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호·제71호=박세라 객원 기자)이들의 ‘두드림’이 들려온다면, 누구라도 뒤를 돌아보게 된다. 쇠, 징, 장구 등 전통 타악기의 어우러짐이 단번에 귀를 사로잡는 탓이다. 소리에 이끌려 이들의 움직임을 보고 있자면 쉬이 자리를 뜨지 못할 것이다. 꽹과리를 든 상쇠를 필두로, 풍물을 두드리면서 상모를 휙휙 돌리는 기술은 가히 사람을 홀리게 하는 행위예술과 같다.
이들의 두드림은 광주에서 시작돼 서울 광화문을 거쳐 독일 프랑크푸르트,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스위스 베른의 시계탑 등 세계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두드림으로써 한국을 알리고, 장단으로 평화의 메시지를 써 내려가는 전통타악연구회 ‘두드리’가 그 주인공이다.
두드리는 노상 무언가를 두드리는 예술인들이 모인 단체다. 1994년 풍물천지란 이름의 예술단으로 첫발을 떼, 사물놀이·농악놀이 등 전통타악의 매력을 알리기 위해 힘써 왔다. 2017년에는 비영리법인단체 ‘두드리’로 헤쳐모여 그 업을 이어가고 있다.
두드리를 이끌고 있는 이시영 대표는 "전통 타악은 사람의 마음을 응집시키는 힘, 서로를 끈끈하게 하는 신뢰가 깃들어 있는 예술"이라며 "두드리는 한국 전통예술의 아름다움은 물론, 한반도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게 우리의 업이라 생각한다"고 밝힌다.
재작년 두드리는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무대에 섰다. 당시 북 미사일 발사 이슈가 있었고 요즘처럼 화해 무드가 잡히기 전이었다.
그때 두드리는 프린지 무대에서 한반도 기를 흔들었고, 평화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은 사물판굿·사물놀이·설장구 등을 선보였다. 영국에서의 공연은 두드리가 프로젝트로 진행하고 있는 ‘한라에서 백두까지 평화의 소리’ 공연의 첫 발이었던 셈이다.
전통 타악을 매개로 한 평화의 행진은 지난해 8월 유럽행으로 이어졌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자일거리와 대성당을 시작으로 스위스 베른의 시계탑·대성당·연방의사당,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퐁피두·노트르담·에펠탑 등 사람들이 모이는 곳곳에서 판이 시작됐다
"그때 유럽의 거리에서 열흘 간 전통 타악 버스킹을 진행했습니다. 현장에서 감동을 받은 관객들이 공연 무대 한편에 돈을 놔두기 시작했는데 진짜 수북하게 쌓일 정도였죠. 당시를 생각하면 여전히 짜릿해요."
두드리의 농악놀이 연주가 시작되면 곧 군중들이 몰려들었다. 일단 울리는 소리가 압도적인데다, 연주를 하면서 보여주는 퍼포먼스 또한 화려해서 보는 이들의 발걸음을 잡아 둔 것이다. 특히 두드리 산하 어린이 국악단인 ‘아리솔’과의 협연 무대는 외국인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전통예술인들과 꿈나무들이 함께 꾸민 무대는 축제 현장에서 정말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사실 외국으로 공연을 갈 때 마다 어깨가 무거워요. 어떻든 한국을 대표하는 팀으로 가는 것이니, 진짜 전통의 맛을 잘 보여주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죠. 외국공연에서는 무엇보다 ‘한국적인 게 가장 좋은 것’이라는 신념으로 프로그램을 짭니다."

두드리는 풍물놀이, 상모돌리기, 사물놀이를 비롯해 사자춤, 버나돌리기, 설장구 등을 보여주었다. 특히 어린이 단원들이 보여주는 상모돌리기는 외국인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인기프로그램이다. 연주를 하면서 상모를 돌리는 ‘기술’은 흔하게 볼 수 없는 풍경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공연은 SNS에 실시간으로 퍼져 당시 이슈가 되기도 했다.
"그때 SNS에 업로드 된 저희 공연을 보고서 미국 뉴욕의 한 단체에서 초청장을 받았어요. 올해 6월 미국으로 건너갈 예정입니다. 한국 전통이 주는 힘, 그리고 그것을 어린 아이들이 함께 보여줄 때 힘은 훨씬 강해지는 것 같아요."
두드리가 교육 사업에 힘을 쏟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들은 2000년부터 교사들에게 사물놀이를 가르치는 ‘교사직무연수’를 시작으로, 각 학교로 찾아가는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전통 예술의 중함을 알리는 것, 또 전통을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주는 것이야말로 전통예술의 ‘미래’를 담보하는 일이라 믿기 때문.
"요즘 학교의 정규 교육으로는 국악을 배울 기회가 없어요. 서양 음악 위주로 음악 수업이 짜여져 있죠. 지역의 초등학교, 중학교로 찾아가서 공연을 참 열심히 했습니다. 해마다 열 차례 넘게 다녔으니까요. 국악기를 직접 배워보고, 사자놀이나 상모놀이 등을 체험하는 방식이죠. 이 같은 공연이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삶 속에서 지속될 수 있도록, 국악이 한결 더 가까워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두드리는 전통 타악의 매력을 ‘어울림’에서 찾는다. 연주자 간 서로 한 호흡이 되지 않으면 타악의 두드림은 그저 소음에 불과하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하지만 북장구 소리에 꽹과리가 더해지고, 이들을 껴안는 징소리가 울려 펴지면 가슴을 쿵쿵 두드리는 힘이 전해진다. 지금껏 단원들이 늘 같은 에너지로 무대에서 연주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웅장하면서도 부드럽고, 강하면서도 유연한 맛의 전통타악은 두드리가 오래 그리고 널리 전하고 싶은 한국적인 멋이다.
"우리나라 국악기 장구나 북은 서양 타악기인 드럼과는 완전히 달라요. 드럼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서, 스틱을 두드렸을 때 드르르 튀기는 소리가 납니다. 반면 짐승 가죽으로 만들어 진 장구나 북은 타악기임에도 불구하고 감싸 안는 소리를 내요. 묵직한 울림이 온 몸에 가득 퍼지면 누구라도 ‘얼씨구’ 하는 추임새가 절로 나죠."
올해도 두드리는 ‘평화’ 메신저로 활약할 계획이다. 지난 유럽 순회공연에 이어 올해는 미국 뉴욕과 말레이시아 공연이 각각 예정돼 있다. 국내에서 또한 ‘한라에서 백두까지’ 프로젝트에 이어 ‘평화의 한마당’ 공연을 다채롭게 선보일 구상이다.
앞으로 바람에 대해 묻자, "전통을 사랑하는 이들이 더욱 늘어났으면 한다"고 망설임 없이 답한다. 해외에서 공연을 많이 해본 예술단으로서 국내에서보다 해외에서 반응이 더 뜨거운 것이 좋으면서도 조금 씁쓸하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히려 우리의 것을 홀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중음악에는 뜨겁게 열광하지만 전통예술에는 조금 인색하죠. 전통예술이 제 가치를 인정받고,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우리 것’이 됐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어요."
두드리는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방법으로, ‘애국’ 활동을 해 나갈 작정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할 때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이들은 믿는다.
"지금껏 걸어온 것처럼, 두드리가 가고자 하는 길을 갈 생각입니다. 전통을 바로 잇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의무감과 책임감이 우리에겐 있어요. 초심을 잃지 않고 맡은 바 역할을 해내는 것 또한 하나의 ‘애국’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전통예술’을 매개로 예향을 알리고, 대한민국을 알리는 데 정진하려 합니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