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예술인] 사진 작가 강봉규

1960년대 민중 삶·남도 전통 문화·자연 ‘기록’
6·25 한국전쟁 경험 후 ‘르포르타주’ 사진 천착
"사진 예술에 시대상 담아"…백세기념전 계획도

그의 응시는 세상의 기록이 됐다. 짐을 머리에 가득 인 아낙의 모습, 논두렁을 걷는 늙은 농부의 걸음이 그의 눈동자에 잡혔다. 찰칵. 순간을 찍었으나 영원이 됐다.
60여년 사진작가로 현장을 누볐던 강봉규(82)씨가 남긴 작품이자 지난 삶의 기록물이다. 그의 작품 속엔 민초들의 삶이 있고, 시대가 있고, 그 끝엔 결국 사람이 있다.
인간 삶의 아름다운 면면을 카메라에 담아온 강봉규 작가를 만나봤다.

"내 나이가 몇 살일 것 같은가?" 강 작가가 먼저 물었다. 어떻게 말해야 할까 머리를 굴리는데, "82살이오."라고 답해준다. 그런데도 주말이면 늘 남도 이곳저곳으로 출사를 다닌다는 말도 덧붙인다.
오랜 시간 한 장르에 몰두한 내공 깊은 선생들을 만나는 일은 ‘초짜’ 기자에겐 늘 어려운 일이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60여년 사진기를 들고 강 작가가 마주한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인터뷰하는 내내 그의 눈을 들여다보며 얼마나 많은 아름다움을 목격했을까 싶어 존경스런 시샘이 난다.
강 작가의 뷰파인더에선 ‘보통사람들’이 주연이다. 한국의 전통과 문화·사람·자연을 꾸밈없는 시선으로 포착, 시대의 정서와 삶을 추적한다.
그의 사진세계에 영향을 준 사람은 바로 르포르타주 사진의 전형을 세운 자로 꼽히는 이경모 선생이다. 호남신문에서 이경모 선생에게 사진을 배운 강 작가는 그의 나이 24살에 광주일보의 사진부장으로 활동한다.
"사진기자로 현장 이곳저곳을 누비며 남도 삶의 모습에 애착을 갖게 됐어요. 남도는 자연환경이 수려하고 산새가 좋아서 예부터 예술적 기질이 조금 남다르죠. 늘 마음에 흥이 있고 춤을 춰도 가락이 있고요. 이러한 예술적 끼를 사진으로 기록하고 싶은 생각이었습니다."
그가 남긴 한 장 한 장의 사진은 신문에 실렸고 곧 ‘공식적인 기억’이 됐다. 강 작가의 사진이 지금까지 그 생명력을 잃지 않는 이유는 작품에 담긴 작가의 애정 깊은 시각 덕이다. 단순히 남도 사람들의 삶을 바라다보는 ‘관찰자’로서가 아니라 그는 누구보다 남도를 사랑하는 사회 일원으로서 늘 그곳에 함께 했다.
그가 보통사람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기록하는 데 천착한 이유는 6·25전쟁을 경험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생과 사가 갈리는 난리 통에도 민중들의 삶은 지속됐다. 그들을 들여다보며 강 작가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에 유행했던 미학적 기반을 둔 사진 작품에 의문을 제기한다. 삶을 외면한 미학은 그 가치가 빛을 바란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지속되는 민중들의 생활상을 기록하는 것이 사진 예술의 ‘본령이자, 자신의 임무라고 여긴 것.
"삶과 동행하는 것이야말로, 살아있는 예술이에요. 인간 생활의 순간들을 기계적인 속임수 없이 진솔하게 담아내는 것이 사진기를 든 저의 역할이죠. 더 가까이 다가가고, 꾸밈없는 날것 그대로의 풍경들은 개개인의 일상의 기록임과 동시에 당시 사회적 맥락을 엿볼 수 있는 자료가 됩니다."
그는 사라져가는 전통적인 삶의 양식을 앵글에 담는다. 전통 혼례 모습, 서당에서 글을 배우는 학도들, 동네 잔칫날 멍석을 깔고 음식을 함께 먹는 선비들, 다듬이질을 하고 있는 아낙의 모습이 찍혔다.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상여 행렬과 말을 타고 가는 새신랑의 듬직함도 보인다. 1970~1980년대 급속한 경제 발전 하에 사라져 버린 전 근대적 삶을 사진으로나마 남긴 보석 같은 작품들이다.
이는 곧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표출하는 창이자 서정적이고 한국적인 이미지다. 동시대를 살며 한 세대가 공유했던 기억이면서 후대에 다양한 미디어들을 통해 전해질 이미지의 원형이다.
강 작가는 특히 인물 표정을 담는 데 주력한다. 긴 담뱃대를 물고 생각에 잠긴 촌로의 얼굴, 메주 앞에서 손을 모은 채 앉아있는 할머니,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는 어르신들의 얼굴이 포착됐다.
인물에 초점을 두었으나 그 너머엔 시대상이 담겨있다. 그의 대표작 ‘유세장’은 이를 가장 잘 표현한 작품으로 꼽힌다. 사진 속 배경은 1972년 광양에서 있었던 김대중·박정희 대통령 후보자 유세장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꼬마는 짚덩이 위에 앉아 추위와 싸우고, 그 뒤로 선 군중들은 사뭇 진지한 얼굴로 누가 세상을 바꿔 줄 인물인지 귀 기울입니다. ‘유세장’은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에요. 이 안엔 ‘시대성’이 있거든요. 사람들의 표정, 옷차림, 몸짓들이 저마다 메시지가 있죠."
냉철한 시각을 가진 사진기자로서 사회의 단면을 내보이는 작품도 여럿이다. 4·19혁명 당시 시위대의 모습, 경찰들의 제지를 뚫으려는 학생들의 몸부림도 기록됐다. 시간과 싸우고, 늘 예민하게 세상을 바라본 그 노력의 흔적들이다.
순간을 담는 사진은 ‘한 걸음’만 늦어도 같은 상황이 연출되지 않는다. 노상 뛰어야 하는 게 사진작가의 운명이다.
"피사체에 몇 걸음 더 다가갈지 멀어질지 셔터를 누르기까지 머릿속으로 구도를 잡아야합니다. 조금만 더, 더 뒷걸음 질 치다가 발을 헛디뎌 도랑에 빠지기도 하고, 넘어지는 일도 부지기수죠. 독창적인 구도에 대한 욕심 때문이에요. 같은 상황에서도 사진마다 다른 분위기를 내는 것은 바로 작가들의 이 같은 고집 덕이죠."
60여년 카메라를 들었으니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변화도 겪었다. 그가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첫 사진은 사직공원에서 강강술래 하는 모습이다. 그 변화가 어땠느냐는 질문에는 "아날로그나 디지털이나 예술 감성을 녹여내는 것은 매 한가지"라면서도 "인화나 필름 정리 등 후반 작업은 훨씬 수월해졌다"며 웃는다.
팔순이 넘은 그이지만 여전히 현역이다. 카메라 하나 달랑 들고 틈만 나면 출사를 나간다. 자신의 이름으로 엮어낸 사진집만 9개, 사진은 수도 없이 찍었지만 아직도 세상은 그의 가슴을 두드린다.
"사진은 시간을 응축한 하나의 결정체에요. 스무 살 때부터 지금껏 찍은 사진들을 바라보면 그때의 그 순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요. 기억이 희미해졌다 해도 작품을 마주하면 거짓말처럼 언제, 어디서, 어떻게 찍은 것인지가 되살아나죠. 그래서 지금까지도 기억력 하나만큼은 젊은이들 못지않죠."
세상을 향한 끊임없는 그의 구애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100세가 되면 작품 100개를 꼽아 선보이는 ‘백세 기념전’을 계획 중이다. 늘 목표가 있어야 인생이 아름답다고 믿는 그의 철학이 오롯이 드러난다.
"돌아보면 정말 열심히 찍었어요. 셔터를 누르는 순간에 무한을 창조하고픈 욕망이 무아지경에 빠지게 했죠. 극치의 작품을 ‘잉태’하고픈 마음에 눈 덮인 산야에서도 발 시린 줄 몰랐고, 포착하고 싶은 순간을 마주했을 땐 가슴 벅참으로 참 행복했습니다."

박세라 기자 sera0631@gwangnam.co.kr

△강봉규 작가는
-광주일보사진부장, 출판국장 역임
-동강대·호남대에서 사진학 강의
-월간 사람사는이야기 발행인 겸 편집장
-광주예총회장 역임
-제1회 광주비엔날레집행위원장
-‘한국사진 60년’·‘나무와 사람’ 등 다수 초대전 개최
-전라남도 문화상·대한민국 은관 문화훈장·광주시민대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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