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이 절반의 성공에 그칠 조짐이다. 광주를 ‘세계를 향한 아시아 문화의 창’으로 만들겠다던 포부와 달리 사업이 표류하고 있다. 사업의 한 축인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설립됐지만 또 다른 한 축인 7대 문화권 조성은 수년째 고착됐기 때문이다.
남은 시간도 부족하다. 사업 종료 시점을 6년 앞둔 현재, 도입 배경과 현황, 직면한 과제를 짚어보고 전문가의 조언을 들어본다.

문화수도 육성을 위한 두 축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문화도시사업)은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광주 문화수도 육성’에서 출발했다. 광주가 문화중심도시로 도약함으로써 시민, 지역, 국가, 글로벌 단위로 문화 역량을 증진해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낳을 것으로 기대됐다.
지역균형발전이 국가기조로 자리 잡은 것과 맞물려 2006년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됐다. 특별법에 근거한 문화도시사업 종합계획이 2007년 마련되면서 사업이 본격 궤도에 올랐다.
종합계획의 4대 역점 추진과제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문화전당) 건립과 운영 △문화적 도시환경 조성 △예술진흥 및 문화·관광사업 육성 △문화교류도시로서 역량 및 위상 강화로 결정됐다.
이 중 문화전당 건립과 문화적 도시환경 조성은 문화도시사업의 두 축으로 자리 잡았다.
문화전당은 광주가 문화중심도시로 탈바꿈하는데 필요한 핵심시설로 종합계획 수립 이듬해인 2008년 첫 삽을 떴고 지난해 완공됐다.
또 다른 한 축인 문화적 도시환경 조성은 ‘7대 문화권 조성’으로 대표된다. 7대 문화권 조성은 문화특성별로 분류한 광주의 7개 문화권역을 육성시키는 계획이다. △문화전당권 △아시아문화교류권 △아시아신과학권 △아시아전승문화권 △문화경관생태환경보존권 △교육문화권 △시각미디어문화권이 7대 문화권으로 선정됐다.
7대 문화권은 문화전당에서 생산된 문화에너지를 도시 전체로 확산·순환시킬 목적으로 고안됐다. 문화전당이 거대한 몸집만 지닌 채 고립되지 않도록 할 수단이다. 사실상 문화도시사업의 성패를 쥐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화전당이 보물이라면 7대 문화권은 보물을 담는 그릇’이라는 비유가 나오는 이유다.
양대 축으로 거론되지만 처우는 다르다. 문화전당은 특별법에 국가 지원이 명시돼 안정적인 운영이 보장된다. 하지만 7대문화권 사업은 종합계획에만 명시됐을 뿐 특별법에 해당사항이 없어 추진에 강제성이 없다.

재원확보 난항과 표류
7대 문화권 사업은 종합계획상 3단계인 성숙단계에 접어들어야 했지만 실상은 초보적 수준이다. 7개 문화권 중 가시적인 사업성과를 보이는 곳은 ‘아시아문화교류권’과 ‘문화전당권’ 2개 권역뿐이다.
가장 양호한 진척 과정을 보이는 곳은 ‘아시아문화교류권’이다. 현재까지 1290억원(국비 526억, 시비 711억, 민간 53)을 들여 빛고을 시민문화관 건립·운영, 양림동역사문화마을 조성, 사직국제문화교류타운 조성 등 문화전당과 연계된 인프라를 구축해왔다.
‘문화전당권’에는 400여억원을 투자해 아시아음식문화지구조성, 근현대건축물 문화거점조성, 청소년삶디자인센터 건립 등을 진행·완료했다. 하지만 7대 문화권 중 우선 추진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사업은 지체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문화전당권 하위 사업인 아시아음식문화지구 조성사업은 2014년 용역조사가 실시된 이후 2015~2016년 연이어 예산확보에 실패해 정체됐다. 올해 국비 10억원을 확보해 숨통이 트였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확보한 예산은 아시아음식문화지구 조성사업 중 일부인 동구지역의 2017년 예산에만 해당한다. 광산지역을 포함한 전체사업에 필요한 국·시비 237억원(2018~2021년)과 민자 200억원 유치를 해결하지 못하면 다시 정체에 빠질 수 있다.
문화전당권의 주요 사업 중 하나인 아시아문화예술활성화 프로그램은 향후 2년간 300여원이 집중 투자하기로 계획됐다. 하지만 지난 8년간 92억원이 투자됐던 속도를 고려하면 앞으로 계획대로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문화권 개념이 모호하거나 권역을 채울 콘텐츠가 미흡한 곳도 있다.
‘아시아신과학권’에는 한국문화기술연구소가 들어섰지만 이는 정부의 콘텐츠산업 진흥 계획의 일부로 추진됐을 뿐 7대 문화권 사업으로서 진행된 사항은 미미하다. ‘아시아전승문화권’에는 기존 사업이었던 칠석고싸움놀이 외에 문화권 개념에 걸맞은 콘텐츠가 전무하다.
문화권 자체가 풍전등화 신세인 경우도 있다.
‘교육문화권’은 시작조차 못했다. 교육문화권이 조성되려면 대상지역인 마륵동의 공군탄약고가 자리를 비워줘야 하는데 이전작업이 연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탄약고 이전은 국방부 주관 사업으로 애초 2015년까지 이전을 완료할 계획이었지만 이주단지 조성이 지연돼 2018년 말로 연기됐다. 하지만 이마저도 불투명하고 재원확보 과제도 남아있어 교육문화권 조성 전망은 여전히 어둡다.
‘시각미디어문화권’의 경우 핵심사업인 비엔날레상징 국제타운조성 사업이 무산될 위기에 처해 제동이 걸렸다. 지난해 12월 비엔날레상징 국제타운조성 사업이 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낙제점을 받아 원점 재검토가 불가피하게 됐다. 예타조사를 통과하지 못함으로써 국비 지원의 길이 막힌 광주시는 대책을 강구중이지만 7대 문화권 사업에서 해당 사업이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

모호한 콘텐츠와 추진의지
7대 문화권이 동력을 잃고 주춤거리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정부의 사업 추진의지 약화, 유관기관 협조의 어려움, 문화권역의 모호한 정체성과 광주시의 계획의지가 거론된다.
7대 문화권은 문화도시사업이라는 큰 틀에서 기획됐기에 문화도시사업이 추진력을 잃으면 7대 문화권 역시 동력을 잃는다. 문화도시사업은 정부 주도로 시작됐고 막대한 예산이 필요한 국책 사업이다 보니 정부와 정치권의 지원의지가 중요하다. 하지만 현 정부가 문화도시사업에 보여주는 태도는 추진의지를 의심케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15년 6월 국무회의에서 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사업 특별법을 지목해 "국민 세금만 가중시키는 것"이라고 말해 폄훼 논란을 빚은 바 있다.
특히 문화전당사업과 유사한 개념의 ‘문화창조벨트’가 차은택 주도로 추진되며 문화도시사업이 직격탄을 맞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매해 줄어든 문화전당 예산이 문화창조벨트 사업 예산으로 흘러갔다는 의혹이다.
문제는 정부가 문화전당 운영과 7대 문화권 조성사업에 대해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7대 문화권은 필연적으로 정부 부처와 다층적인 협력관계를 맺어야 이뤄진다는 점이다.
7대 문화권이 CT(문화기술), 생태,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진행되기 때문이다.
가령 문화전당권 내 각국의 아시아인을 위한 예술촌 및 공방을 유치하기 위해선 지역발전위원회와 국가균형발전특별법 예산지원 협조가 필요하다. 문화 예술인들의 비자발급 등 출입국절차 간소화 및 특례제도 실시나 광주교도소 이전 후 교도소 건물 부지를 문화거점으로 장기임대하기 위해선 법무부와의 협의가 필수적이다.
문화경관생태환경보존권 조성에는 환경부와, 시각미디어문화권 내 위치한 구 전남도 교육청부지 및 시설을 문화거점 및 미디어아트 관련 시설로 활용하기 위해선 교육부와 각각 의논해야 한다. 다양한 유관기관과 영민한 협력이 요구되는 상황은 정부의 약화된 추진 의지와 맞물려 7대 문화권 진행을 더디게 하는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7대 문화권 내부적인 문제도 지적된다. 각 문화권의 특징적인 정체성이 부족하거나 문화권 자체의 개념이 모호하다는 비판이다.
전남대학교 산학협력단은 지난 2011년 용역 보고서를 통해 ‘문화전당권은 고유콘셉트가 없고 아시아신과학권은 ‘신과학’이라는 개념이 모호하다’, ‘교육문화권은 사업개념이 모호할 뿐만아니라 장소 조화성도 없다’고 분석했다. 아시아전승문화권은 콘텐츠화 전략 미흡이, 아시아문화교류권은 문화전당과의 연계성 미흡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편 7대 문화권 조성의 사업시행주체는 중앙정부가 아닌 광주시라는 점에서 시의 추진 의지도 도마에 올랐다.
광주시의회 김민종 의원은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연차별실시계획이 주먹구구식으로 수립되어 유명무실하다"고 지적하며 광주시에 실효성 있는 실시계획 수립을 주문했다.
연차별실시계획은 광주시가 내후년 추진할 신규사업계획과 진행 중인 사업 과정을 공개하는 보고서로 매년 작성돼, 시의 추진의지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다.
지난 2009년부터 2015년까지 연차별 실시계획의 예산반영 및 집행현황을 분석한 결과, 계획대비 예산반영 비율은 국비 30.1%, 지방비 32.0%로 평균 31%에 불과했다.
계획에 반영은 됐지만 단 한 푼의 예산도 확보하지 못한 사업은 △2009년 13건 △2010년 7건 △2011년 15건 △2012년 22건 △2013년 14건 △2014년 15건 △2015년 7건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매년 발행되는 연차별실시계획안이 ‘계획안’이 아닌 ‘희망사항’ 아니냐는 빈축을 사기도 한다.
김 의원은 "매년 신규사업을 발굴해 사장되는 일이 반복된다"며 "장기 추진사업도 예산이 투입됐다가 다음해 계획에는 반영되지 않는 사례도 있다"고 지적했다.

향후 전망과 남은 과제
7대 문화권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서는 안정적 재원 마련, 7대 문화권 재검토 및 콘텐츠 발굴, 광주시의 정치력, 특별법 시한 연장 등이 요구된다.
7대 문화권을 포함한 문화도시사업이 정부 성향에 휘둘리지 않고 일관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선 안정적인 재원마련이 필수적이다.
정성구 도시문화집단 CS 대표는 "현재 아시아문화중심도시 특별회계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전입금으로만 운영되는데, 실질적 사업 추진이 어려울 정도로 적은 예산만 편성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아시아문화중심도시 특별회계 재원의 안정화 방안으로 "국비전입금을 더 늘리고 지방비로 추진하는 사업 중 국고보조금 지급이 필요한 사업은 70%까지 가산 적용하는 방식"을 꼽았다.
독립적인 재원 창출 방안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황병하 광주국제교류센터 이사는 "정부나 지자체 지원에 의지하는 의존형 사업 프로그램 개발보다는 저비용으로 고효율을 창출할 수 있는 독자적 자생 프로그램 개발 및 OSMU(one source multi use·하나의 자원을 토대로 다양한 사용처를 개발)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7대 문화권 계획을 재검토해야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김옥자 시의회 교육문화위원회 위원장은 "당초 계획했던 7대 문화권 사업은 과거의 사업계획에 불과하다"며 "문화, 산업분야의 세계적인 추세를 따라 새로운 비전과 정책목표를 재설정해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문화와 기술 분야는 다른 분야보다 변화에 민감하기 때문에 시기별 새로운 문화적 트렌드에 대응하고 적절하게 국정기조를 반영해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윤장현 광주시장도 이 같은 요구에 부응해 지난해 9월, 확대간부회의에서 "그동안 변화된 문화트렌드는 무엇이고, 무엇을 추가하고 무엇을 빼야할 것인지를 면밀히 조사해야 한다"고 7대 문화권 수정 필요성을 제기한 바 있다.
지역 문화전문가 사이에서 논의되는 수정안은 초 실감기술, 홀로그램, AR(증강현실), VR(가상현실) 등 첨단기술을 활용해 기존의 아시아신과학권을 아시아창의융합산업권으로 재개념화하자는 의견이다.
권역권 재조정만큼 중요한 것은 인프라를 채울 콘텐츠다. 지금까지 7대 문화권 사업은 하드웨어 구축에 편중됐다. 시설물이나 타운, 지구 조성에만 공들일 뿐 공간을 채울 내용 개발이 부실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남호정 전남대학교 예술대학 디자인학과 교수는 "콘텐츠가 생명력을 가지면서 선진국들은 ‘문화산업’이라는 무기를 들고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며 "각 문화권 간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독특한 자신만의 문화적 가치에 대한 인식을 산업화하는 방법을 계발해야 한다"며 콘텐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아무리 우수한 계획과 콘텐츠가 있다해도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물거품이다. 광주시는 국비확보나 민자유치가 어렵다는 이유로 7대 문화권 사업에 미온적 태도를 보여왔다. 이에 지역의 주체성을 되찾고 정치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이기훈 광주문화도시협의회 공동대표는 "7대 문화권 조성사업 난관의 근원은 정권교체가 아니다"며 "지역이 준비하지 않으면 또 다시 들러리가 될 수 있다"고 충고했다. 이어 "시장이 전면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래야 광주시가 움직이고 관련 전문가와 시민단체가 힘을 합쳐 말뿐이 아닌 실행력을 담보한다"며 시장의 실천과 정치력을 7대 문화권 성공의 필수요소로 꼽았다.
한편 제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도 남아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문화전당 개관이 당초 계획보다 늦어진만큼 특별법의 사업을 확장하고 목표연도도 연장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정성구 도시문화집단CS 정책실장은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 7대 문화권 사업과 관련, 현재 사직공원과 양림동 일대로 지정된 사업 범위를 송정역세권 일대까지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 실장은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 7대 문화권 사업, 현실과 과제’ 발제에서 이같이 밝히고 "미래사회 변화와 새로운 문화적 트렌드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종합계획 수립과정에 광주시가 참여토록 하고 특별법의 기한 연장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귀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