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항’ 여수는 아쉽게도 명실상부한 문화의거리가 부재하다. ‘여문 문화의거리’라고 불리는 공간이 있지만 예술계 안팎으로부터 외면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목포처럼 근대역사골목이 있는 것도 아니다. 외지 관광객들이 주로 많이 찾는 아트공간은 진남관(국보 제304호) 일대 벽화골목을 꼽을 수 있다.
사실 이 벽화골목은 인터넷에 자주 언급되고 소개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됐다. 진남관을 중심으로 ‘고소동 천사벽화마을’과 큰샘골(大井) 일부 골목에 벽화로 꾸민 ‘매영성 서문 벽화거리’가 대표적이다. 보물 324호인 진남관은 조선시대 지방관아 건물로 여수의 상징적 공간이다. 진남관 자체로도 볼거리지만 유물전시관이나 전라좌수영비군 및 이량장군방왜축제비까지 있어 볼거리를 더 풍성하게 해주고 있다. 전라좌수영비군 및 이량장군방왜축제비 일대에는 전국에 총 46기가 있는 철비가 무려 이곳에 3기가 자리하고 있었다. 참고로 광주전남 지역에는 11기의 철비가 전해지고 있다.
비군들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된 시설물은 햇빛이 통과하게 돼 있어 한 여름철에는 열기가 그대로 전달돼 비석들의 풍화를 재촉하거나 수명을 단축시킬 우려가 있어 목재로 교체해 자연친화적인 보존을 위한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를테면 1713년 숙종 39년에 세운 ‘대정서변 입비’ 같은 경우 이미 많은 글자들이 지워져 버렸고, 비석 표면도 알록달록 변색이 돼 있었다. 문화재 보존이 좀 더 섬세하게 먼 미래를 내다보고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진남관 자체로도 볼거리가 충분하지만 양 옆으로 벽화골목을 조성한 점은 문화재 관람이라는 단조로운 루트를 탈피한 것으로 평가된다.
다소 아쉬운 점은 진남관이 2019년 완공을 목표로 2월29일부터 해체·복원사업이 본격 진행돼 가설덧집이 설치되면 당분간 온전한 진남관을 보기는 힘들 전망이다. 2004년부터 벌인 진남관의 안전 진단 결과 보수·정비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따른 것이지만 뒤쪽으로 동헌까지 복원이 예정돼 공사가 끝나면 여수향교 등과 연계돼 전통문화 공간으로 한층 더 짜임새가 갖춰질 것으로 기대된다.
그만큼 문화재가 일상생활 공간의 아트와 만나면서 여수의 역사와 골목마다 서려있는 여수 사람들의 삶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도시들에서 보기 힘든 멋스러움이 있다.
이런 좋은 여건을 구축해 가면서도 섬세한 배려가 뒷받침되지 못하다는 인상이 짙었다.
진남관에는 벽화골목이 양 옆으로 전개된다는 안내이정표가 아쉬웠다. 왼쪽으로 가면 ‘매영성 서문 벽화거리’가, 오른쪽으로 가면 ‘천사벽화골목’이 있다는 것을 안내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런 구조를 전혀 모르는 타지 사람들은 진남관만 보고 가거나 젊은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접한 고소동만 보고 가는 등 연계를 통한 시너지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진남관과 매영성 서문 벽화거리, 천사벽화골목을 하나로 묶을 때 파급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이곳에는 진남관 외에도 이순신 광장이나 종포해양공원, 수산시장 등 갈만한 곳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이곳 여수의 벽화 골목 역시 오늘날 이뤄지는 패턴에서 별다른 특이점을 찾을 수는 없었다. 보통 벽화골목은 역설적이게도 낙후된 지역에서 많이 이뤄진다. 칙칙한 골목 대신 담벼락 등에 화사한 그림을 그려넣는 것이다. 컬러풀한 여러 색감의 그림들은 골목을 환하고 밝게 해준다. 이뿐만 아니라 거주자나 답사객들에게 여러 볼거리를 선사하면서 색감으로 인한 기분까지 전환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실생활 공간이다 보니 문화소외로 내몰렸던 주민들 또한 생활공간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고, 동네에 대한 자긍심까지 북돋울 수 있다. 여러 긍정적 요소들이 작용할 수 있는 것이 벽화인 것이다.
물론 색감이 탈색되면 우중충해 보기가 싫은 것은 사실이다. 지속적인 관리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벽화가 전국적으로 유행처럼 번질 때도 있었다. 그래서 통영 동피랑이나 부산 감천 문화마을 같은 곳은 성공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벽화가 하나의 트렌드였던 시대는 이제 저물고 있다. 관리상 문제가 도출되기 때문이다. 예산이 별도로 책정돼 관리되지 못하면 벽화골목으로서의 기능을 잃는 것은 시간문제다.
하지만 이곳 진남관 일대 벽화들은 꾸준하게 개보수가 이뤄지고 있었고, 타일벽화가 의외로 많이 부착돼 다른 벽화골목들과는 다소 차이가 있어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사벽화골목의 개보수도 지난해 10월 일부구간에 걸쳐 실시됐다. 그래서인지 색이 바래 보인 벽화는 없었다.
진남관 일대 벽화가 등장한 것은 ‘여수 엑스포’(2012여수세계박람회·Expo 2012 Yeosu Korea) 전후 조성됐다. 여수 엑스포가 사실상 직간접적 조성 계기가 된 셈이다.

먼저 ‘고소동 천사벽화마을’을 살펴본다.
2011년 여수 엑스포 준비를 하면서 환경이 열악한 고소동 산동네 골목길 1004m를 ‘천사벽화마을’로 명명하고, 이 구간을 테마가 있는 아름다운 벽화거리로 만든 것이 시초였다. 처음에 1004m이었지만 지금은 1155m로 늘어났다.
이곳 벽화마을은 크게 아홉구간으로 형성돼 있다. 1구간은 이순신 광장로169에서 중앙4길 25-1까지, 2구간은 중앙4길 25-1에서 중앙4길 7-1까지, 3구간은 중앙4길 7-1에서 대광빌라까지, 4구간은 대광빌라에서 고소5길 13까지, 5구간은 고소5길 13부터 27-4까지, 6구간은 고소5길 27-4부터 대첩비각까지, 7구간은 대첩비각에서 고소2길 3-7까지, 8구간은 고소5길 13에서 고소6길 2까지이다. 마지막 구간인 9구간은 중앙로 95-1에서 대첩비길 34-6까지다. 벽화는 이들 구간의 골목계단이나 옹벽, 뷰포인트, 김기수체육관, 여수제일교회 등에 조성돼 있었다. 고소5길과 대첩비각에 걸쳐 형성돼 있는 6구간은 최근 개보수가 이뤄지기도 했다.
이 벽화마을의 시작은 고소동 자체를 마케팅화하고 산동네 및 골목길의 열악한 환경을 시각적으로 개선하며 주민자치위원회의 마을공동체 형성사업 추진 계기를 마련하자는데 공감대가 이뤄지면서 착수됐다. 처음에는 2011년 2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7구간 1004m에 걸쳐 진행됐다. 벽화마을 구축은 2011년 4월부터 2016년 10월까지 12단계로 나눠 이뤄졌다. 여수 엑스포 이야기나 바다와 여수풍경 이야기를 시작으로 해양 관련 동심의 세계, 여수출신 만화가 허영만 화백거리, 이순신장군, 신호연, 개장골 마을전설, 생태환경, 군상, 여수 8경, 사계절 자연풍경, 동백꽃 등이 벽화내용으로 등장했다.
진남관에서 나와 좌수영교를 건너면 매영정과 108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여수제일교회를 만날 수 있다. 일부 답사객들은 반대쪽인 종포해양공원 남성목재에서 시작해 허영만 화백거리, 오포대, 고소대, 제일교회, 진남관으로 코스를 잡는 경우도 있지만 필자는 진남관에서부터 출발하는 코스로 답사에 나섰다.
여수제일교회는 108년이라고 하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지만 원형이 많이 변형돼 아쉬움을 더했다. 여수제일교회를 둘러본 뒤 나와 언덜길을 오르자 초입에 이순신 장군에 관한 11개의 타일이 부착돼 있었다. ‘약무호남시무국가’(若無湖南是無國家·만약 호남이 없었다면 나라도 없었을 것이다) 문구부터 시작해 바다 속에 쇠사슬을 설치하다, 거북선을 만들다, 여수에서 출전하여 승리하다, 여수가 삼도수군 통제영이 되다 등이 새겨져 있었다. 이순신 유년시절 벽화도 부착돼 있었다.
여수 8경의 하나인 고소대(姑蘇臺)에 도착하자 왼편 골목길 안에는 세계 복싱 챔피언 김기수·유제두를 배출했던 여수 복싱도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유리문 밖에서 도장을 구경할 수 밖에 없어 다소 아쉬웠다. 체험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개방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다시 자리를 옮겨 고소대로 들어갔다. 고소대는 일종의 포루로 충무공 이순신이 작전계획을 세우고 군령을 내리던 곳이다. 보물 581호인 통제 이공 수군대첩비(좌수영대첩비)와 타루비 , 동령소갈비 등 3기의 비석이 보존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충무공 순국일인 11월19일에 제를 올린다고 한다. 고소대 옆에는 270년된 보호수도 자리하고 있다. 고소대에 오르니 건너편 종고산과 멀리 경남 남해도가 손에 잡힐 듯 펼쳐져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이곳에 신사(神社)가 설치되는 수난과 수모를 겪기도 했다.
고소대 옆 담장을 끼고 돌아가면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조성한 천사벽화골목이 나타난다. 꼬불 꼬불한 골목들은 정겹다. 곡선을 타고 펼쳐진 벽화들은 형형색색 다채로운 소재들로 채워져 있었다. 아마 삶의 속살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골목에서 벽화들마저 아름다운 삶이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충실하게 살아내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듯 했다. 꼬불 꼬불한 골목은 마치 미로 찾기 같다.
군사시설로 밝혀진 오포대를 보고 고소대 쪽으로 답사중이던 하동원(전북 정읍·한국농수산대 채소학과 1년)씨는 "여수 여행 중 들렀다. 이순신 광장에 왔다가 이곳을 둘러보게 됐다. 정읍도 벽화골목이 있지만 이곳처럼 골목이 길지는 않다. 골목이 너무 예쁘다"고 말했다.
오포대는 한말과 일제강점기 때 정오를 알리기 위해 오포를 쏴던 곳이다. 박공형태의 건물이 있었으나 현재는 철거됐다. 한때는 둥근 원형의 건물 위로 올라갈 수 있었으나 페쇄돼 있었다. 이 오포대에서는 여름철 음악회도 열렸다 한다.
골목에서 만난 날아라 슈퍼보드나 삼양이발 등은 추억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붉은발 말똥게는 여자만 등에 서식하지만 드러내놓고 홍보하지 않은 채 소박한 벽화로 답사객들을 맞았다. 사연이 재미있다. 널리 알려지게 되면 무단으로 많이 잡아갈 수 있어 적극적 홍보를 삼간다는 전언이다.
또 눈을 즐겁게 하는 것은 시(詩)였다. ‘네가 떠난 뒤에 바다는 퉁퉁 부어 올랐다/해변의 나리꽃도 덩달아 눈자위가 붉어졌다/너를 잊으려고 나는 너의 사진을 자꾸 들여다 보았다’(안도현 시 ‘연락선’)거나 ‘지금은 누구의 꽃잎 되어 살고 있을까/오동도 동백그늘에 앉아/아픈 이름 하나 꺼내 바람결에 헹구면/붉은 동백꽃 그리움으로 뚝, 뚝 떨어져’(이옥근 시 ‘이름 하나’)를 읽느라 한참이 멈춰섰다. 벽화를 보다가 만난 명시 한편이 한참 발길을 붙잡아 세운 것이다. 명문이든, 명시이든 아름다운 글 한편은 앞으로만 내달리던 길마저 멈춰세우는 듯하다.

종포해양공원으로 내려오는 길목 남성목재와 엑스포 수퍼 등은 벽화골목의 감흥에 점 하나를 더 찍었다. 마지막이 싱겁게 끝나면 얼마나 허전하겠는가. 1970년대 문명이 멈춘듯한 풍경이 벽화골목의 감흥에 방점을 하나 더한다. 그곳에서 길 하나를 건너니 낭만포차들이 하나 둘 문을 열고 있었고, 종포해양공원에는 사람들이 아름다운 여수 바다를 스캔하느라 분주했다.
고소동 천사벽화마을은 고지대에 자리하다 보니 아름다운 여수의 쪽빛 바다와 붉은빛 일몰을 관람할 수 있는데다 여수의 랜드마크인 해상케이블카와 돌산대교와 장군도의 야경, 경도와 멀리 남해도의 풍경, 종포해양공원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벽화골목 답사 전후 종포해양공원을 거닐면 여수의 또다른 운치를 맛보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다. 낮이면 낮대로, 밤이면 밤대로 여수 바다의 운치가 살아 꿈틀댔다. 고소동의 위치는 이런 천혜의 조건들을 갖추고 있다.
특히 고소동 가장 높은 지대에는 오포대가 있고, 이곳에는 전망공간까지 갖춰져 있다. 여수 바다와 뿔뿔이 흩어져 있는 섬, 도심 풍경까지 손앞에 잡힐 듯 펼쳐져 있어 벽화골목 답사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여기다 기존 낡고 훼손된 벽화를 새롭게 만들어 조형물을 설치하고 체험형 거리를 조성하는 등 다양한 벽화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어 벽화마을로서의 경쟁력이 더해졌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벽화들은 동백꽃과 사계절 등을 주제로 전개되고 있었다. 구간 끝에는 고목을 활용한 입체형 부조와 함께 시화인 동백꽃이 타일 모자이크로 조성돼 다른 벽화 골목과는 달리 색다른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또 임진왜란 당시 왜군에 맞서 싸웠던 해상 전투장면을 주제 삼아 관광객이 벽화 속 수군이 돼 전장에서 활을 쏘는 장면을 연출해 볼 수 있는 포토존도 마련돼 큰 호응을 얻고 있었다. 그네도 체험할 수 있게 해놓았고, 강아지 목에 줄도 설치해 직접 목줄을 잡아당겨볼 수 있는 벽화도 설치돼 있다. 이런 곳은 하나같이 포토존으로 손색이 없었다.
다만 갤러리 등 예술공간이 전무하다시피해 아쉬웠다. 고소5길 32-1번지에 문화예술인 복합문화공간인 고소 달빛갤러리가 추진되고 있어 조만간 이도 해소될 전망이다. 3월에 착공에 들어가 오는 5월에 완공할 예정이다. 2층 규모인 이 공간에는 커피숍과 갤러리 등이 들어서게 되며, 마을기업을 선정해 고소천사마을 시설로 운영할 복안이다.
허영만 화백거리에서 만난 이소연(전주교대 수학과 3년)씨는 "인터넷에서 보고 이곳에 오게 됐다. 부산 감천문화마을도 가 봤는데 그곳은 현대적인 냄새가 났다. 하지만 여기는 옛날 골목 그대로 살려 놓은데다 타일벽화도 부착돼 있어 좋았다. 이와함께 아름다운 바다경치까지 함께 할 수 있어 너무 좋은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매영성 서문 벽화거리’를 들여다본다.
이곳 벽화거리는 여수의 옛길을 탐색할 수 있기도 하다. 1970년대 전후 골목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한 400여m 구간의 골목에 걸쳐 충무동주민자치위원회와 여수상공회의소가 벽화를 조성했다. 여기 골목은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듯 착각에 빠졌다. 이 벽화거리는 진남관 끝자락에서 접근하는 방법과 교동오거리 일대에서 대정(大井)을 통해 접근하는 루트가 주로 답사객들이 택하는 방법이다. 천사벽화마을 만큼 알려지지 않아 답사객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진남관 입구에서부터 적극적으로 홍보에 나서야 할 것으로 보였다. 필자 역시 가이드가 없었다면 이곳 벽화거리는 놓칠 뻔 했다. 대정은 대한제국 광무 2년때 우물을 판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교동과 충무동 경계에 있는 대정은 관리부재에 노출돼 있었다. 안내이정표도 없어 초라하게 방치돼 있었다.
대정을 끼고 골목길을 오르는 길에 멀리 남도장이 보였다. 일제시대 지은 건축물이지만 현재 주민이 거주하고 있는 시설임에도 그 퇴락이 눈에 띌 정도였다. 적극적 관리를 통해 여수시 근대문화자산으로 편입시키는 것도 하나의 보존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박물관이나 갤러리로의 활용을 모색하면 어떨까.
이곳은 고소동 천사벽화마을의 타일보다 훨씬 더 많았다. 처음부터 여수시에서 기획했다고 한다, 처음에 초등학생들이 참가비를 내면서 참가해 제작한 타일 벽화들을 부착했다. 고사리손들이 만든 벽화들이라 앙증맞았다. 지금은 조금씩 알려지고 있는 단계로 충무동에서 추억의거리로 콘셉트를 잡아 보강하고 연계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찾을 것으로 예상되는 곳이다. 신기초 권경서, 안심초 박아현 등 어린이들의 순진난만한 화면을 만날 수 있다. 이 타일들은 2015년에 제작한 게 많았다. 추억의 뻥튀기 그림이나 해바라기, 말타기 그림에다 함석문이나 나무문이 정겨워 보였다.
이 골목에는 예전에 선주(船主)들이 많이 거주하는 등 부자동네였다 한다. 물론 지금은 퇴락한 공간이지만 벽화로 다시 꿈틀대고 있다 할 수 있다.
여수고나 여수공고, 여수중, 여수여중 등의 학생들이 모두 이 골목으로 다녔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학생들의 정서를 형성하는데 유무형적 영향을 끼쳤을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럼에도 이곳에 다양한 콘셉트의 벽화들이 조성됐으니 유무형적 가치들이 얼마나 클까를 생각했다.
왜적을 방어하기 위한 시설물이었던 해자(서문)터와 서문독다리터 표지도 만날 수 있었다. 매영성의 매는 전라좌수영이 봄이 되면 매화꽃이 많이 피었던데서 유래됐다.
벽에는 그림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시 등도 새겨져 있었다. 계단을 타고 내려가는 길목에서 만난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적에,/ 어디서 일성 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한산도가)나 ‘만약 권세와 부귀에 아첨해/일시적인 영화를 훔치는 것이라면/나는 그것을 매우 부끄러워할 것이다’(충민사기), ‘사즉생 필생즉사’(死則生 必生則死:죽으려고 나아가면 살고, 꼭 살려고 하면 죽는다)는 한참 동안 그 의미를 되새기게 만들었다.
또 ‘오늘 해야 할 일은/오직 나아가서/싸우다가 죽는 것이다/감히 나아갈 수 없다고 말하지 말라’(이충무공 행록)도 마찬가지다.
이곳 벽화거리는 대정에서 출발할 경우 곳곳에 패인 시멘트길과 벽화가 듬성 듬성 조성돼 있어 연속적이지 못하다는 한계가 드러난다. 더욱이 골목 일방로로만 벽화가 조성돼 있지, 골목 골목마다 벽화가 조성돼 있지 않아 풍성하지 못한데다 아이디어 넘치는 체험형 벽화가 보이지 않는 점 역시 한계로 다가왔다. 전봇대를 활용한 벽화는 긍정적이었으나 폐가 등에 쓰레기가 방치돼 눈살을 찌뿌리게 했다.
진남관 및 고소동 천사벽화마을과 연계할 수 있는 방안이 시급해보였다. 대정부터 종포해양공원까지 벽화골목이 이어질 경우 최장 거리의 벽화골목이 될 뿐더러 관광객들을 더 많이 유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만약 이것이 현실화될 경우 골목활성화가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도심걷기 좋은 길로도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관광도시인 미항 여수가 이들 벽화골목을 통해 더 많은 관광객 유치와 문화외연을 넓힐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지 주목되고 있다.

고선주 기자·사진 최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