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에게 가장 필요한 복지는 무엇일까. ‘취업’이다.
흔히 장애인은 비장애인보다 능력이 떨어질 것이라 여긴다. 예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장애를 이유로 교육, 취업, 사회, 문화 활동 등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 비장애인 청년들이 취업 걱정을 하는 것처럼 장애인 청년들도 마찬가지로 걱정이 크다. 비장애인보다 넘어야 하는 벽, ‘편견’이 있는 탓이다.
편견. 장애인들에게 이만큼 무서운 단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수학이나 국어는 못 하는 대신 음악과 미술을 잘 하는 학생이 있는 것처럼, 장애인들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잘 하는 분야가 있다. 팔다리가 없는 이가 비장애인보다 그림을 잘 그릴 수도 있고, 한쪽 발이 없는 이가 더 빠르게 100m 달리기를 할 수도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국 등록 장애인 수는 249만406명. 이 중 광주와 전남의 등록 장애인 수는 각각 6만8000여명, 14만2000여명으로, 주민등록 인구 기준 전체 지역민의 각 4.6%, 7.4% 정도다.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는 장애인에게 기술을 가르쳐주고 취업을 도와 성공적으로 사회에 안착할 수 있도록 하는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을 찾았다. 단순 작업들만 있을 것이라는 ‘편견’과 달리 일반 기업과 마찬가지로 바쁘고 복잡한 작업들로 가득한 이 곳들은 오히려 일반 기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웃음꽃이 가득했다.


<1> 천연 비누로 맑고 푸른 사회 만드는 ‘소화아람일터’
어성초비누 등 수제 생활용품 생산
16명 장애인·비장애인 함께 근무
사회적 기업 등록…연 매출 3억원

사회복지법인 소화자매원이 운영 중인 소화아람일터(대표 김행란·48·여)에서는 ‘흰여울’이라는 브랜드로 천연 세안비누, 천연 목욕비누, 천연 세정제 등을 만든다. ‘흰여울’은 순우리말로, 물이 맑고 깨끗하다는 의미와 열매나 꽃이 많이 열린다는 뜻을 갖고 있다.
초기 장애인직업재활시설에서 시작해 지난 2011년 정식으로 사회적 기업이 됐다. 수녀님들이 소일거리로 비누를 만들던 것에 착안, 기계를 물려받아 세탁비누에서 시작했다. 초기에는 복지에 치중해 운영했지만 사회적 기업 전문 컨설팅 서비스를 거치며 수익과 복지를 5:5 비중으로 놓고 운영했다.
김행란 대표는 "사회적 기업이 되면 일정 기간 정부로부터 인건비를 지원받지만, 그 이후엔 자생해야 해 제품군을 넓히기 시작했다"며 "다행히 매출도 매년 1.5~2배 가량 증가해 작년부터는 독립적으로 운영 중"이라고 말했다.
현재 소화아람일터에서는 남구청 앞 카페 직원 2명과 비누 공장 직원 14명 등 총 16명의 장애인 근로자가 근무 중이다. 초기부터 일 해온 직원도 있고 갓 들어온 신참도 있다. 수익성만 고려하면 자동화를 해야 하지만 장애인들의 재활에 도움이 덜 돼 모든 제품을 손수 만든다. 연매출은 3억원 가량. 가톨릭농민회, 생협, 영암마트, 오가닉빅마트 등 오프라인 매장은 물론 온라인 판매도 한다.
가장 인기가 좋은 제품은 천연 세제. 실제 직원의 딸이 효과를 봤다는 ‘어성초 비누’ 등이 잘 팔린다.
김 대표는 "소화아람일터는 다른 곳에 취업해 사회로 나가기 전 거쳐 가는 ‘디딤돌’"이라며 "실제 1년간 근무하던 직원이 얼마 전 교육부 행정직 면접에서 당당히 합격하는 등 다른 직장을 얻어 사회로 진출하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인력은 수시 모집한다. 면접 등 제반 절차를 거치고 보호자의 동의를 얻어 입사하면 바로 현장에 배치, 일을 보고 배운다. 매년 6~7명 정도의 새로운 장애인 근로자가 소화아람일터에 입사한다. 비장애인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장애인 근로자에게 ‘경험’은 중요한 스펙. 때문에 한 번 모집할 때 다수의 장애인들이 도전하는 등 인기가 높다.
지난 3일 오전 비누 공장에서 근무 중인 장애인 근로자들은 비누 만들기 작업에 한창이었다. 작업반장과 공장장은 비장애인으로, 나머지는 전부 장애인 근로자다. 한쪽에서는 잘못 만들어진 비누를 쪼개 가루로 만들고 있었고, 한쪽에서는 비누 모양을 보기 좋게 다듬고 있었다. 라디오를 틀어놓고 바쁘게 오가는 손길들이 여느 공장 못지 않았지만 다들 즐거운 표정이라 분위기는 훨씬 좋았다.
김세진 공장장(28)은 "신입 직원들은 현장에 배치, 중증 정도에 따라 업무를 배분한다"며 "다들 비장애인 못지않을 정도로 숙련자"라고 설명했다.
지난 2000년대 중반 라오스에서 한국으로 와 작업반장 역을 맡고 있는 최은서씨(37·여)는 "모두가 각자 할 수 있는 작업들을 그때그때 하고 서로 도와가며 일한다"며 "서로 위하는 모습에 이들과 일하면 행복하다"고 말했다.
근무 중인 장애인 근로자들이 가진 꿈은 무엇일까. 월급을 모아 적금을 붓고, 결혼자금을 준비하는 등 비장애인들이 가진 꿈과 다르지 않았다. 결혼자금을 마련하는 중이라던 김지원씨(39·여)는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해야 하는데, 좋은 남자 찾기가 너무 어렵다"고 말했다. 박용준씨(28)는 "월급으로 부은 적금을 모아 부자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장애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도움’보다 ‘고용’"이라며 "부지를 사들여 사업을 확장, 더 많은 이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싶지만 사회적기업에게는 이같은 지원 정책이 없어 아쉽다"고 전했다.


<2> 우리밀로 사랑 나누는 ‘씨튼베이커리’
100% 순수 국내산 빵·과자 100여종 독자 개발
장애인 근로자 대부분 수작업… 당일판매 원칙

사회적기업 씨튼베이커리(대표 최은숙·52·여)는 은혜학교를 운영 중인 씨튼수녀회사회복지원과 학교 학부모들이 고등 교육을 마친 장애인의 고용 문제를 해소하고자 지난 1998년 장애인직업재활시설로 출발했다. 당시 부임한 최은숙 원장수녀가 직접 발품을 팔아가며 다른 재활센터나 기관 등을 방문, ‘빵’이라는 아이템을 골랐고 당시 태동하던 친환경 유기농 시장을 공략하기로 했다.
구진영 사무국장은 "최 원장수녀님이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으셨다"며 "각지의 센터는 물론 빵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 제과제빵 자격증도 따는 등 열성을 아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씨튼은 모든 재료를 우리밀, 유정란, 유기농설탕, 올리브유 등 국내산으로 쓴다. 유화제, 색소는 없다. 전국 각지의 밀을 사 빵을 만들어보는 시험 과정을 거쳐 재료를 수급, 전체 매출 중 재료비가 40%를 차지할 정도다. 수입밀과 달라 레시피도 거의 독자개발했다.
최 대표는 "처음에는 은혜학교가 유일한 거래처였으나 향후 수녀님들과 직원들이 발 벗고 나서 성당을 중심으로 제품 홍보를 했다"며 "초기엔 ‘장애인이 만들었다’는 시혜적 의미에서 빵을 사가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갈수록 원재료와 맛으로 입소문을 타게 됐다"고 설명했다.
씨튼의 빵은 방부제가 들어가지 않아 유통기한이 짧다. 보다 신선한 빵을 공급하기 위해 광주 내에만 빵을 납품하고, 일부 원하는 고객이 있을 때만 택배로 팔았다.
하지만 사업을 확장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씨튼은 2008년 유통기간이 길고 판매처를 다양화할 수 있는 유기가공(후레이크, 스낵) 사업을 시작했다. 베이커리와 마찬가지로 국내산 유기농 곡물만 쓰고, 특히 튀기는 대신 굽는 방식을 채택해 건강하게 만들고 있다.
지난해 연매출 중 70%는 베이커리류, 나머지는 유기가공에서 나온다. 특히 자연드림에서 판매되는 두부과자와 마늘빵의 인기가 높다.
구 사무국장은 "대부분의 작업이 기계로 이뤄지는 다른 공장들과 달리 씨튼은 장애인 근로자가 손수 정성을 담아 제품을 만들고 포장한다"며 "두부과자는 반죽을 얇게 밀어 콩기름이 아닌 올리브유를 일일이 발라 구워 기름기가 적고 담백해 찾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현재 씨튼베이커리에 근무 중인 장애인 근로자는 50여명으로, 결원이 생기면 충원한다. 3개월간의 평가 기간을 거쳐 계랑 및 반죽, 포장 등 직무에 맞는 자리에 배치된 후 반복 과정을 통해 기술을 배우고 베이커리 부서나 유기가공(후레이크, 스낵) 부서로 배치된다.
장애인 근로자 중에서는 초기부터 근무해온 ‘왕고’도 있고, 돈을 모아 더 넓고 깨끗한 아파트로 옮기거나 결혼해 가정을 꾸린 직원도 있다.
구 국장은 "장애인직업재활센터는 대부분 서로 도우며 일하는 분위기가 강해 공장에서 웃음꽃이 끊이지 않는다"며 "하지만 일반 기업은 다소 딱딱하고 경쟁하는 분위기라 장애인 근로자가 적응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씨튼은 2007년 한마음공동체 공급계약과 함께 유스퀘어에 1호점을 열었다. 이후 센터를 증축, 이듬해 사회적 기업으로 거듭났다. 금남로 지하상가 만남의 광장에는 2호점을 뒀다. 현재 1호점의 매출은 월 500만원 가량으로, 꾸준히 찾는 단골 고객이 많다는 설명이다.
이 외 아이쿱 생협, 한마음공동체, 가톨릭농민회, 녹색장터, 해마루, 오가닉빅마트 등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유기가공 일부 상품의 경우 홈플러스와 롯데마트 등 대형 유통업체에서도 판매된다. 당일 생산, 당일 판매가 원칙인 만큼 베이커리는 광주지역 일부 학교들에만 들인다는 점이 아쉽다.
위생도 걱정 없다. 지난달 유기가공 공장의 HCAAP 인증을 취득한 데 이어 이달 베이커리 공장의 HACCP 인증을 받을 예정이다. 장애인 근로자들이 작업복을 제대로 갖춰 입지 않으면 서로 지적해 줄 정도로 철저하다.
기계로 자동 생산하지만 설비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는 식품 제조사가 많은 반면 거의 모든 과정에서 위생장갑을 착용한 손으로 일일이 작업하고 작업이 바뀔 때마다 장갑도 새로 쓰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구 국장은 "아직 손익분기점에 도달하기엔 한참 멀었다"며 "원재료와 정성이라는 두 가지 강점을 가지고 쌓은 신뢰를 깨뜨리지 않고 신제품 개발과 판로 확대에 집중할 것"이라고 전했다.


<3> 믿고 먹을 수 있는 순수 국내산 어묵, ‘바오로일터’
국내산 돔 연육·유기농산물·해바라기유 사용 신뢰 확보
유기농매장·40여개 학교에 납품…중증장애인 30명 종사

장애인직업재활시설 바오로일터(원장 이선옥·여·56)에서는 중증장애인근로자들이 합성 첨가물 없이 국내산 농산물만을 활용해 어묵을 만든다. 브랜드 명은 ‘햇가연’. 偕(함께 해) + 價(값 가) + 緣(인연 연)의 합성어로, 우리가 함께해 더욱 값지다는 의미다. 영양 모양 어묵, 프리미엄 야채 어묵, 고소함이 살아있는 김이랑 콩이랑 어묵, 매운 야채 어묵, 어묵 콩가스 등을 만든다.
현재 광주 유기농 전문매장(가톨릭농민회, 학사농장, 한마음공동체, 행복한애벌레생협, 오가닉빅마트)과 오프라인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이 제품은 매장에서도 다른 어묵보다 인기가 좋다. 국내산 밀과 유기농산물, 고급 돔 연육을 배합해 해바라기유에서 튀겨내 믿고 먹을 수 있고 맛도 좋아 단골 고객이 꾸준하다.
바오로일터는 초기 중증 장애인 근로자에게 도자기 공예, 전자 부품 등 각종 일거리를 교육해왔다. 그러다 장애인 근로자들에게 ‘직업’이 필요하다는 생각 아래 어묵 제조와 전자 부품 두 갈래로 사업을 나눴다.
이선옥 원장은 "학생들이 주로 먹는 어묵은 대중성과 달리 ‘불량식품’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며 "다양한 제품을 만들다 지난 2009년 호남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진의 도움을 받아 본격적으로 믿고 먹을 수 있는 어묵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바오로일터에는 현재 중증 장애인 근로자 30명이 근무 중이다. 장애 정도가 덜한 10명은 어묵 공장에서 근무하고 나머지 20명은 부품 제조 등을 한다. 어묵 공장에서 일하는 이들의 연령대는 23~49세 사이다.
장애인의무고용제가 실시됐지만 실제는 이를 기피하는 기업이 대부분. 비장애인이 대부분인 다른 기업에 장애인이 취업을 하더라도 차별 대우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행복하게 일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와 달리 이곳에서는 편견 없이 모두가 동등하다는 인식 아래 경쟁보다는 서로 돕는 문화를 느낄 수 있다. 장애인 근로자들은 옆 근로자의 작업 속도를 지켜보며 때에 따라 일손을 거들어주거나 속도를 늦춰주는 식으로 서로를 배려한다. 경쟁이 치열한 다른 생산현장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이 원장은 "장애인근로자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직업에서의 성취감을 느끼며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며 "어묵은 원재료 가격이 높고 부품 제조의 경우 단가가 터무니 없이 낮지만 이들이 행복하게 일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직원 행복도와 함께 근속률도 높다. 신규 채용은 1년에 2~3명으로, 이직하고 싶어 하는 근로자가 드물어 대부분 피치 못할 사정으로 결원이 생겼을 때 뽑는다.
그는 "장애 정도가 심하지 않은 근로자들의 경우 복지 환경이 더 좋은 기업에 취업을 한다면 좋겠지만 비장애인 기업에서 느끼는 소외감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더 많은 장애인 근로자를 고용하고 사업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는 투자가 필요하지만 이마저도 녹록지 않다. 바오로일터는 장애인직업재활시설 중 보호작업장에 속해 의무적으로 국가에서 직원을 고용, 중증 장애인들이 이들의 보호 하에 교육, 제품 생산 등을 모두 해야 한다.
현재는 어묵 공장과 부품 제조에 1명씩 배치돼있는데, 모든 이들을 돌보는 데 한계가 있다. 여기에 중증 장애인은 8시간 연속 근무가 어렵다. 길어야 4~5시간 정도만 일할 수 있고 몸 상태에 따라 작업 시간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모두가 열심히 일하지만 생산능률이 떨어진다.
그렇다고 장애인들과 함께 일할 신규 직원을 또다시 고용하기에는 여력이 없다. 실제 이곳 2명의 비장애인 직원들은 작업장을 관리하느라 숨 돌릴 틈이 없고, 시간이 남으면 서로의 작업장에 내려가 일손을 거든다. 자원봉사자들이 가끔 빈 자리를 채워주지만 한계가 있다.
이 원장은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은 이들이 무언가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자립하고 있다는 성취감을 갖게 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가지게 하는 데 필수"라며 "하지만 그 중요성에 비해 국가의 지원은 턱없이 모자르다"고 말했다.
꾸준한 노력 덕에 바오로일터를 돕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점은 호재다. 특히 친환경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학교 등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바오로일터는 지난 2011년 HCAAP 인증을 받아 급식 납품을 시작했다. 최근에는 이병백 광주 광산구급식센터장 등 교육 관계자들의 열렬한 홍보에 힘입어 올해만 광주 내 5개교에서 급식 납품업체로 선정되는 등 지역 40여개교에 제품을 들이고 있다.
이 원장은 "장애인 근로자들은 오히려 비장애인 근로자보다 성실하고 때묻지 않은 영혼들"이라며 "믿고 먹을 수 있는 어묵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직원들이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주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