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구성진 판소리 한 대목을 듣는 것 같다. 옛 시절의 이야길 늘어놓으며 송순섭 명창은 ‘소리인생 60년’ 기념가를 소리하는 것과 다름 아니었다. 빠르게 말할 때는 아니리 같고, 흥분해 목소릴 높일 땐 ‘얼씨구, 좋다’고 추임새를 외쳐야만 할 것 같은, 영락없는 판소리 가락이다.
지난달 19일 광주 동구 조용한 카페에서는 판만 안 깔렸다 뿐, 신명나는 송 명창의 인생 이야기가 한바탕 펼쳐졌다.
올해 82세를 맞은 송 명창은 연로한 나이가 무색하게도 기가 넘쳤다. 선생님의 어린 시절이 궁금하다는 기자의 첫 질문에 "내가 소리 잘해서, 떡 하나 더 얻어먹는 사람"이라고 자랑한다. 무슨 얘기 인고 하니, 초등학교 운동회 때 노래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심지어 응원까지 잘해서 친구 몫의 떡까지 받아먹었다는 것이다.
"그때 운동회 때면 집집마다 쌀을 걷어서 떡을 만들어 먹었어요. 어머니들이 하나씩 나눠주는데, 반 친구 어머니가 대뜸 오더니 ‘아가 너는 어쩜 그리 소리를 잘하냐. 우리 아들은 오늘 떡값을 못했으니, 울 애기 몫까지 네가 먹어라’면서 떡을 내어 주는 거예요. 어릴 때부터 끼 쟁이 친구로 유명했죠."
그러던 그가 판소리를 처음 접한 것은 집안 형님 덕이다. 형님이 북을 배우려고 소리선생을 데려다놓고 동네 청년들을 불러 모았다. 송씨는 나이가 어려서 수업에 낄 수 없어서 문 밖에서 듣고 따라하고 익혔다. ‘어깨너머’로 배우던 것이 60여년 이어졌다.
소리가 좋던 그이지만, 돈이 있어야 소리도 하는 법. 취직을 위해 광주로 넘어온 것이 1957년도 그의 나이 스물두 살 때다. 취직하려고 광주에 온 그는 광주공원을 배회한다. 당시 그곳에는 호남국악원, 전남국악원, 전남민속예술학원이 있던 ‘소리의 산실’이었다. 돈 번다고 하고, ‘소리의 산실’에 발을 들였으니 애초에 운명은 정해져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광주공원을 헤매고 돌아다니는데 호남국악원에서 소리를 하고, 북을 치고 야단이에요. 들어가진 못하고 늘 앞에 서서 소리를 엿들었죠. 그랬더니 어르신들이 ‘저놈 소리 참 좋아하네’라면서 들어와 소리 한 번 해보래요. 동네서 듣고 배웠던 것을 풀어놓았죠."
그때의 인연으로 그는 호남국악원 공대일 선생에게 본격적으로 소리를 배운다. 공대일 선생은 ‘병신춤’으로 유명한 공옥진 여사의 아버지다. 돈이 없어 머뭇대던 그에게 "기왕, 한 번 해봐라"며 소리꾼의 길로 인도한 스승이자 은인이다.
소리에 입문하면서 함께 시작한 것이 ‘아이스께끼’ 장사다. 돈도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아이스크림을 떼어다가 광주공원을 돌아다니면서 팔았다. 영 장사가 시원찮았다. 그러다 뿔이나니, 아이스께끼통을 옆에다 세워놓고 신세한탄을 시작했다. ‘아이고- 못하겄네, 못하겄네, 이놈의 장사 못해 먹겄네’ 하자, 지나는 사람들이 "와따 소리잘한다"며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광주공원에는 약 장사판이 벌어져 있었는데, 그 구경꾼들이 모두 송 명창에게로 온 것이다. 그 덕에 아이스크림도 다 팔렸다. 그런데 옆에서 약 팔던 사람들이 "당신 때문에 판 깨졌다"면서 성을 냈다.
"막 화를 내요. 장사 망쳤다고. 근데 어쩌겄소 하고 아이스크림 판 돈으로 이발을 하고 오니, 약장사판들이 같이 일을 하재요. 그래서 그 길로 ‘취업’이 된 것이죠. 약장사 따라다니면서 소리도 하고, 밥도 벌어먹고 살고, 호남국악원서 노래도 배울 수 있게 됐죠."
당시 호남국악원에는 소리께나 한 다는 소리꾼들이 모이는 장소였다. 이들이 모일 때마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박봉술 선생이다. 송 명창은 "얼마나 잘하기에, 저리 잘한다 할까"하면서 박봉술이란 이름을 가슴에 새겼다. 그러던 어느 날 영암 장을 지나는데, 한 소리사 스피커에서 ‘흥보가’가 흘러나온다. 그는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서 노래가 끝나도록 서서 들었다.
"참 기가 막혔죠. 안으로 들어가서 어떤 선생 소리냐 물으니, 유성기 판을 뒤집어 보여줘요. 보니까 박봉술 선생 소리였던 거죠. 호남국악원서 그렇게 칭찬하던 그 분을 거기서 만난거죠. 그 길로 박봉술 선생이 어딨나 수소문했죠. 부산에 계시다기에 보따리 싸 짊어지고 간거죠. 그때가 1963년도에요. 거기서 소리 공부를 24년간 했네요."
부산서 그는 박봉술 선생에게는 ‘소리’를 김연수 선생에게는 ‘가사’와 ‘발음’을 배웠다. 여전히 송 명창은 판소리의 음과 뜻, 그리고 정확한 발음을 중히 여긴다. 판소리를 하는데 그 깊은 뜻을 이해 못하고 ‘입’으로만 하는 것은 거짓이란 생각에서다.
"우리 판소리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 안에 담긴 ‘스토리’에 집중해야 해요. 판소리의 노랫말은 구구절절 좋은 말이 많죠. 어렸을 적 서당에 다니고 한문책을 접한 터라 고사성어나 한문의 뜻을 이해하고, 우리 소리로 풀어내려고 노력했죠."
그의 노력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판소리보존회 이사장인 그는 서암문화재단과 손을 잡고 ‘판소리 바로 알기 강습’을 운영 중이다. 판소리 노랫말 중 어려운 문자, 고사성어 등을 풀어서 가르치는 것이다. 노랫말을 이해하는 것이, 우리 소리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첫 발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송 명창은 송만갑-박봉술로 이어지는 동편제 소리를 한다. 그가 동편제 마지막 계승자다. 다양한 유파의 판소리를 접한 그이지만, 남성적 매력이 짙은 동편제가 자신의 기질에 딱 알맞았다는 설명이다.
"보성소리 서편제는 여성적이죠. 부드럽고 서정적이고. 반면, 동편제는 대장부마냥 시원시원해요. 쥐어 박을라면 쎄게 쥐어박고, 끊을라치면 확 끊고요. 슬픔과 한이 담긴 애절한 서편제 소리가 가슴을 울리는 맛이 있다면, 동편제는 응어리를 풀어주는 기강 있는 소리죠. 그 맛에 동편제는 들으면 들을수록 재미가 나요. 질리지 않죠."
대장부 같은 송명창의 성향은 그가 판소리 다섯마당 중 ‘적벽가’로 국가무형문화재에 등록된 것과 무관치 않다. 사실 그는 판소리 다섯마당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중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이 세 곡만 배웠다. 늘 아쉬운 부분이지만 "한 대목이라도 옳게 배워야지"란 생각에 곱씹으며 소리해 온 탓이다.
"소리를 참 어렵게 했어요. 알다시피 당시 소리는 무속인들이 하는 것이었으니, 집에서는 ‘집안 망친놈’이라고 푸대접을 받았고, 소리판에서는 자기 혈통이 아니라고 도외시 됐죠. 그래서 더 고군분투했죠. 오늘 안되는 대목이 있으면, 내일 가서 다시 하고 또 부르고. 그래서 세 마당뿐이 못 배웠죠."
하지만 그는 참 치열하게 소리하고, 도전했다. 1974년 박봉술 선생 전수자로 들어가, 1977년도에 이수증을 받았다. 또 1989년에 문화재청으로부터 준 문화재 보유자 후보로 인정이 됐고, 그로부터 13년이 꼬박 지난 2002년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적벽가 예능보유자로 이름을 올렸다.
또 부산서, 서울서, 그리고 광주에서 소리한 그는 전국 곳곳에 판소리 판을 깔고, 제자들을 길러내며 우리 소리의 씨앗을 뿌려두었다. 광주에서는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시립국극단을 이끌며 유관순·안중근 등 독립열사들의 삶을 다룬 창극을 올려 큰 호응을 받았다.
여든을 넘긴 나이지만 여전히 꿈은 있다. 3·1절 100주년을 맞는 2019년에 한국 독립운동사를 조망하는 창극을 올리는 게 목표다. 이에 앞서 소리인생 60년을 기념하는 소리 판도 신명나게 열어보고 싶은 그다.
그는 "우리 것 좋은 것을 우리만 모른다"면서 애정담긴 쓴 소리도 아끼지 않는다. 국악 발상지인 광주·전남에서마저도 국악 분야가 빛을 못 보고 있어 아쉽다는 것이다. 국악이 제대로 보존·계승되기 위해서는 예술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은 물론, 국가적 차원에서의 지원책도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시민들의 애정 또한 꼭 필요한 요건임은 말할 것도 없다.
마지막으로 그는 60여년 한 판소리의 매력을 ‘소리 안에 뜻이 있다’는 것을 꼽는다.
"대금·해금·거문고 소리, 또 피아노·바이올린 등 악기에서 나오는 선율은 아무리 좋아도 뜻이 없죠. 판소리는 소리 안에 뜻이 있어요. 모든 예술의 꽃이라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죠. 소리는 귀로 듣고, 가사를 가슴으로 곱씹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죠. 그런 소리꾼들이 많아지고, 이를 즐기는 이들이 많아지면 판소리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달라질 것 같아요. 말 그대로 그런 소리 ‘판’이 깔린다면, 아마 세상이 달라지지 않겠어요?"

△송순섭 명창은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적벽가 보유자다. 윤산판소리연구원장·한국전통예술진흥회 광주지부장·동편제판소리보존회 이사장·제4대 광주시립국극단 예술감독을 역임했다.
1994년 전주대사습 판소리 명창부 장원, 1999년 KBS 국악대상 판소리부문, 2010년 한민족문화예술대상 국악부문을 비롯해 제비꽃 문화인 명창가상, 제3회 이승휴문화상 예술상 들 다수 수상했다. 현재 한국판소리보존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박세라 기자·사진=최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