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의 무대는 따뜻하다. 모닥모닥 부대끼며 살아가는 우리네 이웃들이 있고, 언제나 든든한 ‘집 밥’을 내어주는 엄마가 등장한다. 연극은 곧 ‘삶’이라는 단출한 철학이 만들어 낸 그들만의 세계다. 봄과 여름에는 배꼽 잡는 유쾌함으로 웃음을, 가을과 겨울 시즌에는 마음을 덥혀주는 따뜻한 작품으로 힐링을 선물하는 극단 ‘청춘’ 이야기다.
푹푹 찌던 날씨가,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을 바꾼 계절에 극단 ‘청춘’이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인생사 희로애락을 연극 언어로 풀어 온, 청춘의 작품들은 찬바람이 퐁퐁 불어오는 요즘 딱 어울리기 때문. 청춘이 가장 분주해지는 시기다.
극단 청춘이 세상에 나온 해는 지금으로부터 30해 전인 1989년이다. 창단 초기 극단명은 ‘청춘 메시지’였다. 연극을 통해 삶의 메시지를 건네고픈 연극인들의 바람을 담았다. 그러다 메시지란 부연을 뗐다. 청춘이란 것이 그 자체로 무한한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렇게 무대에 선 세월이 벌써 서른 해를 맞았다.
청춘은 매해 내실 있는 기획 시리즈를 선보이는 극단으로 이름이 났다. 지난 9월에 대구 극단과 손을 잡고 선보인 사투리 연극제 ‘달빛연극프로젝트-PLAY광
대 2018’과 올 연말까지 선보이는 겨울연극축제 ‘팸(Fam) 시리즈’ 등은 시즌별로 찾아오는 청춘의 연극판이다.
오설균 대표는 "연말에 올리는 ‘가족’ 주제의 연극이 가장 큰 사랑을 받아왔다"
고 말한다.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작품들은 어린 아이들부터 노년층까지 세대를 불문하고 좋아해주는 테마다.
"꼭 그렇게 해야지 작정하고 콘셉트를 잡은 건 아닌데, 청춘하면 ‘가족이야기를 하는 극단’으로 많이들 생각해주십니다. 하다보니까 가족 간의 사랑이야기, 서민들의 삶의 형상들, 가슴 따뜻해지는 이웃들의 모습을 무대화 했던 것 같아요. 그저 본능적인 끌림이 아닐까 싶어요. 우리의 삶을 연극 언어로 재해석하고픈 욕심 같은 것이요."
청춘의 대표작은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를 비롯해 ‘잘자요 엄마’, ‘가족의 계단’, ‘사랑을 주세요’ 등이 꼽힌다.
청춘은 이 같은 가족 주제의 작품을 꼽아 보여주는 ‘fam시리즈’를 11월15일부터 12월29일까지 펼칠다. 이번에는 청춘을 포함해 아마추어 직장인 극단 ‘우연’과 대구 초청 팀 등이 참여할 예정이특히 오 대표가 연출한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김광탁 작)는 올해 광주연극제에서 최우수상·전국연극제에서 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간암 말기의 아버지가 고통을 받으며 굿을 해달라고 했다’는 작가 김광탁의 자전적 이야기를 각색한 작품으로, 병든 아버지를 통해 바라본 눈물겨운 가족애를 그린다. 청춘의 무대에서는 이 같은 가족의 사연을 ‘신파’로 풀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담담하게 그러나 묵직하게 무대를 풀어나감으로써 현장에서 심사위원들은 물론 일반 관객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연극적인 ‘상황’을 무대에 내보여주고, 관객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하게 하려는 청춘의 철학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이전에는 연극을 통해 무엇인가를 애써 전하려하고, 가르치려고 들었다면, 요즘의 무대는 그렇지 않아요. 담백하게 상황을 전한 이후의 감정과 여운은 오로지 관객 몫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도 이 같은 의도가 잘담겼어요. 극 중에 해설을 곁들여 상황을 객관화 시키도록 힘썼죠."
그의 말처럼 상황을 ‘객관화’ 시키는 것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대사를 칠 때나 혹은 몸짓 언어로 말을 할 때 등 억지스럽거나 자극적인 것들은 지양한다.
이는 연출과 무대에 서는 배우들이 충분히 소통해야만 나올 수 있는 결과물이다.
이와 함께 청춘이 주목하는 것은 바로 사투리다. 오 대표는 사투리를 ‘양념’ 같은 것이라 호명했다. 대사를 쳤는데 영 맛이 안산다거나 캐릭터에 매력이 좀 부족하다 싶을 때 이를 살려주는 것이 바로 사투리라는 것이다.
"연극인에게 사투리는 든든한 무기와 같죠. 내뱉는 억양을 조금 바꾸었을 뿐인데 배꼽잡는 웃음을 주기도 하고, 심금을 울리는 감동을 선사하기도 하니까요. 매해 대구 극단과 사투리 연극무대를 선보이는 것도, 사투리에 대한 애정 탓이에요.
광주 연극인들은 대구 사투리로, 대구 연극인들은 광주 사투리로 연극을 올리는 것이죠. 서로의 방언을 잘 모르다보니까, 오히려 ‘대사’보다는 신체언어로 표현이 되는 부분도 있어요. 색다른 매력이 드러나는 것이라, 보는 관객들도 연극인들도 재미있게 임하는 무대입니다."
청춘은 공연을 앞두고는 거의 매일같이 연습실로 모인다. 작품을 고르고, 또 준비하고 연습하는 과정에서는 진짜 ‘가족’들 보다 더 자주 보는 셈이다.
"연극의 가장 큰 매력은 협업이라고 생각해요. 공동창작이요. 연극은 절대로 혼자 할 수가 없거든요. 다 같이 한 마음으로, 오직 ‘한 곳’을 바라보고 가야만 공연 당일 무사히 무대에 설 수 있죠. 또 성공적으로 극을 마무리 지을 수 있고요. 어떤 일을 할 때, ‘네 마음이 내 마음’이라는 이 생각은 정말 큰 힘이 되거든요. 믿고 끝까지 갈 수 있는 동력 같은 것이죠."
한 작품을 올리는 데는 세 네 달의 시간이 걸린다. 기획·구상 단계까지 합한다
면 그 이상의 시간을 투자하는 셈이다. 그렇기에, 공연을 마치고 난 뒤의 희열은 두말 할 것 없이 강하다. 무사히 잘 마쳤다는 안도감, 그리고 잘 끝냈다는 성취감과 만족감이 연극인들의 가슴을 뛰게 한다.
무엇보다 객석의 관객들의 표정을 보았을 때 "참 연극하길 잘했다" 싶을 만큼 행복감을 느낀다 한다. 한 명 한 명의 표정에서 그들이 전하고픈 정서가 오롯이 드러나기 때문. 특히 오 대표는 무대를 함께 준비한 후배 연극인들이 성장해 가는 것을 지켜볼 때 뿌듯하다. 연극 덕에 행복도 있지만 또 연극 탓에 고난도 있다. 극단의 발목을 잡는 것은 역시 인프라 부족이다.
"연극계가 참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중 가장 힘든 것은 젊은 배우들, 스태프들이 없다는 것이죠. 사람이 부재 한다는 것은 장르의 미래를 위협하는 일과도 같다
고 봅니다. 극단에 젊은이들이 북적여야, 작품을 끌고 갈 힘도 에너지도 생기는 법이거든요."
극단 청춘은 연극의 판을 넓히기 위해 힘을 쏟아왔다. 작품을 만드는 연출, 무대에 서는 배우 그리고 객석에서 박수를 보내줄 관객이 있어야만 연극의 미래를 이야기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실 극단 하나를 이끌어 가는 데도 벅찰 때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지 못하는 것이 바로 직장인 극단 ‘우연’과 청소년극단 ‘청연’이다. 이들은 연극에 관심있는 아마추어들로 꾸려진 극단이다. 청춘소속의 전문 연극인들이 연극 이론부터 실전까지 교육, 함께 무대를 꾸민다. 아마추어지만 매해 새로운 작품으로 관객을 만날 수 있는 이유다.
오 대표에게 그리고 청춘에게 연극이 무엇이느냐고 물었다. 예상 못한 답이 돌아온다. "참 애매~하다"는 것.
"연극이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더 젊었을 때는 갖다 붙일말이 참 많았어요. 열정이다, 내 에너지다 하는 미사여구죠. 그런데 연극을 하면 할수록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가 애매해지더라고요. 연극이 곧 제 업이고, 생활이고 삶 그 자체이다 보니까. 연극이란 무엇이다, 하고 따로 떼어놓기가 어려워진 것이죠. 그
냥 연극은 제가 지금 살아가는 순간순간의 삶인 것 같아요."
청춘의 꿈은 소박하지만 명료하다. 바로 "광주 연극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으면"하는 바람이다.
"30년 지역에서 연극을 해 온 극단인 만큼, 그에 걸 맞는 역할에 충실하고 싶어요. 젊은 연극인들이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도록 판을 짜는 일, 또 미래를 보면서 나아갈 수 있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는 것들이죠. 늘 건강하게, 발전해 가는 극단이었으면 합니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