훈하니 재미있다. 욕심껏 빵을 담아도 1만원 이쪽저쪽이다. 거기다 인심 좋은 사장님은 가득 찬 빵 봉지에 서비스빵 두어 개를 더 얹어준다. 봉지가 묵직하게 쭉 늘어진다.
‘하이밀명과’의 기본빵들은 매일 아침 이씨가 직접 굽고, 쿠키나 케이크 종류는 오랜 세월 호흡을 맞춰온 제빵사가 도맡는다. 이씨는 지금까지도 재료 선정부터 앙금, 소스 등을 손수 챙긴다.
그는 "빵에 들어가는 재료만큼은 정말 최고급으로 쓴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달걀은 지금껏 거래해 온 농장에서 받아쓰고, 앙금하나부터 버터, 우유 등 신선한 것들만 고집한다"고 밝혔다. ‘하이밀명과’가 오랜 세월 사랑받아 온 이유일 것이다.
기억에 남는 손님들도 여럿이다. 특히 다섯 살 꼬마가 이곳에서 국화빵 두 개를 먹고 간 적이 있었는데, 20년이 지나고 훌쩍 자라 최근 다시 찾아오기도 했다. 서울서 먼 길을 온 그 청년은 그때 국화빵 맛을 찾아왔는데, 그 자리 그대로 ‘하이밀명과’가 있었다면서 몇 번이고 이씨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이씨는 "째깐해서부터 찾아왔던 꼬마손님들이 다 커서도 빵을 먹으러 오고, 교류하고 지냈던 손님 몇몇은 또 먼 길을 떠나기도 하더라"면서 "이곳에서 사람들과 만나고, 또 함께 나이 들어가는 게 오래 한자리에서 해 온 덕이기도, 복이기도 하다"고 언급했다.
‘하이밀명과’는 아침 7시에 문을 열어 늦은 저녁 11시까지 영업한다. 코로나19 여파가 있기 전까지는 자정을 넘어서까지 문을 열어뒀다. 늦게까지 일을 하고 귀가하는 사람들이 들러서 꼭 밤참을 사 갔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탓에 요즘에는 9시가 넘으면 골목길에 지나는 사람마저 발길이 뚝 끊긴다. 하지만 빵집 문을 닫을 수는 없다. 손님들과의 약속이라는 믿음이 있어서다.
마지막으로 그는 "큰 욕심 부리지 않고, 묵묵하게 해왔다. 서른아홉 살에 와서 이제는 60대가 됐다. 그 세월을 ‘하이밀명과’에서 보냈으니 더 없이 소중하고 고마운 공간"이라며 "앞으로도 오래 오래 건강하고 맛있는 빵을 드리고 싶다. 우리 빵을 사랑해주는 오랜 단골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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