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우면 꽃 피고 추우면 잎 지거늘/솔아 너는 어찌 눈서리를 모르는다/구천(九泉)의 뿌리 곧은 줄을 글로 하여 아노라’
조선중기 호남이 낳은 대표적 문인인 고산 윤선도(1587∼1671)의 소나무에 관한 시조다. 소나무가 의미하는 것들은 이미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지조나 절개의 상징이자 연중 푸르름을 잃지 않은 강인한 생명력(장생)의 표상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을 터다. 이 시조에서도 눈서리를 모르는 솔이 등장한다. 다른 나무들은 겨울이 오기 전 자신의 이파리와 푸르름까지 스스로 내다버린다. 긴 겨울을 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버리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해질 수 있어서다. 버림으로써 살 수 있는 것이고, 봄을 맞아 새싹을 틔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소나무는 예외다. 봄, 여름, 가을의 푸르름과 무성함이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겨울에도 그대로다. 혹한에 개의치 않는다. 늘 푸르름과 무성함이 일관된다.
그렇다고 소나무를 욕심많은 대상으로 치부하는 경우는 없다. 소나무는 우리 민족과 가장 잘 어울린다고 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로 설명된다. 왜냐하면 소나무로 지은 집에서 태어나 생솔가지를 꽂은 금줄이 쳐진 집에서 지상에서의 첫날을 보내고, 죽는 날까지 소나무로 만든 가재도구를 사용하며, 죽으면 소나무로 만든 관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마른 소나무나 그 가지는 땔감으로 음식을 만드는데 쓰였고, 구들장을 데피는 역할을 수행했다. 가시닮은 잎은 송편을 포함해 떡을 찌는데 사용했고, 송진은 불치병이나 외상 치료 등 여러 용도로 삶에 유용하게 쓰였다. 소나무의 꽃가루인 송홧가루는 독특한 풍미를 갖고 있어 송화주나 송화강정, 다식 등을 만드는데 이용되기도 했다. 소나무는 이처럼 하나 버릴 것이 없는 존재였다. 소나무가 숲에 뿌리를 내린 것은 무려 1억 7000만년전으로 추정되고 있다. 오랜 시간 우리들의 숲을 지켜온 것이다.
소나무는 흔하디 흔하게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나무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렇게 가볍게 보아넘길 수가 없다. 소나무는 우리들의 심오한 삶의 의미들을 함의하고도 남는다. 사람들은 소나무를 닮고자 무던히 애를 써왔다.
소나무가 갖는 의미들의 행간을 헤집는다. 결국 오늘날 복잡다단한 삶의 구조 속에서 귀착되는 의미는 ‘올곧음’이다. 이 올곧음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지키고 싶어하는 가치의 하나다. 역설적으로 올곧게 살아가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반증한다. 올곧기 위해서는 눈서리를 이겨내야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네 삶의 숲은 갈수록 맹수들이 들끓고 있는 정글이 돼 간다. 이 정글에서의 삶은 양심도, 윤리도, 생명의식도 불변하지가 않다. 수시로 얼굴을 바꿔가며 변한다. 그래서 정글이 돼가는 현시대가 두려운 것이다. 이성으로 정글을 통제 혹은 조절할 수도 없게 된 형국이다.
고래로부터 올곧음이 최고의 가치였으나 오늘날 올곧음은 불편한 사슬처럼 여겨진다. 말은 수시로 바뀌고, 문명은 갈수록 최첨단화돼 간다. 자고 나면 개벽천지가 벌어지는 오늘날이다.
그런데 그 최첨단을 만들어내는 우리들의 기억은 단세포적이 돼 간다. 자신에게 불리하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면 그뿐이다. 왜 그렇게 망각 투성이가 되는 지 모를 일이다. 망각도 약이 된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올곧게 살지 않도록 해달라고 기도를 드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올곧게 산다는 것은 손해를 보는 일일까.
우리들은 한 생애를 사는 동안 수시로 눈서리와 맞닥뜨린다. 소나무는 그 눈서리에도 꿈쩍않고 푸르름을 이어간다.
그러나 올곧음으로 살아가기에는 눈서리가 너무 잦다. 앞이 보이지 않는 세상이다. 봄을 앞두고 있는 요즘, 소나무에게 겨우내 안녕하셨는가 묻고 싶다.

고선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