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호·제73호=박세라 객원 기자, 사진 최기남 기자)‘모심과 섬김’. 발음하기에도 어여쁘기만 한 이 두 단어를 그는 몇 번이고 이야기했다. 말이 주는 긍정의 이미지 탓에 혹 종교에 대한 논의인가 오해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 그는 문화기획자다. 지역 문화를 열심히 공부하고 발굴해 내어 유무형의 콘텐츠들로 재탄생시키는 일을 한다. 고등학교 때부터 ‘문화 기획’이란 모호하고 애매한, 그래서 더욱 매력적인 꿈을 품은 뒤, 16여 년 한 길을 걸어왔다. 광주 문화기획사 ‘좋은친구들’의 기획이사로 활동 중인 이숙영씨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 5월15일 좋은친구들 사무실에서 이 기획이사를 만났다. 재미난 문화 판을 벌일 때마다 종종 연락하면서 지내왔으나 정식으로 그를 인터뷰한 것은 처음이었다. 늘 그보다는 그가 벌여온 ‘일’들에 시선을 빼앗겨 왔던 탓이다.
첫 인터뷰라 긴장된다던 그이지만,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자 문화기획자로 살아온 오랜 경험치들을 술술 풀어낸다.
이 기획이사가 처음으로 문화기획에 뜻을 둔 것은 고등학교 때 부터다. 청소년 문화 단체에 소속해 활동하면서 ‘문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초기에 접하게 된 것은 풍물이나 국악 등 전통예술 분야였다. 그러나 문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 시작하자, 그 범위는 문화예술의 경계를 넘어 일상으로까지 넓혀져 왔다. 제대로 문화에 대해 공부하고자 상경한 그는 ‘다음 아카데미’에서 예비 문화 기획자로서 첫 발을 뗐다.
그러면서 이 기획이사는 배운 것을 써먹는 곳은 꼭 광주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올라가면서부터 마음먹은 게 지역에서 활동하자는 것이었어요. 내가 채운 역량들을 내가 나고 자란 곳에서 펼쳐 보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죠. 고향이 광주이지만 사실 이 도시에 대해서 제가 잘 모르더라고요. 그냥 광주의 5월, 예향, 의향 등 표면적인 것으로만 인지하고 있는 게 전부였죠. 너무 가까이에 있기에 공부하지 않은 탓이었습니다. 광주라는 도시에 대해 더 깊이있게 공부하고, 이를 통해 문화적인 행동들을 실현시키고 싶었죠."
2004년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좋은친구들’에 입사, 광주세계김치문화축제, 추억의 충장축제를 비롯해 영암왕인문화 축제, 완도 장보고 축제 등 굵직한 지역 문화행사들에 참여했다. 애초부터 그는 지역 축제에서 ‘지역민’의 참여를 중시 여겼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민과의 협업을 꼽을 수 있어요. 그 동네에서 판을 벌이는데, 주민들의 참여가 없으면 일이 어렵게 될 수밖에 없죠. 지역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 즉 지역전문가들은 바로 동네의 토박이들이거든요. 초창기에 우리는 지역 ‘인물’에 관심을 뒀어요. 인물에 대해 역사·인문학적인 공부들을 하고, 현장에서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는 방식이죠. 그러면 책상에 앉아서는 닿을 수 없었던 인물 삶의 흔적들을 좇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지역민과 함께 만든 축제는 지역 색이 잘 표현되는, 지역민이 주인이 되는 축제로 펼칠 수 있었어요."
서두에 소개한 ‘모심과 섬김’은 이 대목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문화기획의 가장 기본적인 바
탕을 모심과 섬김이라고 표현했다. 협업하는 예술가를, 또 지역민들을 모시고 섬기는 마음으로 일에 임해야 한다는 말이다.
"기획자는 소통 창구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해요. 열린 마음으로 원활한 교류가 이뤄져야만 제대로 된 문화판을 벌일 수가 있죠. 그런 의미에서 함께 판을 만들어가는 예술가들 그리고 지역의 주인인 지역민들을 모시는 마음으로 협의해야 합니다. 예술분야에서는 예술가들이, 지역에서는 지역민들이 저희보다 뛰어난 전문가들이기 때문이죠. 그런 면에서 기획자는 이들을 잘 아울러서 최대치의 역량으로 발휘될 수 있도록 든든히 받쳐주고, 끌어주는 업을 수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난해 열린 광주 동구 ‘문화재야행’ 행사 모습

그는 지역축제가 지향해야 할 방향성에 대해서는 ‘대동’(大同)이란 단어를 꼽았다. 축제가 사회 곳곳의 갈등을 해소하고 화합하게 하는데 그 역할을 다 한다는 설명이다.
그런 시각에서 볼 때 이 기획이사는 "지역축제가 수치적으로는 많지만, ‘대동’의 가치를 실현하는 진짜 마을 축제 성격은 얼마 없다"면서 "규모보다는 지역이 객이 아닌 주가 된 축제들이 늘어나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그는 각 지역의 축제들을 하나씩 해 나갈 때 마다 애향심을 느낀다. 알아가면서 보이게 되는 것들이 많아지면서, 그 공간을 사랑하게 되는 마음이 샘솟는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동구 문화재야행 달빛걸음’ 프로젝트에 몰두 중이다. 도심 곳곳에 있는 문화재들을 다시, 바로 보게 하는 사업이다.
"우리는 문화재라는 것을 대부분 잘 보존해야 할 문화시설로만 접근했었죠.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문화재를 보고, 듣고, 향유하는 것으로 그 시각을 바꿔놓은 작업입니다. 광주 5월 정신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구 도청, 근대문화유산인 서석초등학교, 옛 광주읍성의 유허들, 지산동 5층 석탑 등의 문화재를 야간에 둘러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죠. 문화해설사와 동행하면서 공간에 담긴 스토리들을 알아가면서요. 3년차인데 올해는 8월9~10일 진행할 예정이에요."
또 문화기획자로서 욕심이 나는 광주의 문화콘텐츠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역사문화자원들 중 하나를 꼽을 줄 알았는데, 이 기획이사는 ‘평화’라고 말한다. 그가 꼽는 평화는 단순히 정치적 의미에서의 평화를 뜻하지는 않는다. 그보다 앞선 게 ‘일상의 평화’다. 기본적으로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 기본이 되는 평화라는 가치를 다양한 문화 활동들로 녹여내 보고픈 마음이다.
"장기 프로젝트로 진행하고 있는 ‘코리아유라시아 로드런’은 5월 정신으로 출발했습니다. 우리의 목적지는 지역을 넘고, 남과 북의 경계 그리고 대륙을 넘는 평화입니다. 올해는 광주의 오월처럼 역사적 상흔을 지니고 있는 여수.순천, 제주 등을 순회하면서 공연을 펼쳐 나갈 계획이에요. 내년에는 본격적인 전국투어에 나서게 될 테고요. 이렇게 달려 나가는 이유는 결국 평화란 가치를 뿌리 내리게 하기 위함이죠."
그러면서 또 하나 강조하는 것이 ‘경계를 넘는 것’이다. 자신 앞에 펼쳐진 ‘나’의 경계부터 지역적인 경계, 나와 다른 생각들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에 깊은 관심을 둔다. 여기서 경계를 넘는 다는 것은 ‘침범’의 의미보다는 벽을 무너뜨리고 ‘함께’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모든 기획의 기초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궁리하는 것입니다. 내 삶을 어떻게 꾸려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우리 함께 어떻게 살 것인가를 논의하는 것이지요. 그런 면에서 제가 하는 기획이 많은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삶의 가치를 나누는 기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특히 삶의 방향성을 잃은 청소년들에게 힘을 주는 것들, 저마다 꿈꾸는 삶들을 실현시키는 데 그 바탕이 돼 주는 일들을 벌이고 싶어요. 지나온 시간 지역에서 문화기획자로 활동하면서 참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앞으로 10년, 20년은 이 배움을 나누는 일들을 해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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