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 서구 경열로(농성동) 소재 서구청사를 끼고 돌아가면 아시아창작스튜디오가 있다. 그곳 이정표를 따라 더 들어가면 주차장이 나오고 주차장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광주예총회관이 자리하고 있다. 2층 사무처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그가 머무르며 작업을 하는 한편, 광주예총 상임부회장의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는 그의 작업실 겸 사무실이 나온다. 지난달 중순 그를 취재하기 위해 찾던 날, 잔뜩 흐린 날씨에도 또 한 명의 예술가의 삶과 정신을 만난다는 생각 때문인지 기분은 쾌청했다. 누구나 작품활동이 자신의 성에 차지 않으면 반갑지 않을텐데 기꺼이 맞아 준다.
문을 열고 들어간 그의 작업실은 화려하거나 넘치지는 않았으나 소박한 대로 예술가의 공간답게 작업하던 작품들이 놓여져 있고, 안쪽에 의자와 책상이 놓여져 있다. 바깥 일정이 없는 한 그는 여기서 머무르며 보낸다. 이 공간의 주인장은 조각가 한갑수(52·광주예총 상임부회장)씨다. 그는 조각분야에서 독특한 지점을 이루고 있다. 갈수록 조각 인구가 줄어드는데다 대학들 일부도 조소과가 없어졌을 정도로 저변은 약화됐다. 그럼에도 그는 조각가로의 삶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는 취재과정에서 대화를 나누다보니 꽤 자기주관이 뚜렷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물론 그의 이름은 전시가 근래들어 많지 않아서인지 광주 예술문화상 신인상이나 제5회 광주예총 아트페스티벌 감독 직함을 통해 먼저 접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예술적 내공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그는 1984년 전남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 1학년때 조각에 입문했다. 그에 따르면 조각의 매력은 불모지에서 찰흙을 가지고 노는 것이 좋았고, 입체를 다룬다는 것이 메리트가 있었다. 물론 그는 작금의 예술 장르에 대해 가둬두고 구획 나누듯하는 행태에 대해 아쉬움을 피력한다. 어떤 장르고 간에 탈장르가 됐기 때문이다. 어떤 재료를 쓰냐, 어떤 세계를 추구하냐의 질문은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시각이다. 이 시대는 탈이념과 탈장르의 시대여서다. 정해놓은 이야기나 그런 이야기의 일관된 흐름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작업할 때 마다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재료에 충실한 이야기, 이야기에 맞는 재료를 선택해 작업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작가가 말하는 이야기는 탈장르와 시대반영, 자기 현상황 반영, 감성 등에 충실한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이야기의 골격은 순전히 파리에 머문 8년의 시간들이 빚은 작가만의 유산(?) 같은 것이 아닐까. 왜냐하면 작가는 그곳에서 설치, 목조, 그림(데생) 등 다양하게 작업하고 체험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가적 내외연을 다진 파리생활을 뒤로 하고 작가는 세 가지의 작품 경향을 노정한다.
어린이의 천진난만한 동심 세계를 비롯해 성경 속 이브의 태초 고민의 사유들, 소주잔에 오브제를 사용한 작업을 기반으로 한 작품세계 등의 구축이다.
광주와 파리, 그리고 다시 광주라고 하는 삶의 사이클 속 프랑스는 그에게 동서양의 매개같은 의미로, 그의 삶의 중요한 방점을 찍고 있다. 파리 8대학에 몸 담그며 1994년부터 2002년까지 파리에 머물렀다. 그는 이 시기를 걸음마 시기로 규정한다.
"광주에서 활동을 하던 걸음마 시기에 이어 다시 파리에서 걸음마를 했던 시기입니다. 그곳에서의 시간들은 내면의 세계를 확고히 다질 수 있는 근간이 됐죠. 많은 작품을 보게 됐고, 체험을 하다보니 영향력이 굉장히 깊었다고 볼 수 있죠. 다시말해 다양한 작품세계를 접하면서 제 자신을 정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나 할까요."

물론 파리로 작가를 이끈데는 이탈리아 여행시 분수조각으로부터의 감명을 지울 수 없었다. 그 분수조각을 본 작가는 맨 처음 배우고 싶었던 것이 분수조각이었다고 말한다. 인위적인 조각이었는데 대개 조화로웠다는 것이 그의 기억이다. 그는 1978년 퐁피두센터에서 우연하게 분수대 조각의 논문이 끊겼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나마 분수대 조각을 원래 공부하고 싶었는데 이 일이 그의 분수 조각에 대한 학구열 혹은 욕망에 불을 당겨놓은 결과를 초래한 셈이다. 그래서 였는지는 모르나 그는 파리에서 광주에 있을 때보다 더욱 왕성하게 작품활동을 벌였다. 분수조각에 대한 공부와 작업이 함께 통했다고 할 수 있을 터다.
더욱이 운좋게 국방성에서 탱크공장을 작가들에 내주면서 주로 그곳에 머물며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이때 40여명의 작가가 이곳에 머물렀다. 어쩌면 이곳은 그에게 실컷 타국에서 작품활동을 벌일 기회를 준 공간이었을지 모른다. 이런 경험들이 국내로 이전됐으면 좋으련만 귀국해 학교강의를 제외하고는 아쉽게도 몇년 동안 작품활동의 휴지기와 맞닥뜨릴 수 밖에 없었다.
"파리에서 8년 살고, 한국에서 나머지를 살았지만 예술환경이 너무 다르다는 것을 알고 너무 힘들었습니다. 거기에서는 자신있게 조각한다고 말할 수 있는데 비해 여기에서는 조각한다고 하면 별세계에 있는 사람처럼, 혹은 삶과 동떨어져 있는 사람으로 쳐다보는데 그것은 아마 ‘차이’라는 거겠죠. 아무래도 지금은 차이를 극복했다기보다는 자연적으로 한국인이 된 것이 아닐까 싶어요. 30년 살았으니까."
작가적 자세와 작업적 사유들에 대한 이야기를 뒤로 하고 그는 인체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그는 비구상적 인체를 한다고 했다. 파리에서 어느날 아르바이트를 하고 난 뒤 조깅을 나갔다가 넘어져 있던 아름드리 나무를 주워다가 자연에 맞는 특성을 살려 사각틀에 가둬본 적도 있었는 데 이런 행위 자체 모두 다른 분야에 비해 빨리 공감대를 형성하는 인체의 표정 때문으로 내다봤다.
또 소주잔 작업에 대해 잊지 않았다. 광주시립미술관 레지던시에 참가하던 시절 술 마실때마다 상황에 따라 다른 감성이 일어나는 것처럼 하루 하루 생활과 세월을 느끼게 하는 게 ‘잔’이었다고 한다. 일상의 소소한 체험에 예술적 상상력이 덧입혀지면서 단순한 술잔은 술에 취하기보다는 먼저 예술에의 해석이 가해졌는지도 모른다,
"사람 마음속은 알 수 없잖아요. 순수하게 차례 차례 내미는 유리잔을 통해 어떤 형상을 보이게, 감성을 보이게 작업을 하는데 치중했었죠."
그는 요즘 그곳 작업실에서 새로운 작업을 하기 보다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미진한 작업들을 소화하며 일상을 보낸다. "이제는 묘사법 같은 게 무의미해요. 어떤 마음을 갖고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기법이나 테크닉적 차원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조그만 테라코타를 몇년전 했는데 마무리짓고 싶죠. 작가는 항상 작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광주에서 전시다운 전시를 하지 못했네요. 나이 이렇게 됐는데 어설픈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2년 정도 있으면 나만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기회가 있을 겁니다."


조각가 한갑수는
△전남 완도 출생 △전남대학교 미술학과(조소) 및 프랑스 8대학 석사 졸업 △개인전 2회 △단체전 다수 △프랑스 몽파라나스 미술관 아스날전 △부산아트페어 △광주시립미술관 분관 개관 초대전 △한불수교 130주년 기념초대전 △호암아트홀 시차전 △가나아트센터 시차전 △광주시립미술관 본관 기념전 △파리 재불청년작가협회전 △프랑스 르살롱 우수상 침 입상 △광주시미술대전 및 전라남도미술대전 특·입선 △교향문화상·광주시 신인문화상 △광주예총 아트페스티벌 총감독 한국·광주미협 회원 △현재 전남대 출강.

고선주 기자 사진=최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