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말했다. 소리를 냈고, 절규하기도 했으며 가만히 숨을 내쉬기도 했다. 그들의 몸짓 손짓 발짓 모든 것이 ‘언어’였으므로, 관객들은 온 몸의 감각을 곤두세워 이야기를 들었다. 무대와 객석은 구분돼 있었으나 ‘말’로서 전해지는 에너지는 그 경계보다 예민하여서 통(通)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같은 언어의 힘으로 25년 우리네 삶을 기록하고 또 기억해온 극단이 있다. 1993년 창단해 줄곧 낮은 곳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온 ‘푸른연극마을’이 그 주인공이다.

△보통사람 삶 보듬는 ‘마을’ 꿈꿔
극단의 이름이 그들의 지향점을 담고 있듯, ‘푸른연극마을’도 마찬가지다. ‘마을’이란 개념이 들어간 것에는 창단 초기부터 큰 그림을 그렸던 단원들의 뜻이 엿보인다.
여기서 마을은 보통사람들의 삶을 대변하는 단어다. 때 되면 밥 짓는 냄새가 골목에 퍼지고, 이웃 간 정을 나누며 사는 우리네 마을을 떠올리면 딱 옳다. 연극을 통해 ‘삶’을 보여주고픈 것이 이들의 주 모토다. 정겹고 그리운 풍경이 푸른연극마을이 작품으로서 보듬고자 하는 가치인 것이다.
연극적 형태로 보자면, 마을이 가진 의미는 또 달라진다. 작품 안에서 그들은 무용·음악·국악·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와 동행하고자 했다. 말하자면 종합예술로서 삶을 그리고자 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연극이란 장르에 몰두하는 이유는, 바로 ‘말’이 가진 힘을 믿기 때문이다.
이당금 푸른연극마을 대표는 ‘언어의 힘’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장이 바로 연극무대라 말한다.
"어떤 이들은 행위로, 음악으로, 시각 매체로 저마다의 예술세계를 펼칠 수 있겠죠. 하지만 결국 그 기본은 ‘말’이거든요. 다시 말해 ‘메시지’죠. 세상에 던지고픈 저마다의 메시지들을 내보이는 것이잖아요. 사람을 이루는 것은 몸과 마음 그리고 말입니다. 글로 쓰느냐, 몸으로 쓰느냐 정신세계를 빗대어 표현해내느냐 그 형식의 차이인데, 우리는 직접적으로 하죠. 내 몸, 내 목소리를 통해서요. 그런면에서 연극은 원초적이고 가장 기본적인 장르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일까. 그들의 작품은 ‘아날로그적이다’는 생각이 든다. 투박하지만 따뜻하고 때론 거칠지만 감성적이다. 대표작인 ‘사평역’, ‘어미’, ‘부용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그리고 ‘오월의 석류’까지 이들은 줄곧 낮은 곳을 비춰왔다. 그들의 무대에는 보통사람들이, 민초들이, 소시민들이 주인공이었다. 푸른연극마을이 최근까지 외국의 유명 고전들을 올리지 않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또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구석으로 내몰린 사람들의 이야기에도 귀 기울여 왔다. 5·18민주화운동· 여순사건 등을 극에 녹여냈다. 삶을 내보이는데 있어서 역사적인 이야기가 빠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광주 대표 극단으로서 80년 5월 레퍼토리는 다양하다. 오월의 이야기는 늘 그들의 작품 곳곳에서 자연스레 묻어났다. 2년에 한 번 씩 드라마로, 퍼포먼스로, 시극으로, 음악극으로도 풀어냈다. 말하자면 5월의 변주곡을 꾸준하게 연주해 온 셈이다.

△‘연바람 씨어터’ 운영…소극장 활성화 ‘주력’

푸른연극마을은 지금껏 네 번의 이사를 다녔다. 1996년 동명동에 ‘예랑소극장’을 개관했고, 2001년 지금의 극장 이름인 ‘연바람 소극장’ 문을 열었다. 2003년부터 2010년까지는 보성에 머물며 실제 연극 공동체를 꾸려보기도 했다. 다시 광주로 돌아온 2014년에는 장동에서 연극을 올렸고, 올해 4월 다시 동명동으로 들어와 연바람씨어터를 재개관했다. 이유는 바로 돈 때문이다.
이당금 대표가 "연극을 하는 것은 미친 짓이고, 하물며 극장을 운영하면서 연극을 하는 것은 더더욱 미친 짓"이라 말하는 것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연극을 한다는 것은 ‘배고픈’ 일인데, 연극을 하면서 소극장까지 함께 운영하는 것은 ‘더 배고픈’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미친 짓’을 할 수 밖에 없는 연유 또한 명확하다. 연극에 미쳤고, 소극장이라는 공간적 매력에 취해서다.
사실 소극장 연극은 보통 내공이 아니고서야 서기가 힘들다. 거의 코앞에서 관객과 마주하면서도, 내내 집중력을 잃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10여년 넘게 무대에 오른 배우들도 쉽지 않다.
이 대표는 이를 ‘작품이 무르익는 것’이라 표현한다. 관객이 무대에 선 배우들에게 받는 감정적 기류를 배우들도 고스란히 느낀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감정의 넘나듦, 그리고 호흡의 무르익음이 푸른연극마을이 소극장 ‘연바람 씨어터’를 놓지 못하는 이유다.
지금 당장의 성과가 아니라 드러나지 않는, 저변에 짙게 깔린 예술의 가능성을 직시하는 그들이다. 새로 둥지를 튼 곳이 극단 토박이와 가까이 있어 시너지 효과도 기대되는 부분이다.
"이곳을 ‘동명동 소극장 거리’라고 부를 작정이에요. 서울 대학로가 상업 연극이 활발하다면, 이곳은 삶을 끄집어낸 찐득찐득한 이야기들을 올리는 것이죠. 더 나아가서는 광주에 민간 소극장 전용 공간이 생겨났으면 좋겠어요. 연극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는 곳. 그렇다면 많은 극단들이 공간 걱정은 안 하고 작품 활동에 몰두할 수 있을 거예요. 소극장 활성화의 긍정적 바람이죠."

△연극 속에서 ‘삶의 실마리’를 캐다

누군가는 바보 같다고 할지 모르겠다. 전전긍긍하며 소극장을 운영해 나가는 것도, 당장 돈 되지 않은 연극을 밥벌이로 삼은 것도 말이다. 하지만 푸른연극마을의 목표의식은 아주 소박하다. 자신들의 작품을 본 수 많은 사람들 중 그 안에서 한두 명쯤 삶에 ‘긍정적 균열’을 내는 것이다.
"같은 연극을 보더라도 모두 다른 지점들에서 감동을 받죠. 누군가는 주인공의 외침에서, 또 누군가는 그저 작게 내쉰 한 숨 소리에서 울림을 느껴요. 모두 경험해온 삶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이런 관객들의 신호가 여전히 우리들의 가슴을 뛰게 합니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크나큰 변화의 물결이 되듯, 무대에 선 우리들의 언어가 언젠가 타인의 삶에서 꼬여있던 실타래를 푸는 작은 실마리가 되고 싶어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나아갈 계획이다. 이번 달 말까지는 ‘2017대한민국소극장열전’에서 선보이는 ‘오월의 석류’ 순회 공연이 잡혀있다. 전주·부산·구미 시민들을 만난다. 80년 5월의 상처를 간직한 광주의 한 가족의 아픈 삶이 타 지역민들에게 어떻게 풀어내 보여 질지 주목된다.
차기작은 팬들에게 사랑받은 작품들 중 하나로 꼽을 예정인데, 심사숙고 하느라 정하진 못했다. 11월~12월 작품으로는 ‘안티고네’로 확정했다.
창단 25주년을 맞은 만큼 푸른연극마을 초창기 꿈도 되새겨본다. 예술로 어울리는 진짜 ‘마을’을 만드는 일이다. 연극마을은 터전을 닦아 놓았으니 무용마을·소리꾼마을·음악마을 등이 하나 둘 들어서길 바란다. 그때야 말로 진정한 ‘예향’의 탄생이 아닐까.

박세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