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하나 하기도 버겁다고 아우성이다. 예술인의 삶에 놓인 것은 예술이 전부다. 예술인들은 안다. 예술의 길이 얼마나 힘이 드는가를.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예술의 시작은 우리들 관념만 아니라면 상관없지 않을까 싶다. 어느 대학을 나오고, 언제 시작했고 등등 말이다. 지금 어떤 예술을 하고 있고, 어떻게 작업을 하고 있으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등등이 중요할 터.
여기 이런 주장을 증명할만한 화가가 한 명 있다. 그는 제도권 미술공부를 늦게 시작했다. 만학도였던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만큼 두배의 창작열정을 발휘할 수 밖에 없었다. 더욱이 그가 보통의 예술인이 아니라는 점은 오는 5월1일 개관이 예정된 미술관 관장을 맡아 눈코 뜰 새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래저래 다른 화가들보다 유리한 구석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는 지독한 노력파다. 지금도 새벽까지 작업을 하는 날이 많다는 후문이다. 이런 가운데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 그리 낯설지 않았다. 이미 개관할 것이라는 글을 올 1월 현장에 다녀온 이후 작성했기 때문이다.
지난 4월13일 오후 순환도로를 타고 그를 만나러 갔다. 그는 때마침 개관을 앞두고 전시실을 시험가동 중이었다. 광주시 동구 성촌길 6(운림동) 무등산 자락에 자리한 드영미술관이 그곳으로, 관장을 맡고 있는 서양화가 김도영(56·호남대 대학원 석사과정)씨가 그다.
미술관에 도착하니 자신의 작품이 걸린 제1전시실에 정윤태 전 조선대 미술대학 학장과 함께 이야기 중이었다. 아직 개관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소품 등이 마무리됐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전시실에 김 관장의 작품들이 전시중에 있었다. ‘드영 무등에 피어나다’라는 타이틀로 네번째 개인전(4.10∼22)이 진행 중이었다. 타이틀 작품을 비롯해 ‘목마와 숙녀’,‘벚꽃나무 아래서’, ‘봄 마중’, ‘유년의 꿈’, ‘유토피아’ 등 46점을 둘러보고 나서 자리에 함께 할 수 있었다. 이중 25점은 올 1월부터 3월 사이 그린 것들이다. 얼마나 치열한 시간을 보냈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아침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작업을 했죠. 밥만 먹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일부는 밑그림을 그려놓은 것에 채색을 한 거구요. 대개 고향을 그리워하는 작품들은 유년시절 부모의 사랑에 대한 기억이 모티브였어요. 100호 두 점은 졸업작품인데 늦게 공부했기 때문에 욕망이 강했죠. 그 욕망을 스토리화해서 담아냈다고 보면 됩니다."
전시작품 중에는 2년 또는 3년 반 동안 작업한 작품도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원래 광주 사람이 아니다. 경북 영천 출생으로 동향인 남편과 함께 30년전 광주에 정착했다. 지금은 누가 봐도 광주 사람의 삶을 살아간다.
그는 40대 초반까지 붓과는 먼 삶을 살았다. 다만 젊은 날 의상디자인을 배워 한동안 그 길을 걸었을 뿐이다. 그러다 40대 들어 붓을 처음 쥐게 된다. 이때는 정물을 가져다 그렸는데 저녁 7시부터 그림에 몰입, 그림을 끝내고나면 다음날 아침 5시가 되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한다. 한번 붓을 잡으면 5시간이 훌쩍 지나갔다는 설명이다. 미술관 개관을 앞두고는 집중이 잘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작업을 근성있게 하는 날에는 새벽에 가닿곤 했다.
그러다 체계적으로 그림을 배우자는 생각으로 2013년에 늦깎이 만학도로 호남대에 입학해 제도권 미술공부를 했다. 지금도 이런 분주한 일상 속 대학원생으로 학생의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
"그림을 열심히 해왔지만 이론을 모르면 구도도 모르는 만큼 이론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어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대학진학 전에는 주로 유화로 그림을 그렸지만 어쩌다 수채화로 그림을 그려도 유화처럼 그려지더군요."
학부 재학시절 그는 노력 외에는 한눈을 팔지 않았다. 이론은 배울 수 있었지만 완성도에 대한 것들은 가르쳐주지 않아 갑갑했었다는 반응이다. 그는 당시 365일 중 350일을 학교에서 아예 살다시피 하며 미술공부에 집중했다.
"그때 교수님들이 저를 보고 아직도 졸업 안했냐고 물어볼 정도였어요. 고흐가 10년 걸려 좋은 그림 그렸듯이 저도 고흐처럼 오랜 시간이 소요되더라도 좋은 그림을 그려보고 싶습니다. 고흐같은 그림을 못 그릴지언정 그의 열정이라도 닮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고 봐야죠."
그림에 뚜렷한 자기세계를 갖추면서는 자신이 존경하며 닮고 싶어하는 화가까지 생겨났다. 전후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1960년대 이후 세계 현대미술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작가로 평가받는 게르하르트 리히터(86·Gerhard Richte)다. 추상을 하는 작가이고, 색감이 너무 좋기 때문에 좋아한다. 아예 석사학위 논문 대상으로까지 마음에 저장해놓았다. 여건이 되면 리히터의 작품과 자신의 작품을 합성해보는 시도도 계획하고 있다. 한 번 만나보고 싶은 희망도 있다.
그의 작품에는 새가 많이 등장한다. 연필로 밑바탕을 잡아놓지 않고 바로 본 그림에 들어간다.
"그림이 잘될 때는 잘 되는데 안될 때는 안되더군요. 그럴 때는 며칠 붓을 잡지 않습니다. 저는 생각나는 대로 연필을 사용하지 않고 붓으로 바로 작업에 들어가는 편이죠. 새는 제가 동심의 그림을 많이 그리는 편인데 유년 시절 볏단 위에서 지저귀는 종달새며, 귀뚜리미 소리가 정겨웠죠.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는 유년시절 새를 너무 좋아해 새알을 가져오거나 새끼를 집으로 가져올 정도였다. 그리고 결혼 후 새가 좋아 새를 직접 키웠다고 한다. "그림 속 ‘새’는 내 마음의 모티브를 표현한 것이죠."
전시장에서 접했지만 그의 색상은 중간색 톤이 많다. 그의 화면에는 원 칼라의 색들보다 보라색 계통이나 옥색, 연두색, 블루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원색보다는 중간색을 선호한다. 어두운 색감(검정)과 원색 빨강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중간색을 썼을 경우 다이나믹한 성질이 떨어진다는 것이 그의 시각이다.
그에게는 화가로서, 관장으로서 꿈이 있다.
"추상회화를 해보고 싶은 데 스토리있는 그림을 해보고 싶죠. 세 가지의 꿈이 있는데 하나의 꿈은 이뤘다고 볼 수 있어요. 미술관을 여는 것이 그것입니다. 다음으로 여기 미술관에서 예술가들 및 관람객들이 소통하는 것이고, 세번째는 청년작가들이 이곳 미술관에서 자신의 꿈을 펼치면서 활짝 피어났으면 하는 것이죠."
그러나 그의 꿈은 또 다른 데 있는 듯 보였다. ‘느림의 미학’ 실천이다.
"샌프란시코에 드영미술관이 있는데 그 드영처럼 작가와 함께 미술관이 좋게 역사를 쌓아갔으면 합니다. 작가와 미술관이 같이 늙어가는 것 말이에요. 또 느리지만 천천히 생각을 구현하는 ‘느림의 미학’을 실천해가고 싶죠. 서두르지 않고 느릿느릿 다져가면서 앞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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