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들은 약속이나 한 듯 낙엽을 떨어트렸다. 봄철을 화려하게 물들였던 벚나무며, 주렁주렁 고향의 향수를 불러주던 감나무도. 한여름 그늘을 안겨주던 등나무도 의자위로 낙엽이 뒹굴더니 빈가지만 허공에 걸려있다. 가을이 저물도록 치자 빛보다 더 노랗게 잎사귀를 익혔던 은행나무는 실오라기 하나 없이 나목이 되었다.
삭막함만이 더해가는 세상살이에서 계절의 순환은 자연이 우리에게 건네는 말없는 축복이다. 언제부터인가 해가 거듭될수록 자연의 이치와 아름다움이 인생의 의미로 다가옴을 느낀다.
새로운 순환을 위한 텅 빈 이 계절의 허허로움이 어김없이 찾아든다. 한 해와 인간의 탄생이 길고 짧음을 떠나 이렇듯 닮아있다. 자연의 순환과 현상을 보면서 사람들은 저마다 삶의 의미를 가다듬고 가꾸기도 한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며 예술혼을 꽃 피우고, 자연의 순행을 통하여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겸허함을 깨닫기도 한다. 자연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우리 곁에 더불어 머무르는 큰 스승이다.
혹한이 벌써 엄습하려는 데 준비도 안 된 우리의 삶의 현장에 한기가 느껴진다. 뿌린 대로 거둘 수밖에 없지만, 이번 겨울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를 이끌고 있는 리더가 안겨 준 상처가 너무 깊다. 국가나 자치단체의 지도자를 잘 뽑는 일이 얼마나 우리의 삶에 깊고 넓은 영향을 미치는 지를 뼈아프게 배우는 계절이다. 눈 만 똑바로 뜨면 찾을 수 있는 인재를 찾아 쓰지 못하고 시골 아낙네 ‘친목계’하듯 운영하는 나라 살림살이에 선량한 국민과 시민들만 겨울나목처럼 추운 눈보라에 내팽개치게 되었다.
원인은 하나같이 세상 경영의 기본인 용인술의 부족과 우둔함 그리고 공과 사를 구별 못하는 흐리멍텅한 눈에서 비롯되었다. 세상을 이끄는 원칙과 이치를 저버린 대가는 가혹하다. 윗물이 흐린 ‘人災’가 몰고 올 파탄이 얼마나 엄청날지 그저 불안감만 고조될 뿐이다.
가난과 실업, 가정 해체와 기업의 퇴출이 정의와 질서에 대한 불감증과 뒤범벅되어 온 세상이 오리걸음으로 뒤뚱거린다.
이 땅의 민초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 세월 직분을 다하고 강물이 다시 풀리기만을 기다려 새 날을 준비하는 겨울나무처럼 살아간다. 추운 눈보라가 몰아치면 가지와 가지를 서로 맞대며 한겨울을 이겨나간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리더들도 추운 겨울 맨 몸을 드러낸 겨울나목의 고단한 삶을 보며, 정도를 벗어난 세상 경영이 얼마나 많은 가지들을 부러뜨리고 큰 아픔을 가져오는지를 배웠으면 좋겠다.
하여 이 땅의 리더에게 이 겨울에 겨울나무처럼 무욕과 침잠의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면 좋으련만.
자신의 그 자리가 뽐내는 자리가 아닌 고행의 자리로, ‘職’이 아닌 ‘業’으로, 소명의 시간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