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호·제70호=정채경 기자, 사진· 최기남 기자) 일제강점기인 1935년 10월1일 첫 간판을 올린 이래 84년 동안 한 자리를 지킨 극장이 있다. 국내 유일무이한 단관극장이자 현재 예술영화전용관으로 운영 중인 ‘광주극장’이 그곳이다. 현재 사라지고 없는 자리에 표석으로만 당시의 상황을 유추할 수 있는 경우와는 달리, 광주극장은 현재까지 보존되고 운영돼 남녀노소할 것 없이 매료되기에 충분하다.
광주극장은 개관 당시 시대의 아픔을 대변한 ‘홍길동전’ 상영을 시작으로, 최초 발성영화인 ‘춘향전’, 무대를 활용한 판소리 공연과 무용 발표회, 문춘성 권투 시범경기 등을 두루 선보였다. 해방 이후인 1945년에는 광주전남국악인이 한데 모여 연 해방기념축하대공연을 비롯해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전남위원회 결성, 1946년에는 모스크바 3상 회의 지지대회, 1948년은 백범 김구 선생의 연설 등이 이곳에서 열렸다. 한국 근현대사와 중요한 순간을 함께한 셈이다. 무등산과 5·18민주화운동과 더불어 광주극장이 광주의 정신을 담은 또 하나의 상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유다.
광주 동구 충장로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
한 광주극장은 옛 방식 그대로 간판이 걸려있어 눈에 띄었다. 지난 2월15일 유서깊은 그곳을 찾았다. 입구에 들어서자 조그만 창문이 열려 있는 매표소가 보이고, 그 주변으로 상영작을 알리는 포스터와 시간표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관람료는 성인 8000원, 중·고생 7000원, 경로·어린이 5000원으로 매일 첫 상영영화는 6000원으로 관람이 가능하다는 안내판 및 3편과 5편 패키지로 구매하면 좀 더 할인된 가격에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포인트 적립과 카드할인이 없는 대신 패키지 티켓을 판매하는 모양이다.
영화관 내부로 들어가자 별도의 매점이나 스낵코너 없이 광주극장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와 유기농 허브티 등이 판매 중이었다. 벽에는 2층과 3층의 자리를 알리는 좌석표가 걸려 자유석임을 안내하고 있었다. 또 영화를 감상하면서 덮을 수 있도록 담요가 마련돼 있는 등 최신식은 아니지만 곳곳에 관람객을 위한 마음씀씀이가 돋보였다.
2층으로 올라가자 광주극장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기획전시와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고, 그 옆으로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영사기와 고전 영화 등장인물들의 입간판이 줄지어 세워져 있었다. 마치 옛 시대로 떠나는 여행이자 시간을 거꾸로 되돌리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다시 1층으로 내려와 안 쪽에 마련된 테이블에서 광주극장의 운영을 맡고 있는 김형수 전무이사를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김 이사는 먼저 광주극장의 개관과 인력에 대해 설명했다.
"광주극장은 광주읍이 광주부(市)로 승격이 된 1935년 10월1일에 개관했습니다. 법인설립이 1933년에 이뤄졌으니 2년 만에 문을 연 것이죠. 일제시대 때 제국관 등 일본인들이 주도해 극장이 문을 연 것에 반해 광주극장은 조선인에 의해 설립된 최초의 극장이었던 거죠."
광주극장 설립자는 유은(惟隱) 최선진 선생으로, 광주와 전남 일대 토지를 소유한 대지주 집안으로 알려졌다. 현재 그의 후손인 최용선씨가 대표를 맡고 있다.
현재 광주극장에는 김 이사를 비롯해 영사실 정홍주 실장과 이영일 팀장 등이 운영 및 상영을 도맡고 있다. 이외에 프로그래머 신진아씨와 광주극장 간판으로 잘 알려진 박태규씨가 있다.
이들은 모두 적게는 10년, 많게는 30년 동안 극장을 지킨 소중한 동료들이라고 소개했다. 이들이 광주극장을 떠받치고 있는 관계자들인 것이다

2층 복도에 설치된 옛 영사기와 입간판

"금전적으로 풍요롭지는 않지만 공간에 대한 사랑 때문인지 광주극장 문지방을 넘었다 하면 10년은 훌쩍 넘기네요. 30년 동안 광주극장과 함께한 분도 계십니다. 영화라는 예술에 매료돼 다들 그것이 지닌 의미를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가 아닐까요."
이어 김 이사는 광주극장의 여러 고비에 대해 언급했다.
"사람 인생도 80여년을 살면 다양한 일을 겪잖아요. 참 많은 고난과 역경을 광주극장도 겪었죠. 여러 번 고비가 있었습니다. 화제가 나기도 했고, 소송이 걸리기도 했어요. 대기업 멀티플렉스 공세와 예술영화전용관사업이 이명박 박근혜 정부 당시 다른 사업으로 변경돼 지원금을 받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기도 했었습니다."
광주극장은 1968년 1월 화재가 발생했지만, 같은 해 10월 다시 단장돼 개관하면서 현재 외관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이뿐만 아니라 1998년 학교보건법상 정화구역 내 유해업소로 지정돼 자진 이전하거나 2000년 12월말까지 폐쇄하라는 명령을 받기도 했다. 광주극장은 이 결정이 부당하다고 판단해 버티면서 결국 이듬해 폐쇄명령 불이행으로 검찰에 고발돼 광주지법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제기, 2004년부터 최근까지 법적 분쟁을 겪었다.
이와 더불어 2000년대 초 대기업들이 주도한 멀티플렉스 폭풍에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진행하는 예술영화전용관사업으로 2002년부터 지원금을 받아 운영하면서 예술영화전용관으로 전환해 그 명맥을 이어갔지만 2015년에 이 사업이 폐지, 예술영화유통배급지원사업으로 대체돼 지원금이 끊기면서 다시금 위기를 맞았다는 설명이다.
예술영화전용관사업은 예술영화를 1년에 219일 이상상영하는 독립예술영화 전용극장에 한해 보조금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광주극장은 2014년 기준 6500만원을 지원받았다. 예술영화유통배급지원사업으로 변경된 후에는 영진위가 구성한 작품선정심사위원회에서 뽑은 작품 중 2편을 한 주에 각 4회차씩, 한 달이면 32차례 프라임타임(오후 1시~오후 11시)에 상영해야 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바뀌었다. 이에 광주극장 측은 이를 사전 검열로 이해하고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는 등 보이콧을 하기에 이르렀고, 지원금 보다는 정기후원회원을 모집하는 방법으로 돌파구를 모색했다고 한다.
"현재 400명 정도의 회원이 있습니다. 극장 운영자 입장에서는 뒤에 지지자들이 있는 것 같아 든든한 면이 있어요. 이밖에도 광주극장을 중심으로 다양한 소모임들이 결성돼 있는 것으로 압니다. 영화만 상영하는 공간이라기 보다는 영화를 통해 서로 관계를 맺고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죠."
광주극장의 올해 운영과 관련해서는 지원금을 비롯해 컨소시엄으로 이뤄진 프로그램이 중단되는 대신 극장 내 자체 프로그램에 집중할 복안이다.
"지난해까지 4년 동안 광주문화재단에서 지원을 받아 올해 휴식년제에 해당해 쉬어갑니다. 지난해 문화콘텐츠그룹 ‘잇다’가 문화가 있는 날을 통해 극장에서 운영하던 필름정거장 역시 올해 운영하기 힘들 수도 있겠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올해는 기획전을 풍성하게 하긴 어렵겠지만 스스로 근력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시기라 생각하고 극장의 영화 구성과 본 프로그램에 충실할 계획입니다."
광주극장은 올 상반기에 러시아 영화감독인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회고전을 마련하고, 하반기에는 극장 84주년 기념영화제와 한국-스웨덴 수교 60주년 기념 영화제, 올드뮤직월드시네마, 고전영화와 거장의 작품을 모아 선보이는 시네마테크 등을 잇따라 열 예정이다.
김 이사는 광주극장에서 선보이는 영화들에 대해 국내 예술영화 수입배급사와 영화사가 많이 있다고 언급했다. 영화를 선별해서 본 뒤 상영표를 만들어 배급사와 계약하는 한편, 해외 고전 작품의 경우 해외배급사를 통해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국내에 들여와 번역과 자막 작업을 거쳐 스크린에 올릴 생각이다.
김 이사의 행간을 통해 광주극장이 앞으로 극장의 역사를 어떻게 이어갈지 어림잡아 추측할 수 있었다. 앞 세대가 어렵게 지켜온 극장을 허투루 하지 않고 책임과 함께 긍지가 작용될 수 있도록 하면서 예전과 같이 현재도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곳이자 시민들의 온기로 항상 적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곳, 그리고 많은 영화를 통해 다채로운 문화기획들이 이뤄지는 곳으로 기억되도록 모색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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