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도 한참 늦었다. 물리적 봄은 꼬박 꼬박 삶으로 찾아왔다가 사라졌다. 사라졌는가 하면 어느새 또 찾아왔다. 지천에 꽃이 피고, 겨우네 움츠렸던 사람들마저 화사해 보이는 때가 봄이다. 사람들의 표정까지 밝아 보인다. 그 봄 앞에 겨울이 있었다. 겨울이 빠져나간 자리에 봄이 돌아오곤 했다.
사방에 꽃들이 만발해 있는데 우리들 삶에는 지울 수 없는 겨울이 있다. 분단국가 국민으로서 피할 수 없는 운명 말이다. 서로 총부리 겨누며 죽이겠다고 으르렁거린 세월이 자그마치 70년이다. 몇번이고 화해의 손을 내밀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 다시 총구를 겨누었다.
상호간 악랄하다고 손가락질을 한 것은 아닌가 싶다.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체제 우월을 과시해왔다. 이제 우리는 지구촌 유일의 분단국가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우리네 삶이 갈라졌다가 합쳐졌다 하는 식의 연속이라지만 한반도의 분단은 한번 갈라졌다가 영영 못 합칠까하는 걱정이 앞섰다. 70년 동안 서로의 담벽만 높게 쌓아갈 뿐이다. 같은 민족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서로를 능멸했다.
갈등이 지속되던 중 북이 핵을 만졌다. 잇따른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는 공멸의 위기를 걱정해야 할 정도였다. ‘핵’이 한반도를 공포로 몰아넣은 것이다. 세계경찰국가를 자임하는 미국이 안절부절 못했고, 중국은 미국이 진짜 북한을 무력으로 초토화시킬까 밤잠을 설쳤을 것이다. 섬나라 일본은 혹여 미사일이 일본 땅에 떨어지거나 납치된 일본인들의 신상에 변고가 생길까 노심초사였다.
모두들 자국의 이익을 숨긴 채 전문용어로 ‘패싱’이라는 단어를 걱정했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정치공학적 용어로 느껴졌다. 필자는 패싱에는 별 관심이 없다. 늘 겨울공화국같은 한반도에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늦봄’이 올까에 대해 관심이 있을 따름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1980년대와 1990년대 민주화운동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로 각인돼 있다. 잊을만하면 분신과 투신이 일어났다. 왜곡되고, 굴곡진 시대는 그 당대인들에게 절망을 안겨줬다. 한때 최루탄 냄새 안 맡는 날이 없었다. 아침 일찍 신선한 새벽공기를 맡고 싶었지만 최루가스 내음이 먼저 코끝을 후벼파는 날이 많았다.
이런 시대적 상황 속 민주화운동의 투쟁 방식의 하나로 방북이라는 게 있었는데 적성국가를 방문한 국민에 대해 독재권력은 한치의 아량도 없었다. 국가보안밥을 들이대며 무자비한 탄압과 고문, 그리고 법정 구속(투옥)이 밥먹듯 했던 시대이기 때문이다. 같은 민족인데 만났다고 감옥에 보내는 나라가 한반도였다. 그 사이 북한도 잘한 것은 없어 보인다.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인민들을 배불리 먹였다는 소리 대신, 아사자가 드글드글 했다는 소리만 들려왔다. 남북 모두 겨울에 갇혀 지내온 셈이다.
그런데 서로 마주보고 달리는, ‘남북’이라는 기차가 잠시 멎었다. 4월에는 남북 정상이 만나고, 5월에는 북미 정상이 만난다. 세기의 만남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국민 누구나 그 만남이 해피엔딩이 되기를 숙원하고 있다. 봄과 겨울의 경계에 한반도가 놓여져 있다 하겠다.
작금의 한반도의 해빙무드에서 하얀 수염을 날리며 민주화운동 선봉에 섰던 문익환 목사(1918∼1994)가 오버랩된다. 문 목사는 1989년 3월 방북한 뒤 김일성 주석과 만났다. 남한으로 돌아와서는 영어(囹圄)의 몸이 되고 말았다. 역사 앞에서 스스로 무죄라는 점을 분명히 했지만 현실의 법정에서는 유죄였다. 그만큼 북한은 같은 민족이지만 만나서는 안되는 적일 뿐이었다.
문 목사가 지금의 한반도 상황을 보고 무슨 말을 들려줄까 궁금하다. ‘늦봄’은 그의 호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