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뿐사뿐 걸을 때도, 꼭 춤추듯 했다. 아무도 없는 골목길을 지날 때도, 밥을 먹다 물을 마시러 부엌을 향할 때도 그랬다. 손을 뻗고 빙그르르 돌다가 멈춰선, 곰곰이 생각하기도 했다. "춤을 모르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춤을 사랑했던 김옥희 광주무용협회이사의 어린 시절 이야기다.
"참 어리석은 생각이었죠. 사람마다 좋아하는 분야가 있고, 만족하는 부분이 다른데. 춤이 전부였던 꼬마가 생각하기에는 ‘춤을 안 추는 사람들은 어떤데서 기쁨을 얻나’ 이렇게 본 거죠. 움직이는 것이면, 늘 춤 동작과 연결해서 포즈를 잡았어요. 그렇게 좋아했던 것이라, 한 평생 인연을 같이 한 거죠."
그가 이번 생에 맺은 ‘춤’과의 인연은 타고난 예술적 끼를 알아챈 아버지의 영향이 크다. 맏딸이던 김씨에게 아버지는 말하셨다. "최승희 처럼 춤추는 사람이 돼 달라"고.
"아버지가 최승희의 춤을 보고 반하셨던 것 같아요. 인간의 몸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선, 그리고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를 보신 것이죠. 저도 춤이 좋았던 터라, 방과 후 활동으로 한국무용을 배웠어요. 그게 무용계 입문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본격적으로 한국무용 전문 교육을 받은 것은 중학생 때다. 불로동에 있던 김정란 무용학원에 다녔다. 한국무용으로 첫 발을 뗀 그이지만, 현대무용과 발레를 배우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지금에야 세 장르가 전공별로 엄격히 분류되지만 당시엔 세 장르를 모두 섭렵하는 것이 춤의 기본이었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배움은 이후, 지도자로 길을 걷는 그에게 든든한 밑천이 돼 줬다.
"춤의 기본은 무한한 상상력을 몸짓으로 표현해내는 것, 즉 창작이죠. 세 장르 모두 저마다 매력이 있어요. 한국무용은 전통 악기를 타고 한국인 특유의 정서를 몸짓에 담아낼 수 있어서 좋고, 현대무용은 그 어떤 제한도, 한계도 없는 것이 엄청난 장점이에요. 한국무용으로 입문해서 현대무용에 더 비중 있게 작품 활동을 한 것 또한 바로 이런 자유로움 때문인 것 같아요."
그에게 춤을 올리는 무대는 하얀 도화지다. 가을을 표현한다고 하면, 이를 돋보일 장치들은 수도 없이 많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무용수가 입는 의상 색부터, 음악, 그리고 가을바람에 흩날리는 낙엽들은 몸으로, 손짓 발짓으로 그려낸다.
그는 상징적인 것 보다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친절한’ 안무가였다. 선을 중요시하는 춤사위 보다는 관객들이 절로 도취해 무용수와 함께 호흡할 수 있는 동작들을 선보여 왔다. ‘너무 환상적’이라 그저 바라만 보는 무대가 아니라, 대중들이 받아들이는 느낌 그대로 즐기고 함께하는 작품이야 말로 진짜 좋은 춤이라는 게 그의 오랜 생각이다.
지도자로서 첫 발은 완도 고금고등학교에서 시작했다. 23살 꽃 처녀가 섬으로 들어와 한 일은 먼저 무용부를 모집하는 일이었다. 무용이란 장르에 익숙지 않았던 곳이라, 모집에 어려움이 있자 그는 각 반에서 ‘각출’을 시작한다. 1등부터 5등까지를 불러 모아 간단한 테스트를 거쳐 팀을 결성했다. 그렇게 모인 친구들이 호남예술제에 나가서 최고상을 받았다. 지도자로서 성공적인 데뷔 무대였다.
광주여고에 근무할 때는 한국대표로 중국 상해에서 공연한 일도 있었다. ‘1994 상해국제청소년문화예술제’ 무대에서다. 총 23개국에서 36개 단체가 참여한 규모 있는 국제 행사였다. ‘김옥희현대무용단’은 다섯 군데를 돌며 ‘충격 그리고 흡수’란 작품을 올렸다.
당시 국내외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자 사람들은 그를 ‘콩쿠르 킬러’라 부르기도 했다. 각종 무용콩쿠르에서 안무상·작품상·지도상 등 50여회 상을 받았다. 때문에 ‘억척여성’이란 시샘어린 질투도 받았던 그다.
그래서 더 열심히 작품을 만들었다. 자신이 한 발 양보하게 되면 제자들에게 좋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서다. 궁극적으로는 무향을 이끌어 갈 후배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 더 엄격한, 버팀목이 돼 주는 스승이고자 했다.
‘회고’, ‘걸리는 풍경’, ‘오월광주’, ‘정신대’, ‘한오백년’, ‘번뇌의 강’, ‘다 하지 못한 이야기’, ‘그대 있으므로’ 등이 그의 대표작이다.
공연도 참 많이 했다. CBS 무등 무용 대축전초청 공연 12회, 광주무용협회 합동공연 10회, 미국초청공연 등 쉬지 않고 무대를 선보였다. 김옥희란 이름을 걸고 개인발표회를 연 것 만 7회다. 당시 공연을 올리는 게 쉽지 않았던 상황을 감안하면 그가 얼마나 ‘억척’스럽게 일했는지 짐작이 간다.

특히 그는 아름다운 언어들을 몸짓으로 재해석, 풀어내는 데 집중한다. 시인 송수권은 그에게 많은 예술적 영감을 준 사람이다. ‘나는 추억을 씹는, 그 해안의 외로운 하얀 물새’(다하지 못한 이야기 중)나, ‘어느 날 풍랑에 휩쓸려 그대 가고 없음이여/이것은 하늘나라 천사들의 시세움’(그대 있으므로 중) 등 송 시인의 아름다운 시구가 몸으로 새로 쓰여 졌다. 김씨가 바라다본 세상의 모습, 생(生)의 면면들이 몸짓 언어로 승화, 작품으로 남았다. 그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이었다.
그 중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작품 ‘오월광주’는 그에게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아있다. 무대에는 국가 폭력의 상징이던 ‘군홧발’이 등장했다. 여러 명의 군인이 ‘착-착-착’ 발맞춰 걸으며 무대를 갈랐다.
"신발은 동부경찰서에서 빌려서 연출했어요. ‘바위섬’을 부른 가수 김원중은 당시 ‘안기부’의 눈을 피해서 무대 뒤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했죠. 그래서 참 기억에 남아요. 극의 막바지에선 5월의 슬픔을 승화시키는 것으로 마무리했죠."
지도자 자리에서 한 발 물러난 김씨는 또, 그와 함께 성장해 온 제자들의 활약을 보면서 살맛이 난다. 무용수 내면에 차 있는 ‘진실함’을 끌어내려 했던 그의 철학에 빛을 본 이들이다.
"기본적으로 제자들을 신뢰하고자 했어요. 춤꾼들에게 체격 조건은 이루 말 할 수 없이 중요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춤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깨끗한 마음이거든요. 진실함으로 춤을 추면 어떤 화려한 기법이 얹혀 지지 않더라도 마음을 끌어당길 수 있죠."
40여년 지도자 생활을 하다 은퇴했지만 광주 무용에 대한 애정은 여전하다. 한 발 물러서 보니, 광주 무용계에 아쉬움도 보인다는 그다. 특히 그가 바라는 점은 무용인들끼리의 ‘화합’이다. 무향의 명성을 빛내고, 또 타이틀을 지속하기 위해선 무용인들이 하나 돼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받은 사랑을 나눠주는 시간을 살고 싶다 한다. 현재 광주예총에서 운영하고 있는 시민예술대학 부학장으로 활동하는 것이 ‘예술 나눔’의 시작이라 볼 수 있다.
"무용인으로서 활동하면서 받은 관심과 사랑을 돌려주는 방법 중 하나가 예술을 통한 ‘봉사’라고 늘 생각했죠. 시민예술대학은 예술을 단지 ‘보는 것’ ‘즐기는 것’에서 그쳤던 시민들이 직접 체험하고, 작품을 만들어내는 프로그램이에요. 예향 시민들의 실질적인 ‘예술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죠."
또 광주무용협회 이사로서 후배 무용인들이 커나갈 수 있는 기반을 닦는데도 더 열심히 뛸 생각이다. 광주는 훌륭한 예술인들이 참 많이 배출되는 도시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홀로서기 하는 데는 힘든 도시라는 생각에, 후배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고 싶은 그다.
"무용하는 사람은 재산이 춤이에요. 춤꾼은 춤을 춰야 살아요. 그런데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꿈을 포기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안타깝죠. 그런 후배들이 좌절하지 않도록 하는 게 이제 저의 역할이 될 거 같아요. 무용인으로서, 또 선배로서 더 애정 어린 시선으로 들여다봐야 할 것 같습니다."

△김옥희는
조선대학교 체육과(무용전공) 졸업
조선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광주예술고, 전남여고, 광주여고 무용과 재직
광주무용협회 부회장 역임
광주시의회 정책 네트워크 위원
무용인상·안무지도자상·광주예총공로상·무용협회박금자상 등 수상
현 광주예총·광주무용협회 이사

박세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