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단에는 여러 유형의 화가가 있다. 개인전을 통해 작가적 존재감을 되새기는 화가가 있는가 하면, 그와는 반대는 굳이 개인전이 아니더라도 창작을 하며 미술 안에 있거나 연을 이어가면 된다는 화가들도 있다. 전자의 경우가 대다수 사례이지만 후자의 경우도 제법 보이는 사례다. 다만 후자의 경우는 복잡하고 복합적인 이유들이 엄존한다. 이를테면 생계 때문에 창작에 집중하지 못해 개인전을 열지 못하거나 작품 경향을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새로운 방향에 대한 확신 부족이나 방향 타개를 하지 못하는 것들이다. 이는 오랫동안 침잠의 시간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자신이 처한 환경을 극복해가며 창작을 위한 몸부림의 과정으로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 그 극복의 과정이 장시간이 요하느냐, 아니면 단기간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처럼 침잠의 시간을 갖고 있는 화가들 중 대학 전후 두각을 나타내거나 2대째 화가의 길을 걷는 경우도 제법 많다. 개인전을 열지 못한 채 단체전 등을 통해 화가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이들의 창작 행간에 귀기울여본다. 개인전이 늦어지고 있을 뿐이다. 붓을 놓지 않고 작업은 지속하고 있다. 교육계에 몸 담고 있으면서 틈틈이 작업을 벌이고 있는 서양화가 최유경씨(43)도 이런 경우에 속한다.
그는 한때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1997년 말 닥쳐왔던 IMF가 본격적으로 한국 경제를 강타하기 시작하던 1998년 예술계 역시 어려움에 직면하던 무렵이었다. 그도 취업 등 신경쓰이는 일들이 한둘이 아니었다는 귀뜸이다. 하지만 화가로서의 꿈이 많던 시절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는 미술대전에 공모했다가 최고상을 수상한다. 1998년 전라남도미술대전에서 서양화 부문에 ‘침묵’을 출품해 당당히 대상으로 뽑히는 영예를 차지한 것이다. 이때 출품했던 ‘침묵’은 IMF 시대를 맞아 당시 상황을 어둠 속의 닫혀진 공간과 멈춰진 시계, 철근 등을 소재로 활용해 상징적 어법으로 형상화, 젊은 작가의 탐구정신이 돋보였다는 평을 받았다.
이 작품에는 부친의 잔상 역시 서려있는 작품이었다. 그의 부친은 호남추상미술(광주앵포르멜)의 선구자로 미술그룹 광주에뽀끄를 결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서양화가 고 최종섭(1938∼1992)씨다. 부친이 떠난 지 6년만에 화단에 자신의 존재를 확실하게 알린 셈이다.
부친의 존재는 그에게 단순하게 아버지에 머물지 않는다. 중학교 2학년때 처음으로 부친으로부터 미술을 배웠기 때문에 미술적 스승이기도 했다. 그에게는 미술의 출발이었다. 미술의 문을 부친이 열어주지 않았다면, 손을 잡아 이끌어주지 않았다면 미술대학에 진학하고, 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그가 부친으로부터 받은 미술적 영향은 지대하다. "자라면서 그림을 그렸지만 그냥 아버지로만 알았죠. 제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린 뒤에서야 아버지가 대단한 분이라는 알았습니다. 기법적으로는 완전히 달라요. 아버지가 고등학교에 돌아가셔서 영향을 받고 그럴 상황이 아니었어요. 개인적 목표는 열심히 작업을 해 아버지를 뛰어넘어보는 것이죠."
그는 어린 시절 그림 직업만 있는 것으로 착각했다고 한다. 그에게 부친은 큰 산 그 자체였던 것이다.
"어렸을 때 그림 잘 한다 하니까 미술에 뛰어들어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저는 아버지를 보면서 세상에 그림으로만 하는 직업이 유일한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저 자신도 그림만 그리고 살아야 하는 줄 알았죠."
그러다 부친이 세상을 떠났지만 당연하게 미술대학에 가야하는 것으로 알고 진학한 뒤 도전 대상을 받고, 화가 부인을 만나 사는 현재까지 그는 개인전을 열지는 못했지만 화가로서의 삶을 놓아본 적은 없다.
다만 작품 보존을 매끄럽게 하지 못하는 바람에 상당수 작품을 폐기해야 했다. 그에게는 생살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이었지만 오히려 창작의 열망을 강단지게 가져갈 수 있는 계기로 삼고 있다. 다시 시작한다는 일념으로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소품 작업은 물론, 풍경 작업을 꾸준하게 펼치고 있는 것이다. 매달 청동회 스케치에 참여하는 것도 이 단체의 회장을 맡고 있는 이유도 있지만 바쁜 교직생활을 내세워 혹여 작품에 속도를 내지 못할까하는 우려감 때문에 한번이라도 더 창작기회를 갖자는 취지에서다.
그는 한때 모든 것이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개인전도 쉽게 열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개인전을 열려면 확실한 철학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여전히 철학의 부재로 자신을 재단하기 때문에 개인전이 뒤로 밀쳐졌던 것이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는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해왔다. 전라남도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던 ‘침묵’이 여러 도구들을 활용한 것이었다면 라면 그림에 천착한 뒤 풍경에 집중하고 있다.
대학졸업 후 10년 동안 극사실주의 경향에 경도됐다면 그 이후 5년은 라면 그림에 빠져 지냈고, 3년전부터는 풍경그림에 천착하는 변화를 거듭해왔다.
그의 극사실주의 경향은 어둡고 실험적인 것들로 대별된다. 결혼 후 색채가 밝아졌다. 올해 작업해 청동회전에서 선보였던 ‘그린 페인팅’(Green Painting) 같은 작품을 접하면 그가 한때 어둡고 실험적인 그림을 펼쳐다는 것이 상상이 가지 않는다.
더디지만 그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라면 그림은 한동안 그의 화면을 지배했다. 스티로폼으로 라면을 만들어 채색해 전시할 정도로 라면에 애착이 깊었다. 그가 바라본 라면은 우리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소재로, 라면을 통해 많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주력했던 것이다. ‘라면 매니아’ 등이 대표적으로 꼽히는 작품들이다.
‘자극’을 받는다는 말을 자주 반복하는 그가 작품활동을 하면서 개인전을 아예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철학의 부재 탓이었지만 이를 세밀하게 풀어 접근해보면 자신만의 회화세계라는 말로 풀이할 수 있다. 그는 개인전 기회를 잡았지만 스스로 접은 바 있다.
학생들에게도 당부말을 잊지 않았다.
"천재는 1%의 재능과 99%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만큼 자기실력만 과신하지 말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미술작업의 지향점이 아버지가 했던 회화를 찾아떠나는 여정임을 언급했다.
"제가 비구상을 해보니까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아직은 채색에 치중하고 있지만 제 색깔을 정확하게 세워가면서 다른 방향에서 아버지를 찾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의 개인전은 2018년에 열 예정이다. 개인전에 앞서 2017년에는 조선대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서윤경씨와 함께 부부전이 계획돼 있다.


화가 최유경은
△광주 출생 △호남대 미술학과 졸업 △2000년 광주비엔날레 특별전-인간의 숲, 회화의 숲 △2004년 오픈스튜디오전 △2005년 환경미술제 △2005년 가능성과 모색전 △2015청동회전 △청동회 회장 △나주 영산포여중 교사 재직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고선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