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를 예로부터 ‘문향’이라고 지칭해왔던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근대 이전의 시기는 차치해두더라도 근현대 문화예술의 자산들이 전국 어디다 내놓더라도 결코 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광주는 닉네임이 많은 도시가 됐다. ‘문향’ 외에도 ‘미향’이니 ‘무향’, 그리고 문화예술과 관련은 없지만 ‘의향’, 평화·인권·민주도시 등 넘쳐난다. 이는 광주의 문화예술이 그만큼 성장을 이뤘고, 중앙 무대에 진출해서도 그 성취도가 떨어지지 않아서다.
하지만 문학은 한때 광주문화예술의 대표명사와 같았으나 오늘날 침체에 허덕이며, 부침을 거듭하고 있다. 더욱이 근래에는 쓸만한 신예작가마저 눈에 띄지 않는 형국이다.
더 근원적인 문제는 150만 인구가 모여 사는 광역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변변한 문학관 하나 없을 뿐더러 관광명소로 집중 육성된 문학 공간하나 구축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용아 박용철과 다형 김현승이라고 하는 뚜렷한 족적과 문학자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빚어진 일이어서 안타까움을 더한다. 이들의 문학자산을 한데 아우르고 시민들과 타지인들이 두 시인의 삶과 정신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면 관광코스에 포함돼 또 다른 견학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 광주시와 광주문학단체가 손을 맞잡고 광주시의 행정적 뒷받침에서부터 문학관 건립을 포함한 하드웨어적 시각과 오월문학(정신) 계승 및 출판 육성 등 소프트웨어적인 시각으로 나눠 총체적으로 접근, 풀어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아울러 온·오프라인 문학공간의 구축과 활성화에도 고민을 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광주 근현대문학은 일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서부터 조명해야 그 뿌리에 대한 궁금증이 풀린다. 시문학파의 태동의 자취를 지울 수 없다. 이어 등장한 다형 김현승 시인의 자리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시문학파는 1930년 3월에 창간한 ‘시문학’ 동인들이 주요 구성원들로, 순수시파로 정의되고 있다. 여기에는 광주 광산 출생의 용아 박용철 시인과 전남 강진 출생의 영랑 김윤식 시인을 비롯해 정지용·이하윤·정인보·변영로·신석정 등이 참여했다.
이중 용아 박용철(1904∼1938)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용아 박용철은 1930년대 사재를 털어 문예잡지 ‘시문학’(詩文學) 3권을 비롯해 ‘문예월간’(文藝月刊) 4권, ‘문학’(文學) 3권 등을 간행했으며, 시문학 동인 활동과 해외문학파 및 극예술연구회 회원으로 참여했고 희곡 번역에 나섰다. 영랑 김윤식과는 아오야마학원 재학 때에 교우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생가는 광주시 광산구 소촌동에 자리잡고 있으며, 시비(詩碑)는 광주공원과 송정공원에 세워져 있다. 용아박용철기념사업회가 설립돼 운영 중에 있으며, 전국백일장과 문학상 운영, 문학제 등이 매년 실시되고 있다.
다형 김현승(1913∼1975)은 광주 출신은 아니지만 조선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많은 후학들을 길러냈다. 7살때 광주로 이사와 기독교계통의 숭일학교와 평양 숭실중학교를 졸업하고, 숭실전문학교 문과 3년을 수료했다. 숭일학교 교사를 거쳐 1951년부터 1959년까지 조선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1953년부터 광주에서 계간지 ‘신문학’을 6호까지 발행했고, 광주에 거주할 때 제1시집인 ‘김현승 시초’를 펴냈다. 무등산 국립공원 산장 입구와 호남신학대학교 교정에 각각 시비(詩碑 )가 세워져 있다. 다형김현승시인기념사업회가 꾸려져 있고, 문학제와 전집 발행 등 다채로운 행사가 매년 진행 중이다.
다형은 8·15해방 이후 광주를 문향(文鄕)으로 만드는 데 선구자적 역할을 한 셈이다.
당시 광주문학의 큰 어른이자 대부였던 그가 ‘현대문학’에 추천해 등단한 작가로는 박홍원(前조선대 교수),이성부, 정현웅, 문병란(前조선대 교수), 손광은(前전남대 교수), 오규원, 이생진, 문순태(前광주대 교수), 이병기씨 등 30여명이 넘을 정도였다.
이처럼 용아 박용철과 다형 김현승은 광주 근현대문학의 출발이자 상징 그 자체로 평가되고 있다. 이들의 존재는 전국에서 광주를 ‘문향’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 근거가 됐다. 나란히 광주공원에 시비가 세워져 있다. 1970년 정소파·문병란·손광은 등 지역 시인들의 주도로 건립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문학관 문제가 수년째 표류하지 않고 쉽게 풀렸다면 이들의 삶과 문학정신을 기리고 계승하는 거점이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설령 종합문학관이 아니더라도 개별 문학관이 광주 남구 양림동이나 광산구 소촌동 등에 문을 열었다면 이 두 문인의 문학정신을 계승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됐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다.
특히 하드웨어의 중심 내용 중 하나인 문학관 건립은 광주 범 문단의 숙원사업이 되고 있다.
광주는 용아 박용철과 다형 김현승 시인 외에도 박봉우와 박성룡 시인이 있었고, 그 이후 범대순 문병란 손광은 한승원 문순태 이성부 조태일 김남주 양성우 송수권 김준태 나종영 고재종 곽재구 등에 이르기까지 이름만대도 알만한 문인들이 차고 넘쳤다.
그래서 이런 문학적 자산들을 보존하고 계승할 수 있는 공간의 필요성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문학관이 문단의 절대과제가 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광주문학의 상징성을 담보하는데도 문학관의 필요성은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건립의 주체는 광주시와 전국 조직망이 구축돼 있는 광주문인협회나 광주작가회의를 중심으로 하되 문인들의 의사를 결집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문단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지 말고 한뜻으로 의견을 조율해 지자체에 요구할 필요가 있다.
한때 광주 동구 운림동에 문학관이 언급되다 2013년 당시 빛고을문학관이 건립, 추진됐으나 문학상을 만든다는 빌미로 후보 건물주에게 수십억 원을 요구했다가 잡음 끝에 무산됐다. 그 이후 광주문인협회와 광주작가회의가 몇 차례 공동대처를 위해 만남을 가졌으나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으면서 문학관 문제는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고 말았다.
문학관은 여전히 광주문단의 뜨거운 감자다. 문학에 대한 접근 역시 여러 갈래로 나뉘고 있다. 용아 박용철시문학관과 다형 김현승시문학관 등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개별문학관 주장에서부터 개별 작가들을 한데 망라한 종합문학관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그 접근방식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감지되고 있다.
또 문학관 건립 형태 못지 않게 제기되고 있는 사안이 신축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광주시 소유 자산이나 기존 건축물을 리모델링하는 방안 등까지 확대해 유연하게 대처해나가야 한다는 여론도 일고 있다.
광주시와 광주문학단체를 중심으로 문학관 건립을 위한 TF가 꾸려져 숙원사업의 첫 걸음을 내딛기를 기원한다. 다행히도 광주문인협회가 자체적으로 ‘문학관추진위원회’ 결성에 나서고 있어 주목된다. 7월초순이나 중순께 33명의 추진위원과 광주시 부시장 및 의회 관계자 등이 참여해 첫 회의를 열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편차는 있으나 인근 지자체인 전남은 곡성 조태일 문학관을 비롯해 목포문학관, 벌교 태백산맥 문학관, 담양 한국가사문학관 등이, 전북 지역에서는 미당시문학관, 아리랑문학관, 채만식문학관, 최명희문학관 등이 운영, 문학의 대중화 기여는 물론 관광명소로 자리잡고 있는 상황이다.
이어 광주시 전체에 분산돼 있는 문학자산들을 하나로 이을 수 있는 ‘광주 문학 로드맵’ 구축이 시급하다.
문인생가나 시비 등의 상징물들을 적극 활용하는 등 마케팅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려 외지인이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관광상품화에 착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학 로드맵은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앞으로의 계획이나 전략 등이 담긴 구상지도를 비롯해 청사진, 안내도 등을 담는 것이 주요 골자가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테면 광산구 소촌동에 있는 용아 박용철 시인의 생가와 송정공원 시비를 비롯해 광주비엔날레 문화벨트내 김남주 시비와 김만옥 시비 및 광주시립묘지(구 5·18묘역)의 김남주 시인 묘소, 광주문예회관 앞 고정희 시비, 광주공원의 용아 박용철과 영랑 김윤식 시비, 사직공원의 이수복·이동주 등의 시비, 양림교회, 무등산장 입구의 김현승 시비 및 관련 유적들, 광주시 북구 하신마을 생가에 둥지를 튼 범대순 시문학관, 문화동 시화골목, 광주고 인근의 헌책방 골목, 담양 가사문학관 및 각 정자 등을 하나로 묶는 것이다. 이를 통해 연계 답사 프로그램 개설 및 운영을 꾀하면서 안내책자 발간과 안내 이정표의 대폭 보완 및 신설까지 이뤄내야 시너지 효과가 나올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렇게 되면 시 전체를 대상으로 문학둘레길을 구축할 수 있다.
여기다 지역 대표성을 갖는 문학단체들에 위임해 ‘문학유산해설사’를 양성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을 하는 방안도 침체된 지역문학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
이와함께 작가들의 태생지나 창작산실을 되살려 볼거리를 확충할 경우 외국처럼 문화관광지화를 이룰 수 있을 전망이다.
현재 남도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태생지나 창작산실에 대한 상품화는 문단 등에서 논의가 지지부진했다. 이는 여전히 문인만 있지, 전문적 기획이나 행정적인 측면의 연구나 접근을 위한 인식전환 등의 노력이 전무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양림동을 연고로 뒀거나 이곳에서 한때 창작했던 다형 김현승 시인을 비롯해 시 ‘봄비’의 이수복, ‘젊은이들의 양지’와 ‘첫사랑’ 등을 집필한 드라마 작가 조소혜, ‘징소리’를 집필한 소설가 문순태, 시 ‘사평역에서’의 곽재구씨 등의 자취를 되살린다면 현재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광주문학의 향기를 각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곳 양림동에는 미당 서정주, 소설가 황석영 등의 자취도 서려있는 곳이어서 문학적으로 유서깊다. 예산이 많이 소요되는 것부터 착수하기 어려운 만큼 안내이정표만이라도 우선 확충해 시민들과 타지인들이 유서깊은 곳임을 인식하게 해야 한다.
옛 전남도청, 금남로, 충장로, 대인동, 광주역, 무등산, 남광주시장 등 시 작품에 등장하는 공간들도 적극 시민들에 알리기 위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이를테면 이런 현장에 작은 안내이정표나 표지석을 설치, 이곳이 문학의 현장이었음을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아카이브 구축이 검토, 착수돼야 한다. 오월문학을 포함해 개별 문인들의 아카이브 구축과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전국 최장수 동인 ‘원탁시회’ 등에 대한 조명작업 및 희귀 문학자료들의 전시회도 생각해볼 때다.
광주 문단 한 인사는 5·18광주민중항쟁을 기조로 한 공동체 구현을 위시로 사람들의 삶을 회복하는 동시에 평화와 생명을 추구하면서 삶이 보다 인간다운 삶으로 나가는데 광주문학이 일조하기를 희망했다. 광주문학이 좀 더 폭넓게 나가야 한다고도 했다.
김준태 시인은 "모든 문화에는 행정적 뒷받침이 있어야 하는데 광주문학 육성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 문학활동과 출판 및 문학상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면 한다. 문학을 통해 ‘광주정신’이 회복됐으면 한다"면서 "충장로 1가에서 5가까지 중·고책 전문서점인 알라딘을 제외하고는 서점이 단 한곳도 없다. 앞으로 내실있는 문학이 구축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또 문학관 건립에 사활을 걸고 있는 광주문인협회는 ‘문학관추진위원회’ 결성과 함께 본격적으로 추진활동을 벌여나간다는 복안이다.
임원식 회장(광주문인협회)은 "광역시인데도 문학관이 없다는 것은 비극이다"고 전제한 뒤 "추진위원회를 통해 의견을 모으고, 결의해 광주시에 전달하게 될 것"이라며 "개인이 희사해 문학관을 만들기는 어려운 만큼 시와 국가에서 건립해줘야 하는데 문인들이 어떤 문학관을 원하는지를 먼저 파악해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문향의 전통을 계승, 발전시겨나가면서 광주시와 광주문단이 하나로 뭉쳐 문학현안들을 풀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온당한 대안들을 제시할 경우 의외로 답을 쉽게 찾을 수도 있다. 어쩌면 지금이 광주문학의 현안들을 풀 적기일지도 모른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고선주 기자 admin@jld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