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 앞선 발걸음은 무향의 위상을 쌓았다.
1971년 조선대학교 체육대학에 무용과가 창설, 무용인재들을 지역에서 길러냈고 그로부터 5년 뒤인 1976년 광주시립무용단(현 시립발레단·이하 발레단)이 창단되면서 무용인들의 춤출 판을 깔았다. 이는 광주 무용계는 물론 한국 발레 역사에 크게 기록될 만한 일로 평가된다.
특히 문화의 중앙 쏠림이 지금보다 더 심했던 때 지역에서 최초로 이룬 성과들이기에, 더 빛이 난다.
이 같은 탄탄한 인프라를 갖춘 광주 무용계는 1990년대 전성기를 누린다. 광주문화예술회관이 개관하면서 광주 무용이 르네상스시기를 맞았고, 이러한 기반을 바탕으로 세 차례에 걸친 광주국제발레페스티벌을 성공적으로 개최, 광주를 ‘무향’의 고장으로 널리 알렸다.
창간 특집 ‘광주무용 경쟁력은 어디서’의 두 번째 주제는 두드러진 성과들이다.
춤의 불모지에서 무향이란 타이틀을 쥐기까지. 광주 무용이, 그리고 무용인들이 함께 이뤄낸 성과들을 꼽아본다.

△‘시민의 발레단’ 40여년 발자취

1976년 발레단이 창단, 빛을 볼 수 있었던 것은 무용인들의 끊임없는 노력 덕이었다. 당시 광주시가 주관하는 공식 행사에는 식전 행사로 꼭 발레공연이 올랐다. 발레에 지원이 뒤따르기 위해서는 장르에 대한 ‘이해’가 앞서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조선대 무용과 창설에 힘을 쏟았던 박금자 선생은 "새벽밥 먹고 공연을 준비했던 때"라고 기억했다. 대학에선 무용 인재들이 커 나가고 있는데, 이들이 춤출 곳이 없다면 무용지물과 다름 아니라는 것이 그와 당시 무용지도자들의 생각이었다. 지역에서 인재들을 품어줄 발레단이 없다면 "지역에서 열심히 키워서 서울로 내보내는 형국"을 벗어나지 못했을 터. 무용인들은 지속적으로 시민들에게 발레 작품을 선보임으로써 ‘시민의 발레단’으로의 신호탄을 쐈다.
이에 당시 전석홍 시장은 시립발레단 창단을 약속했고, 무용인들은 ‘광주시민의 날’ 공연을 ‘광주시립무용단 창단 공연’으로 규정하고 무대에 올랐다.
초기 발레단은 박금자 교수가 중심이 돼 조선대 출신의 무용수들이 단원으로 입단해 꾸려졌다. 전국 각종 콩쿠르를 석권한 임지형, 김봉순, 전영미 등이 발레단 주역으로 활약했다. 이들을 중심으로 재학생들이 함께 작품을 올렸다.
지난해 창단 40주년을 맞은 발레단은 그간 다양한 작품들로 국내외 발레팬들을 만나왔다.
특히 ‘돈키호테’, ‘지젤’, ‘카르멘’, ‘고집쟁이 딸’, ‘신데렐라’,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등 완성도 높은 고전 발레를 선보여 한국을 대표하는 발레단으로서 입지를 다졌다.
해외에서는 미국 시카고 센터 이스터 극장, 샌프란시스코 허브스트 시어터, 일본 후쿠오카 모모치 팔레스 극장, 중국 북경시 천교극장, 항주시 항주극원에서의 공연을 통해 한국의 우수한 공연 문화와 독창적인 예술성을 보여줬다.
또한 ‘회귀’ ‘오월의 빛’ ‘레퀴엠’ 등 모던발레와 ‘춘향’, ‘심청’, ‘장희’, ‘우수영의 원무’, ‘명성황후’ 등 한국적 감성을 더한 창작발레를 올려, 발레계의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광주 발레 ‘세계로’…명칭변경으로 정체성 확고히
발레단은 단순히 ‘직업무용단’으로서의 활동에 그치지 않았다. 1991년 광주문화예술회관 개관을 계기로 제2도약의 시기를 맞은 발레단은 제대로 갖춰진 무대조건과 유능한 단원들을 자산삼아 국제적 활동에 더욱 박차를 가한다.
발레단 단원들과 발레단 출신 무용인들은 ‘광주 발레’ 알리기에 뜻을 모아 광주무용아카데미를 꾸린다. 이들은 동양 최초로 1994년 국제발레페스티벌을 지방 도시인 광주에 유치, 성공적인 행사를 치른다.
‘한국의 발레를 세계로, 세계의 발레를 한국으로’란 기치 아래 열린 페스티벌에는 볼쇼이 발레단, 러시아 국립발레단, 스타니스라브스키발레단, 조프리발레단, 중국 세트럴 발레단 등 국제적인 무용단의 공연이 펼쳐져 무용인들과 시민들의 큰 환호를 받았다. 이와 함께 국내 내로라하는 직업발레단과 대학 소속 무용인들이 광주를 찾아 ‘무향’ 광주의 위상을 확인했다. 당시 1000명이 넘는 발레인들이 참가, 국제 공연·심포지움·워크숍을 동시에 개최해 발레의 향연을 다채롭게 펼쳤다는 호평을 받았다.
이듬해 열린 ‘광주발레국제콩쿠르’ 또한 지역 발레계가 이뤄낸 성과로 손꼽힌다. 발레단은 한국 창작무용 작품인 ‘우수영의 원무’ 전막을 무대에 올려 세계적인 발레 지도자들로부터 박수를 받았고, 오윤환, 박선희씨가 파드뒤 부문 동메달의 영예를 안았다.
이 같은 지역 발레계의 노력은 ‘광주시립무용단’이 ‘광주시립발레단’으로 그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데 밑천이 돼 줬다. 무용 전반의 균형발전을 위해 ‘광주시립무용단’으로 출발한 단체는 1980년대 후반부터 발레 작품을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전문 ‘발레단’으로의 도약을 꾀했다.
특히 광주문화예술회관 개관 이래 대형 클래식 작품을 올리고, 국제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낸 이후 발레단으로의 명칭 변경을 건의, 노력한 끝에 2015년 광주시립발레단으로 공식명칭이 변경되기에 이른다.

△전국무용제서 ‘무향’ 위상 알리다
전국무용제는 광주를 전국에 ‘무향’으로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1995년 제4회 대회에서 광주발레단(김유미) ‘아가야 이 세상엔’으로 대통령상 수상의 포문을 열어젖혔다. 이어 제7회 대회에서 광주발레단(박금자)이 ‘가을 소나타’로 또 한 번의 대통령상과 안무상(공병태)을 수상한다.
또 임지형현대무용단&광주현대무용단이2003년(제12회), 광주현대무용단이 2005년(제14회) 김미숙하나무용단이 2007년 (제16회), 광주로얄발레단이 2011년(제20회), 광주현대무용단이 2012년(제21회), 서영무용단이 2013년(제22회) 대통령상 수상 행진을 잇는다.
금상인 우수상도 광주현대무용단이 1996년 (제5회), 김미숙하나무용단이 2004년(13회), 박금자발레단이 2006년 (15회) 광주현대무용단이 2009년 (제18회) 등 6번의 영예를 안는다.
지난해 대전시립연정국악원에서 열린 제25회 대회에서는 광주 대표로 출전한 ‘뿌앙뜨발레단’이 대통령상, 안무상, 연기상, 무대예술상 등 4관왕을 차지하며 단체상은 물론 개인상도 휩쓸었다.
이로써 광주는 25회 치러진 전국무용제에 나가 대통령상 9회, 금상 6회, 은상 6회 등 총 21회 수상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현재까지 대통령상은 대전팀이 4회, 충남과 대구팀이 각 2회, 부산·충청·인천·전남 등이 한 차례씩 수상한 바 있다. 광주 무용인들이 써 온 역사는 현재까지 전국무용제 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춤 불모지에서 무향 광주로 발돋움하기까지, 시립발레단이란 큰 중심축과 실력 있는 사립무용단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춤의 고장이란 타이틀을 빛내는 지역 무용인들의 하나 된 힘이 지역 무용계 발전을 견인하는 데 가장 큰 원동력이 돼 준 셈이다.

박세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