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제85호=고선주 기자) 현대 사회의 삶은 간단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자고 일어나면 삶이 더 가벼워지기를 늘 소원한다. 30대에서 40대로, 40대에서 50대로 넘어오면서 삶이 더 가뿐해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전개됐다. 정말 나이가 먹어가고, 직급이 올라가면 일이 줄어 좀 더 가벼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으로, 장밋빛 희망에 젖었다.
회사 업무와 가사에 하루 24시간을 쪼개 써도 시간은 태부족한 날이 많다. 마치 삶이 블랙홀에 경도된 듯 허우적대는 느낌이다. 이 블랙홀에 빠진듯한 일상의 출발은 또 다른 이면에서 들여다보면 복잡한 사람관계로부터 태동된다. 집이든, 회사든, 사회든 우리는 인간관계로부터 한 발짝도 떠나서는 일상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이 제일 무섭고, 제일 경계해야 될 것이 사람이라는 말에 실감하게 되는 요즘이다. 일전에는 서투른 인간관계야말로 직언과 지적, 비판의 타깃이 되기 쉬웠다.
하지만 바른 말과 바른 소리는 성숙하든, 비성숙하든 되도록이면 인간 관계에서 드러내지 말아야 하는 게 에티켓이 된 세상이다. 그래서 항간에는 사람 관계에서 ‘충조평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심심잖게 들려온다. 충조평판은 충고, 조언, 평가, 판단의 첫 글자를 따와 합성한 말이다.
필자는 세월호 참사 직후 경기도 안산에 ‘치유공간 이웃’을 만들고 참사 피해자들의 치유에 힘쓰는 등 사회 곳곳에서 벌어진 트라우마 현장에서 피해자들과 함께 해온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인 정혜신씨의 심리학서 ‘당신이 옳다’에서 충조평판의 의미를 접하게 됐다.
충고, 조언, 평가, 판단 등 이 네 가지 단어는 각기 분리해 따져보면 나쁜 말이 아니다. 한때 한창 국가와 개인이 발전해갈 때는 반드시 필요한 단어들이었임에 틀림없다. 이 충조평판을 생각해보면 시대의 트렌드라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다. 경제적으로 취약하고, 사회적 부조리가 심각할 때는 충조평판이 당연시됐다. 그것이 가르침이라는 말로 둔갑돼 사회에 통용됐다.
그러나 이 시대는 충조평판을 거추장스러워 한다. 또 다른 간섭이자 꼰대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충조평판이 지나친 이기주의와 물욕주의에 대한 브레이크 역할을 해줄 것이라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오로지 스스로가 스스로를 컨트롤해야 한다. 설령 컨트롤하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이제 우리네 일상은 집단적 통제로는 힘든 세상이 된 것이다. 사고의 전환이 요구된다. 그런 말이 있지 않는가. 바른 말이 더 폭력적이라고, 이 말이 새삼스럽게 가슴에 꽂힌다. 역설적으로 바른 말에 상처받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참 어려운 것이 ‘충조평판하지 않는 삶’이 아닐까 싶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