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토와 유약 실험 거듭하며 작업에 집중

[남도예술인] 도예가 조장현 무등도요 대표
부친 조기정 선생 도예 계승·예술가 2대로 가업 지속
"늘 다른 것 만들어야…‘고현’ 명칭 오랫동안 남기를"
아빠 노릇하며 작업 병행·올 연말 개인전시 계획도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0년 10월 04일(일) 17:46
(2020년 10월호 제89호=고선주 기자)평동공단 끝자락 연산동을 찾아가는 길, 토요일 오후라 나른하기 이를데 없다. 연산동은 매우 생소한 곳이다. 필자에게는 그동안 그곳에 갈 일이 없었다. 그래서 더더욱 생소했는 지 모른다. 진입로를 헷갈려 목포로 향하는 유료도로로 진입하는 바람에 호남대 옆과 송정역, 평동공단을 한 바퀴 도는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했다.
연산동은 국내 현대 도자 역사에서 거목의 자취가 서린 곳이다. 아는 사람만 아는 것인지는 모르나 그곳에는 고려청자 재현에 평생 헌신해온 광주 출생 전통도예가 고현(古現) 조기정 선생(1939∼2007·광주시 무형문화재 제5호)의 마지막 예술혼이 깃든 곳으로, 1997년 이곳에 ‘고현 도예관’을 개관해 청자재현에 온 힘을 다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현재 이곳에는 고현의 둘째 아들이 가업을 물려받아 2세 도예가 집안의 명맥을 잇고 있다. 주인공은 도예가 조장현(45)씨. 조 작가는 형님이 있지만 한의사로 도예와는 거리가 먼 길을 걷자 직접 가업을 물려받은 경우다. 물론 그는 유년시절부터 도예를 접했다. 자연스럽게 도예 언저리를 떠나지 않고 성장할 수 있었다.
보통 2세 예술가들은 부모 세대가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조 작가는 회화를 전공했지만 결국 부친으로부터 고려청자 기법을 전수받았다. 여기다 부친이 1967년 설립했던 무등도요 대표를 맡고 있는데다 아버지의 호를 이어 제2대 고현이 됐다. 이는 부친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입증한 대표적 사례다.
조 작가는 부친인 고현의 영향을 피할 수는 없었다. 도예가의 길을 걷는 것이 당연한 이치처럼 보였다.
굳게 닫혀진 철문을 열고 들어서자 덩치 큰 개(犬)가 맞는다. 물릴까 봐 조심 조심 그가 묵고 있는 안채 거실로 들어갔다. 먼저 자리에 앉아 기다렸다. 진열장과 바닥에 가지런히 정리된 도예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 누가 봐도 도예가가 사는 집이라는 것을 금세 눈치 챌 수 있었다.
서둘러 오느라 숨이 찼다. 숨을 돌리고 있을 때 그가 거실 한켠에 놓인 앉은뱅이 탁자로 나와 맞아 줬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그가 도예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지극히 숙명과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아버지에게 도예를 할 뜻을 밝히는 등 유년기부터 도예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는 설명이다. 도예의 실전을 일찍부터 봐온 셈이다. 동시에 도예가 아닌 다른 예술 분야를 공부하고 싶은 욕망도 웃자랐다. 그래서 그가 결국 전공을 순수 미술로 선택한 계기가 됐다.
그는 애초 월산동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부친이 청자를 할 수 있는 점토와 유약재료가 매장돼 있어 도예 연구를 지속하는 데 적지라는 판단을 하면서 연산동은 새로운 활동 거점이 된 것이다. 그에게 부친은 도예 입문의 계기였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뛰어넘어야 할 산이다.
"저는 대를 이어야 하니까 부담이 컸죠. 부담이 작았다면 거짓말이에요. 남들과 다른 것을 찾아야 했습니다. 생짜로 돌아가는 것도 그렇잖아요. 그래서 흙부터 찾았죠. 점토와 유약 실험을 거듭하며 작업에 집중했지요."
그가 도예가로 길을 걸은 지 20여 년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 그는 개인전 3회와 단체전 50여 회에 참여했다. 그의 대표적 전시로는 ‘징’(澄)(2018년 중국 북경 노고갤러리), ‘의의동망’(衣衣東望·2019년 중국 시안 MOL 갤러리), ‘격경호’(擊磬乎·2019년 서울 갤러리민) 등이 꼽히고 있다.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다. 그와 연결된 계기는 ‘인도네시아 현대 도자 비엔날레’ 작가 레지던시 프로그램 참여 소식을 접하면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의 프로필과 전시 이력을 살피다 국내에서 단체전이 드물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더욱이 광주에서는 단체전에 거의 참여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 저기 기웃하지 않는 듯 보였다.
그는 요즘 다섯달 된 딸아이를 키우느라 여념이 없다.
아이를 키우면서 작업까지 해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작업 몰입도를 끌어올리는 것을 고심하고 있다. 이런 그에게 도예의 매력을 묻자 해박한 실제를 들려줬다.
전시 진행 모습

"도예는 연구하면 할수록 어려워진다고 보면 됩니다. 거기에 더 심취해야 하는 이유죠. 공부를 계속 할 수밖에 없어요. 평생 도전해야 하는 것이 도자기인 것 같습니다. 도자기는 기술로만, 지식으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겸비해야 합니다. 예술적 관점을 가져야 제 작품이 나오는 것 아니겠어요. 도예작업의 특성은 마지막에 불이 있다는 것인데 완벽하게 컨트롤 할 수 없는 한계가 있어요. 그리고 설령 제 작품을 만든다해도 생산량이 많지 않아요."
그는 자신의 작업 방식과 시중에 판매되는 도자작업을 비교하며, 시중 도자들처럼 작업을 할 경우 현재보다 10배 이상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선조들은 유약
처리를 하고 불을 때 유리질로 코팅을 했다는 점을 잊지 않았다. 시중에서 생산된 일부 도자들은 성분표를 보면서 하나 하나 섞지만, 그는 다 섞여 있는 자연산을 찾아 작업에 집중한다. 이처럼 그의 작업은 결코 인스턴트화된 과정과는 거리가 멀다. 전통 방식에 따르면서 현대적 해석을 시도한다. 전통 유약은 알갱이나 재료 크기를 컨트롤하는 것이 어렵다. 시중에 판매되는 유약과 전통 유약은 극명하게 색이 다르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가 순수미술을 전공했는데 이것이 도예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고, 어떻게 작업에 반영되고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그에게 이를 묻자 ‘장식은 물론이고, 예술철학이나 개념에 이르기까지’라는 답을 내놓았다.
"순수미술에서 중요한 것은 개념이고 철학이죠. 결코 쉽게 시각화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개념과 철학이 작가의 생각을 변화시킨다는 생각입니다. 작품에서 일반인들은 쉽게 발견할 수 없어요. 청자는 예로부터 주변환경으로부터 모티브를 따 왔어요. 단면에 무의미한 장식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예술 철학이나 개념입니다. 무늬가 많은 것들을 시사하고 있어요."
그가 예술 철학이나 개념을 설파했지만 이런 모든 부분들이 거슬러 올라가면 자신의 부친과 연결된다. 그에게 부친의 영향은 실로 엄청나게 컸기 때문이다. 그는 아버지의 의미에 대해 언어적으로 단순하지만 존경하는 분이자 가
장 멋있는 남자, 한편으로는 가장 귀여운 분, 그리고 우상으로 귀결했다. 그는 미국에서 돌아와 부친의 병 간호를 8년 동안 도맡아 하다시피했다. 돌아가시기 전 고현이라는 호를 잇기 바랐다는 전언이다. 부친은 자신의 호와는 다르지만 형의 이름을 고현으로 했고, 자신은 제2의 고현이 돼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가 가업을 이을 수 밖에 없는 근거다. 가업을 이어가지만 아버지를 욕되게 할 수는 없었다.
이는 역설적으로 아버지의 그늘은 견고하고 높았다는 반증이고, 자신도 모르게 드러나는 부담감의 흔적인 셈이다.
"아버지의 이름이 지워지는 것이 아니잖아요. 별세 후 자연스레 잊혀져가는 것을 봤습니다. 아버지가 잊혀질수록 제가 부각되는 게 있는데 이게 순리이자 자연스러운 것이구나를 느꼈죠. 아버지 시대는 재현하고 복원 사업에 중점이 맞춰져 있었다고 보면 돼요. 제 아버지는 잊혀졌던 고려 청자를 복원했고, 그 업적은 인정받았죠. 그런데 저는 재현사업을 할 수는 없잖아요. 아버지가 재현한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을 봐왔어요. 저는 다른 청자를 보지 못합니다. 비교대상이 없다고 봐요."
그는 더 나아가 고려청자에 대한 현재적 해석과 접근을 언급했다. 고려청자만 볼 것을 강요도 받아 왔지만 우리시대의 아름다움이 있을 것이고, 이를 통해 다른 것을 찾아 표현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마지막으로 계획과 어떤 도예가로 평가받고 싶은지에 대해 질의하는 것으로 인터뷰를 끝마쳤다.
"아빠 노릇을 열심히 하면서 작업을 병행해 나가야죠. 물론 작업 시간이 오래 걸려요. 그렇다고 규격을 정해놓고 생산을 하면 빠르기는 한데 이러면 나태해질 거예요. 그래서 늘 다른 것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올 연말 개인전을 가질까 해서 준비 중에 있습니다. 아울러 저는 ‘고현’이라는 이름이 오랫동안 남기를 바라죠. 그리고 고현이라는 이름을 제가 잇는 것처럼 자식들도 이어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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