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항상 이렇게 백 살이었던 건 아니야. 백 살이 된 건 아주 최근의 일이지.’
이는 능동적 삶과 수동적 삶에 대한 물음으로 해석된다. 늘 도전적으로 살아온 삶에만 이 구절은 성립된다. 삶이 무료할 틈이 없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삶이 심심하다" 혹은 "삶이 따분하다"고 하는 것이야말로 능동적이고 도전적인 삶의 행간을 상실한 채 하는 말일 것이다.
100세 노인 알란의 삶은 적어도 우리와는 다른 무늬를 만들어간다. 이는 스웨덴 작가 요나스 요나손의 장편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읽어보면 그렇다.
영화로도 선보인 이 소설은 1905년 스웨덴의 한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주인공 알란의 100년 세월을 코믹하고도 유쾌하게 그리고 있다. 알란은 급변하는 현대사의 주요 장면마다 끼어들게 되고, 역사의 흐름을 바꿔 놓는 데 일조한다. 이 알란을 보면 감탄을 절제할 수 없다.
이 알란을 보면 100세도 늙지 않았다. ‘아직도 얼마간 더 늙어 갈’ 일만 남은 것이다.
창문 너머에 놓인 세상은 넓다. 창문 밖으로 좀처럼 우리들은 나가지를 못한다. 스스로 유폐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력이 되지 않기 때문에 쉽사리 창문 너머로 떠나지 못한다고 말한다.
결국 젊은 시간 다 흘러보내고, 몸이 아파서 병원에 드러누워 말년을 보낼 수도 있다. 100세 노인은 창문 너머로 탈주하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100세 노인은 책 속에서 굉장히 쿨하게 세상을 살아온 것으로 그려진다. 100세에도 저토록 건강한 삶과 도전적 삶을 살아낸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여전히 100세는 살아지는 나이가 아니라 상상을 하는 나이인데….
책 속에서 ‘세상만사는 그 자체일 뿐이고, 앞으로도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자체일 뿐’이라고 적고 있다. 어떤 충격적인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 심성과 강인한 정신을 소유하는 일이야말로 흐트러지지 않는 100세를 끌고가는 비결이 아닐까.
알란은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과 삶을 초탈한 두가지 모습을 한꺼번에 보여준다. 한 사람의 삶 100년을 모두 조망하고 있다. 더욱이 우리들의 옆 역사 한토막인 김일성까지도 언급돼 눈을 크게 뜨고 읽게 만든다.
물론 이처럼 다채로운 삶의 페이지를 꾸려가기는 쉽지 않다. 거대한 역사의 현장을 꿈꾸지 않는다. 상상할 뿐이다. 작지만 제법 감동어린 삶을 그리워한다. 일상 속 소시민이지만 삶을 건강하게 꾸리고 싶어하는 것은 모두 꿈이 아닐까.
우리들의 삶은 무척 척박하다, 삶의 환경은 갈수록 인스턴트화되고, 정적으로 전개된다. 마치 손바닥에 군살 박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소소한 기쁨과 슬픔이 날씨처럼 반복되면서 시간이 흘러간다. 시간을 잡아둘 수는 없다.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늙어갈 일만 남았을 것이다.
100년을 무탈하게 살아내는 여행이야말로 가장 숭고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정답은 없다. 각자 자신에게 맞는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는 없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이를 먹고 있다. 존재하는 것들 모두 늙는다. 늙는다는 것을 좀더 익숙해간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우리는 전반적으로 늙음에 대해 그렇게 관대하지는 않다. 늙었다는 것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이미지는 대개 우울하게 만드는 화면들이다. 그렇다고 삶을 전복시킬 수는 없다. 삶의 여행 루트를 잡아가는 것은 순전히 각자의 몫이다.
우리에게 100년이 주어졌다면 알란처럼 삶을 꽤 근사한 여행으로 만들어야 되는 것 아닐까 싶다.
매일 매일 새로운 삶을 살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삶 너머 삶이 궁금하기는 하다. 알란 같은 마음으로 삶 너머 삶을 찾아 떠나보는 꿈을 꾸는 것은 어떨까. 책 속 구절을 음미하며 이글을 갈무리한다.
‘인생이라는 긴 여행은 참으로 흥미진진 했’다고 먼 훗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고선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