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이했지만 무덤덤하다. 한 해 한 해 화살처럼 날아가는 시간을 보고 있노라면 허무함이 앞선다. 심하게 말하자면 새해 온 것이 마치 숫자만 바뀐 듯한 느낌 말이다. 새해맞이에 대한 반복학습 때문일까. 호들갑 떨 필요도, 극성스럽게 해맞이를 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다.

어느덧 살아온 날이 살아야 할 날을 추월하기 시작하다 보니 감정이 갈수록 둔해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연초에 칙칙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올해 삶의 방정식이 지난해처럼 다람쥐 쳇바퀴돌듯 얼추 엇비슷하게 전개된다면 올해 내 삶 역시 지난해의 복사판이 될 것은 불보듯 뻔하다.

사실 새해찬가를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아야 마땅할 터이나 그렇게 한다고 해서 결코 본질이 바뀌지 않기 때문에 차라리 냉혹한 현실을 진정성있게 해부해 오늘보다는 더 나은 내일을 맞는 것이 훨씬 실용적일 것이다. 필자는 적어도 지난해까지 새해를 표현함에 있어 새해찬가식 칭송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막 시작된 올해는 ‘새해는 기원한다’거나 ‘새 마음으로 시작하자’, 혹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라’ 식의 글은 자제하고
싶다. 매년 상투적으로 구사되던 문장들이 아닌가. 상투적인 것은 진솔한 것을 결코 이기지 못한다. 이런 사실을 깨친 것은 불과 몇년이 되지 않는다. 새해맞이 하러 산을 오르거나 법당에 가 불공을 드리는 것으로 지나간 한해를 가슴에 묻었다. 그리고 새해에 대한 희망을 설계하곤 했다. 그러다 이마저도 아이를 키우면서는 기억 속에서 지웠다. 그냥 다른 날과 별반 차이 나지 않게 보냈다. 해가 바뀌었다고 별반 다를 것 없는 이면을 너무도 분명하게 깨친 것이다.

이처럼 상투적이고 효율 떨어지는 새해에 대한 찬사를 거부하고 제 나름의 새해에 대한 기준을 만들어가는 일이야말로 훨씬 피부적으로 와닿는, 새로운 새해맞이 패턴을 만들어가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도하 언론들의 새해맞이 풍경에 관한 문구는 온통 희망 불어넣기가 넘쳐나지만 그게 수사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치기까지는 며칠 걸리지 않는다. 새해 첫날 같은 날들이 지속될 것으로 기대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새해 때 다졌던 마음, 각오 모두 며칠 후에는 어디로 갔는 지 실종 그 자체다.

그렇다면 새해의 들뜬 마음을 덜어내고 무색무취의 날들을 인정하기까지는 하루 이틀이면 충분하다. 이처럼 새해에 대해 압도적 찬가식의 칭송을 거부할 수 있는 데는 그것이 현재적 삶을 바꾸어놓지 못하다는 것을 익히 잘 알기 때문이다.
이는 새해맞이 찬가를 부르고 있을 만큼 한가하지 않다. 찬가를 부를수록 다음 날, 그 다음날 사투(?)를 벌여야 하는 시간과 어긋나지 않고 반드시 마주칠 수 밖에 없을 뿐더러 거기서 느끼는 고단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가 되고 있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래서 차라리 새해를 맞는 의식보다는 어떻게 하면 올 한해 하루 하루를 잘 살아낼까에 대한 마음 다잡기가 먼저다. 마음을 다 잡는 삶이야말로 모두를 다 잡는 삶이 될 가능성은 높아진다. 물리적 시간들에 대한 칭송에 앞서 스스로의 삶에 대해 칭송할 것을 주문한다.

갈수록 삶이 버거워지는 요즘이다. 세상살이가 녹록지 않다. 올해 삶은 더욱 높이를 더한 파도가 몰려올 지 아무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 파도에 무한정 끌려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다.

새해 아침에 마음 다잡기를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네 삶의 중심축이 마음이어서다. 살아내기 팍팍한 현시대, 마음으로 사는 삶은 쉽게 넘어지지 않는다. 지난해의 재판(再版) 혹은 복사판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새해 벽두 새해맞이 거사보다는 정신을 꼼꼼하게 가다듬으면서 복잡다단한 세상에의 각오를 다져야 하는 것이 마땅한 순서가 아닐까.

고선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