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시외버스터미널이 자리해 광주 관문시장으로 통했던 대인시장. 이곳이 퇴락의 그늘을 벗고 문화예술계 안팎의 관심을 다시 받기 시작한 것은 2008년이다. 2008년 광주비엔날레 ‘복덕방 프로젝트’가 이곳에서 구현되면서다. 재래시장과 예술의 만남이 실험됐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았지만 이때 실험은 충분한 가능성을 대내외에 제시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이는 장터가 본격 예술공간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 사례가 됐다. 즉 생활터전과 예술이 10년씩 공존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2008 제7회 광주비엔날레’ 제1세션 제안(Position Paper)전의 하나로 마련된 ‘복덕방 프로젝트’는 장바구니 들고 즐기는 전시장이라는 점에서 획기적 전시기획으로 평가를 받았다. 지역미술인과의 교류 및 지역민들과의 ‘소통’을 꾀하는 자리로 주민들과 다양한 연계를 모색하기 위한 시장상인들이나 그곳을 지나는 시민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등 예술적 접점을 도모하자는 취지였다.
당시 ‘복덕방 프로젝트’는 ‘시장구경 프로젝트’, ‘열망 천개만개 꽃을 피우자’, ‘1코 2애 3날개 4살’, ‘파프리카 프로젝트’, ‘3355 Plan-E : 즐거운 집창촌’ 등으로 구성돼 작업이 이뤄졌다. 작가로는 구헌주 마문호 박문종 백기영 신호윤씨 등이 참여했다. 큐레이터는 박성현씨가 맡아 진행됐다. 빈 점포를 예술가들이 작업실과 전시공간으로 활용해 예술계 안팎의 주목을 받았다.
시장 측에서는 어차피 놀릴 수 밖에 없는 점포가 입점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어 좋고, 작가들은 작업 공간의 다변화를 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생효과를 거둘 수 있있다.
또 시장 측에서는 유인효과를 거둘 수 있는 장치가 하나 생기는 셈이었다. 시장에서 예술이 구현되고 있는데다 예술작품까지 감상할 수 있을 뿐더러 평소 흔하게 접하기 힘든 예술가들의 작업모습도 구경할 수 있어 여러모로 긍정적 효과를 불러왔다.
시장 측에서도 문화향유를 위해 방문하는 사람들이 시장의 물건을 하나라도 더 구입하게 되면 아무래도 시장 활성화에 도움이 되니까 마다할 리 없었다.
복덕방 프로젝트가 실행될 무렵도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상권과 무관한 공간 혹은 퇴락한 골목에서 많이 실행됐던 것이 관례였다. 대개 예산이 소진되면 스톱되는 등 일회성에 그치거나 단순한 방식의 벽화 작업 등으로 구현되곤 했다.
하지만 복덕방 프로젝트는 도심 한 복판 재래 시장 안에서 구현된데다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안고 있는 한계를 일거에 모두 뛰어넘게 되면서 예술과 시장, 예술가와 상인이 ‘매개’로 해 공존할 수 있고 상생을 끌어낼 수 있다는 점을 어느 정도 확인시켜줬다.
이 복덕방 프로젝트가 실행되면서 대인시장은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광주비엔날레 제안전 참여 작가외에도 5명의 작가들이 빈 점포를 활용해 작업실을 열었다. 당시 퇴락하던 시장에는 예술이 유입되면서 활기가 넘쳤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매개공간 미나里가 2008년 5월 개관 전시에 이어 아트마켓 3회를 실시하면서 복덕방 프로젝트의 견실한 정지작업이 된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이처럼 예술과 시장이 만나 하나의 롤 모델로 자리잡아 나간 것이다. 복덕방 프로젝트의 성공적 실험으로 인해 대인시장은 다른 재래시장과는 결을 달리 할 수 있었다. 광주에서 유일하게 시장 명칭에 예술이 들어간다. 그래서 대인시장이 아닌, 대인예술시장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복덕방 프로젝트에 이어 실행된 것이 2009년 ‘대인예술시장공방거리조성사업’으로 통칭된 대인예술시장 프로젝트였다. 박성현 총감독이 서민들의 풋풋한 땀내가 나는 공간인 대인시장에 활력을 불어넣는 동시에 아트와 생활현장의 접목을 꾀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 북카페, 미나리상회, 대인역, 프린지 공연, 아트마켓, 공공미술 프로젝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구현됐다.
복덕방 프로젝트가 예술과 시장의 연계 실험이었다면 이 프로젝트는 예술의 본격적인 이식작업이 펼쳐졌다고 볼 수 있다. 2008년과 2009년 2년 동안 예술 실험이 성공적으로 구현되고 안착되면서 국내 최고의 예술시장으로 급부상할 수 있었다.
지난해에는 현장미술학교인 대인예술학교가 호응을 얻었다. 어린이 과정인 ‘꿈틀꿈틀 찰흙 공작소’와 청소년 과정인 ‘담쟁이 프로젝트’로 나눠 진행됐다. 기존 야시장에 ‘별장’이라는 브랜드네임이 더해졌던 2014년에는 학생과 예비창업자, 예술가가 실험적인 아이디어를 실험하고 구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민문화창작소’(maker’s studio), 대인예술시장 투어프로그램인 ‘소풍유락’ 등을 마련해 호응을 이끌어냈다.
2008년부터 대인시장은 대인예술시장으로 꾸준한 변화를 꾀하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올해가 예술시장으로 변화를 꾀한 지 10년째다. 10년 동안 한 공간이 하나의 목표와 가치를 향해 변함없이 나간다는 것은 어렵다. 그렇지만 대인예술시장은 그 목표와 가치를 향해 쉼없이 달려왔다.
현재 대인시장은 2017 아시아문화예술활성화 거점 프로그램인 ‘대인예술시장 별장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 가운데 2018년까지 계속된다. 감독은 전고필씨가 맡고 있다. 초창기 박성현 감독부터 전고필 감독에 이르기까지 감독들의 성향에 따라 그 색깔은 갈렸다. 참고로 2009년에는 박성현 감독이, 2010년에는 전고필 감독이, 2011∼2012년에는 정민룡 감독이, 2013년에는 신호윤 감독이, 2014년에는 전고필 감독이, 2015년에는 정삼조 감독이 거쳐갔다. 예술가만을 위한 사업이 펼쳐지기도 했고, 철저하게 시민들에 초점을 맞추기도 했다. 예술과 시민이 조화되도록 하는 노력도 펼쳐졌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에 비해 시장내 순수 예술공간 구축이나 조형물 설치 등은 미진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야시장 별장과 유별난예술극장, 옴서감서 체험장, 빛고을 아우라가 시장활성화를 위해 가동 중에 있고, 한평갤러리 전시 진행 및 대인문화창작소 ‘지음’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 행사중 방문객 동원에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해온 야시장은 지난 2월18일 첫 번째 순서를 선보였으며 오는 12월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시장에서 한바탕 문화난장을 펼친다.
대인예술시장의 윤활유 역할을 자임해온 야시장은 초창기인 2011년 시범사업 이후 2012년 6차례, 2013년 7차례, 2014년 7차례 진행하는 등 좋은 반응 속에 성공 가능성을 내비쳤다. 2011년 시도된 뒤 2012년을 기점으로 활성화됐으며 2014년에 이르러 지역의 핵심 문화콘텐츠 사업으로, 성공한 사례로 꼽혔다. 지난해 46회에 걸쳐 운영된 야시장은 35만 1182명이 다녀갔으며, 예술가와 셀러 참가자는 7700팀으로 나타났다. 야시장에는 매달 2만4000~3만8000여명이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처럼 2월부터 12월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열릴 수 있는 근거가 됐음은 두말할 나위없다. 전국에 광주 대표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많은 국내 시장들이 벤치마킹해 진행 중에 있다.
야시장이지만 예술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 명성은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다. 시장과 어울리는 프로그램들을 현재보다 더 개발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더욱이 먹거리 위주로 가고 있는 야시장의 현 상황들에 대한 진단도 요구되고 있다.
대인예술시장의 미래에 대해 정해진 답은 없는 상태다. 문제는 2019년부터 어떻게 할 것인가냐다. 아무런 대책없이 내년 1년을 보내게 되면 대인예술시장은 그야말로 2008년 이전으로 회귀할 수 밖에 없다. 그냥 수많은 재래시장 중 하나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다.
남광주시장이나 1913송정역 시장이 대인예술시장과 같은 목표로 나가고 있다보니 아무래도 대인예술시장의 야시장 또한 예전만 못하다는 게 상인회 관계자의 전언이다. 대인예술시장으로 집중되던 셀러들이 분산됐기 때문이다.
대인시장은 2016년 12월 기준 영업점포 340개, 빈점포 20개 등 총점포 360개로 600여명이 종사하고 있다. 이처럼 작지 않은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별장 사업이 끝난 이후를 위한 대비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유일하게 2018년 이후를 대비하는 모임체가 야시장 협의체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이 야시장 협의체는 2016년 정기총회때 정관 규정을 통해 결성됐지만 승인은 올 3월이었다. 회원들을 대상으로 기금을 걷고 있으나 지자체의 예산 지원 없이는 자생력 확보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별장에서 소정의 금액 혹은 전문인력 1명을 지원해줬으면 하는 바람을 숨기지 않았다. 예술을 가미한 특화시장에는 의견 일치를 보이지만 세세하게 들어가 시장에서의 예술구현 방식은 확연하게 차이가 나고 있어 이 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경주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 임대료가 오르면서 입주작가들 중 상당수가 대인시장을 떠났다. 특히 대안문화공간인 ‘미테 우그로’가 시장을 떠난 것은 아쉬움이 크다. 예술계 안팎에서 대인시장내 예술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통했던 ‘미테 우그로’는 지역 문화예술 메세나(mecenat) 운동에 앞장서온 영무건설이 건물을 매입해 무상으로 제공해 운영이 가능했다. 2009년 문을 연 뒤 2016년까지 대인시장에 적을 둔 미테 우그로는 광주지역 작가들과 한국에 있는 각 지역 작가들의 네트워크 형성에 앞장섰고, 정형화된 전시 탈피, 공연과 퍼포먼스 진행 등 다원적인 전시 및 예술행사들을 실행시켰으며, 젊은 작가와 예술가들이 발언하고 소통할 수 있는 플랫폼 구축 등에 기여해 주목을 받았다.
대인예술시장은 ‘2016광주비엔날레’ 1전시장에 작품을 출품했던 광주작가 박인선씨 같은 경우는 6년 동안 대인예술시장에 머무르며 작업을 펼쳤을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작업이력이 짧고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젊은 작가들에게는 한번쯤 고민해볼 수 있는 공간이 대인예술시장이었다. 그럼에도 예전만 못하다는 게 대체적 시각이어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진단이 이뤄져할 것으로 보인다.
야시장이 젊은 층 유입을 유도한데다 아트앤더치나 청소년문화단체 요리다방 등 실제 청년상점들이 하나둘 입점하면서부터는 시장이 다소 젊어졌다. 대개 연세 든 분들 중심이던 시장이 젊은 청년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흐름을 어떻게 지속시켜 나가야 할지 시장 관계자들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나가야 한다.
거의 버려지다시피했던 웰컴센터 문화스토리는 상인회가 정비해 시장의 안내소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
상인회 자체적으로 지난해 ‘추억의 7080충장축제’ 때 코리아 세일 페스티벌을 통해 활성화를 꾀했다는 상인회 문병남 회장은 "다른 시장과 달리 예술이 접목된 전통 장터로 예술시장이 계속돼야 한다. 2018년에 별장이 끝나기 때문에 내년에라도 광주시청에 지원을 요청할 계획이다"면서 "상인회와 별장이 연계돼야 하지 지금처럼 따로 놀게 되면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만큼 연계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함께 벽화들의 재정비 역시 시급해보인다. 시장 내 주차장 벽에 새겨진, ‘무등산 폭격기’로 불렸던 선동렬(전 해태 타이거즈 선수·기아 타이거즈 감독)이나 해태 타이거즈 대 롯데 자이언츠 간 전광판 벽화는 담장 붕괴를 막기 위한 펜스 설치로 감상하기 어려울 뿐더러 탈색이 점점 심해져 있어 다시 도색을 하거나 하는 등의 대책이 뒤따라야 한다. 시장 4곳의 입구에 예술조형물 설치도 고려해볼만한 사안으로 사료된다.
특히 시장내에서의 예술구현 방식이 전시하고 공연하는 쪽에 방점이 찍히다 보니 시장 골목이 조금 더 아트적인 성향을 강화하는 데 미진해보였고, 대인수산시장 빌딩 5층에 자리한 레지던시 공간인 지음이 2명 정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입주하지 않은 채 방치되다시피해 조금 더 내실있는 운영이 요구됐다. 예산문제가 컸으나 그렇다고 입주공간이 입주하기 어려울 정도의 열악한 상태라면 그것은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 공간은 미테 우그로나 예술인협동조합 다다 등이 활발하게 거점공간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지음에는 서현호 작가 등 2명의 작가가 입주작가로서 그곳에 머물며 성실하게 작업을 수행 중이다. 이중 서현호 작가는 각 인물 200명 이상을 작업해 시장 천장에 내걸어 전시를 할 계획으로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레지던시 공간이 제대로 작동하고 시장내 예술가의 작업모습을 방문객들에게 선을 보이기 위해서는 입주조건을 갖춰가는 노력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다시 되새기게 한다.
별장 프로젝트에 따르면 한정된 예산과 예산들의 용도가 미리 짜여진 상황에서 각 예산을 조금씩 활용해 사용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2012년 6월8일 문을 연 한평갤러리는 대인예술시장 내 태부족한 문화공간의 대표명사 같은 곳이지만 척박한 시장터에서 전시공간이 얼마나 뿌리 내리기가 어렵고, 감상자를 확보하기가 어려운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지난 5월 하순 찾은 전시장에서는 ‘생동을 전하다’전이 열리고 있었다. 지난해 한평갤러리에서는 11회 전시가 열렸고, 총 205명의 작가가 크든, 작든 출품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대인예술시장은 다른 재래시장과 달리 예술을 접목해 활성화의 단초를 찾고자 꾸준히 노력해왔다. 하지만 예산이 투여된 뒤 그 예산이 소진되면 스톱되는, 일회적인 것보다는 항구적인 활성화 접근이 요구되고 있다.
전시나 공연의 연중 가동도 중요하지만 시장의 자생력을 높여야 하는 콘텐츠 구축 및 시장 상인과 셀러, 예술가의 결집체를 통해 추출된 사안·아이디어·프로그램을 취합해 공통적으로 겹치는 것들의 우선 실시를 통한 유무형적 예술시장 조성에 나서야 할 시점으로 보인다.
누구를 위한 예술시장인가에 대한 타깃 설정을 분명히 하고, 어떻게 관계자들간 상생과 만족도를 끌어올릴 것인가에 대한 고민 역시 전제돼야 한다.
별장을 이끌고 있는 전고필 감독은 대인예술시장이 더욱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자생력 확보와 창작산실 자리매김 등을 꼽았다.
그는 10년 동안 사업이 지속돼 왔는 데 자생성 확보가 관건이라고 전제한 뒤 "예술가들의 생태계 면에서 창작의 산실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새롭게 정립돼야 하고, 작은 지원금이 아닌, 거점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되고 광주문화재단의 활성화 사업과도 연계돼 교두보가 구축돼야 한다"면서 "이곳의 기획인력들이 지역 곳곳의 현장에서 발판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고선주 기자 사진=최기남 기자 admin@jld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