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무대엔 ‘사람’이 있다. 낙방을 일삼는 만년 고시생도, 무명배우도, 또 달큰한 술을 내어주는 포장마차 주인장도 무대에 오른다. 직장생활을 하는 여느 회사원부터 과거어떤 상처 탓에 삶이 무너져 벼린 한 맺힌 여인들까지. 무대엔, 그러니까 연극판엔 누구라도 주인공이 될 수 있으니까.

2011년 10월 창단한 극단 ‘사람사이’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무엇이 있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는 단체다. 연극이 작품과 관객, 배우와 연출, 배우와 배우들의 만남이라고 한다면, 무대는 만남에서 비롯된 이야기들을 늘어놓는 판이 된다.

송정우 대표는 이를 “사람 사는 이야기가 피어나는 곳”이라 호명한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서 사람 이야기를 하는 곳이 바로 우리 극단입니다. 그 전제는 역시 이해와 배려 그리고 소통이겠죠.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공감이라고 생각합니다. 무대에 선 연극인들을 보면서 관객들은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삶’을 들여다 볼 수 있어요. 함께 울고 웃고, 또 가슴으로 이해하면서요.”

관객들과 감정으로 통하기 위한 가장 큰 무기로는 재미와 즐거움을 꼽는다. 흥미가 있어야만 작품의 기승전결을 좇도록 집중하고, 주인공들의 삶에 완전히 이입할 수 있어서다.

여기서 재미와 즐거움은 단순히 까르르 배꼽 잡는 웃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재미와 즐거움의 범위는 넓다.

“지적 호기심을 유발하는 재미, 또 사유하는 재미, 인간과 우주를 생각해보는 철학적 재미 등이 포함됩니다. 관객들은 연극 작품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할 겁니다. 우리는 관객들이 작품을 그저 소비하는 것에 머물러 있지 않길 바라요. 그 시간을 통해 자신 삶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성찰의 계기가 되면 더할 것 없이 좋겠죠.”

극단 사람사이의 대표작은 창단 공연으로 올렸던 ‘시유어겐’, 배우·스태프 등 30여명이 참여해 관심을 끌었던 ‘노부인의 방문’, 80년 5월의 광주를 어린아이 시선으로 풀어낸 ‘바퀴자국’ 등이 꼽힌다.

사람사이의 지향점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작품 ‘시유어겐’은 포장마차 ‘삼선녀네 집’에서 혼술 하는 단골손님들의 이야기다. 15촉 갓 전등이 만들어내는 은은한 조명아래, 우동국물에 피어오르는 김이 사실적으로 묘사돼 관객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영락없이 퇴근 후 들르는 포차의 풍경이라서다.

“특히 삼선녀네집을 찾는 손님들이 재미있죠. 만년 고시생 영만, 가난한 무명 배우 동철, 남편의 무시를 받고 다이어트를 시작한 숙자 등 모두가 어딘가에서 열심히 살고 일을 법한 보통사람들이에요. 12월에 공연을 했는데, 단원들 모두 ‘첫 눈을 기다리는 마음’을 담아 공연했어요. 첫 눈이 오면 소중한 사람이 떠오르잖아요. 연말에 따스한 감성을 전하는 작품이었죠.”

2016년 선보인 ‘노부인의 방문’은 배우·스태프 등 30여명의 인원이 참여해 지역 연극계에 큰 관심을 끌었다. 지역 민간 극단으로선 보기 드문 규모였다.

‘노부인의 방문’은 스위스 극작가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의 희곡으로, A4 70페이지에 달하는 장편이다. 인류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얼마나 쉽게 타락할 수 있는지를 그린다. 송 대표는 이를 1시간 50분여로 무대화 했는데, 한국연극협회 베스트 작품상을 수상하는 등 호평을 받았다.

사람사이는 작품에 진솔함을 담는다. 억지스러운 연출이나 너무나 현학적으로 풀어내는 것을 지양한다. 이해해야만, 공감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어야만 또 예술을 제대로 맛보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사이의 작품은 “나라면 어떨까?” “내가 저 상황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등장인물과 함께 고민하고 답을 찾아보게 한다.

“연극인들이 작품을 구상하고, 열연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 아닐까요. 어쩌면 흔하디흔한 이야기를 ‘무대화’함으로써 거리감을 줍니다. 제 삶에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게 하는 것이죠. 관객들은 작품을 통해 사유하고 또 저마다의 삶을 돌아보고, 때론 반성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성숙해지는 것이죠. 이것이 예술의 가장 큰 목적 중의 하나라고 봅니다.”

송 대표는 연극은 ‘연극다워야 한다’고 주창하는 사람이다. 첫째 연극다운 것이란, 드라마 같지 않은 것, 영화 같지 않은 것이라 한다. 이는 기승전결의 이야기 구조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연극 무대에서만 통용되는 ‘연극성’을 말한다.

쉽게 말해 배우가 무대에서 “와~ 바다다”라고 하면, 극장의 모든 사람들이 주인공 앞에 바다가 펼쳐져 있음을 인지하게 된다. 그것이 텅 빈 객석을 가르치거나, 혹은 파란 종이 몇 장을 덧대 표현한 것이라도 말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바다 씬이 필요하면, 바다에서 촬영이 이뤄지죠. 없는 바다도 그래픽으로 만들 수도 있고요. 하지만 연극은 그렇지 않아요. 시공이 제한적입니다. 그러나 이 시공의 제약은 오히려 무한한 상상력을 펼칠 수 있게 해주죠. 연극 무대가 품고 있는 환상 같은 것입니다. 일종의 관객과 배우와의 약속 같은 것이기도 하고요. 저는 이 같은 연극성이 연극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사이는 이처럼 연극 무대의 현장성·역동성을 전하는 데 주력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사실적이고 스케일이 큰 시각 효과는 드러낼 수 없겠지만, 관객 코앞에서 벌어지는 현장성에 기반, 살아있는 움직임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연극무대는 지금, 여기, 이곳에서 재현됩니다.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놓는다고 해도 동시대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있기에 현재성이 드러나죠. 다루고픈 이야기를 끊임없이 무대에 올림으로써 ‘과거’와 오늘날 ‘관객’이 소통할 수 있습니다. 같은 작품을 올린다고 해도, 관객의 반응이 모두 다른 이유도 바로 이 같은 현장성에 있죠.”

올 하반기 사람사이는 소시민들의 삶을 다룬 ‘우주인’과 고전 명작 셰익스피어 ‘리어왕’을 차례로 올린다.

8월18일 빛고을시민문화관 야외 광장에서 펼쳐지는 ‘우주인’엔 대리운전기사·생수 회사 영업사원·노점상 등이 나와 관객들에게 이야기를 건넨다. 이 시대 ‘을’(乙)로 대변되는 세 사람은 세상살이에 고단함을 위트 있는 해학으로 풀어내 한여름 밤 마실 나온 시민들을 맞을 예정이다.

이어 9월21~22일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는 사람사이만의 해석이 더해진, 셰익스피어 4대 비극 ‘리어왕’을 만나볼 수 있다.

“‘연극은 재미있어야 하며, 예술은 즐거워야 한다’가 사람사이의 모토입니다. 재미나고 즐거운 작품으로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극단이 되고 싶어요. 커피 한잔 덜 사마시더라도 사람사이 공연을 보러 오게끔 하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사람 사는 이야기가 피어나는 곳, 삶의 활력을 주는 연극판을 선보이겠습니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