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백년 부채 인생…"우리 문화 자긍심느꼈으면"

[남도명인] 3대째 부채장 명맥 김대석 접선장
전국 유일 접선장 전라남도무형문화재 제48-1호
55년여 동안 담양서 전통 방식 그대로 부채 제작
"‘맥’ 끊길 위기…제자 양성해 노하우 전수가 꿈"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0년 08월 02일(일) 17:38
(2020년 8월호 제87호=글 정채경 기자·사진 최기남 기자)그는 인터뷰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다. 55년여 동안 찹쌀로 풀을 쑤고 대나무를 길들인 시간들이 무척이나 즐거웠다. 어느새 생의 절반이 넘는 시간을 부채와 함께했다. 부채가 많이 팔리던 1980년대까지만 해도 동이 트기 전부터 작업실에서 부지런을 떨었다. 저렴한 중국산 부채가 수입되고 플라스틱 부채가 대량생산되면서 예전보다 수제품을 찾는 이들은 줄어들었지만,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작업에 임해 왔다. 전남 담양에서 전통 방식 그대로 부채를 만드는 김대석(73)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48-1호 접선장의 이야기다.
그가 만드는 부채는 ‘접선’이다.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접이식 부채로, 접어서 쥐고 다니기가 용이하다. 예로부터 담양을 비롯해 전주와 나주에서 만들어졌다. 지난 2007년 담양군향토무형문화유산 제2호로 지정, 2년 뒤 기능전수와 보존가치가 크게 인정돼 도지정 문화재로 승격됐다.
김 접선장은 재료의 선택과 가공기술, 접선의 완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전통 작업 방식 그대로 보존·계승하고 있다. 지난 2010년 5월27일 도 무형문화재로 지정, 전국 유일 접선장이다.
매주 주말 죽녹원 시가문화촌 안에 있는 광풍각에서 그를 만날 수 있다. 그는 광풍각이 문을 연 지난 2008년부터 주말마다 이곳에서 작업을 하는 한편, 관광객들에 전통 부채에 대해 알리는 체험을 제공하고 있어서다. 수제 부채로 가득한 광풍각에서 만난 그는 부인인 정명순씨와 함께 부채살에 풀을 발라 화선지를 붙이고 있었다.
그는 먼저 부채의 쓰임새에 대해 설명했다.
"예로부터 부채는 아주 유용해 선조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시원한 바람을 일으키기도, 햇빛을 가리는 용도로도 사용됐죠. 또 장단을 맞추는 악기나 음을 지휘하는 지휘봉으로 풍류를 즐기는데 빼놓을 수 없는 도구였고, 농사를 짓다가 땅에 깔고 앉거나 새참을 먹을 때 밥상이 되기도 했어요."
3대째 접선장으로 만성리에서 부채를 만들어온 그는 처음엔 먹고 살려고 부채를 만들기 시작했다. 조부인 김곤숙, 부친인 김용하씨가 하던 가업을 이었다.
"그때는 세끼 밥먹기가 힘들었어요. 다들 그랬죠.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부채를 만드셔서 당연히 저도 만들게 됐습니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부채밥을 먹고 태어나 국민학교, 중학교를 다닌 시간을 빼곤 쭉 접선을 제작해왔죠."
그에 따르면 접선은 고려시대에 시작됐으니 1000년 가까이 됐다. 대나무가 유명해 죽세공예가 활발히 이뤄진 담양 일대에서 접선이 활발하게 만들어졌다고 한다. 조선시대인 17세기 초 담양산 부채가 조정에 상납됐으며, 이같은 전통이 지속적으로 이어져 일제강점기인 1937년 담양의 쥘부채 129만 자루, 둥근부채 1만 자루 등 총 130만 자루의 부채를 생산했다는 당시의 통계자료가 남아있다고 한다. 따라서 현재 부채 주생산지로 알려진 전주(당시 43만5000자루 생산)를 훨씬 능가했다고 여겨진다. 역사가 오래되다 보니 재료에 따라 대나무로 만든 죽선을 비롯해 뿔로 만든 각선, 물고기 가죽으로 만든 어피선까지 가지각색이라는 설명이다. 모양에 따라서도 그 종류는 10여 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죽녹원 시가문화촌 안에 있는 광풍각에서 부채를 만들고 있는 김대석 접선장(왼쪽)과 정명순씨.

이런 가운데 그가 만드는 접선은 일반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유지선과 부채춤에 사용하는 무용선, 무속인이 굿을 할 때 쓰는 무당선, 약 40㎝로 장식용으로 쓰이는 대접선 등이다. 주로 큰 굿을 앞둔 무속인과 무대에 설 무용가가 그의 주요 고객이다.
제작은 대 쪼개기를 시작으로 초지 만들기와 낙죽 그리기, 중주, 사복 구멍을 뚫고 박기, 머리 조이기, 구중질하기, 앞내리기, 목살자르기, 변잡기, 종이접기, 풀로 종이 바르기 순서로 이뤄진다. 담양산 대나무로 살을 만들고 전주에서 공수해온 화선지나 비단 등을 붙여 만든다.
이어 그는 그가 만든 담양 접선의 특징으로 대나무 외피가 아닌 속대를 사용하는 점을 꼽았다.
전주의 경우 대나무 외피인 겉대를 얇게 쪼개 풀을 붙여 만드는데, 그가 만드는 것은 속대를 이용해 부챗살에 마디가 없고 매끄러워 ‘민 합죽선’으로 부른다는 것이다. 속대는 겉대보다 약해 다루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라는 설명이다.
유일한 명인이기에 쥘부채를 만드는 것을 계속한다는 그는 나이 들어서 가진 기술을 사람들에 베풀 수 있어 더할나위 없이 좋지만, 배우려고 하는 사람이 극히 적어 맥이 끊길 처지에 놓인 담양 접선에 안타까워 했다.
"제가 만든 부채를 쥐고 무대에 선 예술인들을 볼 때 뿌듯함을 느껴요. 제가 접선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명인이어서 그만두기 힘들죠. 접선을 제작하지 않으면 담양의 부채가 명맥이 끊어질 뿐더러 무속과 무용 등 여러 전통 문화도 함께 사장될 수 있으니까요. 나이 들어 제가 가진 기술을 사람들에 베풀 수 있어 다행이지만 담양 접선의 명맥이 끊어질 위기여서 안타깝죠. 제자를 양성하고 싶은데 배우려는 사람이 극히 드물고, 그럴 만한 장소도 없어 걱정이에요."
끝으로 그는 부채를 통해 전통 문화가 지속됐으면 하는 마음과 함께 제자를 양성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많은 사람들이 사라져 가는 옛것에 관심을 가져 전통문화가 맥을 유지했으면 해요. 소박함이 깃든 부채에서 옛것의 소중함과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죠. 앞으로도 광풍각을 찾는 사람들에게 부채의 소중함을 알릴 거예요. 또 제자 양성소를 마련해 그곳에서 나무 고르는 법에서부터 작품 완성에 이르기까지 제 노하우 전부를 전수하고 싶습니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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