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광주는 창업 생태계의 불모지였다. 막 첫 발을 내디딘 창업자를 일컫는 ‘스타트업’이라는 용어도 쓰는 사람을 찾기 힘들었고, 이들을 지속적으로 관리·지원해 성공적인 창업을 돕는 ‘액셀러레이터’는 흔적조차 없었다. 자금이 부족한 창업자에게 투자하는 ‘엔젤 투자자’라는 단어도 지역민들에게는 생소했다.
하지만 최근 광주에 ‘창업 열풍’이 일고 있다. 아이디어 공모전 등 전국 단위 창업 행사에서 광주지역 참여자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지난해 열린 국내 최대 규모의 국제 게임전시회 ‘지스타 2016’에서는 광주 업체가 올해의 ‘스타트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창업 지원기관들이 창업 아이템 발굴을 돕고 창업 붐 조성 등을 위해 유기적으로 연대하면서 나타나고 있는 변화들이다. (사)광주창업지원네트워크가 벌이는 활동도 그 중 하나다. 지난해 창립 이후 광주의 창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하상용 대표(56)를 만나 그간의 성과를 짚고 새해 구상을 들어봤다.

-(사)광주창업지원네트워크는 창업 관련 기사에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 같다. 어떤 단체인지 소개해달라.
△ 출발은 2014년 여름, 전문가 10인을 초대해 광주의 창업 환경에 대해 논하면서부터였다. 당시 광주는 창업 환경이 좋지 않았다. 창업 지원책을 펼치고 있는 각 기관들과 창업 아이디어를 가진 이들이 서로 연결이 안돼 실제 창업자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이런 다리 역할을 해주는 게 민간 ‘액셀러레이터’들인데, 서울 등 타 지역에서는 활성화돼있는 반면 광주는 ‘액셀러레이터’라는 말 자체가 없었다. ‘우리끼리라도 해보자’라는 생각에서 시작됐다.
K-ICT멘토링센터에 합류하게 되면서 광주의 창업 환경에 대한 우려가 더 강해졌다. 전국 각 지역에 있는 K-ICT멘토링센터는 광주에서 제일 마지막에 생겼다. 전국 단위 행사나 모임을 가더라도 광주 출신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타지 사람들이 "광주는 창업하는 사람이 없나 봐요"라고 했을 정도다.
마침 광주시에서도 이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었고, 민간에서 기관과 창업자, 그리고 창업자 간을 잇는 공식적인 연결고리가 필요하다는 데 뜻을 같이 해 창업 전문가 10인이 모여 지난 2015년 12월 첫 공식모임을 가진 뒤 지난해 3월 순수 민간인으로 구성된 사단법인으로 공식출범했다.

-(사)광주창업지원네트워크의 목적은 어디에 있나.
△ 가장 큰 목적은 청년, 더 나아가 모든 연령이 창업에 도전할 수 있는 창업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실업이 심각한데, 광주는 특히 제조업의 위축으로 갈수록 일자리가 줄어드는 상황이다. 기아차, 금호, 삼성전자 등 대기업에 의존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청년들이 두려움이나 막연함으로 결국 창업을 포기하고 안정적이라고 여기는 문턱 높은 직업을 갖기 위해 애쓰지만 기술 발전으로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안정적인 것은 없다. 오히려 가장 안정적인 것은 창의적인 무언가를 지속해서 내보내는 것, 바로 창업이다. 청년들, 나아가 모두가 꿈과 일자리를 모두 갖게 도울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 목적은 창업 생태계와 네트워크를 통해 광주를 창업 성공률이 높은 도시로 만드는 것이다. 사실 창업자들이 바라는 것은 ‘상장’이나 ‘투자’가 아닌 ‘생존’이다. 누구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가 이 길이 맞는지, 이 아이템으로 먹고 살 수 있는지에 대한 의심을 하기 마련이다. 혼자서는 이를 제대로 판단할 수 없다. 네트워크를 통해 뼈대를 검증하고 계속해서 살을 채워나가면서 자신감을 가져야 사업의 지속성과 성장성을 확보할 수 있다.
창업으로는 새로운 문화도 만들 수 있다. 광주보다 규모가 작은 전주, 여수는 특유의 문화로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모으지만 광주에는 특색있는 문화가 없었다. 대표적인 게 음식이다.
이전까지 광주는 프랜차이즈 음식점이 대부분이었고 그나마 전통 있는 곳들만 유명했다. 하지만 동명동에서 청년들이 작은 점포를 열고 독특한 요리를 선보이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들 창업자들은 서로 네트워크를 형성, 창업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상부상조했고 이 네트워크가 성장, 발전해 양림동, 발산마을로 향했고 그 일대에 새로운 청년 문화, 음식 문화가 꽃피웠다. 창업 성공률을 높여 광주를 찾아오고 싶은 ‘문화’가 있는 곳으로 만드는 데 이바지할 수 있는 것이다.

-1년여가 흘렀다. 설립 첫 해 어떤 사업을 주로 펼쳤나.
△ 사업은 크게 두 축으로 구성된다. 하나는 창업 붐을 조성해 청년들이 창업에 뛰어들 수 있도록 하는 것, 나머지 하나는 창업자를 꾸준히 성장시켜 성공적인 창업 사례를 만드는 것이다. 광주는 창업 분위기 자체가 흐르지 않고 있어서 지난 한 해는 창업 붐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일단 많은 창업자들이 있어야 성공 사례가 나올 확률도 높아지는 것 아니겠는가.
창업 붐을 일으키기 위해 진행한 두 행사가 크게 창업스쿨과 창업아이디어경진대회다.
특히 창업아이디어경진대회는 광주시의 창업도시 선포와 같은 시기에 펼쳐져 첫회인데도 150여명이 참가했다. 다르게 말하면 그 정도로 창업에 목마른 이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다른 대회와 달리 멘토가 처음부터 참여, 전 과정을 도울 수 있게 했다.
창업아이디어경진대회는 좋은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목적도 있지만, 결국 ‘등용문’에 불과하다. 그 아이템으로 창업을 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예비창업자들이 향후 실제 창업을 추진할 때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전문가 네트워크를 확보하는 데 있다고 판단했다.
멘토를 부르게 되면 인당 최대 100만원에 가까운 비용을 지불해야 하지만 네트워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실익이 훨씬 크다. 향후 창업 아이템을 가지고 실행을 구체화할 때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당시 멘토로는 K-ICT멘토링센터의 업종별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실제 창업아이디어경진대회 1, 2등 수상팀은 현재 이들의 도움을 받아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2등 팀은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당시 상을 받았던 ‘소통몬스터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고 있다. ‘가족여행’, ‘체험관 방문’, ‘심부름’ 등을 게임 점수화해 가족간 소통 부재 현상을 해결한다는 취지다.
창업자들을 위한 사업으로는 청년창업포럼을 추진했다. 창업자와 예비창업자, 창업자 간을 서로 이어 네트워크를 구축, 서로 도울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했다. 예를 들어 기술, 디자인 스타트업은 아이디어나 상품만 있고 이를 홍보, 마케팅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현장에서 마케팅에 능한 창업자를 만나 여러 조언을 듣거나 서로 사업을 같이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식의 만남을 가질 수 있는 모임은 전국적으로도 보기 힘들 것이다.

-광주창업지원네트워크를 운영하면서 겪었던 어려움은 없나. 창업 지원책의 보완점과 연계한다면.
△ 물론 있다. 창업지원네트워크 주관 행사는 물론 각 기관의 행사에 심사위원 자격으로 가기도 하는데, 한 아이템을 가지고 여러 대회에 지원해 지원금만 타내거나 일명 ‘스펙’을 노리고 참가, 실제 창업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지원금을 정말 필요로 하는 곳에 주기 위해 지역의 여러 네트워크를 통해 이들을 걸러내고 있다.
하지만 쉽지 않다. 각종 정부 지원 창업 행사에 나오는 아이디어들을 체크해 중복 아이템을 걸러내는 시스템 자체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광주테크노파크,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 광주창조경제혁신센터 등 다양한 기관에서 창업 지원을 하고 있는데 주무부서가 제각각이라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데 한계가 있다. 실제 지난해 각 기관으로부터 창업 지원을 받은 팀이 각 기관마다 10~20명씩 총 300여명 가까이 된다.
이들을 한 데 모으면 나름의 네트워크를 형성해 서로 도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지난해 연말 창업페스티벌을 계획했었다. 하지만 주무부서 직원들이 창업 전문가도 아니고, 이런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파악하지 못해 "왜 참여해야 하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주무부서에서 이렇게 대처하니 주관 기관이나 창업자들도 굳이 참여의 필요성을 못 느꼈다.
이런 두 가지 문제점은 정책적으로 해결할 필요가 있다. 각 대회에 나왔던 아이템들을 데이터베이스(DB)화해 중복 지원을 최소화하고, 정부와 지자체에 창업을 전담하는 통합 부서가 있어야 한다. 통합 부서가 있으면 중복되는 예산도 줄일 수 있고 창업자 입장에서도 본인에게 적합한 정책을 알아보기 수월해지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창업을 꿈꾸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 얼마 전에는 광주 직장인 10명 중 7명이 창업을 고민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는데, 창업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을 점검해야 하나.
△창업은 전쟁이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좋은 무기, 그리고 평상시 훈련이 필수다.
먼저 좋은 무기, 아이템이다. 미국에서 창업에 실패하는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시장에서 필요로 하지 않는 아이템’에 승부수를 거는 것이다. 본인은 자신의 아이템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고, 지인에게 물어보는 것도 한계가 있다. 하지만 몇몇 창업자는 본인의 아이디어는 반드시 시장에서 먹힐 것이라고 생각하고 무대포로 도전해 낭패를 본다.
그래서 요새 떠오르는 것이 가벼운 창업, ‘린 스타트업’이다. 아이템을 판단하는 것은 창업자가 아닌 고객이다. 최소한의 자금을 투입해 창업한 뒤 시장의 반응을 지켜보고 사업의 향배를 결정해야 한다.
두 번째는 훈련이다. 기회는 준비된 자가 잡는다. 평소 꾸준히 본인이 뛰어들 시장에 관심을 갖고 준비하지 않으면 실패하기 마련이다. 만반의 준비를 해도 100명이 창업하면 5년 뒤 이 중 5명만 성공하고 20~30명은 창업 후 발전 없이 유지, 나머지는 전부 실패한다.
특히 청년 창업자의 경우 서바이벌에 능숙하지 않다. 많은 사람이 있는 자리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한다. 결국 창업해도 제품이나 기술만 있고, 설명이나 홍보가 부족해 매출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본인의 아이템을 누구에게나 소개하고 팔릴 수 있도록 평상시에 연습을 해야 한다.

-올해 광주창업지원네트워크의 계획은.
△여성 창업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얼마 전 창업을 주제로 한 여성 포럼에 참여했다. 주부 창업자 4인이 강연과 질의응답을 진행했는데, 주부들의 의지가 대단했다. 특히 주부의 경우 창업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었다.
흔히 가정을 돌보기 위해 직장을 그만 둔 주부들을 ‘경력단절녀(경단녀)’라고 하고 이들을 위한 지원책은 상당수 진행되고 있다. 시니어 창업 지원도 대부분이 기술 위주라 남성에 맞춰져 있다. 주부들을 위한 정책은 경단녀들이 일터로 다시 복귀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경력의 유무와 상관 없이 주부가 ‘창업’을 한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는다.
그날 포럼에서 주부 창업자들이 모두 한 말이 있었다. "집에서 나오세요"였다. 주부들의 눈빛이 이글이글하더라. 그래서 그 자리에서 3월 내로 법적 청년 연령제한(만 39세 이하) 없이 여성만 참여하는 여성창업경진대회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이를 시작으로 여성 창업에 힘쓸 계획이다.
또 청년창업포럼의 경우 투자 부분을 강화할 계획이다. 지역 업체들은 기업설명회(IR)를 해서 투자를 유치하기 힘든 환경에 놓여있다. 물론 각 기관이 업체들을 모아 IR을 진행하기도 하는데, 대다수 참여업체가 이미 어느 정도 시장 가능성을 검증 받은, 준비된 기업이다.
우리는 멘토단을 투입, 업체들이 IR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갖출 수 있도록 멘토링, 이후 IR, 이어 네트워킹 모임 이렇게 3단계로 추진하려고 한다. 이를 통해 모든 창업자들이 동등한 IR 기회를 가지고 투자를 유치할 수 있도록 도울 예정이다.

프로필
-前 ㈜빅마트 대표
-前 전라도닷컴, 광주드림 발행인
-前 아름다운가게 광주전남 공동대표
- K-ICT창업멘토링센터 CEO멘토
- (사)광주재능기부센터 대표
- ㈜오가닉빅마트 고문

김주현 기자· 사진 최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