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늙으면 몸도, 마음도 꼬부라지듯/수건도 사람 몸 닦아내며/차츰 낡아간다//살아 있는 것의 지독한 냄새 맡으며/먼 훗날 자신의 운명을 직감했겠는가/낡고 초라해져 장롱 한켠에 가지 못하면/깨진 바구니에 던져지는 삶/걸레가 되는 것//너덜너덜해지는 하루의 밑바닥을/닦아내는 걸 업으로 삼은 후론/배배 꼬여버린 삶//…중략…/사람이나 걸레나 제 모습 닦지 못하고/말년에 드는 건 다 같은가 보다’
필자의 졸작 ‘걸레’라는 시작품이다. 이 작품은 사람이 평생 자신을 닦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중의적으로 던진다. 사람만이 유일하게 수양(修養)을 갈구한다. 이는 얼마만큼 자기자신을 끝까지 닦으며 살아가기가 어려운가를 입증하는 대목이다.
그만큼 인간이 자기윤리와 자기도덕을 스스로 검증하면서 나아가기란 어려운 일이 됐다는 의미다. 서로 망(望)을 봐주면서까지 타락을 독려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수양이 불편하다고 느껴지는 순간 담배꽁초 버리듯, 코푼 화장지 버리듯 아무 거리낌없이 내다 버린다.
우리들의 삶은 언제부터인가 브레이크가 파열된 것처럼 무한질주 중이다. 이성이든, 감성이든 크게 마비된 현대인들은 수양을 마치 티백(tea bag)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다. 뜨거운 삶에 집어만 넣으면 우러날 것이라고 믿는 것 말이다.
과거 비행기와 자동차, 컴퓨터 등 유형의 것을 만들어내는 데 빠져 지내다가 이제는 무형의 것들마저 가공하는 재미에 푹 빠진 인간들이다. 그것 중 하나가 수양을 만들어내는 일이 아닐까 싶다. 몸과 마음을 닦는 것마저도 시간이 없어 못한다는 현대인들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몸과 마음을 닦는 순간 걸레처럼 살아온 삶이 들통나는 일이어서 죽어도 수양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을 것이란다. 또 누군가는 몸과 마음을 닦아봐야 말짱 도루묵이 될 터인데 그까짓 닦아서 뭐하겠느냐고 자조 한 토막 내뱉을 것이다.
우리는 낡아가기 위해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늘 청춘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조물주가 우리를 빚을 때 생로병사라는 불변의 진리를 덧씌워 놓았다. 태어나서 늙고, 병 들어서 죽는 것이 삶의 이치다. 그러니 낡는다는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삶의 이치 한 대목을 제대로 깨치는 셈이다.
인간의 몸을 보라. 얼마나 유약하기 이를데 없는지를.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사람은 몸만 놓고 보면 사자의 밑에, 곰의 밑에 놓이지만 정신적으로는 다행스롭게 사자보다, 곰보다 더 우위에 자리한다. ‘먹고, 싸고, 자고’ 하는 것이나 종족 번식에만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하고, 그 생각을 말과 글로 표현한다. 문화가 있고, 오늘이 아닌 내일의 삶을 이야기하고 예측하는 것이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간단한 듯 보이는 명제도 버거운 인간들의 삶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본다. 모두들 자기들이 처한 흠결을 무더운 한 여름날 문을 꽉 걸어 잠그고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고 살면 된다는 것과 동일시하는 듯하다.
수양을 하면 할수록 불편해지는 삶이라면 희망을 노래할 수 없을 것이다. 수양하며 사는 사람이 마치 멸종위기에 직면한 희귀종처럼 된다면 끔찍한 현실이 될 것임은 자명하다.
먹고 살아야한다는 근심의 무게는 가벼워졌는데도 우리들의 삶은 혼탁해져 무거워져 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너나할 것 없이 황사가 되고, 미세먼지가 된 것은 아닌지 서글퍼지는 요즘이다.
스스로 몸과 마음을 닦지 않은 결과다. 차제에 먼지가 잔뜩 낀 삶을 닦아 윤을 내보면 어떨까.
서로 상처를 주고, 서로 얼룩이 되는 한 ‘너덜너덜해지는 하루의 밑바닥’만을 목격하는 동시에 그 밑바닥이나 닦아내야 하는 걸레가 될 뿐이다. 그게 깨진 바구니에 던져지는 삶인 것이다.

고선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