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제 스스로 깊어지면서
지난 여름의 부유와 갈망을
잠재우는 동안
겨울이 천천히 다가왔다

그걸 바라보는 사람의 모습이 쓸쓸하다

부유를 견디면서
내면을 향한 물길을 돌리면
외로움조차 맑게 빚어질까

도요새가 밀물을 따라 걸어 나온다

그의 시 ‘부유’(浮游)의 일부다. 그의 내면이 엿보인다. 내면을 향해 가는 시인의 삶의 궤적을 봤으면 한다. 이 글 끝자락에서 그의 내면을 조금이라도 봤다고 할 수 있기를 고대하며 글을 풀어간다.
그는 말수가 적다. 그 말수 없음이 더더욱 시에 천착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문학현장에서 간혹 만날 수 있는 그는 말수 없이 차분한 모습을 견지한다. 광주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필자가 잘못 파악한 것인지도 모르나 이념적 지형을 고수하지 않는 듯하다. 진보적 문학단체와 보수적 문학단체를 가리기보다는 범 문단에 걸쳐 활동한다는 이야기가 설득력을 얻는다. 시가 좋고, 시조가 좋은 사람들의 모임이면 그는 그들과 어울린다. 굳이 이런 것들을 감추려하지도 않는다. 문학의 진정성이 우선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활동하는 것이 비판받을 내용만은 아니다. 이념적 지형보다는 다시 문학의 진정성이 강조되는 흐름으로 진입되고 있어서다.
지난 9월11일 그의 연구실이 있는 대학을 방문했다. 급하게 취재를 부탁했는데도 싫은 내색없이 맞아줬다. 그는 광주교대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연구실에 들어섰더니 다소 피곤해 보였지만 반갑게 맞아주었다. 새롭게 둥지를 튼 연구실은 정돈이 잘 돼 있었다. 그의 성격 한 부분을 엿볼 수 있었다. 가지런하게 정돈된 책장에서 평소 어떻게 책을 보고, 학생들과 호흡하는지를 어렴풋하게 짐작할 수 있었다. 시와 시조, 평론 등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를 멈추지 않고 후학들을 길러내며 창작을 지속하고 있는 염창권 시인의 이야기다.
비교적 가깝게 지내는 시인으로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그의 시적 삶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한 사람을 알아가는 것도 어려운데 하물며 한 우주를 거느리고 있는 시인을 전부 알기는 어려운 것이 아닐까 곰곰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다. 그는 시에 입문하게 된 계기부터 들려줬다.
말수가 적은 것이 시에 입문한 계기였다. 말수가 적고 혼자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창작을 하게 됐다고 한다. 여러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영역을 넓힐 수 있는 것이 시창작이어서다. 처음에는 소설을 쓰다가 시로 전환했다는 설명도 잊지 않는다.
이처럼 그가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데는 미술 등 예술 영역 중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영역이 문학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중 시가 자신의 영역을 개척할 수 있었다는 반응이다. 이렇게 해서 시인의 삶이 시작된다. 10대 후반부터 시 습작에 빠져들었다. 올해 습작한 지는 40년이 됐고, 등단한 지는 28년이 됐다. 이런 그에게 ‘문학을 하는 궁극적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그는 두 가지의 답변을 내놓았다.
"먼저 자기 표현의 문제인데 이웃과 소통을 할 수 있는데다 문학 자체가 인문학적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서정과 철학, 그리고 사색적으로 깊이를 더해주죠."
그러면서 그는 문인화처럼 여백이 많은 시인을 지향한다.
여백의 틈까지 읽어주기를 바란다. 그는 글쓰기의 최종 목적으로 새로운 스타일의 창작을 꼽는다. 여전히 시대정신과 함께 새로운 스타일의 창작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런 행간을 아는 독자들을 만나면 기쁘다는 것도 빠뜨리지 않았다.
이런 그에게 ‘어떤 글을 쓰고 있는가’ 하고 물었더니 ‘삶과 죽음의 경계’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대한 문제입니다. 멀거나 차원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 옆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관심이 많아요. 수도승은 이미 저승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죠. 이것처럼 은유적이라는 생각을 해요. 방법적으로 이를 재구성하거나 재창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매일 분주할 수밖에 없다. 교육자로 재직하며 틈틈이 창작적 여정을 소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을 위한 문학 교육이 국문과나 문예창작과와 매우 다른 커리큘럼으로 이뤄진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문학론을 교육적 관점에서 재구성하는 동시에 현장 어린이들을 독자로 놓고 그들에게 무엇을 느끼게 해줄 것인가를 생각하는데 초점을 맞춰 문학적 교육을 실시하고 있음을 들려줬다. 그러나 어려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는 술회다.
"층위가 다른 글쓰기를 하는데 시간적 구획이 지어져 그때마다 그 생각에 몰두하는 편이에요. 생활의 단위를 구별하고 기간별로 창작을 하죠. 교육과 창작의 경계에서 분위기를 주도하기 위해 시간 낭비가 하루 이틀 정도 걸립니다. 글쓰기 이론은 융합을 통한 창의성의 문제로 봅니다. 서로간섭을 통해 생각을 키워주죠. 교육과 창작을 오가면 창작 에너지가 고갈되지만 새로운 영역에 진입할 때는 기대감이 있어 피로감이 극복되는 것 같습니다."
이어 그는 창의성이 뛰어난 제자에 관한 이야기를 언급했다. 문학의 저항성 문제로 완전한 창작에 몰두하는 제자는 드물다는 것을 밝혔다. 창작의 고루함에 도전하려 들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학교생활 자체가 너무 힘들기 때문으로 풀이했다. 교사생활이 힘들어 별도의 창작에 몰두하기 어렵다고 한다. 요즘은 문학창작이 트렌드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저런 이유를 내세울 수 밖에 없는 문학이지만 아직도 과정 중이다. 문학생활을 완성하지 못한데다 정리하지 못했다면서 창작 스타일을 모색 중임을 밝혔다. 평생 문학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그는 근래 들어 ‘나무 및 묘지’와 ‘도시 : 불사족’을 집필하고 있다. 창작스터디에서만 발표한 작품들이다. ‘나무 및 묘지’는 생과 사의 문제를 다루는 시편이고, ‘도시 : 불사족’은 우리가 꿈꾸는 영생이야말로 인간을 처참하고 추악한 상태로 전락시킬 것이라는 은유적 상징의 시라고 했다.
이 두 시편처럼 창작이 되면 그만이지만 막힐 때는 일단 상상력을 깨울 수 있는 독서로 타개한다.
그는 서정성이 풍부한 리얼리즘에서 원형적 사유와 상징, 생의 원형을 짧은 시조와 사설시조에 담아 정리된 상태로 보여주고 싶은 꿈을 갖고 있다.
마지막으로 계획에 대해 물었다.
"얼마전 시조 평론집을 발간했습니다. 시조와 시 창작 및 시조 계간평을 전개하면서 아동문학 교육 관련 논문 2편을 집필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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