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항아리’를 빚는 공방을 찾아가는 길은 마치 뱀이 꾸물꾸물 기어가는 듯한 산길을 지나쳐가야 비로소 만날 수 있었다. 보성 서재필기념공원 인근 시멘트로 포장된 산길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교회 건물이 나오고, 그 건물을 살짝 지나쳐 왼쪽 언덕배기 길을 조금 오르면 아이들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듯한 옛 분교 건물이 나온다.
입구에는 이곳은 호기심과 자존심과 고독함이 살아있는 한국전통문화의 도량이라고 하는 안내판의 글귀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허름한 듯 보이지만 이곳이 바로 달항아리를 빚는 산실이다. ‘달항아리’를 빚는 주인공은 도예가 박노연(55)씨. 이곳에 가야 그를 만날 수 있다. 이곳은 (사)남도전통문화연구소로, 연구소 내 공방이 자리하고 있다.
그는 하루가 모자랄 정도로 이 공방에서 작업에 빠져 지낸다. 그가 이곳과 인연을 맺게 된데는 전통염색 장인 한광석 대표의 역할이 컸다. 한 대표는 이 연구소에 공방을 마련해 지역작가들에게 기꺼이 내어주었다.
그도 벌교와 낙안읍성에 공방이 있으면서도 여기 공방에 머무르며 작업을 펼친다. 한 대표의 조언을 들을 수 있을 뿐더러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어 모든 잡념을 털어내고 작업에 몰두할 수 있어서다.
이런 그가 도자기와 인연을 맺은 것은 우연하게 시작된다. 1982년 현재 요업기술원으로 바뀐 국립도자기시험소에 연구생으로 1년 과정을 마치면서 도자기와 인연이 시작돼 30여년을 앞두고 있다. 유년 시절 그의 고향인 벌교 연산리에 있었던 옹기굴을 접한 것도 그가 도자기를 선택하는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사료된다.
국립도자기시험소 시절에는 여러 작업장을 돌면서 도예에 대해 배우는 기회가 됐다. 이후 광주 송팔영 공방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흙작업에 들어가게 되고, 도예가로서의 틀을 만들어간다.
처음에 일반 도예가처럼 다완이나 사발 등을 섭렵한 뒤 근래들어 달항아리 작업에 착수한 것이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도자기에 뛰어들었다. 그래서 다른 분야와 자신을 비교할 기회도 갖지 못했다. 다만 힘든 과정들이었지만 만족하고 있다는 게 그의 답변이다.
그는 첫번째와 두번째 전시를 모두 보성에서 열었다. 그는 그 이유로 당시 전시를 앞두고 "이 시대 보성에서 살아가는 도자 작가로 보성 도자의 색깔을 먼저 정립한 뒤에 타지 전시가 가능할 것입니다. 지금은 정립의 과정으로 보면 됩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천상 보성의 도예작가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선보였던 ‘덤벙분청 다완’이 이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유약에 좌우되는 발색보다는 태토의 발색을 강조한 작업 방식을 구사해 명품으로 평가받았다. 원초적 느낌의 색상을 드러내면서 불길에 따라 살짝 발색되는 ‘꽃피움 현상’을 투영해 그만의 독창적 다완이 태동했다. 극적 미감을 위해 가스가마를 버리고 장작가마를 선택해 고행아닌 고행을 거듭했을 정도다.
이런 그가 보성에 머물며 계속 작업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는 보성에 머물 것이다. 그에게 올해는 달항아리로 새로운 변화를 꾀한 해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4월 열린 전시에서 달항아리 일부를 선보였다. 이때 달항아리 작품을 위해 몸을 푼 셈이다.
그가 말하는 달항아리 작업은 도예인으로서 누구나 하고 싶어하는 것임을 밝힌다.
"달항아리는 도자 기초기술이 다 들어있는데 어렵죠. 지금 저는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중이라고 보면 돼요."
그는 요즘 모든 시간들을 달항아리를 만드는데 할애한다. 1층 작업장에는 작업중인 여러 달항아리들이 놓여져 있었다. 작업실 한쪽 벽에는 바를정(正)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가 지금까지 만든 달항아리의 숫자를 말한다. 달항아리에 대한 그만의 집념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11월 현재까지 거뜬히 100개의 달항아리를 만들었다. 이중 40여개가 작품으로 남았다. 그만큼 달항아리를 만드는 과정은 까다롭고 집중이 많이 요한다. 그래서 지루함을 견디는 자만이 달항아리를 점령할 수 있다. 흙을 다루는 것 또한 어려움이라고 토로한다.
"백자 작업이라 흙을 다루기가 어려웠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분청작업을 해와서 더욱 더 힘들었다고 봐요. 기물이 크니까 손에 익지 않아 힘들었죠. 하지만 작업을 하면서 몸으로 직접 느껴가며 하나하나 익혀가는 과정 자체가 제게는 보람이에요."
그는 지긋지긋한 지루함을 견뎌가며 달항아리와 외로운 사투를 벌인다. 더욱이 달항아리에 맞는 조형감을 갖추는 것은 더 어려운 숙제다. 배만 블룩 나온, 두루뭉술한 뱃두리에 멈춰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뱃두리를 넘어 달항아리의 조형감을 갖추기 위해 작업을 지속하다 보면 아이디어가 고갈될 때도 많다.
"제 스스로 공부해 극복해나갈 수 밖에 없어요. 다른 사람들의 작업도 보고, 박물관에도 가보고, 책을 보면서 새로운 창작의욕을 북돋우면서 아이디어도 채워넣죠. 이게 공부 아니겠어요. 끊임없는 손동작을 통해 익혀가는 것이 공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꾸준히 작업을 하며 몸으로 느껴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서 늘 특색있는 달항아리 작가로 널리 평가를 받기를 희망했다.
"그동안 해왔던 달항아리가 마지막 작업이니까 특색있는 것을 만들고 싶죠. 달항아리를 많이 만들어야 조형감을 갖춰갈 수 있기도 해요. 달항아리 100개를 만들었지만 내년에는 400∼500개를 넘어설 것 같아요. 최종적으로 1000개를 돌파해 저 나름의 조형감을 완벽하게 구축하고 싶습니다."
인터뷰 내내 함께 자리를 한 한광석 대표는 박 작가에 대해 "사람이 젊어서는 재주가 보이지만 나이를 먹어서는 사람이 보여야 하는데 딱 거기에 맞는 무던한 사람입니다. 달항아리를 위해 미적 조형감으로 계속 나아가야 합니다"고 덧붙였다.
앞으로 그는 달항아리 작업에 더욱 더 매진할 생각이다.
"2018년까지 전시계획이 잡혀있습니다. 워낙 큰 작업이고 무거운 작업이 달항아리인 만큼 나이들어 하지못할 때를 생각해 작업을 할 수 있을 때 많이 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부족한 부문 더 채워넣고 싶어요."
그의 혼과 같았던 달항아리들을 온전하게 접할 수 있는 전시가 마련된다. ‘박노연 백자뱃두리’라는 타이틀로 12월3일부터 11일까지 연구소 2층 갤러리 re에서 열릴 이 전시는 한광석 대표가 도예문화 기반 조성과 도예작가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기획해 여는 첫 번째 펀드전이다. 이 전시는 작품 선판매가 이뤄져 주목된다. 12월3일 오후 3시에는 ‘조선후기 백자 달항아리와 달항아리 그림’이라는 타이틀로 이태호 교수(명지대 미술사학과)의 특별강의도 진행된다.
이어 오는 2017년 11월에는 서울시청 시민청갤러리에서 ‘달항아리’ 작품을 대거 선보일 계획이다.

도예가 박노연은
△1962년 전남 벌교 출생 △1982년 국립도자기시험소서 도자 입문 △1986년∼1990년 일본 저명 도예가 시미즈 히로시 선생 밑에서 다완수업 △1990년 벌교 이을도방 설립 △1994년 낙안읍성 도예방 설립 △2010년 박노연 사발전 △2016년 박노연 도자기뎐 △(사)남도전통문화연구소 공방서 작업 △한국미술협회 회원 △전남도자기협회 회원.

고선주 기자·사진 최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