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향 광주는 도심 곳곳서 늘 공연 중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광주문화예술회관, 빛고을시민문화관 등 큼직한 문화기관에서는 정기적인 공연예술이 펼쳐지고 도심 속 크고 작은 공간에서 또한 다양한 장르의 무대가 시민들을 만난다. 규격화된 무대 뿐 아니라 프린지페스티벌이나 5·18민주광장 등 열린 공간에서도 ‘일상 속에 스며든 예술’을 표방한 공연콘텐츠가 열리고 있다.
어느 날 당신이 "광주를 대표할 만 한 공연이 있는가?"란 질문을 받았다면, 답은 무엇일까? 자신 있게 "이것이다"고 답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문화수도를 넘어, 아시아문화중심도시란 타이틀을 쥐려하는 광주가, 지역을 대표하는 이렇다 할 공연콘텐츠가 부재하다는 사실은 부끄러운 일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으로 대표되는 시설·공간 등 물리적인 인프라를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광주의 문화자원을 활용한 콘텐츠를 키워내는 것 또한 소홀해선 안 될 일이다.
공연콘텐츠는 다양한 세대의 시민들이 쉽게 즐길 수 있음은 물론이고, 지난 세월 속에 묻혀 있던 빛나는 역사문화자원들을 현재로 불러옴으로써 끊임없는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잘 만들어진 공연콘텐츠는 지역민에게는 자긍심과 예술적 공감대를, 타지인에는 예향·의향 광주로서의 면모를 선보이게 하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지역문화자원을 활용한 공연콘텐츠를 발굴, 육성시키기 위한 선제 조건은 무엇인지, 지속가능한 콘텐츠로 발전시키기 위한 과제는 무엇인지 짚어본다.

△日~月 상설 무대…예향 광주는 상시 ‘공연 中’

상설공연이란 ‘언제라도’ 볼 수 있도록 상시적으로 열리는 공연을 말한다. 광주문화재단 전통문화관 토요상설공연, 서구 빛고을국악전수관의 목요열린국악한마당, 광주문화예술회관의 화요상설무대 등 요일별로 열리는 공연이 대표적이다.
특히 2012년부터 6년째 이어져 오고 있는 광주문화재단의 전통문화관 토요상설공연은 매주 토요일 오후 3시 판소리·국악기·퓨전 등 국악의 폭 넓은 레퍼토리로 꾸며지고 있다. 2016년 한 해에만 47회 공연과 1만여명의 관람객이 찾아와 무등산 자락의 풍류를 즐겼다.
공연이 시작되는 때면, 자연스럽게 관객들이 모여들고, 공연이 시작된다. 볕이 뜨거운 한여름에는 공연 시간을 해가 진 뒤로 옮기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토요상설공연은 토요일 오후 3시에 열린다’는 명제가 향유 층들에게 깊게 박혀있어 없던 일이 되기도 했다. 공연의 ‘일상성’이 시민 삶에 녹아든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최근 핫플레이스로 뜨고 있는 양림동 또한 상설공연 프로그램을 2016년 9월부터 시작했다. 근대문화역사유적·펭귄마을 등 양림동을 찾는 방문객이 늘어나면서, 방문객들이 즐길 수 있는 상설공연콘텐츠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은 것이다. 광주를 찾은 외지인들이 ‘머물다’ 갈 수 있는 콘텐츠를 개발, 관광거점 상설공연활동을 통한 지역브랜드 관광자원화에 초점을 뒀다.
여기에다 김원중의 빵 만드는 공연 ‘달거리’는 매 달 마지막 주 월요일에 시민들을 만나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브런치 콘서트’, 유·스퀘어문화관 ‘아름다운 음악회’ 등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에 동시다발적으로 열리는 공연예술도 정기적으로 시민들을 찾아오는 상설공연으로 꼽힌다.
광주문화재단 한 관계자는 "일정한 장소·시간에 열리는 상설공연은 ‘변수’가 없다는 점에서 시민들이 편안하게 생각하는 일상적인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면서 "특히 대부분의 상설공연은 국악이면 국악, 클래식이면 클래식 등 저마다의 특색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관람객들이 어떤 콘텐츠를 소비할 것인지 선택하는데 용의하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고 설명했다.
따지고 보면 예향 광주는 늘 ‘공연 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같은 상설공연은 정해진 날, 일정한 시간에 열리면서 예향 시민들의 문화갈증을 해소해 준다. 뿐 아니라 지역문화예술단체들은 창·제작한 공연을 올릴 수 있는 판이 깔린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인 일이다.
다만 이러한 상설공연이 예향 광주를 대표할만한 것이냐 하는 의문은 남는다. 상설공연은 늘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 것은 맞지만 매주, 또는 매 달 무대에 올려지는 공연예술콘텐츠는 늘 새롭기 때문이다.
장소와 시간, 즉 ‘무대’에 초점을 둔 것이라서 광주를 대표할만한 공연예술콘텐츠의 ‘상설화’라는 점에서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지역 대표 브랜드 공연 상설화 ‘과제’

앞서 살펴본바와 같이 상설공연이 무대라는 ‘장소성’에 무게를 뒀다면 ‘브랜드 상설공연’은 공연예술 ‘콘텐츠’에 방점을 둔다. 시간·장소 등 물리적인 부분들을 넘어서 지역을 대표할만한 공연콘텐츠가 정립돼야만 ‘브랜드 상설공연’이란 수식이 허용되는 것이다.
각 지자체들은 이처럼 브랜드 상설 공연 키우기에 나서고 있다. 각 지역들이 이러한 브랜드 상설 공연의 성공을 위해 열을 올리는 이유는 잘 만들어진 문화콘텐츠 하나가 지역 이미지 제고는 물론 또 하나의 관광 상품으로서 제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뿐 아니라 지역의 고유한 역사문화자원들이 작품으로 시민들을 만나면서 끊임없는 생명력을 부여 받게 된다. 단순히 하나의 공연예술을 넘어서 새로운 역사자원·교육 자료로서 그 가치를 빛내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역을 대표한다’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단서가 뒤따른다.
먼저 ‘지역성’이다.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만큼 시민들의 공감을 이끌만한 지역 고유의 역사문화자원이 콘텐츠의 주가 될 수 있다.
다음이 ‘지속가능성’이다. 아무리 좋은 콘텐츠가 만들어졌다고 해도 일회 공연을 끝으로 보지 못한다면 ‘브랜드 공연’이 될 수 없다. 공연예술콘텐츠 자체가 현장성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공연이 열리는 때 현장에 없다면 향유하지 못하는 게 일반적이다. 때문에 더 많은 지역민과 콘텐츠를 만나게 하기 위해서는 ‘지속성’을 가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사실 각 지자체들이 지역의 문화콘텐츠 제작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2000년대 말부터다. 지역의 역사적 사건·인물·문화자원 등을 하나의 콘텐츠로 인식, 이를 토대로 한 작품 제작에 공을 들인 것이다.
다만 지역축제의 개막 공연이나 주제 공연 등 주목을 끌기 위한 한 방편으로서 제작, 일회성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 같은 한계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안으로 주목받은 것이 일상적 콘텐츠다. 특정 시기에 한 번 올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언제라도 지역민 또는 방문객들이 찾았을 때 볼 수 있는 정기적이고 일상적인 콘텐츠를 개발하는 전략으로 나아간 것이다.
이러한 일상적 문화콘텐츠를 대표하는 것이 바로 지역 브랜드 상설 공연이다. "언제, 그곳에 가면 그 공연을 볼 수 있어"라는 명제가 통해야 하는 것. 말하자면 ‘브랜드 공연’의 상설화라 할 수 있다.

△콘텐츠 지속성·지역참여 ‘저조’…브랜드 육성 동력 잃어

광주시가 처음으로 선보인 지역 브랜드 상설공연은 ‘자스민 광주’다. 시는 2011년 광주문화재단 출범과 함께 ‘브랜드 공연’이란 명칭으로 ‘자스민 광주’를 제작, 오! 광주-브랜드공연축제’의 개막공연으로 올렸다.
전부터 많은 공연을 창·제작했지만, 시가 주관해 ‘브랜드 공연’이라는 명칭을 쓴 공식적 작품은 ‘자스민 광주’가 처음이다. ‘자스민 광주’는 5·18민주화운동과 함께 아프리카와 중동의 ‘자스민 혁명’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당시 광주시는 80년 5월 광주와 중동의 자스민 혁명 간 연대의 메시지를 다룸으로써 글로벌 문화콘텐츠로 육성하겠다는 청사진을 그렸다. 역사의 굴곡 앞에 스러진 원혼들을 달래기 위해 전통음악, 타악, 퍼포먼스, 무용, 영상 등 다채로운 무대 구성을 펼쳤다.
하지만 ‘자스민 광주’는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실패’를 단언할 수 있는 이유는 지금 현재 ‘자스민 광주’는 기록으로만 남아있기 때문이다. 시가 작품의 기획 의도대로 지역을 대표하는 ‘브랜드 공연’으로 성공했다면, 어떤 형식으로든 지속적으로 시민들과 만나야 맞다. 그러나 ‘자스민 광주’는 그 해 공연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또 광주의 브랜드 공연으로 꼽히는 것은 ‘빛고을 아리랑’이다. 이 작품은 2013년 제2회 광주세계아리랑 축전 주제공연으로 제작됐다.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과 애틋한 가족 이야기를 다뤄 시민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이 작품도 ‘예산 부족’이란 이유로 명맥이 끊겼다.
전자인 ‘자스민 광주’가 예술적 공감대 형성에 실패, 대내외 평가가 좋지 않아 접을 수밖에 없는 불운의 작품이었다면, 후자인 ‘빛고을 아리랑’은 호응은 이끌어냈으나 향후 콘텐츠 활용 방안을 마련해 두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하고만 사례다.
공통적으로 두 작품 모두 지역민의 참여가 낮았기 때문에 이후, 끌고 갈 동력을 잃었다는 공연 관계자들의 분석도 있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제작·출연진들이 전체적인 기획을 도맡고 지역민들이 참여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재공연 될 기회가 있다하더라도 쉽지가 않다는 것이다.
박윤모 시립극단 예술감독은 "좋은 작품이 만들어졌다면 시즌2, 시즌3 다양한 방식으로 향후 활용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하지만 장기적인 로드맵 없이 일회성으로 그치고 사장되는 게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예산이 문제라면 작품 규모를 조금씩 축소해가면서라도 지속성을 갖는 것이 브랜드 공연으로 키우는 데 선행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지역브랜드 공연의 성공사례를 살펴보면, ‘콘텐츠의 지속성’을 찾아볼 수 있다. 경주 정동극장은 경주세계문화엑스포에서 6년째 상설공연을 이어오고 있다. ‘신국의 땅, 신라’를 시작으로 가무극 ‘찬기파랑가’, ‘바실라’ 등을 연중 상설로 올렸다. 브랜드 공연의 누적 관객수는 25만명을 넘어서며 경주시민들은 물론 경주를 찾은 관광객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전주의 브랜드 상설공연 마당창극도 눈에 띈다. 전주시가 주최, 전주문화재단, 한옥마을상설공연단이 주관한 전주 마당창극은 2012년 1탄 ‘해 같은 마패를 달 같이 들어메고’를 선보인 이래 ‘천하맹인이 눈을 뜬다’ ‘아나 엤다, 배 갈라라’ 등 3부작을 선보였다. 지난 5년간 누적 관객수 2만 4000명을 기록, 전주 대표 공연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3부작 중 전회 공연 매진을 기록한 작품 ‘아나옜다, 배갈라라!’는 에피소드·음악콘텐츠를 보완해 재구성, 2016년에 다시 한 번 시민들을 만나기도 했다.

△‘킬러콘텐츠’ 육성·활용 로드맵… ‘투트랙’ 전략 필요

광주시는 광주문화재단 주관으로 아리랑 브랜드 상설공연과 5.18민주화운동 기념공연 상설화 사업 등을 추진 해 왔다.
광주라는 도시가 갖는 이미지, 즉 민주·인권·평화로 대변되는 ‘광주 정신’을 담은 공연 콘텐츠 발굴, 육성에 주목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역 공연계에서는 예향·의향으로서 광주를 대표할 만한 ‘킬러콘텐츠’를 선보이기 위해서는 콘텐츠 제작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인 활용 방안을 짜 놓는 것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사실 ‘빛고을 아리랑’이나 ‘애꾸눈광대’ 등 좋은 콘텐츠는 있지만 이를 지역 대표 공연으로 키워나가기 위한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공연계 한 관계자는 "지역을 대표하는 콘텐츠로 키울만한 공연은 이미 많이 만들어졌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장기적으로 끌고 갈 인프라가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에 ‘단절’ 되는 것이다"며 "이를 ‘예산’의 문제로 몰고 가는 것은 옳지 않고, 조그맣게 시작하더라도 꾸준히, 장기적인 방법을 모색하면서 광주만의 작품으로 끌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의 열악한 제작 인프라를 고려할 때 초연 시, 외부의 힘을 빌릴 수 밖에 없다면 이후에는 지역 제작자들과 예술인들의 참여율을 지속적으로 높여 가면서 자립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콘텐츠 제작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이후 활용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과 맥을 같이 한다.
또 그는 "야외상설공연, 주말상설공연 등 많은 예술단체들이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도 좋지만 ‘킬러 콘텐츠’ 만큼은 연중 상설로 만날 수 있도록 해 지역 브랜드 공연이 일상적 콘텐츠로서 자리매김 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 대표 공연의 전제 조건으로는 예향·의향 등 광주만의 정체성을 담는 일이 꼽힌다. 5·18민주화운동을 주제로 한 예술적 공감대를 이끌어 내는 것이 관건이다. 특히 지난 과거 역사로서가 아니라 이 시대와 어떻게 공감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지역 브랜드 공연을 성공시킨 도시에서는 "잘 만든 공연 하나, 열 명소 안 부럽다"는 우스갯 소리가 나온다. 문화 콘텐츠가 도시재생과 새로운 지역 발전의 동력으로서 큰 에너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을 대표할 만 한 공연이 있는가?"란 질문에 이제 광주는 답해야 할 때다.

박세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