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장은 공연예술가와 관객이 만나는 매개 공간이다. 공연예술을 하는 이들은 최고·최적의 무대에서 자신의 콘텐츠를 선보이고 싶어 하고, 관객 또한 최상의 환경에서의 문화 향유를 원한다.
어떠한 공연예술을 만드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무대에서 공연을 하는지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콘텐츠가 있다하더라도 무대·음향·조명 등 공연예술에 필수적인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는다면 이를 십분 선보이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공연예술가들이 ‘꿈의 무대’를 좇아 전전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광주에는 총 48개의 공연장이 있다. 그 중 광주문화예술회관은 모든 예술행사의 산실로 꼽힌다. 예술단의 정기·상설 공연부터 지역의 굵직한 문화행사, 대형 기획 공연 등은 대부분 문예회관에서 이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1년부터 2016년 10월까지 5년간 문예회관의 평균 공연 횟수는 대극장 223일, 소극장은 238일로 집계된다. 무대 보수·리허설 기간 등을 감안하면 늘 쉬지 않고 공연이 올라갔다는 얘기다. 다만 1991년 개관한 문예회관은 시설 노후화가 심각한 상황이라, 리모델링이나 대안 공간 마련 등이 절실하다.
따라서 공연예술가나 시민들이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개관에 거는 기대는 컸다. 문예회관의 공연예술 ‘집중화’를 부분적이나마 해소할 수 있을 것이란 점에서다. 실제 문화전당 개관 이래 광주에는 1120석 규모의 예술극장 극장1과 512석의 극장2, 어린이극장·소극장 등 최첨단 시스템을 갖춘 공연장 4개를 더 얻게 됐다.
문화전당이 공식 개관한 지 1년이 넘은 시점, 광주공연예술계에 폭넓게 깔려있던 ‘꿈의 무대’에 대한 목마름은 얼마나 해소됐을까.
광주 공연예술의 현주소 두 번째 주제는 ‘전문공연장’이다. 지역 내 공연장의 현황과 문제점, 그리고 품격 높은 공연예술을 선보이기 위한 과제 등에 대해 짚어본다.

△공연장 48개 갖춰…광역시 기준 ‘보통’ 수준
광주시 공연시설의 현황을 살펴보면 시에는 총 48개의 공연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세부적으로는 △종합공연장 2개 (1000석 이상) △일반공연장 12개 (300석 이상 1000석 미만) △소공연장 25개 (300석 미만) △야외공연장 9개 등으로 나뉜다.
종합공연장으로는 광주문예회관 대극장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극장1 두 곳이 다. 광주·전남권 내 최대 규모로 꼽히는 광주문예회관 대극장은 1732석을 갖추고 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극장1은 1120석, 빅도어(big door)를 열어 야외무대로 확장할 시엔 1800여 관객까지 수용이 가능하다.
일반공연장은 문화전당 극장2, 5·18기념문화관 민주홀, 빛고을시민문화관, 금호아트홀 등 12개소로 집계됐다. 북구청소년수련관, 청소년수련원, 문화센터 등도 일반공연장 범주에 포함 돼 있다.
300석 미만의 소공연장으로는 문화전당 권역을 중심으로 소극장이 밀집해 있는 동구 12개소, 서구 5개소, 남구·북구 각 3개소, 광산구 2개소 등 총 25개소로 집계됐다. 이밖에 야외공연장은 시청 야외음악당, 금남로공원 야외무대, 중외공원 야외공연장 등 9개소가 갖춰져 있다.
광역시 기준으로 비교했을 때 광주의 공연시설 점유 현황은 나쁘지 않은 수준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15공연예술실태조사’ 결과 공연시설 지역별 현황 자료에 따르면 서울은 전체 공연시설 1034개 중 383개 시설을 운영, 전체 비율의 37%를 차지하고 있다.
서울을 제외하고는 부산이 5.6%, 대구 4.9%, 인천 3.6%, 광주 3.2%, 대전 2.9%, 울산 1.9% 순이다. 문화시설의 수도권 쏠림을 감안하면 광역시 기준 4위로 적지 않은 보유율을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공연시설에 대한 ‘관대한 범주’다. 실제 문화예술진흥법에 따른 공연장 분류에는 야외공연장은 제외된다. 공연법에 따른 공연장 분류는 관객석 규모를 기준으로 나뉜다. 때문에 앞서 일반공연장 범주에 포함된 청소년수련원, 지역 수련관, 문화센터 등 다목적 행사장 역시 공연법상 일반공연장 또는 소공연장으로 분류된 것이다.
따라서 기본적인 공연 인프라를 갖춘 대·중극장의 공연장은 문예회관 대극장·소극장,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5·18기념문화관, 빛고을시민문화관 등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전문공연장 ‘니즈’ 높아져…광주엔 ‘0개’
1980~1990년대 문화예술 인프라가 갖춰질 당시에는 ‘다목적’ 공연장이 대세였다. 초기, 인프라로 건립하기에는 다목적 시설이 이용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다목적공연장은 장르적 특성과 관계없이 공연이 가능하다는 점이 큰 강점이다. 하지만 어떤 한 분야에서도 최적화된 무대 구현이 불가능, 만족감이 낮은 것은 최대 단점으로 꼽힌다.
공연예술과 관련한 문화적 수준이 높아진 최근에는 전문공연시설에 대한 니즈가 강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공연장이란, 말 그대로 뮤지컬·클래식·오페라 등 각 장르별로 최적화된 시스템을 갖춘 공연장을 말한다.
이에 따라 대구·대전·부산 등 거점 도시들은 전문공연장을 새로이 건립하거나 지역 문예회관을 리모델링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 중 특히 대구는 종합예술인 오페라·클래식 전문공연장을 가지고 있어 수준 높은 공연 인프라를 갖춘 성공 모델로 꼽힌다.
대구는 2003년 대한민국 유일의 오페라 전용극장, 대구오페라하우스를 개관해 운영 중이다. 1500석 규모의 극장은 이동식 무대, 조명·음향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정통 오페라 공연에 적합한 공연장이다.
또 1972년 지어진 대구시민회관을 클래식콘서트전용홀인 대구콘서트하우스로 재탄생시켰다. 대구콘서트하우스는 대공연장 1284석, 소공연장 248석 등 국제적 수준의 음향시설을 갖춘 클래식 전문공연장이다. 부산 또한 총 사업비 2115억원을 투입, 문화거점으로 기능할 전문 오페라하우스 건립에 나섰다.
하지만 예향 광주에는 공연예술 한 장르에 최적화된 ‘전문공연장’은 단 한 곳도 없다. 앞서 언급된 문예회관이나 문화전당 예술극장의 경우 ‘다목적 공연장’일 뿐 한 장르에 특화된 전문공연장이라 보기엔 무리가 따른다는 지적이다.
공연계 한 관계자는 "다목적 행사장은 공연장으로 분류되지만 엄밀히 따지면 ‘문화시설’에 가깝다. 이곳에서는 공연예술 뿐 아니라 행사, 영화제, 주민공청회까지 말 그대로 다양한 목적의 시설"이라며 "실질적으로 무대설치·조명·음향 등 공연 기본 인프라와 전문 인력 배치 등 예술가들의 창작 욕구를 돋우는 전문성을 갖춘 공연장은 전무하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공연 시설 노후화·전문 인력 부재
광주 대표 다목적 종합공연장인 광주문예회관 대극장에서는 지난해만 해도 총 180여회의 공연이 열렸다. 뮤지컬·콘서트·클래식음악회·국악 등 다채로운 무대가 관객들을 맞았다. 대부분의 공연이 봄·가을에 집중되는 점을 감안하면 광주문예회관 대극장 대관 경쟁이 얼마나 치열할 지 가늠해볼 수 있다. 실제 대형 기획공연이나 콘서트 등 종합공연행사가 문예회관 대극장 입성에 실패하면, 김대중컨벤션센터나 염주체육관 등을 전전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지역 ‘무대 갈증’을 해소해 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극장1이 가동됐음에도 눈에 띄는 변화는 없는 상황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경우 국립기관인 탓에 지역예술단체에 대한 이점이 주어지지 않는데다, 아시아문화콘텐츠 창·제작 시스템이 가동되고 있어 진입장벽이 높은 게 문제로 지적된다.
그나마 장벽이 낮은 광주문예회관 또한 노후화된 시설이 발목을 잡는다. 무대 마루 바닥, 관객석, 출입문 등 외관 시설은 말할 것도 없고, 공연 질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조명·음향 시스템 문제는 심각한 상황이다.
조명은 최근 대부분의 공연장에서 사용하는 LED가 아닌 개관 당시 제품 그대로 이용 중이다. 빛이 들어오는 시간이 늦고 선명하지 못한데다, 색깔 있는 조명을 비출 시에는 색상 필름을 덧씌워 사용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가장 문제는 ‘음향’ 이다. 음향에 민감한 클래식 분야에서 가장 이상적으로 보는 극장의 잔향은 2.2초다. 잔향이란, 실내 연주에서 나는 소리가 울리다가 그친 후에도 남아서 들리는 소리로, 실내 음향 효과를 내는데 중요한 요소다.
문예회관 대극장의 경우 비교적 최근 교체한 음향반사판 덕에 잔향이 1.4초 정도 나온다. 소극장은 그나마도 없어 0.9초 수준이다. 다른 나라 연주자들이라면, "공연 못 한다"고 할 정도다.
클래식 한 전문가는 "선진국 극장들은 대부분 잔향이 최소 1.8초에서 2.4초가 나온다. 사실 현재 문예회관 공연장은 클래식을 하기엔 부적합한 홀이다"며 "음향 뿐 아니라 오케스트라 피트의 무대 갈라짐 현상이나 연주자들을 위한 편의시설 부재 또한 개선돼야 할 점"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광주문예회관은 2013년 회관 리모델링을 위한 종합 컨설팅을 받고, 예산 규모 파악에 들어간 바 있다. 그 결과 노후화된 시설을 교체하는 비용을 포함, 총 265억원의 예산이 필요한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예산 확보라는 큰 산을 넘지 못하고 있다. 시설 교체비용 뿐 아니라, 회관의 전체적인 문화시설을 새 단장하는 데는 추가적인 예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시는 지역발전특별회계를 통해 국비·시비 매칭 사업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부족한 시설 인프라 문제와 함께 ‘전문 인력’의 부재 또한 풀어야 할 숙제다. 실제 광주문예회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빛고을시민문화관 등을 제외한 공연 시설에는 무대기계·조명·음향 부문 전문 인력은 전무한 상황이다. ‘공연법’에는 각 공연장 규모에 따라 의무 채용해야 할 인력이 규정돼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광주 공연장에는 장비 컨트롤이 가능한 전문가가 부재한 상황이다. 전문 인력이 상주해 있지 않은 탓에 작품을 올리는 예술단체들의 부담은 가중될 수 밖에 없다. 공연할 때 마다 외부 인력에 의존해야하는데다, 상황에 따라 늘 유동적이기 때문에 경제적 부담은 물론 공연의 질 하락을 야기할 가능성도 있다.
문예회관 한 관계자는 "공연장의 하드웨어적인 부분을 보완해 나가는 것 또한 중요하지만 이에 따른 전문 인력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도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라며 "광주 공연 전문 인력을 인큐베이팅 할 교육 체계를 마련, 광주 곳곳 공연장으로 배치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적 공간 마련…창·제작 시스템까지 갖춰야
이제 남은 과제는 명확하다. 장르별로 최적화된 공연장을 마련하는 것과 이에 따른 전문 인력을 갖추는 일이다. 선택해야 할 것은 기존의 공연장을 활용, 리모델링하는 방식으로 갈 것이냐 새로운 문화시설을 건립할 것이냐다.
사실 장르별로 최적화된 공연장을 마련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 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는 대구의 선례를 꼽을 수 있다. 오페라전문극장과 클래식 전문공연장을 가지고 있는 대구는 사실 전 장르에 최적 시스템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건립 당시 2000억원이 투입된 대구오페라하우스는 대부분의 공연예술 무대를 커버하고 있다. 오페라 장르 자체가 종합예술이다보니, 뮤지컬·발레·오케스트라 음악회 등 다채로운 공연을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적의 시스템을 갖춘 공연장의 종합적인 대안으로 오페라 하우스 건립이 거론되는 이유다.
또 놓쳐선 안 될 부분은 최고 시설의 극장 하나를 ‘늘린다’는 것에 초점을 둬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새로운 공간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제대로 활용할 방안을 짜 놓아야만 예술가·시민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자리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설립 계획 단계부터 공연예술가들과의 긴밀한 소통이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역의 한 예술인은 "문화 관련 하드웨어를 확보하는 일은 사실 예산만 확보되면 큰 어려움 없이 진행 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전문공연장’을 정말로 ‘전문적’으로 운영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프로그램 기획력에서 갈릴 수 있다"며 "공간 마련과 함께 공연예술 인력·창제작 시스템을 가동하기 위해선 건립 초기부터 창작과 연계한 예술가 지원 프로그램·전문 스태프 확보 등을 예술인들과 협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광주시는 예술인들의 숙원이던 클래식 전문공연장 건립을 검토 중에 있다. 기존 공연장을 리모델링하거나 완전히 새로운 부지에 클래식 콘서트홀을 마련하는 방안을 타진중이다. 1000석 규모의 콘서트홀을 짓는 데는 부지 확보 문제를 제외하고 약 500억~6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세라 기자·사진=최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