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는 예부터 춤 잘 추기로 소문난 고장이다. 1970년대부터 광주무용의 기반을 닦기 위해 힘 써 온 선배 무용인들의 노력 덕이다. 그 탄탄한 춤판에서 무용인들은 마음껏 춤을 췄다.
환경은 열악했으나 잘 만들어진 콘텐츠는 빛이 났다. 잘 갖추어진 인프라가 무용의 발전을 이끌었다기보다는, 어디서든 최선의 몸짓을 선보였던 무용인들의 땀방울이 ‘무향’이란 명성을 이어왔음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최근 ‘무향의 위기’를 입에 올리는 이들이 많아졌다. 공연예술계에서 무용 장르가 갖는 입지가 사실상 좁아진데다 광주를 대표하는 주역들의 성장도 더디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광주만의 브랜드라고 꼽을만한 대표작이 부재 한다는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와 함께 지역 무용인들의 불협화음은 무향의 위기를 부채질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지난날 하나 된 무용인들의 저력이 오늘날 그 동력을 잃은 듯 보여 우려스럽다.
창간 4주년 특집 예술기획 ‘광주무용, 경쟁력은 어디서’ 마지막 주제는 지속가능한 경쟁력 방안 모색이다. 무향의 타이틀을 잇기 위한 과제·제도적 지원‧개선 방안 등에 대해 짚어본다.

△광주 고유 작품 선보여…정체성 확고히
우선 광주 무용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문화콘텐츠 개발이 과제로 꼽힌다. 광주 무용계는 시립무용단(현 발레단) 창단 초기부터 한국적 창작발레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한국적 정서와 클래식 발레를 접목한 ‘춘향’, ‘심청’, ‘장희빈’, ‘우수영의 원무’, ‘서동요’, ‘명성황후’ 등이 그것이다.
지역 발레단으로서 광주무용만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차별화 전략이다. 서양 무용인 클래식 발레를 단순 ‘카피’해서 올리는 것이 아니라, 한국 고유의 색을 드러나게 하는 하나의 방안이었던 셈이다.
한국적 창작발레 뿐 아니라 ‘레퀴엠’ ‘회귀’ ‘오월의 빛’ 등은 광주라는 도시 정체성을 녹여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 같은 차별화 전략은 시립발레단이 지역을 대표하는 동시에 나아가 국립발레단이나 유니버설발레단과 실력을 견줄 수 있는 단체로 성장해 나가고자 했던 고민의 흔적들이다.
지역 무용인들은 광주만이 할 수 있는 브랜드 콘텐츠가 필요하다는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광주의 역사문화자원을 활용한 콘텐츠 등을 개발, ‘광주 무용’하면 떠오르는 작품을 선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새로운 콘텐츠의 작품화도 중요하지만 ‘일회성’ 무대로 끝나 버리는 것에 대한 문제도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아있다.
하나의 작품이 만들어지면 이를 지속적으로 수정·보완, 완성도를 높여 나가는 작업이 필요한데, 무대가 끝나고 나면 사장되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특히 무용 작품의 경우 무대‧세트‧의상 등 초기 투자비용이 많은 장르이기 때문에 단발성 무대로만 끝난다면 시간‧예산 대비 효율이 극히 낮아질 수밖에 없다.
광주 고유의 콘텐츠로 키워나가기 위해서는 창작품의 개발도 중요하지만 이를, 광주 브랜드 작품으로 끌고 나갈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발레단‧무용 교육계 ‘연대’…인재 유출 막아야
무용에 ‘광주다움’을 입히기 위해선 지역 춤꾼들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대부분의 공연예술이 단순 일회성으로 끝나버리는 데는 지역 예술인들의 제한적인 참여가 문제로 꼽힌다. 주역으로 무대에 섰던 초청 무용수들이 떠나버리면 이를 다시 재공연할 기회가 함께 사라지는 격이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 시립발레단의 작품에는 외부의 스타급 무용수들의 출연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대중적인 장르로 시민들에게 친근감을 주기에는 스타급 무용수 초청에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다만 스타 무용수들을 초청함으로써 지역 무용수들이 성장해 갈 기회가 박탈되는 것임이 간과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기회비용’을 인식하지 못한 탓이다.
한 무용계 인사는 “광주 무용 발전을 위해서는 ‘무향’의 타이틀을 지속가능하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제1의 과제는 실력 있는 인재들을 발굴‧육성‧포진 시키는 것”이라며 “스타들을 초청, 깜짝 흥행에 목메기 보다는 지역 무용수들을 주역으로 키워내는 데 주안점을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무용계는 실력 면에서는 여전히 광주가 선전하고 있다고 본다. 전국무용제 21회 수상이라는 단적인 예만 보아도 어느 지역에도 실력은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발레단과 교육 현장의 공조 체제가 긍정적으로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지역의 인재들이 이탈, 지역 무용의 경쟁력 약화를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실제 1976년 시립발레단 창단 초기에는 조선대 무용과와의 연계가 두터웠다. 당시 조선대 무용과장으로 재직 중이던 박금자 선생이 발레단 창단에 공을 세웠고, 초대 단장을 맡아 단을 이끌었다. 때문에 박금자 선생의 제자들이 졸업 후 광주에 남아 발레단으로 입단, 활동한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대학 뿐 아니라 무용학원과의 협력체계도 강할 때라, 지역 인재들이 타 지역으로 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현재 지역 대학‧사립무용학원 및 단체‧시립발레단과의 ‘공조 체제’가 무너져 있는 실정이다. 대학에서 인재들을 길러낸다고 하더라도 발레단으로 입단하는 것의 장벽이 높아진데다 ‘중앙’으로 가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져서 이전의 협력체계를 사실상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결국 우수한 인재들이 지역에 남지 못하고 모두 서울로 떠난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발레단 내 ‘아카데미’를 신설, 젊은 무용수들을 교육하는 장 마련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아카데미를 운영함으로써 무용 인재들을 길러내는 한편 ‘비상임단원’으로 활동하도록 해 졸업한 후에도 지역에 남아 춤을 출 수 있도록 판을 짜야 한다는 것이다.

△성공적 ‘세대교체’ 과제…대내외 ‘소통’의 장 마련도
앞서 살펴본 대로 경쟁력 확보의 핵심은 역시 ‘사람’이다. 어떤 콘텐츠이든 그것을 무대에서 빛을 내게 하는 것은 바로 춤꾼들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성공적인 ‘세대교체’가 무용 경쟁력 확보에 절실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무용인구가 줄어든 데다 인재들의 외부 유출이 많은 상황에서 지역 무용의 ‘젊은 피’ 수혈이 우선이기 때문.
이를 위해서는 광주시 차원에서의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시립발레단의 신규 단원 채용을 확대하는 한편 기존 단원들이 지도자‧안무자의 길로 들어설 수 있도록 새로운 길을 터주는 것 또한 예술단 운영 주최인 광주시의 몫이다.
행정‧제도적 지원과 함께 무용계 스스로 철저한 자기반성도 필요한 시점이다.
광주 무용계는 여느 예술 장르처럼 파벌이 있다. 누구의 제자이냐, 어느 대학 출신이냐에 따라 얽히고설킨 이해관계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발레단만 보더라도 어떤 사람이 수장으로 오느냐에 따라 예술단 내부가 들썩이고 이에 따른 내부 갈등도 야기된다. 이에 따라 ‘명예로운 퇴장’은 극히 드문 일이고 예술감독이 바뀔 때 마다 이전의 작품은 물론 해외 초청 공연‧사업들이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지는 게 현실이다. 이 같은 파벌 싸움으로 인해 무용인들의 피로감이 극에 달해 있는 실정이다.
발레단 뿐 아니라 광주무용제나 지역 주최 콩쿠르에서도 ‘파벌’에 따른 불공정 시비도 종종 목격된다. 아무리 열심히 실력으로 겨뤄도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하는 것만 같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온다.
지역에서 40여년 활동한 한 무용인은 “무향으로 꽃 피웠던 광주 무용의 위상을 쥐고 가기 위해선 무용인들 스스로가 자부심을 가지고 하나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무용인들 간 정기적인 만남의 장을 마련, 현 시점에서의 과제‧자강책 등을 논의하고 이 같은 현장의 목소리를 문화예술 정책에 힘을 실을 수 있도록 하는 소통 창구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세라 기자 admin@jld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