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길이 35.5cm의 작은 몸체. 그러나 4옥타브 이상 음역대를 무리 없이 소화 하는 당참이, 풍부하고 다양한 음색을 연출하는 아름다움이 있다. ‘악기의 여왕’이라 칭송받는 바이올린 이야기다.
바이올린은 부드럽게 노래하는 대표적인 선율악기다. 특히 여러 음을 부드럽게 하나로 아우르는 표현력은 인간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성악’에 견주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긴 호흡을 이용한 화려한 기교·섬세한 선율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대중적인 악기로 꼽힌다.
박신영 광주시립교향악단 제1바이올린 수석을 만나자, "꼭, 바이올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체구에서도 은근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다섯 살 때 바이올린을 켰다는데, 활을 움켜쥔 야무진 꼬마의 모습이 쉬이 그려진다.
"유치원에서 바이올린을 배웠어요. 원래 어머니 아버지가 음악에 많은 관심이 있으셨는데, 딸에게 바이올린을 시키고 싶어 하셨죠. 또 처음 접한 제가 유난히 잘 따라하고 선생님들도 재능이 있다 하시니, 더 욕심을 내신 것 같아요. 그렇게 시작한 것이 벌써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뭣 모르고 시작했다며 겸손하게 말했지만 그는 어렸을 적 ‘영재’ 소리를 듣는 아이였다. 타고난 음악적 끼가 있었던 데다, 스스로 재미를 느껴 연습도 게을리 하지 않았으니 잘될 ‘떡잎’이었음이 확실했던 것.
그런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반에 들어간다. 현재 ‘예술 영재원’이 그곳이다. 이곳은 예술적 끼가 다분한 영재들을 뽑아서 조기교육을 시키는 곳인데 그가 바로 첫 회 입학생이다.
"당시 연습을 하루에 7~8시간씩 했어요. 연주를 시작하면 끝을 보는 스타일이었죠. 그런 욕심덕에 전국 콩쿠르에서 늘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연습을 하고 그것이 가시적인 성과로 드러났을 때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어요."
다섯 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켠 그이지만, "아 진짜 재미있다"고 스스로 느낀 때는 고등학교 때 부터였다. 혼자 고된 연습을 하면서는 힘들고 외로운 일도 많았지만 무대에 설 때면 그 마음이 싹 가셨다.
고등학교 1학년, 콩쿠르에서 파가니니의 ‘카프리치오’를 연주할 때 일이다. 열심히 바이올린을 켜는 데 줄이 툭 풀려버렸다. 보통 당황한 나머지 줄이 풀린 채로 연주하거나 연주를 멈춰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박 씨는 줄을 다시 맞추고 연주를 새롭게 시작했다. 연주에서 자신감이 중요하다는 것을 몸소 깨닫는 계기가 됐다.
"연주를 앞두고는 늘 긴장을 하지만 무대에 서면 희열을 느꼈어요. 그건 어렸을 때부터 이어져 온 저만의 장점인 것 같아요. 무대에 서서 관객들을 바라보면 내가 ‘주인공’이 된 느낌이죠. 또 연습을 하면 할수록 바이올린과 내가 한 몸이 되는 것 같은, 편안하고 더 없이 익숙한 기분이 들 때가 있거든요. 옛 선인들이 느꼈던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가 그런 것 아니었을까요?"
바이올린이 자신이었고, 자신이 바이올린이었던 시절이 이어졌다. 그는 한예종 예비학교에 다니다가 고등학교 2학년때 한예종에 조기입학에 성공한다. 특별전형 영재 오디션에 합격한 그는 18살 어린나이에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외로움이었다. 대전이 고향인 그는, 가족 품을 떠나서 홀로 자취를 시작했다. 그는 그 시절을 "더 바이올린만 켰던 때"라고 기억했다.

바이올린은 현악기 중 가장 고음역대를 소화하는 악기다. 그러다보니 편견 아니 편견도 있다. 노상 고음에 노출돼 있다 보니, 바이올린 연주자들이 유독 예민하다거나 까칠하다는 것. 박 연주자는 어떤 편이냐 사견을 묻자 "그런 것 같다"고 웃으며 인정한다. 바이올린 자체가 너무나 예민한 악기이다 보니, 연주자들도 이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바이올린은 주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 악기에요. 음정도 아주 예민해서 다른 악기보다 더 많은 연습량이 필요하죠. 뿐 아니라 ‘좋은 소리’를 찾는 것도 힘들어요."
박씨가 생각하는 좋은 소리란, 무엇보다 악보에 충실한 연주다. 악보는 작곡가의 세계가 오롯이 들어가 있다는 믿음이 그에겐 있다.
현대음악으로 올수록 바이올린의 연주 주법도 다양해 진 것이 사실이다. 활을 켜는 것 뿐 아니라, 몸체를 두드리거나 줄을 뜯는 연주방식도 있다. 악보를 해석하는 일도, 연주자의 성향에 따라 보다 자유로워졌다. 그러나 박씨는 연주자란, 작곡가가 의도한 바를 고스란히 청중에게 전달할 때 빛이 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악보에 완전히 집중할 때야 말로, 연주자가 가진 진정성이 자연스레 우러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선율에는 연주자의 성격과 감성이 드러나거든요. 차분한 사람은 악기 소리도 조금 차분하게 나오고, 활달한 사람은 시원시원한 연주가 특징으로 꼽히죠. 저는 늘 시원스러운 연주를 해 왔는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조심스러운 연주가 나오는 것 같아요. 아마 깊이 있는 소리를 향한 열망 같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박씨는 유학을 다녀오지 않은 순수 국내파 연주자다. 어린 나이부터 한예종 영재반에서 교육을 받은 그는 이성주 한국예술중합학교 교수를 사사했다. 워낙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보니, 유학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은 그다. 실제 유학을 안가는 동기생들이 많았다.
광주와 연을 맺게 된 데는 2011년 광주시립교향악단 바이올린 수석으로 오게 되면서부터다. 동료들과 호흡을 맞춘 지 벌써 6년째다.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앙상블이에요. 여러 연주자가 한 마음으로 선율을 맞춰가는 것이잖아요. 상대방의 악기에 더 귀 기울이면서 듣고, 부족한 부분을 메워가는 것이죠. 연주 전엔 악보 공부도 많이 하고요."
그는 광주시향에 김홍재 지휘자가 온 뒤, 분위기가 더 좋아졌다고 전해준다. 연주자들은 어느 때보다 의욕적이다. 제2의 클래식 부흥기를 열겠다는 김 지휘자의 뜻에 동참하는 움직임이다.
다만 광주문화예술회관의 무대 환경은 아쉬운 부분이다. 시설이 노후화 돼 있을 뿐 아니라 오케스트라 연주에서 가장 중요한 음향시스템이 열악한 상황이라, 제대로 된 소리가 나오질 않는다.
"음향이 너무 건조해요. 아름답게 퍼져 나가지고 않고 뚝 끊기는 느낌이죠. 때문에 연주자들은 더 많은 힘을 들여서 연주해야하니 힘들죠. 이번에 서울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교향악축제’에 다녀왔는데, 음향장비나 무대 환경이 정말 좋더라고요. 광주에도 오케스트라 전용 극장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오케스트라가 성장하기 위해선 좋은 극장이 필요하거든요 시 차원에서 많은 지원이 뒤따라야 할 부분이죠."
그의 연주활동은 ‘바로크솔리스텐’에서도 활발하다. 광주시향 단원들과 한예종 출신 연주자들이 뜻을 모아 결성한 실내악 앙상블 ‘바로크솔리스텐’의 리더인 그는 다채로운 레파토리의 연주곡을 선사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클래식의 가장 큰 매력은 ‘피곤하지 않다’는 것 같아요. TV를 보거나 또 책을 읽는 것도 오래보면 피곤하거든요. 하지만 클래식은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이 편안해지죠.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바이올린을 붙들고 산 이유이기도 하죠. 앞으로도 더 많은 관객들과 소통하고 싶어요. 교향악단의 주요 멜로디를 책임지는 게 바이올린의 역할이듯, 저 또한 클래식의 매력을 선사하는 연주자의 역할에 매진해야겠죠?"

박신영 광주시립교향악단 제1바이올린 상임수석은
△만4세 바이올린 시작 △만9세 대전시향 협연 데뷔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영재 선발 △한국예술종합학교 독주자 과정 졸업 △부산음악콩쿠르·한국음악협회 콩쿠르·오사카 국제콩쿠르 등 다수 입상 △현재 광주시립교향악단 제1바이올린 상임수석·바로크 솔리스텐 리더.

박세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