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호·제70호=고선주 기자)프레임(틀)에 갇히기 싫어 대형 원형 캔버스에 작업한 작품들을 출품해 선보이고 있던 그를 만난 게 지난해 11월이었다. 기존 원형 캔버스 크기가 작아 직접 대형 원형 캔버스를 제작해 5년째 작업 중이라고 했다. 원형 캔버스가 시중에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40×40㎝ 크기에 그쳐 작업 의도를 십분 살려내기 어려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그만의 노력으로 보였다. 당시 그의 열세번째 개인전이 열리고 있던 무등현대미술관에서 대형 원형 캔버스 작업을 한 작품을 접할 수 있었다. 물론 다양한 원형 캔버스를 만날 수 있어 눈 호강이 됐던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작가를 언제 기회되면 조명을 해야겠다 생각했지만 분주한 일상으로 인해 좀처럼 기회가 허락되지 않았다. 그렇게 몇개월이 흘러가버렸다. 우연하게 화가들의 목록을 만지작거리다가 ‘아차 이 작가다’ 하고 다가왔던 것이 서양화가 조성숙씨다. 그에 대한 인상은 늘 연구한다는 것이다. 창작자이자 학자로서 두 가지 길을 모두 놓지 않고 각각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가는 그의 자세가 존경스럽게 다가올 정도였다. 작가라고 해서 전혀 빈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창작 하나로도, 혹은 학문탐구 하나로도 힘든 것이 현실 아닌가. 예술가 중 어쩌면 두 가지를 병행한다는 것이 축복일 수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버겁지 않을 수 없다. 각각의 삶이 만만치 않아서다.
이런 그를 2월15일 오후 만났다. 그의 작업실은 광주교육대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 겨울 내내 작업실에 나가지 못했다고 한다. 오전에 잠깐 정리하겠다고 해서 엄청 어지러져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말과는 달리 잘 정돈돼 있었다. 아예 어지러져 있는 경우는 그 짧은 시간에 정리가 어렵기 때문이다. 3층에 자리한 그의 화실은 아래층에 태권도 도장이 있어 가끔 기합 소리가 계단을 타고 올라왔다.
같이 기합을 넣으면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을 정도는 되겠다 싶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아이템을 잡으면 스케치를 하고 수채화로 작업을 하거나 유화가 확실하다면 그것으로 본격 작업에 들어간다. 그는 작업에 들어가기 전 많은 시간을 작품연구에 쏟는 편이다. 이런 것들이 가능해진데는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 교육자 뿐만 아니라 창작자, 그리고 집필자(동화 ‘숲속의 거인’ 출간 등)로서의 삶을 병행해서다. 화단에서 그림도 잘하고, 글도 잘쓰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은 현실에 비춰보면 그가 갖는 미술적 지점은 의미가 적다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글쓰는 그에 대해 언급한다.
"전남대 예술대학 재학 시절 교지 편집부장을 했고 운동권 동아리에서 사회과학도서들을 읽었어요, 편집과 글쓰기를 많이 연계할 수 있었던 시기였구요. 그래서 꾸준하게 글쓰는 것이 가능해졌다고 봅니다. 이왕 쓰는 글의 완성도를 더할 수 있는 배경이 되고 있죠. 글을 쓴다는 것 자체도 저 자신에 대한 기록이자 차후 논문용 자료가 될 수 있겠다 싶어 사실에 근거해 글을 쓰죠."
화가이지만 글로 얼마든지 요즘의 그를 조망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도 그는 화가다. 자신을 드러내놓고 하는 성품이 아니다보니 조명받을 기회를 그렇게 많이 잡지는 못하다 근래 들어 매체에 언급되기 시작했고, 본인이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집필을 한다는 전언이다.
또 그는 해외진출에 소극적이지 않다. 올해 중국에서 잇따라 전시가 예정돼 있다. 중국 칭다오 욱봉미술관과 인연이 닿으면서 2015년부터 꾸준하게 전시를 열어왔다.
2015년을 필두로 2016년, 2018년 초대 개인전을 열었다.
지난해에는 중국 칭따오 여시미술관(SO ART 뮤지엄)과 미국 뉴욕 첼시갤러리에서 전시를 연 바 있다.
올해 다시 욱봉미술관에서 오는 6월1일부터 15일까지 초대전을 여는 데 이어 칭다오 중천미술관 개인전이 올 하반기에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충칭 서남정법대학 학내 도서관 과 미술관 개인전 및 한국 미술문화 강연은 오는 10월 이후 성사될 전망인 가운데 이곳에서의 전시와 강연은 이 대학의 법대 교수인 리양 교수의 초청으로 구체화된 것이다.
여기다 광저우 중산미술관(문화관)에서의 2인전(2019년 12월)이 예정돼 있고, 중국미술가 1급 미술사이자 중국국제서화연구원 이사 및 ‘중국 산수화 작가 중국의 소장 잠재력이 높은 화가 100인’으로 평가받는 중국 광동성미술가협회 육만송 작가와 함께하는 한·중 여성작가 교류전시에도 참여할 계획이다.

중천미술관앞에서 포즈를 취한 조 작가

이외에 심천 유량성 갤러리에서 중국 현대미술 작가인 유량성 작가와 2인전(전시일정 미정)도 추진 중이다.
특히 욱봉미술관은 작가에게 교두보 역할을 하는 곳으로 그곳 유립봉 관장과의 깊은 인연을 빠트릴 수 없다.
"여성이라는 점과 8월8일 생일, 그리고 아들이 1명 있는 것까지 같더군요.(웃음) 처음에 포트폴리오를 들고 가서 초현실주의를 주제로 석박사 학위논문을 작성하게 됐는지 설명을 했습니다. 미술사 속 초현실주의의 위상 등을 설명 하면서 전시에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지 들려줬구요. 그곳 미술관 앞에 있는 산청로소학교 어린이들의 전시에 대한 반응이 좋아 제 작품을 꾸준히 초대했고, 지금까지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고 봐야죠."
이처럼 올해 많은 전시들이 성사됐거나 성사를 앞두고 있지만 그는 무리한 욕심을 내지 않기로 했다. 오는 7월 ‘베니스비엔날레’를 기념할 프로젝트 전시에 초대받았으나 절차와 서류상 격차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고사한 것 역시 이와 무관치 않다는 설명이다.
"제 나이대가 되면 모두 버리고 갈 수 있는 여건이 아니죠. 그래도 저는 많은 루트가 열려져 있잖아요. 학생을 가르치는 보람도 있구요. 한국연구재단에 올해 1편의 논문을 제출한 것 역시 학자로서 연구성과가 중요하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는 전업작가이더라도 창작만 중요한 것이 아닐 뿐더러 붓만 들고 창작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시각이다.
영감이 있을 때가 있어 그때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막 어쭙잖게 어울리기보다는 내면에 집중하는 것이 대개 만족스럽다는 반응이다. 작업실은 자신만의 사색과 창작의 공간으로만 활용되기를 희망한다. 오가는 사람들이 많이 찾기보다는 자신이 자신에게 집중해 한 작가로 성장해가는 것이 중요해 순전히 자신만의 공간이 되기를 갈구한다는 귀띔이다.
"이곳에서 생명성에 몰입할 작정이에요. 생명성의 민감성을 가지면서 채식을 했고, 그 덕으로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는 중국에만 그치지 않는다. 뉴욕과도 미술적 인연이 있다. 뉴욕 레이갤러리 관장이 그의 설치 작업들을 선호해 함께 활동하기를 제안했다고 한다.
이런 그도 고민은 있다. 자신의 작업을 한 단계 뛰어넘어야 한다는 소리를 들어서다.
"전시에 도움이 되라는 마음으로 주변에서 작업세계를 한 단계 뛰어넘었으면 하는 말을 들었어요. 저는 숙제죠. 미술이 진부하면 생명이 끝나기 때문이죠. 여기서 프로와 아마추어가 갈리는 것이구요. 메시지를 대중이 읽으면서 거부반응이 없어야 한다는 믿음입니다."
그는 지난해 무등현대미술관에서의 전시에서 작업의 한 전환점을 마련했다고 본다. 전시를 열다보니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됐고, 그것이 계기가 돼 자기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스스로 되돌아보는 시간이 됐다는 설명이다.
분주한 미술활동 외에도 그는 광주여성의전화 자문 위원 등 다양한 활동을 마다하지 않는다. 모두 치유의 연장 선상에서 이뤄지는 활동들로 간주된다.
"자연의 색을 좋아할 뿐만 아니라 습관적으로 무등산 등의 숲을 찾아가죠. 그곳에 가면 식물이나 공기의 느낌이 부드럽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제가 파스텔톤을 선호하게 된 것 같아요. 앞으로 예술의 기능인 치유와 자기정화에 집중을 해나갈 겁니다. 맑은 느낌을 위해 재료를 계속 실험하구요. 혼자 재료를 가지고 노는 것이 좋아 지금처럼 계속 작업에 집중하면서 나중에는 정적이고 동적인 것을 한 화면에 구축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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