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예술계도 파벌로부터 자유로운 공간은 없다. 그것이 심하냐, 그렇지 않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팔은 안으로 굽을 수 밖에 없는 게 자연의 이치이자 삶의 이치다. 이를 두고 딱히 뭐라고 지적하기도 어렵다. 더욱이 독학으로 예술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라면 그 출발선상에서부터 어느 정도 차별을 받았거나 차별 아닌 차별에 시달렸을 수 있다. 아니면 스스로 움츠러들었거나 주눅이 들었을 수 있다.
하지만 모두가 이런 지적대로 적용되거나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광주화단의 시각으로 호남 전체 화단을 해석하거나 정의를 내리는 것은 큰 오류에 직면할 수 있다. 광주 역시 지역이지만 전남 지역 역시 로컬이라는 이름을 벗어나지 못하지만 광주와는 판이하게 다른, 그들 나름대로의 질서가 존재하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목포나 여수, 순천, 광양, 나주시와 군단위 지역이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번에 다루고자 하는 아트인 작가는 순천에서 줄곧 머무르며 독학으로 자신만의 회화세계를 구축해 그곳에서 원로로서 일정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특히 선배 화가들이 열악한 가운데 창작활동을 펼치는 청년화가들의 창작에너지를 북돋우기 위해 운영중인 ‘광주미술상’이 광주에 있는 것처럼 순천에는 ‘원미상’이 있다. 원미상은 순천지역에 머무르며 활동중인 원로급 화가 30여명이 모여 결성, 시행중인 상이다. 후배 화가들에게 창작의욕을 자극하기 위한 취지로 운영 중이다. 이중 5명 안팎만이 미술로 앞가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열악한 상황에서 현재까지 9명의 젊은 작가들에게 작지만 알찬 창작지원금을 안겨줘 예술계 안팎의 귀감이 되고 있다.
원미회 회장을 맡아 이를 주도하고 있는 이가 한국화가 매천 김만옥(73·전남 순천)씨다. 자신의 창작생활에도 여념이 없지만 지역화단의 발전을 위해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김 회장은 20세 무렵 미술에 입문해 올해 53년째 화업의 길을 걷고 있다. 애초 척박한 여건으로 인해 순수미술보다는 극장간판 등 생계를 위한 상업미술에 먼저 눈을 뜨게 된다. 10여년 넘게 상업미술에 종사한 것이다. 상업미술에 종사하면서 기본기를 닦은 기회가 되기도 했다. 그러다 지금으로부터 40여년 전 한국화에 입문했다. 한국화에 입문한 뒤 초창기에는 산수 위주의 화폭을 일구다가 15년전부터 인물화에 천착했고, 누드작업과 미인도를 하다가 다시 5∼6년전 풍물화 작업을 벌여왔다.

이때 김 회장은 현대 감각에 맞게 다양한 물감을 사용해 컬러풀하게 색채를 구사했다. 그의 캔버스에는 동양화의 선을 살려내면서 서양화의 색채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2017년 5∼6월 전시를 목표로 3년전부터 현재까지 역사화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이는 순천에 숨겨진 인물들과 이름있는 명망가들을 글과 그림으로 체계화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글과 회화를 통해 일종의 ‘역사바로알기’ 작업을 펼치고 있는 셈이다.
이를 위해 사학과 교수의 자문과 순천시사, 승평지(昇平誌) 등을 참조해 역사성과 사실성을 객관적으로 담보하면서 보는 재미까지 곁들이는 작업에 몰입하고 있다.
김 회장이 현재 벌이고 있는 작업은 별도로 전시가 진행되고, 책자가 발행될 예정으로, 추후 순천시와 논의해 벽화도 구상 중에 있다.
그림 뿐만 아니라 내용 역시 김 회장이 집필 중에 있다. 그림은 50여점을 목표로 실작업율이 80%에 이르고 있다. 김 회장은 앞으로 순천시민들이 한 자리에서 일목요연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할 생각이다.
이처럼 순천의 숨겨진 인물들을 통해 순천 역사의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고 있는 김 회장이 처음부터 화가로서 탄탄했던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처음에는 미술이 예술로보다는 생계를 위한 방편으로 존재했었다.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맨손으로 모든 일들을 부닥치면서 하나하나 깨쳐나간 것이 그가 걸어온 화가로서의 길이다.
상업미술 이후 대한민국전람회에 여러차례 도전해 1981년 늦깎이로 첫 입선을 하는 등 네차례 입선을 하면서 화가로서 각인되기 시작했다. 김 회장은 누구 문하생이라는 말이 성립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스스로 깨쳐나왔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국전 심사위원을 늦게 역임했다. 그 이유에 대해 아마 누구 누구의 문하생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끌어 주는 사람이 없어 늦게 역임할 수 밖에 없었다는 풀이다.
"저는 미술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독학으로 해온데다 특정인의 문하에 들어가 미술공부를 한 것도 아닐뿐더러 둔감했으면 둔감했지, 실제 시류에 민감하지 않습니다. 남들이 하지 않은 난해한 작업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될 거예요. 그래서 저는 남들이 근접하지 않은 그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평생 전업화가의 자리를 고수해온 김 회장은 상업미술로 출발해 산수와 잉어, 누드, 미인도, 풍물도, 역사화로 작품 변화를 꾀해왔다.
이처럼 오늘날 화가로서 입지를 굳히게 된 첫 시발은 초등학교 2, 3학년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로 만화습작을 했는데 학교 대표로 대회까지 출전하게 되면서부터다.
이때 기억들이 20대 청년인 그를 일깨운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학 문턱도 못가서 독자적으로 해나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오로지 작업실에서 그 어떤 시류와도 타협하지 않고 작업실에 묻혀서 작업에 매달리며 화가의 길을 시작했어요. 참으로 바보스런 외길을 걸은 것이죠. 하지만 한번도 후회한 적은 없었습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건강하게 작업을 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해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작업을 지금처럼 계속해 나갈 거예요."
지독한 노력을 통해 화가의 반열에 오른 김 회장은 개인전 5회를 열었고, 단체그룹전 300여회에 출품하는 저력을 보여왔다.
김 회장은 후배들에게 고마움도 피력했다.
"광주도 아닌 순천에서 열심히 작업활동을 펼치고 있는 후배들을 보면 한편으로는 미안하고, 또 한편으로는 고맙다는 생각이 들어요. 후배들이 잘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엿하게 미술대를 나와 활동을 펼치고 있으면서도 결혼도 하지 못하는 등 현실적인 문제가 있어 선배로서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이어 김 회장은 순천미술의 현주소에 대한 언급도 빠뜨리지 않았다.
"지난해 한국화에서 장안순 작가가 국전 대상을 수상하는 등 순천에서도 국전 대상자가 배출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더욱이 조강훈 한국미협 이사장을 비롯해 전남예총 이승정 회장, 현 순천시의원을 지내고 있는 나한수 전 전남미협 회장 등 미술계 대표인사들 중 상당수가 순천 출신들이어서 자긍심도 갖고 있지요. 이분들이 모두 역할을 끝까지 잘해나갈 것으로 믿습니다."
김 회장은 오는 12월초 ‘정유재란’이라는 명제로 역사화 10여점을 선보일 예정으로 막바지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화가 김만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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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사진=최기남 기자 bluesky@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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