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호흡을 함께하는 사람들이다. 초등학생 꼬마부터 일흔이 넘은 어르신들까지 하나된 ‘숨’을 내뱉는다. 들숨과 날숨의 규칙적인 오고감이, 아름다운 선율을 만든다. 전문 연주자들은 아니지만, 그들 못지않은 열정으로 무대에 서는 ‘CNS윈드 오케스트라’ 이야기다.
‘CNS윈드 오케스트라’는 2008년 세상에 나온 아마추어 관악단이다. 이제 막 악기를 쥐어본 초보 연주자들부터 수년간 실력을 키워 온 든든한 단원들까지 저마다 경력도, 실력도 다르다.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는 추선호(광주시립교향악단 트럼펫 상임단원) 지휘자는 "클래식을 사랑하는 시민들에게 무대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다"고 창단 이유를 밝힌다.
그렇게 알음알음 입단한 사람이 벌써 50명을 넘어섰다. 매주 월요일이면 두암동에 자리한 연습실로 단원들이 모인다. 직장을 마치고 넘어오는 사람들도 있고, 가족들 저녁밥을 차려주고 급히 달려온 주부들도 있다. 저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시간을 쪼개 연습에 임한다. 일주일에 한 번 시간을 내기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출석률이 좋다 한다.
"늘 관객석에서 박수만 보내던 시민들이 직접 무대에 서게 되니, 그 기쁨이 정말 크죠. 매년 정기연주회를 열었고, 초청연주회에도 많이 다녔어요. 모두 한 마음으로 열심히 하다보니까, ‘연주 참 좋더라’는 소문이 났습니다. 전문 오케스트라와 같은 정돈된 하모니는 아니에요. 서툴지만 진지하게 연주하는 단원 한 명 한 명의 모습이 또 다른 감동을 주는 모양이에요."
부족한 연주력은 열정으로 채워 넣을 수 있다. 전문 연주자들이야 마음만 먹으면 설 수 있는 게 무대라서, 귀함이 없지만 이들은 하나하나의 무대가 모두 소중하다. 최선을 다하는 그 마음만큼은 프로 연주자들 못지않다.
CNS윈드 오케스트라는 영화음악을 주로 들려준다. 귀에 익숙한 곡들이 연주하기에도 편하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지난 정기연주회는 아예 주제를 ‘스크린의 향수’로 잡았다. 영화 OST 명곡들을 꼽아 선보여 관객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캐리비안의 해적’, ‘스타워즈’, ‘ET’ 주제곡부터 뮤지컬 영화로 큰 사랑을 받은 ‘라라랜드’, 디즈니 애니메이션인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등까지 추억을 자극하는 영화 음악을 선곡해 들려줬다.
아마추어 연주단이기에 친근한 선곡이 주특기다. 대중가요는 물론 누구나 좋아하는 뽕짝도 대표 레퍼토리로 꼽힌다.
"오케스트라엔 관악기 뿐 아니라 타악기도 함께합니다. 쉽게 말해 군악대를 생각하시면 쉽습니다. 군악대는 힘찬 사운드가 특징이죠. 이처럼 야외에서 별도의 마이크나 음향시설 없이도 연주를 할 수 있어 좋아요. 목관악기의 부드러운 선율과 타악기들의 두드림이 어우러지면 이 두 구성만 가지고도 일반적인 오케스트라처럼 풍성한 사운드를 선사할 수 있습니다."
관악기는 ‘숨’을 불어넣음으로써 사운드를 만들어 내는 게 가장 큰 매력이다. 단체명에 들어간 ‘윈드’(Wind) 또한 ‘숨’, ‘호흡’을 뜻한다.
"공을 들여 무엇인가를 할 때 ‘혼을 불어 넣는다’고 합니다. 또 팀워크를 이야기할 때 ‘호흡을 맞춘다’고도 하고요. 우리 연주단은 숨을 함께하는 사람들이죠. 무엇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숨을 불어넣기 바로 직전의 숨을 맞춰야 한다는 것입니
다. 좋은 사운드를 내기 위해서는 들이마시는 호흡부터 함께해야 하는 것이죠. 지휘봉을 잡고 이 같이 하나된 호흡이 느껴질 때 가장 뿌듯합니다."
CNS 윈드오케스트라에 입단하기 위해서는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바로 자신의 악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 이외에 열심히 하고픈 마음만 있다면 누구나 환영이다.
입단 문턱이 낮은 터라,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다. 일흔 살이 넘은 은발의 연주자들은 관악기 연주로 인생 제 2막의 재미를 찾았고, 초등학생 자녀와 부모가 함께 활동하는 가족 단원들도 있다. 모두 좋아서 하는 일들이다.
"정기연주회가 끝나고 한 분이 메시지를 보내셨습니다. 자기가 잘 하고 있는 것 같으냐고요. 그래서 제가 ‘행복하시냐’고 되물었더니 음악을 할 때 너무 행복하시대요. 그렇다면 너무나 잘하고 계신거라고 답을 드렸어요. 여가 시간을 쪼개서 연습에 참여하고, 무대에 서는 일이 사실 쉬운 일은 아니에요. 자기만족도 있겠지만 활동에 있어 행복감을 느껴야만 지속가능하다고 보거든요."
단원으로 활동하는 것은 시간도, 체력도, 경우에 따라서는 돈도 들어가는 일이다. 하지만 단원들은 이를 ‘투자’라고 보지 않는다. 그저 소진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 일상의 에너지를 채워가는 일이라 한다. 연습하면서 고됐던 기억은, 힘찬 박수를 보내주는 관객들에게서 보상받고 체력적인 힘듦은 무대에서 느껴지는 응원의 눈빛들로 싹 사라진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할 때는 긍정의 ‘기운’이 모여지는 게 있습니다. 예를 들어 관중이 꽉 찬 경기장에 가면 흥분이 되고 가슴이 뛰는 것처럼요. 우리의 연주도 그런 것 같아요. 마음을 맞춰서 연주할 때 객석에게 전달되는 힐링의 기운이 있고, 반대로 응원의 함성소리와 눈빛, 박수가 연주자에게 주는 감동이 있죠."
CNS윈드 오케스트라는 돌아오는 봄, 현악기로 구성된 ‘베누스토 오케스트라’와 함께 꾸미는 신춘음악회를 준비하고 있다. 관악오케스트라와 현악오케스트라가 각각 무대를 절반씩 구성해 저마다의 매력을 뽐내고, 마지막 무대는 100명의 연주자가 한 무대에 설 예정이다.
광주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는 2020년의 기획무대도 벌써 구상에 들어갔다. 바로 제주의 아마추어 관악합주단 ‘한라윈드앙상블’과 교류 음악회를 여는 일이다. 제주 4·3의 아픔을 위로하는 무대를 광주가 꾸미고, 광주 5·18을 기리는 연주회를 제주 팀이 준비해 올린다"같은 아픔을 가진 두 지역이 음악으로 교류하고 치유의 힘을 전하는 무대를 기획 중입니다. 지금 일본 작곡가에게 위촉을 맡겨놓은 상황입니다. 한국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곡이자 5·18의 주제곡인 ‘님을 위한 행진곡’의 멜로디도 빠질 수 없겠죠. 특히 전문 연주자들이 아니라, 두 지역 시민들이 나서서 준비하는 무대라서 더 뜻깊을 것 같습니다."
추 지휘자는 악기를 다루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연주에 대한 꿈은 있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면, 머뭇거리지 않고 문을 두들겨 주길 기대하고 있다. 그는 "혼자 하면 힘들지만, 같이 하면 힘이 난다"고 들려준다.
"무엇이든지 혼자 하면 그 과정이 힘들어요. 단원들이 독주로서 연주를 할 순 없지만 합주를 할 때는 또 그만의 ‘맛’들이 살아나거든요. 많은 분들이 윈드 오케스트라와 함께 했으면 좋겠어요. 연주할 때 ‘참 행복하다’는 단원들의 말처럼 더 많은 사람들이 이 행복감을 누렸으면 합니다. 늘 행복의 선율을 전하는 오케스트라단이 되고 싶어요"

전라도인 admin@jld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